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82화 (82/203)

<휘운객잔 82화>

대검파는 청해성뿐 아니라 전 무림을 통틀어서도 이름난 세력 중 한 곳이었기에, 제아무리 청해성 삼대상단 중 하나라고 해도 그들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를 안 금정팔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렇다면, 일을 더 빨리 끝내심이 어떠신지요? 포기한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만…….”

“방금 전에 말했듯이, 정해진 것은 반드시…….”

-드르륵.

그때였다.

남주호와 금정팔이 있는 방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오는 한 명의 청년.

새하얀 의복과 허리춤에 매여 있는 검 하나.

단촐한 옷차림이었지만, 방금 새 옷을 꺼내 입은 듯,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이었다.

금정팔이 물었다.

“누구…….”

“무림맹에서 왔습니다.”

“아……!”

청년의 정체는 곽휘운였다.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왔음에도, 완벽할 만큼 깔끔한 모습을 유지한 상태였다.

“전각은 넘어가지 않는 것이겠지요?”

“하아…… 그렇소.”

오늘 정오까지 관아에 나타나지 않으면, 관아에서 마음대로 전각을 다른 이에게 넘긴다는 소식을 받은 곽휘운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청해성까지 왔다.

“금 대인. 미리 일을 진행했다면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그, 그럴 뻔했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남주호가 조용히 한마디 내뱉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이 침착한 모습이었다.

“자, 여기에 서명을 해 주시게.”

금정팔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곽휘운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자신의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멀리 날아가 버렸다.

‘휴…… 이놈의 팔자야.’

이렇게도 운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자신은 고위 관직까지는 가지 못할 팔자가 분명했다.

“잠시만 기다리게.”

그때 서명하려는 곽휘운을 제지하는 남주호.

곽휘운은 그제야 남주호를 바라보았다.

남주호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자네가 이번에 무림맹에서 보낸다는 자인가 보군. 늦어서 전각을 빼앗겼다고 보고하게, 그럼 내가 큰돈을 줌세.”

* * *

누가 들어도 솔깃할 만한 제안이었다.

사실상 무림맹에서 이곳 청해성으로 보내진다는 것은 좌천을 의미했으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된 거 뒤로 한몫 단단히 챙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곽휘운은 임의대로 전각을 팔 수는 없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정말 하지 않을 것인가? 분명 후회할 걸세.”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보내는 남주호.

명백한 협박이었다.

“거절하겠습니다.”

그 차가운 눈빛과 강렬한 기세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곽휘운.

남주호는 이런 곽휘운의 얼굴을 잠시간 보더니, 돌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정말 재미있는 젊은이군. 좋아, 좋아. 내가 반드시 지금 거절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네.”

웃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웃으며 듣기에는 살벌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곽휘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기대하겠습니다.”

“좋네. 금 대인, 난 이만 가 보겠소이다.”

“드, 들어가십시오. 남 대인.”

호탕하게 돌아 나가는 남주호.

금정팔은 살벌한 대화에 식은땀을 흘리며 남주호를 배웅했다.

“아,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오. 성주님께 잘 말씀드릴 테니.”

“어이쿠, 감사합니다!”

금정팔은 남주호의 말에 다 죽어 가던 얼굴이 조금 살아났다.

남주호는 이 말을 끝으로 방을 벗어났다.

“서류 여기 있습니다.”

곽휘운은 남주호가 나가자마자 서류에 서명을 마쳤다.

“이제, 가 봐도 되네.”

“예, 그럼.”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나가는 곽휘운.

그 뒤에 대고 금정팔이 한마디 했다.

“조심하게.”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듯한 청년에게 금정팔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격려였다.

곽휘운은 살짝 목례를 하고는 빠르게 관아를 벗어났다.

* * *

빠른 속도로 관아를 벗어나는 마차 한 대.

마차 안에는 남주호와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마주 앉아 있었다.

남주호가 그 청년에게 물었다.

“비, 네가 보기에는 그 청년이 어떻더냐?”

비라고 불린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

남주호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키는 호위였다.

비는 잠시 고민하더니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상당한 실력자입니다. 조금의 빈틈을 내보이지도 않았고, 제가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호오? 네가 그리 말하는 걸 보니, 정말 실력이 있는 청년인가 보구나.”

남주호는 비가 자신 또래의 무인을 칭찬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항상 ‘무늬만 멀쩡한 놈’이나, ‘형편없는 놈’이라면서 상대방에게 후한 평가를 주지 않았는데, 오늘 만난 청년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후한 평가를 주었다.

그렇다면 그 청년의 실력도 보통은 아닐 터였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

“그 정도의 실력자가 이 시기에 갑자기 청해성으로 왔다라……. 아무래도 조사가 필요하겠군.”

청해성은 변방.

저 정도 실력을 가진 젊은이가 오고 싶어 할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될 시기였다.

“도착하는 대로 운이에게 그 청년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알아보라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대답이 들려온 곳은 마차를 몰고 있는 마부에게서였다.

마부는 남주호가 거느리고 있는 사람 중에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 명이었다.

남주호는 그 대답을 들으며 고민에 빠졌다.

‘대의에 지장이 없어야 할 텐데. 하필 이 시기에 이런 자가 나타나다니.’

남주호가 말하는 ‘대의’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마차는 계속해서 달렸다.

* * *

무림맹에서 곽휘운에게 맡긴 전각 앞에 도착한 곽휘운.

오랜 기간 방치되었는지, 낡고 바래버린 건물.

이것이 무림맹 청해성 지부였다.

그는 다가가 낡은 문을 밀어 보았다.

-끼이이익.

오랫동안 기름칠을 하지 않아, 거슬리는 마찰음을 내며 열리는 문.

문이 열리자 뽀얀 먼지가 일어났다.

곽휘운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방치된 건지 ……. 여기서 지내려면 청소부터 해야겠군.”

곽휘운은 우선 먼저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드르륵.

그는 청소 도구가 있을 법한 주변 건물들을 뒤져 보았다.

그리고 결국 전각 구석에 있는 장에서 청소도구들을 찾아 꺼내었다.

그렇게 곽휘운이 막 청소를 시작하려 할 때였다.

“이봐! 사람이 새로 왔으면, 인사부터 하러 와야지!”

전각 앞에서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보아하니 돈을 뜯으러 온 파락호들 같았다.

곽휘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다하다 무림맹 지부에 돈을 뜯으러 오다니. 어이가 없군.’

곽휘운은 그들에게 돈을 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아니, 주는 걸 넘어 손봐 줄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한번 정리를 해야겠군.’

곽휘운은 객잔뿐 아니라 주변 정리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 * *

“어이! 어서 나와 봐라!”

장평은 부하 세 명을 데리고 무림맹 청성지부를 찾았다.

그동안 이곳에 온 놈들은 전부 머저리 같은 놈들이라, 돈을 쉽사리 뜯어먹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아서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새로운 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신나서 달려온 길이었다.

‘흐흐흐흐. 오늘 꽤 벌 수 있겠어. 오랜만에 온 놈이니까 꽤 갖고 있겠지?’

장평이 돈을 뜯을 생각에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끼이이이익.

거친 소리와 함께 열리는 전각의 문.

장평은 문이 열리자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하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커흠. 처음 뵙겠소이다. 우리는 화음현의 치안경비대요. 다름이 아니라…….”

“돈이 목적입니까?”

“허허. 무슨 말씀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다 부끄럽지 않소이까.”

“그런데 한 푼도 주기 싫다면 어떻게 됩니까?”

“뭐, 상관없소. 대신 여기서 지내는 동안 아주 피곤할 거요.”

간혹 이렇게 돈을 내놓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며칠 괴롭히다 보면, 돈을 내겠다고 사정을 했다.

물론 그때는 처음보다 돈을 두 배 더 뜯었다.

그때 가서야 놈들이 후회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그는 비웃을 뿐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이번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그는 태연한 기색으로 그들에게 손짓했다.

“돈이라……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장평은 뭔가 꺼림칙했지만, 돈을 준다니까 일단 따라서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신중히 주변을 살폈다.

‘뭔가 쎄한데…….’

“자자. 이쪽으로.”

아직 청소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지, 전각 내부는 몹시 더러웠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뭐, 일단 돈만 받으면 되니까.’

돈을 받기 위해 먼지로 탁한 공기를 참아 가며 기다렸다.

끼이이이익. 턱.

장평 일행이 전각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자, 곽휘운은 그대로 문을 완전히 닫아 버렸다.

덜컥 닫히는 문소리에 장평의 불안했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분명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무, 문은 왜 닫으시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 보기에 좋지 않으니 닫았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하하하…… 그렇지, 그리 보기 좋은 장면이라 볼 수 없지…….”

장평은 애써 불안감을 눌러 가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잠시간 장평과 그의 부하들을 바라보던 곽휘운의 입이 열렸다.

“아무래도 다들 특별교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말과 함께 피어오르는 무형의 기세.

장평은 이 숨이 막힐 듯한 기세에 일이 완전히 틀어진 것을 직감했다.

“빌어먹을! 얘들아! 쳐라!”

장평의 외침에 부하 셋은 검을 뽑아 들고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흉흉한 기세로 달려드는 셋을 보고, 곽휘운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교육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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