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88화>
위무악과 대흉, 악흉의 대결은 지금 막 끝이 났다.
대흉은 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악흉의 창이 반으로 부셔져 있었고, 눈이 반쯤 뒤집혀 있었다.
반면 위무악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
“크어어억!”
대흉이 마지막으로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생각해보니, 누가 보냈는지 알아냈어야 하는 것인데.”
“뭐, 이런 것들이 알겠냐? 기다려봐라, 어차피 알아서 뛰쳐나올 거다.”
* * *
“야, 곽휘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냐?”
“뭐가 말인가?”
곽휘운의 옆에 다가와 말을 거는 위무악.
“그날 그렇게 우리한테 개박살이 났는데,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는 게 말이야.”
“기다리면 뛰쳐나올 거라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오랫동안 안 나올지는 몰랐지.”
“뭐, 그들도 사정이 있겠지.”
곽휘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이상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분명 그들의 계획을 망쳐 놓았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낌새가 없다는 것은 이상했다.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거나, 아니면 더 이상 이곳에 신경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곽휘운의 입장에서는 둘 다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을 듯했다.
“지부장님. 무림맹에서 인편이 왔습니다.”
곽휘운은 개봉을 풀고 내용을 읽어보았다.
- 잘 지내냐? 바로 본론으로 간다. 이번에 대검파에서 용봉연(龍鳳宴)이 열리는데, 너도 참가
좀 해라. 내가 무림맹주라 무악이랑 하윤이가 참가를 안 할 수가 없거든. 그런데 요즘 세상이 좀 흉흉해야지. 그러니까 너도 꼭 같이 참가해라. 그럼 이만. -무림맹주 위강천-
무림맹주에게 온 편지.
곽휘운은 편지 내용에 잠깐 인상을 썼다.
지금 같은 시국에 대검파에 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분명 크나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터였다.
“하아…….”
곽휘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안갈 수는 없었다.
청해성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말이다.
“용봉연 안가면 안 되나?”
“무림맹주의 자식들은 필참이다. 아주 귀찮아 죽겠다.”
위무악이 이곳에 온 이유가 위하윤을 보기 위함이 구할, 용봉연 때문이 일 할이었다.
용봉연.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의 후기지수들이 한곳에 모여, 친목을 다지고 무공을 겨루는 행사였다.
삼 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매화 다른 곳에서 열렸다.
지난번은 무당파였고, 이번에는 대검파였다.
“느낌이 안 좋아…….”
시기가 절묘했다.
* * *
전에 남주호와 노인이 대화를 나누었던 오두막.
이번에는 노인과 남주호 말고도 한명이 더 있었다.
“용봉연에서의 일은 잘 준비되고 있는가?”
“예.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또 다른 인물.
그는 바로 현 대검파 장문인 장철기였다.
“그래, 조금의 실수도 없어야 할 것일세.”
말을 하면서 은근히 뿜어져 나오는 노인의 살기.
장철기는 노인의 살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좋네. 그리고 남상인.”
“예…….”
“이번에도 맹주의 딸을 납치하는 걸 실패 했다더군.”
“면목 없습니다.”
노인은 실패를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두 번이나 실패를 하였으니, 어떠한 처벌이 내려질지 몰랐기에,
남주호는 속에서부터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허허. 혈영대, 청해삼흉까지 동원했는데 실패라…….”
“제가 그들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일은 어차피 무림맹의 이목을 돌리게 하기 위한 것이니, 실패해도 큰 상관이 없네. 다만…….”
말을 끄는 노인.
남주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번 일은 절대 실패하지 않아야 할 것이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남주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자신이 쓸모가 있으니, 이쯤에서 넘어가 주는 것일 터였다.
“그만들 돌아가게.”
“예.”
“예.”
재빠르게 오두막을 벗어나는 남주호와 장철기.
오두막에 홀로 남게 된 노인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무림에서 가장 화려한 불놀이가 시작 될 것이야……. 모든 무림인들에게 각인될 지옥의 불놀이가.”
불놀이?
과연 노인이 말하는 불놀이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노인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들을 남긴 채 노인 또한 오두막을 벗어나 어론가로 향했다.
* * *
시간은 유수와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용봉연이 시작돼서인지 청해성은 지금 사람들로 넘쳐났다.
“주학. 지부를 잘 부탁한다.”
“네. 다녀오세요.”
“허 무사님도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걱정 말게.”
용봉연에 참가하기 위해 청해지부를 비우는 곽휘운이었다.
“야! 곽휘운! 빨리 가자! 이러다 늦겠다.”
“알았네.”
위무악의 재촉에 곽휘운은 인사를 마치고 청해지부를 벗어났다.
무림맹에서 준비해 준 마차로 대검파를 향해 가는 곽휘운과 위무악 그리고 위하윤.
무림맹주의 자제들이 타는 것이라 그런지, 확실히 마차가 아주 좋았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시원하게 달리던 마차가 어느새 목적지인 대검파에 도착했다.
“도착하였습니다.”
“자. 빨리 가자. 정말 늦겠다.”
일행을 재촉하는 위무악.
일행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 개회식을 하는 장소로 향했다.
개회식 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모여선 후기지수들.
곽휘운 일행은 가장 뒤쪽에 가서 섰다.
“와!!”
“와아아~~!!”
그때 갑자기 사람들 입에서 함성소리가 나왔다.
저 멀리 단상위로 올라오는 누군가를 향한 것이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듯한 기세.
위압감과 기품이 넘쳐흐르는 모습.
그 주인공은 무림맹주 천무제 위강천이었다.
“이렇게 늠름한 무림의 후기지수 여러분들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식장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똑똑히 들리는 위강천의 목소리.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내력을 짐작케 했다.
“앞으로 무림을 이끌어나갈 여러분들이 이번 용봉연을 통해 성장하고, 또 즐기길 바랍니다. 이만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와아!!”
짧은 연설.
말을 길게 해보아야 좋아하는 이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위강천이었다.
“자, 그럼! 용봉연의 개최를 선언하겠습니다!”
위강천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시작된 용봉연.
“드디어!!”
“와아!”
용봉연의 시작을 기뻐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틈에서 무언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용봉연 역사상 가장 화려하면서, 가장 위험한 용봉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개회식이 끝나자,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 후기지수들.
각자 자파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옯겼다.
첫날은 후기지수 간의 오찬이 있는 날이었다.
후기지수들은 오찬이 준비되는 동안,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이곳저곳 인사를 나누러 다녔다.
특히, 위무악과 위하윤에게 인사를 하러 오는 이들이 꽤나 많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풍협문의 마길세라고 합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저는 호아장의 천주운이라 합니다.”
끝없이 찾아와 인사를 하는 사람들.
위무악은 평소 성격을 감추고, 일일이 정중한 모습으로 인사를 받았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자신 마음내키는 대로 할 수는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백소저. 전 철협문의 곽영호라고 합니다.”
위하윤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남정네들.
너도나도 위하윤의 얼굴을 보기위해 기웃거리며, 한번이라도 말을 섞기 위해 용을 써대었다.
“예. 처음 뵙겠습니다.”
위하윤은 최대한 차분하게 인사에 답해주었다.
위하윤의 인사에 남자들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헤 벌린 채 좋아했다.
“휴우……. 저 곽대주님.”
“예.”
“너무 피곤해서 그런데, 잠깐 같이 산책 좀 다녀오면 안 될까요?”
자신을 빤히 올려다 보면서 부탁하는 위하윤의 청을 차마 거절 할 수 없는 곽휘운였다.
곽휘운은 자신도 모르게 슬쩍 위무악을 바라보았다.
인사를 하느라 정신없는 위무악.
“가시죠.”
“고마워요. 헤헤.”
정신없는 위무악을 뒤로 한 채, 한적한 곳으로 향한 곽휘운과 위하윤.
워낙 사람이 많아, 한적한 곳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적이 드문 오솔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후아~ 좋네요.”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맑은 공기는 절로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나와라.”
“네?”
갑자기 나오라고 말하는 곽휘운.
위하윤은 무슨 말인가 싶었다.
주위 어디를 보아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하, 내가 너무 방심했나 보군.”
갑자기 나무 위에서 나타나는 청년.
온몸에 값비싼 장신구를 주렁주렁 두르고 있었는데, 묘하게 청년과 잘 어울렸다.
“생각보다 눈치가 좋은 놈이었나 보군.”
“누구지?”
“그건 네놈이 알 것 없다.”
청년은 곽휘운은 무시한 채로, 위하윤만을 직시했다.
“어떠냐? 내 것이 되는게?”
다짜고짜 위하윤에게 자기의 것이 되라는 청년.
오만방자함과 거만함이 온몸에 깊게 배여 있었다.
“싫습니다.”
딱 잘라 거절해 버리는 위하윤.
“흠. 임자가 있는가? 내 것이 된다면 평생 호화를 누릴 수 있다.”
“절대로 거절 하겠습니다.”
“하하. 좋아, 어차피 넌 내 것이 될 테니까.”
위하윤을 향해 탐욕과 욕망이 가득담긴 눈빛을 보내는 청년.
위하윤은 그 눈빛을 보자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 온 눈빛 중에서 가장 흉악하고, 탐욕스러운 눈빛이었다.
“눈이 더럽군.”
그때 위하윤의 앞을 가로 막아주는 곽휘운.
그제야 위하윤은 조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 뭐라? 어디 천박한 놈이.”
곽휘운을 향해 살기를 쏘아내는 청년.
곽휘운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청년의 살기를 흘려보냈다.
“천박한 놈이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군.”
곽휘운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싫어하면 어쩔 거지? 나와 싸우기라도 할 건가?”
“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