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97화>
* * *
허진청이 대검파로 올라갔다.
대검파는 명문 정파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듯, 빠른 속도로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 예전의 성세를 구가하려면 한참이나 멀었지만, 엄청난 일을 겪고 난 것을 생각하면, 매우 빠른 회복이었다.
허진청은 종종 대검파 인물들과 내려와 지부에 들러 밥을 먹고는 하였는데, 곽휘운은 그때마다 성심성의껏 대하며, 바가지를 씌웠다.
‘대검파가 안정되면 더 받아야겠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화음현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매출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다시 찾은 평범한 지부의 모습.
그런데 지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도 평범하지 않았다.
무림맹주의 아들과 딸, 남궁세가의 금지옥엽, 금화상단의 금지옥엽, 마교의 소교주.
이런 구성은 무림의 역사를 통틀어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지부는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야! 풍호혁! 한판 붙자!”
“거절하겠습니다.”
위무악은 최근 풍호혁과 꽤나 친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 한판 붙자면 떼를 쓰고는 했다.
물론 풍호혁은 그런 일에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언제나 저렇듯 거절했다.
“흥! 마교는 다 너같이 겁쟁이만 있냐?”
“예?”
위무악의 도발.
순식간에 풍호혁의 표정과 기세가 변했다.
“마교는 겁쟁이들만 있냐고 했다.”
“나가시죠.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나와야지.”
신나서 앞장서는 위무악.
그 뒤를 풍호혁이 뒤따랐다.
위무악은 지금 대련이 고팠다.
자신의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곽휘운이 지금 자신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음을 느꼈다.
지금에 안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보다 뒤처지는 것도 싫었고, 또한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도 생겼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가가.”
“응.”
남궁소소.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는 분명 더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위무악과 풍호혁이 지부에서 나가고, 곽휘운과 점소이가 장을 보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지부에는 주방에 있는 장두춘을 제외하면, 여자 세 명 만이 남아 있었다.
위하윤, 남궁소소 그리고 남옥영.
“남소저는 이제 금화지부로 돌아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하게 말을 하는 위하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남옥영에 대한 견제가 들어있었다.
남옥영은 대검파 사건 이후로 지부에 머물렀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그녀의 아버지가 건재했지만, 그녀는 그런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돌아간다 한들 자신이 어떤 처우를 받을지 두려웠다.
곽휘운에게는 이미 양해를 구하고 지부에 머물러 있었다.
위하윤도 그녀의 상황을 알기에 처음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딱한 사정에 마음 아파했다.
그런데, 곽휘운과 남옥영 사이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거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위하윤은 직감적으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음을 눈치챘다.
그래서 괜한 질투심에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남옥영에게 툭툭 내뱉고는 했다.
“어머? 질투? 곽소협에게 허락 받았으니, 한~참 더 머무를 생각이에요. 호호.”
남옥영의 말에 금방 안절부절 못하는 위하윤.
남옥영에게 말로는 이길 수 없었다.
그때 지부의 문이 열리며, 개방도 한명이 들어와 위하윤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네?! 어머니가 오신다고요?”
위하윤의 어머니이지, 무림맹주 위강천의 아내가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 * *
화려하기 그지없는 대전.
그 안의 가장 상석에 악무극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납작 엎드려있는 두 명.
“흐음……. 대계를 실패했다 들었다.”
“죄송합니다.”
몸을 떨며 대답을 하는 악무진.
악무극은 자신의 핏줄이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는 인물이었다.
악무진도 그것을 알기에 이렇듯 두려워했다.
“실패를 했으니 벌을 내려야겠지……. 징혈동(懲血洞)에 보름간 들어가 있거라.”
“할아버님!”
징혈동이라니!
단 삼일만 징혈동에 있어도 초주검 상태가 되어버리건만 보름이라니!
이건 너무한 처사였다.
“가서 실패를 곱씹으며, 더 강해져서 오거라.”
악무극이 손짓하자 검은 그림자들이 악무진을 제압한 뒤 어디론 가로 끌고 갔다.
이제 남은 이는 한 명.
“그래.. 남상인 차례군. 대계의 실패는 물론이고, 남상인의 딸이 우리를 배신했다지?”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남은 한 명의 정체는 남주호였다.
남주호는 최대한 남옥영을 보호해 보기위해 자신의 잘못이라 했다.
“그만. 변명은 되었네.”
“선처를…….”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없었다.
그저 선처를 바랄 수밖에.
“그동안 남상인의 공로를 내 모르는 것이 아니니, 딸아이의 문제는 남상인에게 맡기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물론 이번 대계를 실패한 벌은 받아야겠지만 말이네.”
“크악!”
남주호가 왼쪽 눈을 감싸 쥐었다.
피가 흥건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 한쪽의 고통을 되새기며, 다음 대계를 준비하게.”
“예, 예 알겠습니다..”
“이만 나가보시게.”
악무극의 말에 빠르게 대전을 벗어나는 남주호.
남주호는 지혈보다 먼저, 비를 불렀다.
“비. 너는 어서 가서, 옥영이를 데리고 오거라.”
“예.”
비는 바로 사라졌다.
남주호는 그제야 눈을 지혈하고, 마차에 올랐다.
“하아…….”
짙고 깊은 한숨과 함께 출발하는 마차.
남주호의 이 한숨에는 많은 것이 담겨져 있었다.
* * *
“부인 꼭 가셔야겠소?”
위강천은 눈앞의 여인에게 쩔쩔매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위강천의 부인인 당소향.
나이를 짐작케 할 수 없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곱게 틀어 올린 머리는 윤이 낫고, 피부는 젊은 여인과 같이 탄력 넘쳤다.
아무래도 위하윤의 미모는 당소향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분명했다.
“제가 제 아이들 보러 간다는데 왜 말리시는 거죠?”
“으윽…….”
그녀의 말이 맞기는 했다.
부모가 자식을 보러간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게. 다. 가. 거기에 우리 화린이 꼬신 놈이 있다면서요.”
당소향이 위하윤이 있는 곳으로 가려는 진짜 이유.
평소 위하윤을 그렇게나 예뻐하는 당소향이었다.
위하윤에게 조금이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당소향의 손에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이야 위강천의 부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위강천과 만나기 전의 당소향은 무림에서 독수나찰(毒手羅刹)로 불렸었다.
그녀의 지독한 독수에 당한 이들이 붙인 별호였다.
아마 곽휘운이 위하윤을 꼬신(?) 주인공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필히 그곳은 지옥으로 변하리라…….
당소향은 전부터 곽휘운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곽휘운은 예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지나치게 무뚝뚝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당소향은 곽휘운에게 뭐라 했지만, 곽휘운은 조금도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덕분에 곽휘운과 당소향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굳이 부인이 가서 살펴볼 필요는 없지 않소? 내가 보니 괜찮은 청년이던데…….”
“아니요. 제가 가서 직접 봐야겠어요.”
“하아.”
당소향에게 꽉 잡혀 사는 위강천으로서는 막을 수 없었다.
“알겠소이다. 부인.”
“호호, 그럼 가볼께요.”
“언제쯤 출발 할 예정이시오?”
“지금 당장이요.”
“예? 저, 저 부인!”
위강천의 부름을 뒤로한 채 이미 멀찍이 사라진 당소향.
위강천은 다급하게 은월을 불렀다.
“이보게 은월!”
“예.”
“어서 지부로 이 소식을 전해주게나. 제일 빠른 방법으로.”
“알겠습니다.”
다급한 위강천의 마음을 아는지 빠르게 사라지는 은월.
위강천은 속으로 제발 아무 탈이 없기를 바랐다.
“차라리 이번 기회로 둘의 사이가 좋아지면 좋으련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당소향과 곽휘운의 관계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차라히 이번 기회에 둘의 사이가 변한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뭐, 이제 내 손을 떠난 일이니.”
위강천은 일단 이 일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다시금 업무에 집중했다.
혈교에 대한 업무가 넘치고 넘쳤다.
* * *
아직 완전한 회복을 하지 못한 대검파.
군데군데 아직 폭발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무림맹의 지원 하에 빠르게 회복해 나가고 있었지만, 예전과 같으려면 아직 오랜기간이 필요했다.
“후우……. 이쪽은 뭐가 있길래 이렇게 단단히 막아뒀지?”
“그러게.”
열심히 폭발의 잔해들을 치우던 인부 둘은 건물의 잔해 밑에서 하나의 철문을 발견해 내었다.
온힘을 다해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문은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거 아무래도 대검파 분들에게 말을 해야겠어.”
“그러지. 내 다녀옴세.”
한명이 대검파 문도에게 상황을 보고하러 가려할 때였다.
“흐음……. 여기에 있었군.”
두명의 인부 앞에 갑자기 나타난 한 청년.
청년은 여유롭게 부채를 부치면서 철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부들은 갑자기 나타난 청년 때문에 깜짝 놀랐지만, 으레 무림인들은 저렇듯 신출귀몰하기에 놀란 마음을 진정 시켰다.
“대검파 분이십니까?”
정중하게 물어보는 인부.
고고한 자태에 같은 남자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얼굴을 보았을 때 보통은 아니었다.
“아니.”
“그럼……?”
“혈교.”
“혀, 혈교!!!”
깜짝 놀란 인부 둘.
둘은 무림인은 아니었지만, 혈교가 어떤 곳인지는 알았다.
그리고 이번 폭발 사건의 원흉이라는 것도…….
청년의 말에 둘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대검파 한가운데에 혈교의 인물이 나타나다니.
“어, 어서 대검파 부……. 끅.”
허겁지겁 대검파 사람들을 부르기 위해 달아나려던 인부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옆의 인부는 그 모습을 벌벌 떨면서 지켜보았다.
“으, 으으……..”
방금 전 한명을 죽인 범인은 청년.
하지만 청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서있었다.
“도망치면 일이 귀찮아지겠지.”
청년은 벌벌 떨고 있는 인부를 뒤로하고, 철문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그르릉.
청년의 손짓에 열리는 문.
철문 안은 생각보다 작았는데, 그 공간 안에 물건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을 꺼내드는 청년.
핏빛 구체에 한 마리의 용이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역시……. 무진이 녀석이 안 챙겼을 줄 알았지.”
청년이 아는 장철궁이라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도망쳐 왔을 것이 분명했다.
“번천혈룡탄(翻天血龍彈)……!!”
“호오? 이걸 알다니. 안목이 있군.”
번천혈룡탄.
저주받은 물건이었다.
혈교에서 개발한 폭탄으로, 혈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강력한 폭발력을 자랑하는 물건이었다.
혈교에서도 몇 개 만들지 못하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혈교가 발호했을 때 번천혈룡탄이 한번 터진 곳은 그야말로 티끌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인부는 실제로 번천혈룡탄을 본적은 없지만, 소문으로 들어봐서 생김새를 알고 있었다.
“안목은 칭찬해 주고 싶지만, 이걸 알아 본 이상 살려 줄 수는 없겠군. 뭐, 어차피 살려줄 마음은 없었지만.”
“제, 제발……. 끅.”
마지막 남은 인부마저도 목이 잘렸다.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을 지체하면 이곳으로 사람들이 올터였다.
청년은 품속에 번천혈룡탄을 잘 간수한 뒤에 빠르게 장소를 벗어났다.
“다음은 지부인가…….”
대검파 아래로 빠르게 발을 놀리는 청년.
과연 청년이 말하는 지부는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