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93화>
“업혀라.”
“뭐?”
“업히라고, 의각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자신에게 업히라고 말하는 위무악.
그러면서 자세를 낮추고 등을 내밀었다.
“화린이 지키다 다쳤다며. 내가 고마워서 그런다.”
“그래요. 무악오라버니에게 업히세요.”
곽휘운은 둘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업혔다.
정말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모습이었다.
“더럽게 무겁네 진짜.”
“미안하다.”
“휴……. 살다 살다 내가 남자를 업을 줄이야…….”
“조심히 움직여라.”
“확 던져버린다?”
말은 거칠게 해도 곽휘운이 움직이지 않게 조심히 움직이는 위무악.
그리고 그 옆으로 일단 지혈을 마친 위하윤이 나란히 움직였다.
금세 도착한 의각.
“자자, 여기에 엎드려주십시오.”
곽휘운은 위무악의 등에서 내려 침상에 엎드렸다.
엎드리자 의원은 바로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조금 아픕니다.”
“읍.”
곽휘운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고, 그 옆에서 위하윤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위무악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모습으로 있었다.
* * *
대검파파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용봉연 때문에 온, 각 문파와 가문의 수뇌들이 대검파파의 대회의실에 모였다.
안건은 서린의 폭발 때문이었다.
“이건 명백히 폭혈공이오!”
“폭혈공!”
“결국 혈교가 다시 나타났단 말이오?”
“그런 것 같소이다.”
“허어…….”
혈교가 다시 나타났다.
물론 그들도 혈교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자신들을 나타내는 것은 상황이 달랐다.
쉽게 여길 수 없는 안건이었다.
“그럼 당장 용봉연을 중지해야 하지 않겠소?”
“동의하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오.”
혈교가 나타났는데, 느긋하게 용봉연을 계속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아직 혈교라는 확증은 없지 않습니까? 다른 세력이 계략을 꾸미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혈교가 무서워 용봉연을 중지한다면, 혈교에게 놀아나는 꼴밖에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쪽에서는 용봉연을 계속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두 의견간의 첨예한 대립.
결국 사람들의 시선은 이 회의의 결정권자에게 향했다.
대검파파 장문인 장철기.
“지금 우리가 이런 일 하나에 겁을 먹은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를 우습게 볼 것입니다.”
“장문인께서는 용봉연을 계속하자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의연하게 대처해야, 저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일 겁니다.”
“허…….”
결정권자인 장철기가 그리 하자고 하면, 그리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결정권자는 장문인이니, 장문인의 말씀에 따르겠소.”
“용봉연은 계속 진행하도록 하지요. 각파에서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주시고, 개인행동을 삼가도록 해 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지요.”
“그럼.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각자 깊은 생각을 안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그 짧은 순간 장철기와 몇몇 사람들이 눈빛을 나누었다.
은은한 혈기가 잠시 눈에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그것을 본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 * *
회의가 끝난 뒤 각 파의 수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각자의 문파와 세가에 소식을 알리고, 대책을 강구해 나갔다.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대검파로 실력있는 무인들을 불러 모았고, 각자의 정보조직을 가동시켜 정보를 수집해 나가기 시작했다.
폭혈공이 공적으로 나타남으로 인해 모든 무림의 눈이 대검파로 모였다.
지금 대검파에 모인 이들을 보면 정도 무림의 절반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제 무림맹만 움직인다면, 거의 전부가 대검파에 모이는 형국이었다.
* * *
“지금 당장 혈교가 침입했다 알리고, 모든 이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라.”
“예.”
자신의 명령에 두말 않고, 명령을 시행하기 위해 사라지는 부하.
장철기는 턱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계획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방금 생각해 내었지만, 괜찮군. 아니,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겠어.’
마교를 혈교로 둔갑시키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불놀이’를 시작한다.
본래 계획은 용봉연이 최절정에 달했을 때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니 별 수 없었다.
“너는 지금 당장 ‘겁화진(劫火陳)’을 발동하라 하고, 소공자에게 알리거라.‘
“예.”
또 다른 수하에게 명령을 하달한 장철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자신은 한바탕 연기를 한 뒤, 조용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무림맹까지 다 끌어들이면 더 좋았을 텐데…….”
어차피 이제 막 첫 번째 대계가 시작된 것일 뿐.
혈교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이정도 오류는 봐주시겠지.”
혈교 교주의 징벌이 두려웠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처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모였습니다.”
돌아온 수하의 보고.
장철기는 표정을 관리하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갔다.
* * *
“지금 대계를 시작한다?”
“예.”
“계획이 틀어졌나 보군. 젠장! 앞설 수 있었는데…….”
악무진은 인상을 팍 썼다.
일이 틀어진다면, 자신은 또 그놈보다 뒤처지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알았다. 이만 가봐라.”
“예.”
악무진은 대계가 완전히 실행되기 전에 해야 할이 한 가지가 떠올랐다.
“갈 때는 가더라도 그 자식은 죽여 놓고 가야지.”
자신의 앞에서 알량한 실력으로 건방을 떨던 녀석.
아직 시간이 조금 있었다.
그 놈 하나 죽이기에는 시간이 충분할 터였다.
“적혈. 따라 와라.”
“소공자님. 명령을…….”
“그만! 말을 따라라.”
“예.”
적혈은 악무진의 돌발 행동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었다.
하자면 하는 것이 자신의 위치였다.
“크크, 걱정마라. 금방 끝내버릴 테니.”
적혈은 상대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딱히 악무진을 걱정하지 않았다.
교주님의 직계 후손들의 힘을 알고 있었다.
곽휘운을 찾아 나서는 악무진.
대검파파의 모든 이들을 불러 모은 장철기.
어둠을 틈타 나타난 마교.
대검파의 상황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긴장한 표정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
대검파파에 머물던 각 파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장문인. 혈교가 쳐들어 왔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장철기가 나타나자 질문을 쏟아내는 사람들.
이에 장철기는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소. 주변을 지키고 있던 대검파의 제자들을 죽이고, 이곳으로 오고 있소.”
“허어.. 그럼 어서 맞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 모두 이곳에 모여 맞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다들 불렀소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혈교의 병력이 어마나 되는지 몰랐기에, 괜히 나누어져있다가 각개격파를 당하는 수가 있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곳을 벗어나지 마시고, 어서 사람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 모아주시오. 저는 대검파의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먼저 움직이겠소이다.”
“저희도 같이…….”
“아니오. 이건 저 혼자 움직이는 것이 좋소이다. 여러분들은 속히 모든 문도들을 모아 주시오.”
“알겠소이다.”
‘멍청한 것들.’
자신의 거짓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을 보며, 장철기는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이제 자신은 이곳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었다.
* * *
“도망칠 생각은 말게나. 혈교 나부랭이.”
“음?!?!”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장철기를 바라보았다.
대검파 주위에서 혈교와 관련된 모종의 사건들이 있었지만, 유구한 역사의 대검파 장문인이 혈교의 주구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혈교의 주구라? 지금 마교도와 놀아나는 너야 말로 혹시 혈교의 주구가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건 어쩔까?”
위무악이 장철기 앞으로 꺼낸 물건.
피처럼 붉은 색의 화탄이었다.
“혈뢰!!”
주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저주받은 물건.
진천문(震天門)의 진천뢰(震天雷)보다 수배 강한 위력을 내는 화탄.
그런데 어째서 그게 위무악의 손에 들려져 있단 말인가?
“너희 대검파 문도들을 제압하고 얻어낸 물건인데.”
“크큭…….. 크하하하!!!”
무언가 변명을 할 줄 알았던 장철기가 돌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포기한 듯 허탈하면서도 섬뜩한 웃음.
“왜 웃지?”
“그게 다 일 것이라 생각하나? 크하하!! 다 재로 변할 것이다!!”
-콰앙!!!!!!
대검파 전체가 떨어 울리는 폭발음.
그리고 이 폭발음은 점차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피하라!!”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사람들.
순식간에 장내는 폭발과 화염, 연기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 * *
곽휘운은 일행과 함께 움직이다, 자신을 향한 끈적한 기운에 몸을 돌렸다.
위하윤이 따라가려 했지만, 곽휘운의 만류에 마음을 접었다.
어차피 위하윤 자신이 가봐야 오히려 짐만 될 터였다.
“크큭. 그래 잘 찾아왔다.”
곽휘운을 기다리고 있는 악무진과 적혈.
“당신 일거라 생각했지.”
“하! 그런데도 혼자 왔다? 배짱은 칭찬해 주지.”
“혼자가 편하거든.”
악무진은 조금도 위축되어 보이지 않은 곽휘운의 태도에 오히려 살심이 끓어올랐다.
얼른 피투성이로 만들어 자신의 발밑을 기어 다니게 하고 싶었다.
“데리고 놀아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 바로 죽여주마.”
“가능할까?”
“흥!”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며 공격해 들어오는 악무진.
악무진이 빼어든 검에는 검붉은 기분 나쁜 기운이 가득 담겨있었다.
-빙화신공-회륜
-캉! 쾅!
곽휘운의 회륜과 악무진의 검이 부짗치며 나는 가공할 기파.
주위의 나무가 벌벌 떨어 울렸다.
뒤로 열 걸음이나 물러난 악무진과는 달리, 곽휘운은 단 한걸음 뒤로 밀려났을 뿐이었다.
확실한 곽휘운의 우세였다.
“젠장!”
다시금 달려드는 악무진.
방금 보다 훨씬 더 짙은 기운이었다.
그리고 하늘까지 갈라버릴 듯 가공할 기세를 뿜어냈다.
-빙화신공-회륜:첩(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