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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84화 (84/203)

<휘운객잔 84화>

남은 부하들은 이 광경에 뒤집어지게 놀랐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도망치면, 맞아죽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가장 험한 욕을 하며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이XX“

“병X 죽어라!!”

그렇지만 그 기세가 무력하게, 앞의 부하들과 똑같이 그대로 얼음 조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장평의 부하들.

“이놈들아! 놈은 한 명이다! 얼른 공격해!”

장평은 다급해진 마음에 소리를 높이며 부하들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서른이나 되었던 부하들 중 멀쩡히 서 있는 부하는 이제는 채 다섯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자신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였다.

‘제기랄, 어디서 이런 미친놈이…….’

“저, 저…… 대인. 대인께서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장평은 얼른 옆에 있던 중년인에게 나서줄 것을 부탁했다.

“음,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래야겠지…….”

장평이 어렵사리 모셔온 고수.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윗줄에 부탁해 어렵게 중년인을 모셔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네놈이 아무리 잘났어도, 이 분을 어찌하진 못 할 터.’

천천히 곽휘운에게 다가가는 중년인.

곽휘운도 중년인의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가만히 서서 중년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증년인을 유심히 바라보던 곽휘운은 속으로 조금 놀랐다.

커다란 검이 새겨져 있는 고급스러운 의복.

‘대검객이로군.’

대검객.

대검파의 수많은 무도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들만이 철저한 검증을 통해서 대검객이 될 수 있었다.

대검객들은 무림 어디를 가도 대접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대검객이 지금 일개 파락호들의 뒤를 봐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는 건.

‘정말 대검파가 파락호들의 뒤를 봐주고 있다니.’

곽휘운과 조금 떨어진 곳까지 도달한 대검객.

“이거, 미안하게 되었네. 이딴 일에는 나서지 않으려고 했네만, 자네의 움직임을 보니 몸이 근질거려서 말일세.”

“힘들어졌군.”

곽휘운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대검객을 상대하는 것은 이런 파락호 서른 명 처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쪽박이군.’

대검객에 대검파까지 생각하면 엄청난 쪽박이었다.

“자, 그럼 한번 어울려 보세.”

곽휘운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약간은 신나하는 목소리로 말하는 대검객.

곽휘운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좋습니다. 다만, 자리를 옮긴 뒤에 하면 좋겠습니다.”

“좋네! 넓은 공터로 가지.”

곽휘운은 혹여 싸우는 도중 전각에 상처가 날까 봐 장소를 다른 곳으로 정했다.

다행히 대검객은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객잔을 건드리면…….”

곽휘운은 공터로 가기 전에 장평에게 확실히 위협을 하고 떠났다.

객잔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 * *

넓은 공터에서 마주 보며 서 있는 곽휘운과 대검객.

주위에 바위 하나 없이 깨끗한 공터였다.

“이 정도면 되겠군요. 그럼 시작하시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곽휘운.

길게 시간을 끌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시원시원하구만. 좋네! 금방 끝날 걸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세를 잡는 대검객.

검을 쥐자 드러나는 엄청난 기도.

곽휘운이 지금까지 본 대검객 중 단연 제일이었다.

‘이 정도면…… 장로급이군.’

곽휘운도 내공을 끌어올렸다.

적당히 하려다가는 그대로 황천길로 갈 수 있었다.

“자! 가네!”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중년인.

곽휘운은 공격을 막을 태세를 갖추었다.

“직단(直斷).”

중년인의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움직이는 검.

더없이 단순한 일검.

곽휘운은 이 일검을 보는 순간,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느꼈다.

‘제기랄, 왜 이런 사람이 여기에…… 잘못하면 정말 죽겠군.’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

상대는 장로급 이상이었다.

마치 공간 그 자체가 갈라지는 듯한 초식.

곽휘운의 몸이 일직선으로 갈라질 것만 같았다.

- 휘운검법. 제 사초. 막.

* * *

금화상단주 남주호의 집무실.

남주호와 문사복 차림의 청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운아. 그 청년에 대해 조사를 해 봤다고?”

운이라 불린 청년.

서글서글한 눈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운은 품에서 한 풍치의 서류를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 조사를 해 보니, 무림맹 멸마대의 대주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대주직에서 쫓겨나고, 이곳 청해성으로 발령받았다고 합니다.”

“호오? 대주직을 역임했던 자라니…… 이거, 생각보다 대단한 청년이었군.”

남주호가 턱을 쓰다듬으며 이야기하자, 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조사해 보면 해 볼수록 더욱 대단한 자입니다. 최단기간에 대주가 된 것은 둘째 치고, 단 한 번의 피해도 없이 그동안 임무들을 완벽히 수행해 내었다고 합니다.”

“대단하구만.”

“평소에는 그냥 단순한 검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웬만한 무인들은 그 검법만으로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 합니다. 그런데…….”

운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의 진신절학은 따로 있다 합니다.”

남주호의 눈이 빛났다.

“진신절학이 따로 있다?”

“예. 주변에 구름 같은 기운을 만들어 내어 자유자재로 조종한다고 합니다. 그 위력은 마치 검기와 같다고도 들었습니다.”

“흠…… 이거 내가 괜한 상대를 건드린 건 아닌가 싶군.”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공이 고강한 자야 저희에게도 얼마든지 있으니 말입니다.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

남주호는 자신이 이길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차피 상대는 한 명이고, 상대의 정체를 안 이상 예상치 못한 일도 더 없을 터였다.

하지만 뭔가 자꾸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코끝이 가려운 것이 뭔가 찝찝하단 말이야…….’

남주호는 애써 가려운 코끝을 무시하며,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음 안건을 들어 보지.”

“예. 다음은 저희 세력에 관한…….”

남주호와 운의 이야기는 해가 넘어갈 때까지도 끝날 줄은 몰랐다.

* * *

콰가가가가각!

쾅!

대검객의 검과 곽휘운의 벽이 충돌했고,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과연 사람이 만들어 낸 소리인가 의문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다.

“대단하군!”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서 있는 곽휘운과 대검객.

대검객의 얼굴에는 감탄의 빛이 가득 서려 있었다.

도저히 곽휘운을 처리하러 온 사람이 아닌 듯한 눈빛.

“내 직단을 완벽하게 막아 내다니!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죽지 않지 않았는가? 그럼 되었지. 하하하.”

“계속 가시죠.”

곽휘운은 다시금 내력을 운용했다.

더욱더 강한 화기와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멀리 서 있는 대검객에게도 그 뜨거움과 차가움이 동시에 전해졌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되었네. 이제 그만 하지.”

“음?”

뜬금없는 대검객의 말.

조금 전까지 그렇게나 싸우고 싶어 하더니, 지금에 와서 되었다니?

곽휘운이 의문에 가득찬 얼굴로 쳐다보자, 대검객은 시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쓸 수 있는 초식은 직단 하나뿐이네. 자네가 그걸 막아 내었으니, 자네가 이긴 것이네.”

대검객이 익힌 무공 ‘단화(斷花)’

총 세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현재 쓸 수 있는 초식은 일초인 ‘직단’ 뿐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무공을 익힌 뒤로, 그 누구도 ‘직단’을 제대로 막아 낸 자가 없었다.

대검객은 상승의 경지로 가기 위해서는 이 무공을 완벽히 막아 낼 수 있는 자와의 대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마지못해 오게 된 이곳에서 자신의 무공을 막아 낸 청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즉, 상대는 자신을 상승의 경지로 이끌어 줄 열쇠인 것이었다.

그가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말에 곽휘운은 포권을 하며 몸을 돌렸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었다.

단단히 경고해 두기는 했지만, 혹시나 남은 이들이 객잔에 무슨 짓을 할지도 몰랐다.

어서 빨리 돌아가 봐야 했다.

그런 그를 대검객이 불렀다.

“우리 통성명이나 하세. 나는 허진청이란 사람일세.”

“곽휘운입니다. 그럼.”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했는데, 별것 아닌 얘기였다.

곽휘운은 말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둘의 싸움이 있던 공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에 휩싸였다.

허진청은 적막한 공터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그의 입이 열렸다.

“곽휘운이라…… 드디어 날 이끌어 줄 열쇠를 찾았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허진청.

그러다가 뭔가에 생각이 미친 듯 다시 중얼거렸다.

“흠…… 장문인에게 더 미움을 받겠군. 아, 더 받을 미움도 없나? 차라리 이참에 대검파를 떠나야겠어.”

현재 대검파 내에서도 배척받는 신세인 허진청.

사실 허진청은 이번이 대검파에서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내려왔다.

더 이상 대검파는 대검파가 아니었다.

그는 짧게 중얼거렸다.

“할 일이라면 빨리 하는 것이 좋겠지.”

허진청도 재빠르게 대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무언가 시원한 듯한 미소가.

* * *

장평은 곽휘운과 허진청이 떠난 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왔다갔다하며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지. 그대로 있어야 하나?’

장평은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 복수를 해야 했지만, 정작 복수의 대상은 대검파 고수와 싸우기 위해 떠나 버렸고, 다른 곳에 분풀이를 하자니 마지막에 보여 준 곽휘운의 위협이 무서웠다.

하지만 마냥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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