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91화>
“화린아! 소소!”
“아가씨!”
마음을 굳힌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위하윤과 남궁소소.
위하윤은 지금을 회피하고 싶지 않았고, 남궁소소는 가문을 대표로 나온 것이기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곽휘운과 위무악은 이 모습에 애가 탔지만, 그녀들의 결정에 더 이상 왈가왈부 할 수 없었다.
그녀들 또한 여자이기 전에 무인이었다.
자신들도 같은 상황에서 절대 포기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대신! 조금이라도 위험한 것 같으며, 당장 달려가서 비무를 중지 시킬거야. 알았지?”
“자신 있어요.”
“저도 자신 있습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한 두 여인의 눈.
위무악과 곽휘운은 그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자, 소소. 이리와. 내가 피로를 풀어줄게. 화린이는……. 못미덥지만 곽휘운 네가 좀 해주고.”
내일을 위해서는 확실히 오늘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좋았다.
남궁소소는 위무악이 해주면 되었지만, 위하윤까지 해주기에는 시간이 넉넉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못미덥지만 곽휘운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헤헤, 좋아요.”
곽휘운이 해준다는 말에,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헤헤거리는 위하윤.
위무악은 그 모습에 여동생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뭐, 그래도 잘 어울리긴 하네…….’
* * *
두 번째 봉황전이 치러지는 날.
그런데 이날의 봉황전은 조금 특이한 양상이 나타났다.
서린의 잔혹한 손속에 겁을 먹은 다른 참가자들이 대거 기권을 해버리는 사태가 일어났고, 결국 위하윤, 남궁소소, 서린 만이 남아버렸다.
이에 봉황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간 회의가 이루어졌다.
결론은 한명은 부전승으로 올라가고 남은 둘이 경기를 치루는 것이었다.
부전승자로 뽑힌 사람은…….
“위! 하! 윤!”
위하윤은 바로 결승으로 올라갔고, 남은 남궁소소와 서린의 대결이었다.
“남궁세가의 혜화 남궁소소! 와 대검파파의 서린!”
“와아!! 어서 시작해라!”
열화와 같은 함성과 함께 비무대에 오른 두 여인.
남궁소소의 얼굴은 담담했고, 서린의 얼굴에는 진한 조소가 걸려있었다.
“어머~ 네년도 얼굴이 반반하네?”
“남궁소소라 합니다.”
“아아! 얼굴 그어버릴 맛이 나겠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뎅~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
사람들은 과연 남궁소소가 멀쩡한 모습으로 비무대를 내려올까였다.
지난번 정화와의 경기에서 보여줬던 서린의 엄청난 실력.
사람들은 남궁소소의 실력을 정화보다 낮게 보았기에,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로 내기를 하였다.
“가겠습니다.”
“흐흠, 마음대로.”
더없이 여유로운 서린.
남궁소소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침착하게 일검을 뻗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보이는 일검.
그런데 서린은 그 일검을 보고. 입가의 조소를 지우고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 제왕무적검강(帝王無敵劍剛)-제왕일로(帝王一路)
* * *
남궁세가의 직계에만 전수되어 오는 무공 ‘제왕무적검강’
‘강(剛)’을 기반으로 하는 검공으로, 무림에서도 내로라하는 절세의 검공이었다.
일초식인 ‘제왕일로’는 제왕무적검강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초식이었다.
오로지 극강의 힘을 담은 일검.
-캉!!
검과 검이 부딪쳐 나는 굉음.
이 일검에 서린의 몸이 다섯걸음 뒤로 밀려났다.
‘큭.’
손목까지 저려왔다.
급하게 검에 기를 불어넣지 않았으면, 검이 그대로 잘려나갔을 터였다.
“썅년이!”
거친 욕설을 입에 담으며 달려드는 서린.
방금 전의 수모를 곱절로 되갚아 주기 위해서였다.
서린의 검날이 사라졌다.
정화도 크게 당했던 그 공격이었다.
서린은 자신의 공격이 성공할 것임을 확신했다.
-챙. 채챙. 챙. 챙.
하지만 그녀의 확신은 빗나갔다.
굳건하게 서서 서린의 공격을 막아내는 남궁소소.
마치 어디서 공격이 날아올지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잔재주는 제게 통하지 않습니다.”
무적제왕검강의 방어초식인 ‘제왕부동(帝王不動)’.
주위에 촘촘한 기의 그물을 퍼트려, 그물 안에 걸린 움직임을 느끼고 막아내는 초식.
그렇기에 서린의 보이지 않는 공격을 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호호호……. 하하하!!!”
멀찍이 물러서서 미친 듯이 웃는 서린.
“왜 웃으시는 거죠?”
“네년이 이제 곧 괴로워할 모습을 상상하니까 너무 좋아서.”
언뜻 광기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당신의 공격이 저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요?”
“설마, 내 실력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거야?”
물론 남궁소소도 서린의 실력이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무공과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지금부터 제대로 상대해줄게. 영광인줄 알아.”
서린의 말과 함께 비무대 위에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남궁소소는 처음에 그저 스쳐가는 바람이라 생각했다.
-핏.
그런데 그냥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었다.
매우 빠르고, 은밀한 움직임.
온 신경을 집중해도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남궁소소의 오른쪽 어깨부분의 옷이 조금 잘려나갔다.
‘너무 빨라.’
아무리 빨리 대응하려해도 이미 공격이 적중 된 이휴였다.
“호호, 이제 시작이라구.”
점점 더 거세지는 바람.
바람이 거세지는 만큼 서린의 공격도 더 빠르고 날카로워졌다.
-핏. 피핏. 핏.
조금씩 남궁소소의 옷자락이 잘려나가고, 핏줄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금방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 뻔했다.
‘조금만 더…….’
남궁소소는 이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바람의 아주 작은 틈이 보일 때 일격을 방출했다.
“하앗!”
-무적제왕검강-제왕현현(帝王顯顯)
남궁소소의 검에 또렷이 발현되는 검기.
그 일 검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 서린에게로 다가갔다.
남궁소소의 모든 것을 담은 일검이기에, 결코 경시할 수 있을 만한 위력이 아니었다.
“이년이!”
서린은 얼른 남궁소소의 공격을 대비했다.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필시 자신이 질 터였다.
서린은 최대한 검과 몸을 틀어내, 남궁소소의 일검을 흘려내었다.
-콰앙!
남궁소소의 검기가 서린이 있던 곳을 강타했고, 바닥에서부터 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뭐야!”
“어떻게 된거야!”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사람들은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 고개를 쭉 빼들고 먼지가 걷히기를 바랐다.
-휘이잉.
바람이 한차례 불어와 먼지가 걷히고, 장내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서린은 완전히 남궁소소의 일검을 흘리지 못했는지 얼굴에 검상을 입었고, 남궁소소는 모든 기력을 쏟아 부어서인지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이, 이이!! 내 얼굴에 상처를! 죽여버리겠어!”
이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는 남궁소소를 향해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는 서린.
남궁소소가 피투성이가 되는 것은 자명해보였다.
“그만.”
그때 비무대 위로 뛰어올라 서린의 검을 막아내는 한 사람.
위무악이었다.
* * *
위무악은 남궁소소가 비무대에 올랐을 때부터 초조한 눈빛으로, 계속 남궁소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해야 될 텐데…….”
“잘 하실거다.”
비무가 시작되자, 위무악은 마른 침을 삼켰다.
초반 남궁소소가 서린에게 한방 먹이자, 위무악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그렇지!”
“팔불출이군.”
곽휘운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비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 위무악.
서린의 공격을 남궁소소가 손쉽게 막아내자, 위무악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졌으나 금방 다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서린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불길해…….”
아니나 다를까.
서린의 맹공에 남궁소소가 연신 당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위무악이었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소소! 힘을 내!”
위무악의 응원을 들었을까?
수세에 몰려있던 남궁소소가 준비한 초식을 서린에게 시전했다.
위무악은 제발 이 공격으로 비무가 끝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남궁소소의 공격은 작은 상처를 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화가 잔뜩 난 서린이, 무방비한 남궁소소를 공격하려는 그때.
위무악이 엄청난 속도로 비무대 위로 날아갔다.
“그만.”
위무악은 서린의 검을 검집으로 막아 세웠다.
더 이상의 비무는 무의미했다.
남궁소소의 패배였다.
“그만하시오. 소소가 졌으니.”
“흥! 저리 꺼져! 아직 저년에게 빚이 남아있다고!”
“그만 하라고 했다.”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서린을 바라보는 위무악.
이 눈빛에 마치 무언가에 몸이 짓눌린 듯한 위압감을 느낀 서린.
“이익!”
결국 서린은 분풀이를 속으로 삼키고, 비무대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승자! 서! 린!”
서린의 승리.
비무대 위에는 위무악과 남궁소소만이 남아있었다.
“감사합니다. 가가.”
남궁소소는 자신을 위해 비무대 위로 올라온 위무악을 바라보았다.
약속처럼 위무악은 자신이 위험해졌을 때 나타나 주었다.
“하하, 당연히 할 일을 했을……. 읍!”
멋쩍게 대답하는 위무악의 입을 막아버리는 남궁소소의 입술.
“우오오!!”
구경꾼들은 뜻밖의 광경에 열띤 함성을 질렀다.
“이건, 답례입니다.”
“예? 예? 예…….”
위무악은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버버하고 있었다.
그래도 금방 제정신을 붙잡고, 자신의 겉옷을 벗어 남궁소소를 감싸준 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를 들고 움직였다.
“휘익~! 좋을 때다!”
구경꾼들의 농에 위무악과 남궁소소는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으며, 새빨게진 얼굴로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 * *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갔다.
봉황전 결승전 당일.
이른 아침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근처에는 사람 발 디딜 틈조차도 없었다.
정도삼미(正道三美) 중 한명인 검화 위하윤과 봉황전의 파란을 몰고 온 서린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가씨.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네.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