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89화 (89/203)

<휘운객잔 89화>

“하하하……. 이거 내가 너무 얕보였나보군. 일이 끝나면 네놈을 쳐 죽이고 저 년을 가지려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지금 당장 네 놈을 죽이고, 저 년을 내가 취하겠다.”

청년의 눈이 붉게 물들었고, 몸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곽휘운운도 휘운검법을 운용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청년이 막 검을 뽑으려 할 때였다.

“그만. 거기까지 하시죠.”

청년의 뒤에서 홀연히 나타난 검은 인영.

전음으로 뭐라 말을 주고 받는 것 같더니, 이내 청년의 살기가 사그라들었다.

“쳇, 운 좋은 줄 알아라. 명줄이 조금은 길어졌으니.”

자기 말만 하고 사라지려는 청년.

“도망치는 건가?”

“흥. 조급해 하지마라. 어차피 곧 다시 만날테니.”

청년과 검은 인영은 그대로 어딘 가로 사라졌다.

오솔길에 다시 둘만 남게 된 곽휘운운과 위하윤.

이미 산책을 할 분위기는 깨져버렸다.

“모처럼의 산책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괜찮아요. 또 괜히 저 때문에 곽대주님이 곤란한 일을 겪으시는 것 같아 죄송해요.”

위하윤은 매번 폐를 끼치는 자신이 싫어서, 요즘 열심히 수련도 하고 있어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짐일 뿐이었다.

“죄송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게 제 일입니다.”

* * *

“야! 어디 갔다 오는 거냐?!”

돌아오자마자 들려오는 위무악의 날선 고함.

한창 인사를 나누다 주위를 둘러보니, 곽휘운과 위하윤이 사라져있었다.

가뜩이나 둘 만 두기에 불안한데 말이다.

“아가씨께서 잠시 산책을…….”

“그럼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보내주지 않았을 거면서.”

맞는 말이었다.

만약 위무악이 알았다면, 절대로 둘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무악은 더 성질을 내려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한 여인 때문에 화를 속으로 삼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차분하고 현숙한 목소리.

듣는 이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목소리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윤기 넘치는 흑발에 고상하고 정갈한 몸가짐.

고귀함과 차분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런 여인이었다.

“나, 남궁소저..”

정말 보기 힘든 눈에 띄게 당황하는 위무악의 모습.

곽휘운은 위무악을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여인을 딱 세 명 알았다.

첫 번째는 위무악의 어머니이자, 무림맹주의 아내인 당세린.

두 번째는 위무악의 여동생인 위하윤.

세 번째는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인 혜화(慧花) 남궁소소였다.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여인이 혜화 남궁소소였다.

남궁소소.

현 남궁세가 가주 정심검(貞心劍) 남궁철의 금지옥엽이었다.

고고한 자태와 지혜로운 머리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까지.

무림에 그녀를 흠모하는 사내들이 꽤나 많았는데, 위무악도 그 중 한명이었다.

평소 막나가는 위무악도, 그녀 앞에서는 그저 사랑 앞에 수줍은 남자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위 소협.”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곽 대주님도 오랜만에 뵙는군요.”

“예.”

“지난번에 저를 도와주신 후에 감사인사도 따로 못 드렸는데, 지금이라도 그때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남궁소소가 신풍대 대주 곽휘운님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위무악은 곽휘운과 남궁소소의 대화를 들으면서, 속으로 남궁소소가 위험해 처했을 때 자신이 없던 것을 한탄했다.

“위 소저께서도 잘 지내셨는지요?”

“저야, 언제나 잘 지내죠. 남궁소저도 잘 지내셨죠?”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저, 저……. 남궁소저…….”

그때 용기를 내어 남궁소소에게 말을 거는 위무악.

남궁소소는 무슨 일일까 싶어 위무악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위무악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괜찮다면.. 저희랑 같이 식사 어떠십니까?”

“아, 식사에 초대해 주신다면 저야 좋지요.”

“하하, 그럼 바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남궁소소의 수락에 세상을 다가진 듯 행복한 표정을 하는 위무악이었다.

* * *

대검파파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용봉연에 참가하는 참가자들과 일행들은 대검파파가 준비한 막사로 자리를 옮겼다.

“꽤 크군.”

“대검파파라는 이름값이 있는데, 쪼만하게 지으면 쓰나.”

“제가 갑자기 일행에 합류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조심히 말하는 남궁소소.

남궁철의 부탁대로, 혼자 남게 된 남궁소소를 곽휘운 일행이 지내기로 한 막사로 초대했다.

“물론이지 소소!”

“저랑 같이 자요. 언니.”

남궁소소가 부담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를 했다.

“감사합니다.”

남궁소소는 이들의 마음이 진실로 느껴졌기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만, 쉬지. 피곤하군.”

곽휘운은 이만 쉴 것을 제안했다.

이제 용봉연의 첫날인데 참으로 각자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얼른 잠을 청해 이 어지러운 머릿속을 재우고 싶었다.

“잠깐만!”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걸음을 옮길때였다.

위무악이 갑자기 일행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품안에서, 호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한잔 하고 쉬자.”

호리병의 정체는 술이었다.

마개를 따자 방안에 퍼지는 술 내음.

냄새만으로도 상당히 독한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지.”

곽휘운은 술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이런 날에 한잔 정도는 좋았다.

“저도 한잔 할래요.”

“저도 한잔 하고 싶습니다.”

막사 중앙에 모여 앉은 네 명.

서로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워 가졌다.

“내일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짠.

그렇게 술 한잔 기울이는 밤이 깊어갔다.

* * *

“꺄악!!”

이른 아침을 깨우는 남궁소소의 뾰족한 비명.

“이, 이게 무슨!!”

-짝.

“윽…….”

시원하게 위무악의 뺨을 때리는 남궁소소.

위무악은 잠이 조금은 덜 깬 상태로 얼얼한 볼을 어루만졌다.

‘무슨 일이지..?’

위무악은 알싸한 아픔을 느끼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분명 꿈결에 따뜻하고 푹신한 것을 손으로 주물럭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궁소소의 비명과 함께 안면장이 날라왔다.

‘잠깐, 푹신하고 따뜻…….?’

조금 전의 감촉을 되새겨 보는 위무악.

그리고 굳은 얼굴로 남궁소소를 바라보았다.

가슴을 감싸 안으며, 눈물 맺힌 눈으로 위무악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소소.

‘서, 설마..’

위무악은 아차 싶었다.

“정말, 남자는 다 늑대라더니. 가가도 똑같군요!”

“소소, 그것이……. 정말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변명은 되었습니다!”

남궁소소는 위무악의 변명을 들어주지 않은 채 방을 빠져나갔다.

같은 시각.

곽휘운과 위하윤도 잠에서 깨어났는데, 위무악 남궁소소와는 상황이 좀 달랐다.

“죄, 죄송해요. 곽대주님…….”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과는 다르게 곽휘운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밤새 위하윤 옆에서 한숨도 안잔 곽휘운였다.

“제, 제가 술이 좀 약해서……. 히잉.”

“정말 괜찮습니다.”

-짝.

그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곽휘운과 위하윤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일단 방을 나갔다.

그리고 방 문 앞에서 마주친 남궁소소.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곽소협.”

아무 일 없다 말하는 남궁소소.

하지만 아무 일 없어 보이지 않았다.

“자, 백소저. 저희는 이만 봉황전을 준비하러 가죠.”

“아, 예 예…….”

남궁소소의 손에 이끌려, 나가는 위하윤.

막사에는 위무악과 곽휘운만 남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군.”

“하아……. 그게…….. 내가 아무래도……. 소소의 가슴을…….”

“…….!!”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위무악.

곽휘운은 풀이 죽은 위무악과 함께 간단히 식사를 하고, 봉황전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이거,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온 몸에 값비싼 장신구로 치장한 청년을 만났다.

“무슨 일이지?”

곽휘운은 청년과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서 나타나주니 고마웠다.

“워워, 그런 눈빛 하지 말고 진정해. 어차피 조만간 싸울 일이 있을 테니까. 아직은 아니야.”

“그럼 무슨 일이지?”

“지난번에 네놈의 이름을 못 물어봐서 말이야. 그래도 이름 정도는 알아야 죽이는 맛이 나지.”

“이름을 묻기 전에 네 이름부터 말하는 게 예의라고 아는데?”

“이 몸의 이름은 악무진이다.”

“내 이름은 곽휘운이다.”

“곽휘운라.. 좋아, 기억하지.”

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악무진.

곽휘운은 지금이라도 한바탕 하고 싶었지만, 지금 괜한 소란은 금물이었다.

더욱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곽휘운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 비집고 들어갔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잠시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와아!~~”

사람들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비무대 상석에 마련된 자리에, 무인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

그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한 번에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자, 지금부터 봉황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어서 시작해라!!”

“빨리!!”

안달 내는 사내들의 목소리.

봉황전은 여성 후기지수들이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비무연이었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이렇듯 사내들이 안달을 내는 것이었다.

“봉황전 첫 번째! 무당파의 나연영! 과 제갈세가의 제갈린!”

큰 연무장 위로 올라서는 나연영과 제갈린.

두 여인은 정중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바로 자신들의 병장기를 빼어들었다.

-뎅~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와 함께 서로에게 달려드는 나연영과 제갈린.

두 여인의 비무를 시작으로 봉황전의 막이 올랐다.

치열한 비무가 계속 되었고, 그만큼 주위 분위는 점점 달아올랐다.

“다음! 비화룡 위하윤!과 비도문 소비도(小飛刀) 곽차련!”

“우오오!!”

“위하윤!”

“위하윤!”

그 어떤 경기보다 열띤 함성소리.

무림에서 위하윤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뎅~

그때 울리는 징소리.

소비도 곽차련이 먼저 움직였다.

재빠르게 위하윤의 주위를 돌며, 시야를 어지럽히는 곽차련.

그리고 위하윤의 틈을 향해 비도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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