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80화 (80/203)

<휘운객잔 80화>

풍마전은 향초아에게 구함을 받은 뒤, 한참을 날뛰어대었다.

자신은 선택받은 인간 중 한 명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가지고 싶은 것은 모든지 가져왔다.

그런데 오늘 굴욕을 당했다.

단 일 초였다.

만약 향초아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젠장!!”

분명 자신의 또래에서는 같은 오혈랑 말고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림오룡 쯤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생각이 모두 무너졌다.

“마전님. 지금 멸혼진이 발동되었답니다.”

“뭐?”

멸혼진의 발동은 내일이다.

아직 백리화를 얻지 못했다.

이대로 죽게 놔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따라와라. 그 년을 우선 챙겨야겠다.”

“……예.”

화가 날 때는 역시 피와 여자로 푸는 수밖에 없다.

풍마전은 조금 전의 상황은 잊은 채로 비릿하게 웃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 * *

지옥.

지금 흑룡상단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이었다.

수많은 무인들이 오공에서 피를 내뿜으며 쓰러져 가고, 비명이 사방에 난무했다.

“끄아아아아악!!”

“살려 줘어어어!!”

기혈이 뒤틀리고, 내공이 날뛰기 시작했다.

주화입마.

무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일이 강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

남궁태산과 백리화, 남주학 세 사람은 그래도 조금 버틸 만했다.

하지만 문제는 천소소였다.

일행 중 가장 내공이 약한 그녀는 지금 굉장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흐으윽……!!”

“소소. 조금만 참아,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지금 천소소는 그나마 남궁태산이 내공을 넣어 주고 있어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러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

남궁태산이 앞장서 말했다.

“일단 다들 빨리 이곳을 벗어납시다.”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흑룡상단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신법을 펼쳐 달리던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수많은 흑의인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서 나타난 줄도 모르고 있을 때 바로 앞에 나타난 것.

이를 막기 위해 일행은 급히 대처했다.

그들의 속도는 빨랐다.

“살!”

그러고는 지체 없이 공격을 해 왔다.

“커허어어억!!”

일행은 다급히 무기를 꺼내 막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날뛰는 내공을 막기도 벅찬데, 흑의인들까지 공격을 해 오니,

속수무책으로 무인들이 쓰러졌다.

남궁태산이 빠르게 흑의인들을 베어 내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베어도, 베어도 계속해서 흑의인들의 수는 줄어들지를 않았다.

촤아악!

촤악!

챙! 챙! 챙! 챙! 챙! 챙!

남주학과 백리화도 남궁태산 못지않게 열심히 흑의인들을 베어 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계속 진행되는 싸움.

모두 있는 힘을 다해 싸움에 임했다.

하지만 점점 더 내공이 뒤틀리기 시작하자, 이제는 흑의인들을 베는 것이 힘에 부쳐 가기 시작했다.

“헉, 헉…….”

“괜찮소?”

그때 굉음과 함께 흑룡상단의 본진에서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불길.

쿠르르릉…… 쾅!!

쿠르르릉…… 쾅!!

쿠르르릉…… 쾅!!

이건 화탄으로 낼 수 있는 불길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지옥의 겁화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불길이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생에 한 번은 이런 것을 볼까 말까 했다.

만약 이런 불길이 마을이 있는 곳에 벌어졌다면 상상하지 못할 사고가 일어났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만큼 불길이 대단했다.

더구나 속도까지 빨라서,

대처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이런 젠장!”

그 파괴력 못지않게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불길.

흑의인들을 베는 것도 벅찬 상황인데, 불길까지 겹치면 살아남을 방도가 없었다.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악.

그때였다.

마치 신이 나타난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신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고 다시 보니,

한 인물이 나타났다.

새하얀 구름과 차가운 한기가 같이 나타나며, 불길을 막아 주고, 흑의인들을 베어 내었다.

곽휘운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 * *

곽휘운은 재빨리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진법을 멈추기 위해 장원에 있던 모든 것을 부셨음에도 작동되는 멸혼진.

평범한 진법은 아닌 모양이었다.

“크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사방에서 사람들의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이런.’

곽휘운의 마음이 다급해져 갔다.

다른 일행들도 걱정되기는 했지만, 백리화와 천소소가 특히 가장 걱정되었다.

둘이 아무래도 가장 내공이 적었으니 말이다.

“어딜 그렇게 가느냐?”

그때 바쁘게 달리는 곽휘운의 앞을 딱 가로막는 하나의 인영.

향초아였다.

곽휘운의 앞을 딱 막아선 향초아.

보아하니 그냥 지나가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이제 한 발짝 남았는데, 너무 방심했나 보구나.”

“지금 저와 싸우실 겁니까?”

“어차피 일의 절반 이상은 성공했다. 그래도 너를 죽여야만 타산이 맞을 것 같구나.”

스릉.

혼자 중얼거리더니, 검을 뽑아드는 향초아.

그저 검을 들었을 뿐인데, 그 기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확실히 지금까지 싸웠던 이들 중 손가락에 들 만한 강자였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겠어.’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곽휘운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이 끌려서 다른 이들을 구할 수 없을 테니까.

슈와아아아악.

촤자자자자작.

휘운이 나타나자마자 향초아를 향해 나아갔다.

카가가가각.

향초아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곽휘운의 휘운이 그대로 사라졌다.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 같은 향초아였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어마어마했다.

쿠르르르…… 쾅!!

쿠르르르…… 쾅!!

쿠르르르…… 쾅!!

그때 굉음과 함께 엄청난 불길이 치솟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곽휘운과 향초아 둘 모두 초식을 거두어 들였다.

두 사람 모두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나 큰일이었던 것이다.

향초아는 치솟는 불길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검을 집어넣었다.

“아쉽구나. 오늘은 여기까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알 것 없다. 난 이만.”

끝을 내지 못한 싸움.

곽휘운은 끝을 내고 싶었지만, 지금은 우선순위가 향초아가 아니었다.

그대로 자리를 뜨는 향초아.

곽휘운도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일행이 있는 쪽으로 가자. 아직 괜찮겠지?’

* * *

풍마전은 거침없이 앞에 거치적거리는 무인들을 베어 내면서 백리화가 있는 쪽으로 내달렸다.

이미 수하들에게 어느 방향에 있는지 보고가 들어왔으니, 찾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저기 있군.”

저 멀리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백리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백리화였다.

풍마전의 눈빛이 변했다.

그런 그에게 수하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곧 불길이 솟아오를 겁니다. 이만 돌아가시는 것이…….”

“닥쳐라. 난 꼭 저년을 데리고 갈 거니까.”

“…….”

부하의 난감한 표정이 보였지만, 풍마전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수하의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풍마전은 그대로 백리화에게 쇄도했다.

팟!

쾌속.

그에게 멸혼진은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딱 좋을 정도로 내공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드디어 목표를 잡았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이내 지워졌다.

“이봐요. 어딜 가시려고요?”

누군가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남주학이었다.

다들 흑의인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남주학은 백리화를 향해 다가오는 풍마전을 보고 앞을 막았다.

풍마전은 표정을 구기며 소리쳤다.

“네놈은 관심 없으니 꺼져라!”

“그럴 수는 없겠는데요.”

“그럼 죽어야지.”

남주학의 말에 풍마전은 비릿하게 웃었다.

풍마전의 검이 남주학의 목을 향해 날아간다.

마치 벼락과도 같이 빠른 검격.

스윽.

일순간 남주학의 목이 그대로 잘리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조금도 터져 나오지 않는 핏줄기.

“아앗! 머리카락이 잘렸잖아요!”

태연하게 들려오는 남주학의 목소리.

풍마전의 일격에 머리카락이 조금 잘려 나간 것을 빼고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방심하면 큰일 나겠어. 제대로 해야겠는데?’

짐짓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남주학이지만, 풍마전이 자신보다 조금 위에 있는 고수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바로 자신 있는 공격을 시작했다.

스으으으윽.

남주학의 신형이 일순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밀하게 풍마전을 공격해 나아갔다.

채챙! 챙! 챙! 채챙! 챙!

연속해서 풍마전을 향해 찔러 들어가는 남주학의 검격.

하지만 풍마전은 침착하게 남주학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내고 있었다.

휘이이익.

카가가가각.

거기에 더해서, 중간중간 남주학을 향해 날아오는 위협적인 검격.

당연하게도 멸혼진 때문에 만전의 상대가 아닌 남주학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제길, 어떻게 한다?’

남주학이 난처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계속 버티고 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상대할게요.”

풍마전과 남주학의 사이로 백리화가 나타났다.

카캉!

정확히 풍마전의 검을 딱 막아 낸 백리화.

이것만 보더라도 백리화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풍마전은 호탕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그가 원하던 먹잇감이 알아서 제 앞으로 찾아왔으니까.

“하핫! 그래 내가 굳이 가지 않아도 찾아오는구나.”

“제 손으로 끝내 주겠어요.”

백리화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

“하압!”

기합과 함께 백리화의 검에서 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백화검기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꽃들은 금방 세찬 바람이 되어 풍마전에게 쇄도해 갔다.

“음?!”

사실 풍마전은 백리화를 완전히 우습게 보고 있었다.

그는 백리화의 실력이 아무리 높아 봐야 일류 언저리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쇄도하는 공격은 절대로 일류의 수준이 아니다.

최소 절정은 넘어선 수준.

‘이게 무슨?’

풍마전은 당황했지만, 마냥 그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침착하게 검을 휘둘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