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90화 (90/203)

<휘운객잔 90화>

-쉬익.

쾌속무비하게 날아오는 비도.

그런데 위하윤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눈까지 감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곽차련은 자신의 공격이 성공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이긴다!’

그때.

위하윤의 검이 신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비연신검(天武女帝劍)

- 찰칵.

검이 움직이는 듯 싶더니, 다시 검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위하윤을 바라보는 사람들.

비무를 포기한 것일까?

“아악!”

갑자기 곽차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계속 하실 건가요?”

“아직이에욧!”

곽차련은 어깨에 작은 검상을 입었지만, 이대로 포기하기는 아쉬웠다.

조금 전보다 더욱 재빠르게 움직이는 곽차련.

곽차련의 몸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팔방을 점하며, 시간차를 두고 날아드는 여덟 개의 비도.

곽차련이 오늘을 위해 갈고 닦은 탈혼팔비(脫魂八匕)라는 초식이었다.

제 아무리 위하윤이라도 쉽게 파훼하지는 못하리라.

-비연신검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는 검.

너울너울 움직이는 검의 궤적안에 비도가 다다르자, 자석을 만난 듯 검세에 이끌려 움직였다.

결국 여덟 개의 비도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결국 모두 땅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곽차련은 이 모습에, 비무 중이라는 것도 잊고 멍하니 위하윤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의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졌어요.. 정말 강하시네요.”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위하윤은 인사를 하며, 구경꾼들 사이에 앉아 있는 곽휘운을 슬쩍 바라보았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더 이상 짐은 싫어.’

“승자! 백! 화! 린!”

“우와아아!!”

뜨거운 함성소리와 함께 비무대에서 내려가는 위하윤.

다시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막사로 돌아가던 위하윤은, 중간에 다음 출전자와 얼굴을 마주쳤다.

위로 치켜져 있는 날카로운 눈매.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것을 빼고는 전반적으로 미인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위하윤은 짧게 목례를 하고 지나치려 하였다.

그런데

“너구나? 무진님이 새로 찜한 여자가.”

“예?”

위하윤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말에 반문하였다.

무진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지만, 왜인지 묘하게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지난번에 보았던, 온갖 치장을 한 기분 나쁜 사내.

“흐음. 얼굴이 반반한게.. 그 얼굴로 꼬리를 쳤나본데……. 내가 곧 봉황전에서 네년의 얼굴을 완전히 갈아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호호호.”

“무슨…….?”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비무대로 사라지는 여인.

위하윤은 여인의 마지막 섬뜩한 웃음에, 묘한 불길함을 느꼈다.

‘이겨내야 해.’

불길하다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때였다.

* * *

“마지막! 아미파의 정화(正花) 방하연! 과 대검파파의 서린!”

비무대에 오르는 두 여인.

한 명은 방금 전 위하윤에게 폭언을 했던 여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위하윤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인이었다.

사내들은 다시 열광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정화 방하연 때문이었다.

그녀는 뛰어난 무공 실력은 물론, 불의를 모른 척 하지 않는 심성을 가진 아미파의 자랑이었다.

많은 호사가들이 이번 봉황전의 우승 후보로 그녀를 꼽을 정도니, 그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아미파의 방하연이라 합니다.”

“흐음? 네년도 얼굴 꽤 반반하네? 아주 갈아버리고 싶을 만큼.”

“예..?”

“위하윤 그년에게 보여줄 본보기로 아주 딱이네. 호호.”

“대검파의 제자치고는 입이 거치시군요.”

“그건 네년이 상관할 바가 아니지.”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 하겠군요.”

-뎅~

그때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징이 울렸다.

“먼저 가겠습니다.”

“그러든지.”

서린의 입에는 여유롭고 께름칙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 *

방하연은 서린의 태도에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쉬쉭.

화려한 변화를 일으키는 검.

사방을 점하고 날아드는 검격에, 서린이 피할 곳이라고는 조금도 없어보였다.

“뭐야? 건방지게 이정도로 날 어떻게 해보려는 거야?”

다가오는 검격을 보면서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서린.

서린은 검도 뽑지 않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방하연의 검격을 벗어났다.

“이잇!”

방하연은 이렇게 쉽게 서린이 빠져나갈 줄은 몰랐다.

자신의 실력에 꽤나 자신이 있던 방하연이었다.

또래의 여인 중에 자신의 적수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지금 깨져버리고 말았다.

방하연은 이를 악물고, 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삼십육방을 점하는, 극변을 보여주는 공격이었다.

“하암.. 네 실력은 이제 됐어. 그만 끝내자.”

검을 뽑아드는 서린.

그녀의 검은 보통의 검보다 얇고 가늘었다.

낭창낭창 움직이는 것이 연검과 같았다.

-쉭.

아주 미약한 파공음과 함께 서린의 검날이 모습을 감추었다.

방하연의 초식이 서린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아아악!!”

방하연의 비명과 함께 허공으로 핏줄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고 뒤로 물러나는 방하연.

서린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고, 구경꾼들은 모두 경악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호홋. 아주 잘 그어졌네?”

“흐윽…….”

방하연이 얼굴에서 손을 치우자 보이는 상처.

“이럴수가!”

“허어……. 저런!”

주위에서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얼굴에 무자비하게 그어진 수십개의 검상.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치료를 한다 해도 예전과 같은 얼굴을 유지하기는 힘들 터였다.

“그래, 그게 너한테 딱 어울리는 얼굴이야.”

비무가 끝났다는 듯 검을 거두는 서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얼굴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지만, 대충 닦아내고는 다시 검을 세우는 방하연.

아마 계속 비무를 이어나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어머? 아직 혼이 덜났구나? 아주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줘야 그만 둘려나?”

“지금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공력을 끌어올리려던 방하연.

그녀가 진원지기까지 끌어올리려 할 때였다.

“그만! 그만 하거라.”

소리치며 비무대로 뛰어든 중년의 여인.

“하연아, 이제 그만 되었다.”

“사부님!”

중년의 여인.

방하연의 사부이자 아미파 장로 중 한명인 진명사태였다.

“이것은 생사결이 아니다. 그러니 그만 하려무나.”

“하지만…….”

“이보게, 서린이라고 했나? 우리가 진 것으로 하고, 이만 비무를 끝내도 되겠지?”

“뭐, 마음대로 하세요.”

“고맙네.”

자신보다 한참이나 위의 선배인 진명사태에게도 조금의 예의도 차리지 않는 서린.

진명사태는 화를 낼 법도 했지만, 그저 고맙다고 하고 참았다.

“오늘은 이렇게 물러나네만, 다음에 만나면 조심하게.”

“호호, 기대하죠.”

마지막으로 비무대를 벗어나기 전에, 서린에게 경고를 하는 진명사태.

서린은 그 말에 비웃음으로 답했다.

진명사태와 방하연이 사라지고, 비무대에 홀로 서있는 서린.

진행자는 이 일련의 사태에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서린의 승리를 선언했다.

“승자! 서! 린!”

아무런 환호도 야유도 없는 조용한 분위기.

충격적인 결과에 모든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서린은 이런 분위기를 즐기듯, 환한 미소로 비무대를 내려갔다.

“지독하군.”

곽휘운은 서린의 잔혹한 손속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아무리 봉황전이 살초를 제외하고는 다 허용이 된다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저건 보복과 재미를 위한 학대였다.

“정말 저 아이가 대검파파 제자가 맞느냐?”

“예. 맞을 겁니다.”

“그래? 이상하구나.”

풍진혁은 아주 잠깐 서린의 눈에서 혈기를 보았다.

정파의 제자, 그것도 구파일방의 하나인 대검파파의 제자에게서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흐음……. 심심한데, 몸을 좀 움직여볼까……. 난 어디 좀 다녀 올 터이니, 너는 먼저 돌아가거라.”

“예. 알겠습니다.”

말과 함께 그 순간 자리에서 사라지는 풍진혁.

바로 옆에 있던 곽휘운도 어떻게 풍진혁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신묘함이었다.

* * *

“어때? 이제 좀 무서워졌어?”

아직 막사에 남아있는 위하윤에게 말을 거는 서린.

위하윤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당신……. 정말 악독하군요.”

“칭찬 고마워.”

“제가 반드시 당신을 비무대 위에서 무릎 꿇게 만들겠어요.”

위하윤은 불길함에 방하연과 서린의 비무를 모두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악독한 손속에 치를 떨었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래~ 할 수 있으면 해봐. 근데 내 생각에는 네가 나한테 살려달라고 빌 것 같은데? 호호호.”

조금의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없어 보이는 서린의 태도에, 위하윤은 그녀에게 더욱 더 화가 났다.

“이만 가볼게요.”

“잘가~”

휙 돌아서서 막사를 빠져나가는 위하윤.

서린은 그 뒷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막사를 벗어났다.

더없이 고요해진 막사.

마치 앞으로 다가올 폭풍 전의 고요함 같이 말이다.

* * *

봉황전 첫날이 끝이 났다.

곽휘운은 위하윤과 함께 막사로 돌아왔다.

막사에는 이미 위무악과 남궁소소가 있었는데, 둘은 언제 화해를 했는지 찰싹 붙어있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아니요.”

잔뜩 굳어있는 위하윤의 표정을 본 남궁소소가 물었지만, 위하윤은 단칼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래서 더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곽소협.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그것이…….”

곽휘운은 남궁소소 차례 이후에 있던 봉황전에서 있던 일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곽휘운의 설명을 들은 위무악과 남궁소소의 얼굴도 따라서 굳었다.

“그런 미치ㄴ…….신분이 있었단 말이야?”

“너무 하군요.”

위무악은 평소처럼 욕이 혀끝까지 나왔다가, 남궁소소 앞이라 다시 넣었다.

“화린아, 아무래도 봉황전은 이만 두는게 좋겠다. 소소도 기권하고.”

위무악의 말에 곽휘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린이라는 여자는 너무 위험했다.

“아니요. 전 끝까지 갈 거에요.”

“저도 도중에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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