<휘운객잔 98화>
지부는 지금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지부를 이렇게 만든 한명의 여인.
“오랜만이야. 딸.”
“어, 어머니..”
“아들도 오랜만.”
“예.”
지부를 찾은 여인.
바로 당소향이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왜인지 눈빛에는 묘한 살기가 넘실거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먼저 당소향에게 인사하는 곽휘운.
당소향은 그런 곽휘운을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흐음. 오랜만이네요 곽대주.”
“예.”
“그런데……. 제가 방금 뭔가 잘못 본거 같은데……. 어째서 우리 화린이가 곽대주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죠?”
당소향이 막 지부에 도착했을 때였다.
당소향의 두눈을 의심케 한 하나의 장면.
위하윤이 곽휘운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위하윤은 당소향이 나타나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었지만, 이 모습을 본 당소향은 바로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위하윤을 꼬신 남자가 곽휘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변명은 됐어요. 일단 한바탕 하고 대화를 이어보죠.”
바로 출수를 준비하는 당소향.
일단 응징을 먼저 하려는 모습이었다.
“어머니! 잠시만요!”
그때 급하게 위하윤이 당소향을 제지했다.
당소향은 그 모습에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냈다.
단 한번도 위하윤이 자신을 막은 적이 없었다.
“왜 그래 딸?”
“저, 저 제가 먼저 곽대주님에게 다가간 거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용서해주세요.”
“아가씨. 괜찮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곽휘운은 지금 위하윤이 무언가를 설명해 봐야 일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당소향이 오해를 하고 있다면, 그 오해를 풀어야 할 터였다.
“호호, 여긴 좁으니 넓은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곽대주?”
“예.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가자고 제안하는 당소향.
곽휘운은 순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곽대주님. 몸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곽휘운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는 위하윤.
그녀가 아는 당소향은 이런 일에 조금도 손속의 사정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곽휘운의 실력이라면 괜찮을 테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곽휘운은 불안해하는 위하윤을 뒤로 한 채 다시금 당소향을 따라 나섰다.
구름 몇 점 없는 아주 쾌청한 날씨였다.
* * *
평지에 선 곽휘운과 당소향.
“언제부터 화린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죠?”
당소향은 지부에서보다 더욱 차갑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절로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기운을 거침없이 내뿜으며, 지금 자신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음을 숨기지 않았다.
“오해십니다. 저는 아가씨와 생각하시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뭐라고?”
당소향은 곽휘운의 이 말에 더욱 화가 났다.
자신이 보기에 자신의 딸은 이미 이 남자에게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그런데 저렇게 사무적으로 선을 그어버리다니!
이래서 당소향이 곽휘운을 싫어했다.
조금도 여인을 기쁘게 할 줄 모르는 남자였다.
이런 남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딸을 맡길 수 없었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왜?”
갑자기 더욱 분노한 채로 달려드는 당소향.
곽휘운은 그녀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그녀가 원하는 대로 위하윤과 아무 사이가 아님을 말했건만!
“너 같은 놈에게 화린이가 더 상처받기 전에 내가 끝내주마!”
“흡!”
곽휘운은 어떻게 공격할 수도 없고, 그저 당소향의 공격을 최대한 피하면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죽엇!”
넓은 공터에는 당소향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 * *
곽휘운과 당소향이 떠난 지부.
지부는 여전히 문을 닫은 채로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풍아, 오랜만이다.”
“예. 무악 도련님.”
제갈중천은 이번에 당소향을 호위하기 위해 지부까지 오게 되었다.
“도련님은 무슨……. 그냥 형님이라 부르라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위무악이 어떻게든 형님이라 부르게 하겠지만, 제갈중천은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 고지식함의 끝이었다.
곽휘운보다 훨씬 더 한 놈이었다.
제갈중천은 지부의 다른 이들과도 인사를 짧게 나누었다.
지금 지부에는 풍호혁을 제외하고는 다들 모여 있었다.
풍호혁은 마교에서 누군가 온다는 이야기에 마중을 나가러갔기에 지금은 자리에 없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늦네.”
“그러게요…….”
곽휘운과 당소향이 나간지 꽤나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위하윤은 초조함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화린아 걱정하지마라. 설마 어머니가 곽휘운을 죽이기야 하시겠니?”
“그래도요.”
“걱정하지말고, 이리와서 저랑 차 한잔 해요.”
남궁소소는 최대한 위하윤이 차분해 질 수 있도록 따뜻한 차를 한 잔 주었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자, 마음이 약간은 진정되었다.
-똑. 똑. 똑.
그때 지부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장사 안 합니다.”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가 문을 살짝 열고, 장사를 하지 않음을 알렸다.
“곽휘운라는 자를 찾아왔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매혹적인 목소리.
그 목소리에 지부 안의 모든 시선이 열려진 문틈으로 향했다.
* * *
“누구... 신데...? 곽휘운 형을...”
“알 것 없다. 곽휘운를 데려와라.”
미남자는 일말의 표정의 변화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오로지 곽휘운만을 찾는 미남자.
지부 안에 있던 위무악은 미남자에게서 위험한 느낌을 받고, 장성하를 뒤로 물린 뒤에 자신이 앞으로 나섰다.
“누군데 곽휘운를 찾지?”
“흐음... 네가 위무악이로군... 생각보다는 괜찮군.”
위무악을 위아래로 쓸어보며 평가를 내리는 미남자.
이 모습이 위무악의 심기를 건드릴만 했다.
“왜 곽휘운를 찾냐고 물었다.”
“네놈에게는 아직 볼일이 없으니, 곽휘운를 데려와라.”
위무악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미남자.
결국 위무악은 검을 빼어들었다.
-스릉.
“날 쓰러트리면 알려주지. 대신 내가 널 쓰러트린다면 네놈의 정체를 알려줘야겠어.”
“훗. 좋아 놀아주지.”
미남자는 비웃음을 날려준 뒤에 제안을 수락했다.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
미남자는 허리에 검이 있지만 뽑지 않았다.
“검을 뽑아라.”
“뽑게 해보거라.”
위무악은 미남자의 말에 인상을 가득쓰며 먼저 달려들었다.
지금 당장 저 거만한 얼굴을 일그러뜨리지 않는다면 화병이 날 것 같았다.
-천무제황검. 압세.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검의 압력.
하지만 미남자는 여전히 여유롭게 서서 위무악의 검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위무악의 검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손에 들린 부채로 살짝 검면을 쳐서 검의 궤적을 틀어지게 했다.
위무악이 상대를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지만, 아무나 이렇듯 쉽게 압세를 부채로 쳐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지부 안에서 둘을 지켜보던 이들도 깜짝 놀랐다.
미남자의 여유로움에 무언가 숨겨진 한수가 있을 것이란 걸 짐작했지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천무제황검. 징벌(懲罰).
사방에서 조여드는 검격.
마치 죄인을 처벌하는 자비없는 일격이었다.
미남자도 조금 전의 공격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지, 이번에는 몸을 움직였다.
신묘하게 움직이는 미남자의 보법.
빠져나갈 길이 없을 것 같던 위무악의 검격을 몇 번의 부채 놀림과 보법으로 쉽게 빠져나갔다.
“이게 다인가?”
위무악을 도발하는 듯 말하는 미남자.
이 말에 위무악의 이성의 끈이 조금 날아가 버렸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위무악의 기세.
태산과 같은 기세가 위무악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미남자의 눈빛도 조금 변했다.
-스릉.
미남자도 위무악의 기세를 느꼈는지, 부채를 품안에 넣고 검을 뽑아들었다.
“검을 뽑을 만한 자격은 있군.”
“후회하게 해주마. 이 자식아.”
말을 하면서 검을 뻗는 위무악.
-천무제황검. 압세.
조금 전과 같은 초식이었지만, 그 위력은 천지차이였다.
조금 전이 작은 동산이었다면 지금은 태산이었다.
거력이 담긴 검이 미남자를 향해 내리 그어졌다.
미남자는 이번에는 재빠르게 검을 움직여나갔다.
검붉은 색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미남자의 검.
일견 보기에도 불길하고 위험해 보였다.
“가가! 조심하세요!”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남궁소소가 다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위무악의 검과 미남자의 검이 교차되는 순간.
-슈우욱. 쾅!
대기가 빨려 들어감과 동시에 폭발해버렸다.
자욱이 먼지가 일어난 일대.
“콜록. 콜록.”
주위에서 둘의 대결을 지켜보던 이들은 먼지에 눈도 제대로 못뜨고, 연신 기침을 하며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때 바람이 불어 먼지를 날려버렸고, 둘의 모습이 들어났다.
“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검에 몸을 기대고 있는 위무악과 조금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세로 오만하게 서있는 미남자.
결과는 명백했다.
미남자가 이기고, 위무악이 진 것이었다.
“괜찮았군.”
자신의 앞섶을 보는 미남자.
피는 나지 않지만, 옷이 잘려나가 있었다.
위무악의 힘이 조금 더 강했더라면 아마 옷이 아니라 살이 갈라졌을 것이었다.
“살려두면 귀찮겠어.”
미남자는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위무악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죽일 수 있을 때 죽이는 것이 좋았다.
“안돼!”
미남자의 앞을 가로막는 인영하나.
바로 남궁소소였다.
분명 자신은 미남자에게 상대도 되지 않겠지만, 위무악이 죽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너도 죽여주지.”
가차 없이 검을 휘두르는 미남자.
남궁소소의 실력으로는 멀쩡히 막기는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큽.”
간신히 검을 들어 어떻게든 한번은 막아냈지만, 손아귀가 찢어져 버렸다.
아마 다음번 공격은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숨통을 끊기 위해 휘둘러지는 미남자의 검.
남궁소소의 목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 같았다.
“허허, 아이야 그만 검을 멈추거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미남자의 검을 잡고 있는 손 하나.
풍진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