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86화 (86/203)

<휘운객잔 86화>

허진청은 대검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 뒤에 다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막상 나오기는 했는데, 그 친구가 안받아주면 어떻게 하지..? 에라, 받아 줄때까지 매달려 봐야지.’

그 친구.

그 친구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그 친구에게 짐(?)이 하나 더 는다는 것이다.

* * *

‘다시 사람을 구하러 가볼까.’

지난번에 사람을 구하려다가, 말았는데 이제는 진짜로 구해야 할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숙수와 침모는 필요할 것 같았다.

전부다 무림인들이기에, 청해지부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개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곽휘운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한 명의 인물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하, 이거 내가 조금만 더 늦었으면, 꼼짝없이 앞에서 거지마냥 기다릴 뻔 했구만.”

“음? 무슨 일이십니까?”

“그것이…….”

허진청은 대검파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이렇게 내려오게 된 것이지. 크흠.”

“객잔에서 머무를 것입니까?”

“그러고 싶은데, 내가 가진 게 없어서 말일세.”

허진청은 대검파에 있는 동안 돈을 모은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모을 필요가 없었다.

의식주를 모두 대검파에서 해결해 주었으니 말이다.

“청해지부에 내가 가입하는 것은 안 되겠나?”

“흐음…….”

나름 무림맹에서 매달 지원금이 나오기에, 사람이 하나 더 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허진청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가 문제였다.

“좋습니다.”

“고맙네.”

곽휘운은 그래도 고수가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을 것이란 생각에, 수락을 했다.

“그리고, 하나 부탁이 더 있는데…….”

말에 뜸을 들이는 허진청.

“나랑 주기적으로 비무를 좀 해 주지 않겠나?”

“그건 거절하겠습니다.”

지난번에 결투 때 허진청의 일격을 막아 내었을 때의 힘을 아직도 기억했다.

주기적으로 그런 생명을 깎아먹는 짓은 사양이었다.

“어떻게 안 되겠나?”

“그럼 보름에 한 번으로 하지요.”

“하하! 고맙네. 고마워!”

* * *

허진청과 함께 객잔으로 돌아온 곽휘운.

그때 객잔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위하윤이 일층으로 내려왔다.

“새로운 분이 오셨나 봅니다.”

어두운 저녁임에도 빛을 잃지 않는 미모였다.

“예. 오늘부터 함께 할 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위하윤이라 합니다.”

“안녕하신가. 난 허진청이라 하네.”

“그럼, 허 무사님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게.”

위하윤은 허진청이 보통이 아닌 무인임을 피부로 느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내려 오셨습니까?”

“그냥……. 밤하늘을 보고 싶어서요.”

“그럼, 함께 나가는 건 어떤가? 안 그래도 비무를 하러 밖으로 나가려고 했네.”

금시초문이란 표정으로 허진청을 바라보는 곽휘운.

오늘부터 비무를 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이럴 때는 그냥 조용히 내말에 따르게, 다 알아서 해 줌세.]

곽휘운에게 들려오는 허진청의 전음.

“정말 제가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위하윤.

곽휘운은 그녀의 눈빛을 보고, 차마 비무를 하기로 한 적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었다.

“예.”

“하하, 자 빨리 가세나.”

곽휘운과 위하윤 그리고 허진청은 밤거리를 걸어, 탁 트인 공터로 향했다.

비무를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위하윤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둘의 비무를 방해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 바로 시작하세나!”

허진청의 재촉.

곽휘운은 대답대신 휘운검법을 운용했다.

밤을 수놓는 곽휘운의 하얀 구름.

‘예쁘다.’

멀찍이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위하윤은 곽휘운의 무공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가네!”

“예.”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

점점 밤이 깊어져 갈수록 별은 더욱 밝은 빛을 내었고, 곽휘운을 바라보는 위하윤의 눈빛은 점점 깊어져 갔다.

* * *

인적 없는 산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작은 오두막.

백발 백미의 노인과 금화상단주 남주호가 마주보고 있었다.

“그래, 일이 어디까지 진행 되었다고?”

“여, 청해성의 주요 장소마다 점거를 해두었습니다. 조만간 첫 번째 대계를 실행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변수는 없나?”

“아직은 크게 변수랄 것이 없습니다. 다만…….”

“다만?”

“다만, 무림맹 측에서 눈치를 챈 것 같기도 합니다.”

“완전히 그들을 속일 수는 없겠지. 그들은 바보가 아니니 말일세.”

무림맹이 바보였다면, 자신들이 이렇듯 은밀하게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무림맹 청해 지부에 무림맹주의 딸이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 대검파가 있는 곳에 무림맹주의 딸이 와있다?”

“예.”

“흐음…….”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는 노인.

“어차피 그들도 대검파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야……. 하지만 대검파가 의심만 가지고 마음대로 들쑤실 수 있는 곳은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우리가 공을 들여 대검파를 장악한 것이고…….”

그러다가 생각이 정리가 되었는지, 수염을 쓰다듬던 손이 멈추었다.

“무림맹주가 우릴 유혹하는 것이군. 딸을 미끼로 우리를 꾀어보려는.”

“그럼 저희가 장단에 어울려 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한번 미끼를 물어주는 것이 좋겠네.”

“그럼……?”

“혈영대(血影隊)를 보내게. 오히려 중심을 소란스럽게 하는 것이 계획을 진행하는데 더 좋을 것 같네.”

“예. 알겠습니다.”

“자, 이만 가서 일을 진행시키게나. 그리고…….”

갑자기 노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붉은색의 기운.

실로 끔찍하고, 불길한 기운이었다.

“만약 계획을 실패했을 때는 그만한 대가를 치워야 할게야.”

“예, 예.”

노인의 기세에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남주호는 대답과 함께 오두막을 재빠르게 벗어났고, 노인은 남아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 * *

늦은 밤.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 곽휘운과 위하윤.

위하윤이 꼭 산책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나온 길이었다.

“별빛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네.”

사실 곽휘운은 별빛이 아름다운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한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주위를 감시했다.

“곽 대주님과 이렇게 단둘이 있는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그렇군요. 그때가……!!”

말을 하던 중 느껴지 이질적인 기척들.

곽휘운은 재빨리 위하윤을 자신의 뒤로 보냈다.

“나오십시오.”

곽휘운과 위하윤의 정면에 나타나는 수십의 그림자들.

붉은 피풍의에 복면을 하고, 손에는 가지각색의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망(網).”

가운데에 서있던 대장 복면인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나머지 복면인들.

순식간에 곽휘운과 위하윤을 포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 버렸다.

“제 뒤에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네.”

곽휘운도 위하윤도 크게 당황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살(殺).”

대장 복면인의 명령과 함께 일제히 달려드는 복면인들.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아닌, 짜임새 있는 대열을 갖추고 공격해왔다.

‘빨리 끝내야겠군.’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상황을 정리해야했다.

어딘가에 복면인들의 동료가 더 있을지 몰랐다.

슈와아아악.

주변에 퍼지는 곽휘운의 구름.

곽휘운에게 달려들던 복면인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서걱.

서걱.

서걱.

동시에 달려들던 모든 복면인의 곽휘운의 구름에 베여버렸다.

이 놀라운 광경에 복면인들도 잠시 주춤했다.

“회(廻).”

대장 복면인의 명령과 함께 살아남은 복면인들이 미련 없이 일제히 달아났다.

곽휘운은 당장 쫓아가려 하였지만, 위하윤을 생각해서 그만 두었다.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위하윤은 이렇게 산책이 끝나버려 아쉬웠지만, 지금은 이만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바빠지겠어.’

* * *

“뭐라? 혈영대가 실패했다?”

남주호는 자신에게 보고를 하는 운을 놀랍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혈영대가 임무를 실패하다니?

“정말이냐?”

“예. 혈영삼대가 투입되었는데,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합니다.”

“허, 그 친구가 그렇게나 강한 것인가?”

남주호는 곽휘운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혈영대를 상대하고도 멀쩡할 줄은 몰랐다.

혈영대 한 개 대면 중소문파 하나 정도는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전력이었다.

“게다가 싸움은 단 일 수만에 사실상 거의 끝났다고 합니다.”

“이거 참…….”

교에서 꽤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혈영대였다.

그런 혈영대가 일 수에 제압당하고, 폭혈공을 사용했음에도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다니…….

아무래도 곽휘운을 너무 얕본 것 같았다.

“혈영대를 더 투입시켜야 하나……?”

“혈영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더 강한 자들을 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

“휘~ 휘휘! 휘!”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며, 길을 걷는 청년.

시원한 이목구비에 다부진 체격.

한눈에 보아도 미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하윤이는 잘 있으려나. 곽휘운 그놈한테 왜 꽂혀서는…….”

곽휘운과 위하윤을 잘 아는 듯한 청년.

청년은 무림맹주의 아들이자, 위하윤의 오라버니인 위무악이었다.

“아, 이거 어째 길이 좀 험한 걸?”

걷고 있는 길이 울퉁불퉁한 산길이기는 했지만, 위무악 정도 되는 무인에게 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길을 왜 험하다고 하는 것일까?

“숨어있는 놈들. 그만 나와라.”

위무악의 말에 나타나는 복면인 다섯.

꽤나 진득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놔, 화린이 만나러 가는 이 좋은날, 이딴 거지같은 놈들 피를 봐야 하나?”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꽤나 입이 거친 위무악.

“야,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빨랑 덤벼.”

위무악의 도발에도 가만히 서 있는 복면인들.

“안 올 거냐? 그럼 내가 간다.”

순식간에 복면인들 코앞에 당도한 위무악.

위무악의 손에는 어느새 한 자루의 검이 예기를 뽐내고 있었다.

천무제황검.

무림에서도 손에 꼽히는 절세의 검공이었다.

특히나 강한 내공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극강의 무공이었다.

촤악.

위무악의 일초에 순식간에 복면인 둘이 쓰러져나갔다.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쓰러지는 복면인.

위무악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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