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94화>
곽휘운의 회륜이 여러 개로 늘어났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키시이이잉.
엄청난 회전력에 기이한 소리까지 나기 시작했다.
악무진의 검기가 그대로 회륜에 갈려 나가버렸다.
“크허억!!”
악무진은 내상을 입었는지, 입에서 피를 토해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적혈은 더 이상의 싸움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상대는 자신의 주인보다 월등히 강했다.
-쾅!!!!!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
혈뢰가 폭발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곽휘운의 시선이 잠시 그쪽으로 향했을 때, 적혈은 악무진을 잡고 그대로 도망쳤다.
“도망이라…….”
곽휘운은 일단 위하윤을 찾아가야 했기에, 그들을 쫓지는 않았다.
물론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경고의 표시를 해야 했다.
다시는 건들지 말라는.
-빙화신공-축뢰:격공
“크악!!!”
멀찍서 들려오는 악무진의 비명.
곽휘운의 축뢰가 그대로 악무진의 왼쪽 눈에 명중했다.
아마 다시는 왼쪽 눈을 뜨지 못하리라.
“대검파 전체를 날릴 셈이군.”
곽휘운은 남옥영에게 화탄을 쓸 것이란 걸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줄은 예상치 못했다.
대검파 전체를 화탄으로 날려버리려고 하다니…….
-쾅!! 콰쾅!!!
점점 가까워지는 폭발음.
시간이 점점 촉박해졌다.
* * *
죽어라 달려 도망치는 사람들.
“빨리!”
“더 빨리 달려!!”
그들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렸지만, 폭발은 점점더 그들에게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하게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지?!”
“방금 지나온 곳이야!”
“아무래도 진법인 것 같습니다!”
“크흐흐……. 겁화진이라는 것이다.”
제압당해 이송당하던 장철기가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네 놈들은 이 겁화진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겁화진.
혈교에서 대검파 전체에 걸쳐 펼친 진법.
정확한 생문을 알지 못한다면,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
그리고 사람 뿐 아니라, 화염까지도 밖으로 새지 않고, 진법 안에서 더욱 거세게 타올라 겁화진 내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진법이었다.
-쾅!!!!!
지근거리에서 들려오는 폭발 소리.
시간이 없었다.
꽤나 많은 혈뢰를 찾아내었지만, 남아있는 양으로도 대검파를 통째로 날려버리기 충분했다.
“끄아악!!”
“아악!”
뒤쳐져 있던 사람들은 벌써 폭발과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
“이리로! 이리로 오시오!”
불길이 잠시 걷힐 만큼의 사자후(獅子吼).
사람들은 사자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일단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달렸다.
“자자! 어서 나오시오!!”
“아버지!”
그때 사자후의 주인공을 알아보는 위하윤.
사자후의 주인공은 바로 무림맹주 위강천이었다.
“곽대주님이 안보여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곽휘운을 찾는 위하윤.
아까 따로 떨어져나간 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일단 나오거라! 이 아비가 찾아보마!”
위강천은 거침없이 폭발과 불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위험해요!”
“무악아! 화린이 데리고 먼저 나가거라!”
“예.”
위무악은 위강천의 말대로 일단 위하윤을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쾅!!!!!!
바로 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불길과 흙이 치솟아 올랐고, 이내 사람들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방금 나온 통로 사이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오라버니! 아버지가…….”
“걱정 하지마. 아버지가 겨우 그런 불길에 어떻게 되실 분이 아니잖아.”
“그래도요……. 곽대주님은……. 또 어떻게 하고요…….”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위하윤.
곽무악은 그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무력했다.
“일단,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 주위를 잘 감시하시고,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주십시오. 그리고 부상자분들은 한 곳에 일단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우왕좌왕 하는 사람들을 추스르는 남궁소소.
아직 완전히 혈교의 마수에서 벗어났는지 확실치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혈교라는 적 앞에서 합심해야 할 때였다.
* * *
폭발과 함께 만난 남옥영과 곽휘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기에 반가운 재회는 나눌 수 없었다.
“일단 밖으로.”
“어맛!”
곽휘운은 무인이 아니라 움직임이 느린 남옥영을 번쩍 안아들고는 바람처럼 내달렸다.
하지만 금방 자신들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진법에 갇혀버렸음을 깨달았다.
-쾅!!!!
“이런…….”
가까워지는 폭발 소리와 불길.
앞으로 나아가려해도 진법 때문에 불가능했다.
진퇴양난의 상황.
곽휘운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남소저. 죄송합니다.”
“예? 꺄악!”
곽휘운은 남옥영을 꽈악 끌어안고 최대한 도약 할 수 있을만큼 도약했다.
-콰아앙!!!!
귀가 먹먹해지는 소리와 함께 바로 발밑에서 터지는 폭발.
파편들과 함께, 엄청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곽휘운이 제 아무리 높이 뛰었어도, 날 수 있는 새가 아니었다.
다시 지면으로 떨어지는 곽휘운.
폭발은 지나갔지만, 거센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면 통구이가 될지 몰랐다.
-휘이익.
그때 곽휘운의 몸에서 방출되는 엄청난 한기.
주위에서 몰아치는 불길을 막아주고 있었다.
“후우.”
곽휘운은 사뿐히 착지를 했고, 곽휘운을 중심으로 한기가 퍼지면서 불길을 막아나갔다.
“내, 내려주세요.”
“아, 예.”
곽휘운의 품안에서 살포시 내려오는 남옥영.
불길 때문인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화염지옥이 따로 없었다.
사방을 휩싸고 있는 거센 불길.
지금은 곽휘운의 한기가 막아주고 있다지만, 곽휘운의 내공도 분명 한계가 있을 터였다.
“곽소협…….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물론 사실 괜찮지 않았다.
방금 전 최대한 높이 뛰어올라 폭발에 대비했지만, 사실 꽤나 충격이 있었다.
그리고 불길을 막기 위해 극성으로 끌어올려 방출하는 한기.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남옥영을 불안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남소저는 왜 저를 찾아 오셨습니까?”
“곽소협에게 얼른 도망치라 전해 드리려고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자신 때문에 곽휘운이 위험해져 버렸다.
아마 자신이 없었으면, 훨씬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을 곽휘운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서론 다른 말을 하는 두 사람.
곽휘운은 자신의 안위가 위태로울지 모르는데, 자신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남옥영이 고마웠다.
그리고 남옥영은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한 곽휘운에게 미안했다.
“일단, 여길 벗어날 방법을 얼른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내력이 점차로 바닥에 가까워졌다.
이대로는 일다경도 힘들었다.
남옥영은 곽휘운을 위해 최대한 주위를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불길이 미치지 않거나, 진법이 파훼 된 곳을 찾아야 했다.
“있어요!!”
“예?”
“피할만한 곳이 있어요!”
둘이 있는 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
폭발에 의해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아마 우물이 있던 곳이었던 것 같다.
물이 새어 올라오고 있었다.
곽휘운은 그곳을 보자마자, 남옥영을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풍덩.
겉에서 보던 것 보다 물이 꽤나 많이 고여 있었다.
“지하수가 있었나 봐요. 이정도면 한동안은 버틸 수 있겠어요.”
“예.”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이 지하수가 얼마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물속에서 약간 긴장이 풀어지자, 한 번에 모든 피로가 몰려들었다.
속이 뒤틀리고, 피가 목 끝까지 올라왔다.
남옥영은 곽휘운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곽소협. 괜찮아요…….?”
“괜찮……. 쿨럭.”
한 사발 뱉어진 검은 피.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었다.
“뭐가 괜찮은 거에욧!”
하얗게 질려있는 곽휘운의 얼굴.
자신 때문에 이리 된 것이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남소저?”
“다른 마음은 없어요. 그냥 제가 해드릴 수 있는게 이런 것 밖에는 없어서요.”
이번에는 남옥영이 곽휘운을 꼭 끌어안았다.
* * *
남옥영이 곽휘운을 끌어안은 이유.
자신의 체온이 곽휘운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지면, 괜찮을까 싶어서였다.
“조금 더 저한테 기대셔도 되요.”
곽휘운을 자신의 몸에 기대게 해서 조금 이라도 더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곽휘운은 물론 사양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곽휘운은 어머니의 품안에 안긴 아이처럼 남옥영의 품에 안긴 모습이 되었다.
“…….조금 신세를…….”
“이 모습. 백소저가 보면 큰일 나겠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남옥영은 최대한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농을 던졌다.
그녀는 위하윤이 곽휘운에게 마음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대화를 하면서도 남옥영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고, 곽휘운은 최대한 몸을 회복하는 것에 전념했다.
하지만, 불길은 조금도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지하수가 나오는 길도 막혀버렸는지 물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제발, 생각해 내라 남옥영.’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마땅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구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언제 구조대가 올지 모르는데…….’
남옥영의 고민이 점점 더 깊어갈 때였다.
“좋아 보인다? 곽휘운?”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이 목소리에 곽휘운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맹주님.”
“그래. 오랜만이다.”
* * *
곽휘운과 남옥영이 겁화진 안에서 화마와 싸우던 때.
밖에서는 힘을 합쳐 진법을 파훼하고, 서로를 도와주고 있었다.
겁화진에 틈이 생겨 사람이 드나들 수는 있었지만, 화마를 완전히 잡아내기 위해서는 진법의 완전한 파훼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