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87화>
‘이거 봐라……?’
신음은 훈련이 잘되어서 그럴 수 있다지만, 피도 흘리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흘려야 마땅하건만…….
‘이것들 강시구만.’
딱딱한 몸과 느껴지지 않는 생기.
상대가 강시라면, 분명 조종하는 이가 근처에 있을 터였다.
“이딴 걸로 날 어떻게 해보려는 건 아닐 테고…….”
조종자가 들으라고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하는 위무악.
목적이 뭔지 모르겠지만, 경고를 한번 해줄 필요는 있을 터였다.
주위 공간을 빽빽하게 채워나가는 검격.
이 한 초식에 나머지 강시 세 구가 순식간에 조각나 버렸다.
그리고 어느 한 방향으로 나머지 검격들이 날아갔다.
퍼버버버벅.
퍼버버버벅.
퍼버버버벅.
커다란 나무 몇 그루가 터져나갔다.
“놓쳤나? 쥐새끼 같이 빠르군.”
분명 기척이 느껴져 공격했지만, 어느 샌가 기척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뭐, 다시 나타나겠지.”
굳이 추적을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 자신 앞에 나타날 놈들이었다.
성급하게 쫓을 필요는 없었다.
“재미있겠어.”
위무악은 무공광이자 싸움광이었다.
적이 나타난다면 오히려 좋았다.
‘안 그래도 따분했었는데.’
위무악은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휘파람을 불며 유유자적 걸음을 옮겼다.
곽휘운과 위하윤이 있는 청해지부로 말이다.
* * *
혈비대(血飛隊) 대원 중 한명인 칠비는 백무악의 공격을 피해 최대한 빠르게 도망을 쳤다.
모처에 도착한 칠비는 전서구에 쪽지를 써넣어 하늘로 날렸다.
전서구에 써넣은 쪽지의 내용.
- 위무악. 등급 상하.
조직에서 무림인들의 등급을 나누어 매겼다.
하하(下下)부터 초초(超超)까지.
등급을 나누는 방법은 다양했다.
방금과 같이 특수 강시를 이용하는 방법이나, 직접 느끼고 비교 분석하는 방법도 있었다.
칠비는 또 다른 모처에서 강시 다섯 구를 다시 꺼내었다.
그리고는 바로 또 다시 어디 론가로 빠르게 움직였다.
‘다음 목표는……. 곽휘운.’
* * *
바쁘게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남주호.
그 앞에는 예와 같이 운이 서있었다.
“그래, 혈비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예.”
“그보다, 그들을 처리할 무인은 누구를 구했나?”
“예. 청해삼흉을 보내었습니다.”
청해삼흉.
청해성 일대에서 온갖 악행을 일삼는 마두들이었다.
여러 차례 그들을 잡으려 했지만, 그들의 고강한 무위에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다 십 년 전 오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었던 청해삼흉이었는데, 지금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라면 충분하겠군. 잔악하기는 해도 실력만큼은 진짜들이니. 그런데 그들이 무림맹주의 여식을 곱게 보낼지 걱정이군.”
잔악한 심성만큼이나 색을 밝히는 섬서삼흉이었다.
그들이 더럽힌 여인들만 해도 기백에 달할 것이었다.
그런 섬서삼흉이 천하절색의 위하윤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천방지축이라 해도, 교의 일을 그르칠 만큼 멍청하지는 않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길 바라야지.”
* * *
“하윤아! 오라비가 왔다!”
무림맹 청해지분의 문을 벌컥 열며, 들어오는 위무악.
그는 지금 오랜만에 여동생의 얼굴을 볼 생각에 매우 들떠 있는 상태였다.
“자네는 또 왜 온 것인가?”
하지만 위무악을 가장 먼저 반기는 이는, 곽휘운이었다.
곽휘운의 얼굴을 보자 위무악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오자마자 네 얼굴을 보다니, 재수도 없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일세.”
곽휘운과 위무악은 아주 어릴 때부터 무림맹에서 자라왔기에, 아주 막역한 사이였다.
그래서 서로를 바라보면 이렇게 농을 주고받고는 하였다.
“하윤 소저께서는 위에 계시네.”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성큼성큼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위무악.
그때 위층의 방문이 열리면서, 위하윤이 얼굴을 나타내었다.
“오! 하윤아! 오라비가 왔단다!”
위하윤을 안으러 달려가는 위무악.
하지만 위하윤이 팔을 뻗어 그런 위무악을 제지했다.
“오라버니. 제가 싫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지 말고, 이 오라비의 품에 안기 거라.”
“하아. 싫습니다.”
위하윤은 위무악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오라비인 위무악은 언제나 그녀를 보면 이런 식이었다.
쾅!
그때 누군가 청해지부의 문을 거칠게 발로 차며 안으로 들어왔다.
* * *
청해지부에 들어선 셋에게 일순 시선이 모였다.
“형님, 저희가 저런 어린놈들이나 상대해야 합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을…….”
“교에서 시킨 일이니 해야지 어쩌겠느냐?”
조금의 긴장감도 없이 곽휘운 일행에게 다가오는 세 명의 중년인.
한 명은 도를 차고 있었고, 한 명은 철조를, 그리고 남은 한명은 창을 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험악하고 간사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청해삼흉이군.”
도를 찬 이가 청해삼흉의 첫째인 대흉(大凶) 장갈산이었고, 철조를 낀 이가 둘째 간흉(姦凶) 독고정, 그리고 창을 든 이가 셋째 악흉(惡凶) 금철우였다.
“아, 청해성에서 제일가는 쓰레기들?”
거침없이 청해삼흉을 평가하는 위무악.
청해삼흉의 얼굴이 더 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
“놈! 주둥이만 살았구나.”
“네놈은 곱게 죽진 못할 거다.”
위무악을 위협하는 청해삼흉.
하지만 위무악이 이런 말에 위축될 위인이 아니었다.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가.”
“흐흐. 명을 재촉하지마라 금방 살려 달라 빌게 해줄 테니…….”
음침한 웃음을 흘리는 대흉.
저 건방진 놈을 자신의 발밑에서 애원하게 만들 생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쓰읍, 그런데 저기 있는 계집이 위하윤인가 봅니다.”
입맛을 다시며 말하는 간흉.
청해삼흉 중에서도 가장 색을 밝히는 간흉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안아 본적 없는 미색의 위하윤을 보니 음심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흐미, 아까운거. 교의 일만 아니었어도…….”
말을 하면서 위하윤을 훑어보는 간흉.
위하윤은 이 눈빛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뱀 수백 마리가 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서, 죽여 버립시다. 난 저렇게 날나게 생긴 놈들만 보면 몸이 아주 근질거려 죽겠단 말이오.”
셋째 악흉은 살짝 굽은 등에, 제멋대로 구겨진 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잘생긴 남자들을 보면 죽이지 않고는 못 견뎠다.
“역시 내 얼굴이 또 한 미모하지.”
“제가 보기에는 제 얼굴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 넌 양심도 없냐?”
태연하게 농을 주고받는 위무악과 곽휘운.
은근 죽이 잘 맞는 둘이었다.
“내가 둘. 너가 하나. 알았지?”
“마음대로 하게.”
“내가 저기 대빵이랑, 창든 놈 처리할게.”
“알겠네.”
“허, 참…….”
청해삼흉은 자기들끼리 상대를 정하는 둘을 보고, 어이가 없어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완전히 자신들을 무시하는 태도였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드는 아새끼들이구나.”
“아주 고통스럽게 해 주마.”
“어서 죽입시다!”
청해삼흉도 각자의 무기를 고쳐 쥐고 싸울 태세를 하였다.
바로 달려들어 쳐죽이고 싶었지만, 지난 세월동안 자신들의 목숨 줄을 늘려 주었던 육감이 경고를 울려 대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안 오면 우리가 가지!”
위무악이 대흉에게 먼저 일 검을 날린 것으로 싸움은 시작되었다.
* * *
대흉과 위무악의 싸움이 시작되고, 악흉도 싸움에 끼들었다.
그리고 남은 간흉과 곽휘운.
간흉은 먼저 달려들지 않고, 곽휘운의 빈틈을 찾았다.
이리저리 살피는가 싶더니.
타닷.
그러다가 돌연 위하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우우우욱.
쾅!
곽휘은의 구름에 완벽하게 막혀 버린 간흉의 공격.
하지만 간흉은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위하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위하윤을 먼저 처리하려는 듯싶었다.
슈우우우욱,
다시 한 번 위하윤을 보호하기 위해 펼친 구름.
그런데 그 순간 위하윤을 향하던 간흉의 공격이 곽휘운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약은 수를 쓰는군.”
콰곽!
간흉의 계책은 너무나 쉽사리 곽휘운의 구름에 막혔다.
슈우우우욱.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서걱.
그대로 간흉의 어깨가 깊게 패였다.
“크악!!”
최대한 몸을 튼 간흉이었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어깨에 일격을 당한 간흉은 더욱 흉흉한 기세를 몸으로 뿜으며,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이노오오옴!!”
잔재주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최고의 수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찢어 죽여주마!”
간흉의 신형이 순식간에 셋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곽휘운을 향해 날아오는 세 간흉의 철조.
삼형살조(三形殺爪).
간흉이 자랑하는 초식이었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 구분해 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슈와아아아악.
구분이 불가능하다면, 다 없애버리면 된다.
곽휘운의 구름이 완전히 간흉의 세 인영을 덮어버렸다.
서걱. 서걱. 서걱.
“흡!”
이번에는 오른 다리에 깊은 상처가 났다.
“미꾸라지 같군.”
“뭐라!”
다시 공격을 준비하는 간흉.
간흉은 위험함을 느끼고 자신의 최후 절초를 펼쳤다.
신선살(神仙殺).
신선도 죽인다는 이름의 초식.
간흉의 철조가 수십개로 갈라지며, 곽휘운을 향해 쇄도했다.
주위를 순식간에 뒤덮은 조영(爪影).
콰가가가가각.
청해지부의 객잔의 바닥이며, 벽이 철조에 의해 찢겨나갔다.
가동할 위력.
하지만 곽휘운의 견고한 구름을 뚫지는 못했다.
슉.
그때 곽휘운의 구름을 피해 무언가 날아들었다.
“정말, 치졸하군.”
곽휘운의 얼굴을 향해 날아든 비수하나.
간흉의 신선살의 수많은 조영들은 사실 눈속임에 불과했다.
사실 진짜 신선살은 바로 방금 간흉이 날린 암기였다.
곽휘운은 간흉의 손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무언가 숨겨진 수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서걱. 쩌저저저적.
더 이상 간흉에게 남은 수는 없었다.
그대로 목이 잘림과 동시에 몸이 얼어붙었다.
바닥에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흐음…….”
주위를 둘러보는 곽휘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