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78화 (78/203)

<휘운객잔 78화>

남주학이 비무대 위로 올라가자, 일순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제의 소란으로 남주학이 금룡남가의 자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남주학이에요.”

“장무영이라 하오.”

생사회에서는 서로 가문이나, 문파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다.

“섬서일창이군.”

남궁태산은 남주학의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섬서일창 장무영.

그는 섬서성에서 나름 창술로 위명을 떨치는 무인으로, 곽휘운도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자였다.

“시작하겠소!”

섬서일창이 자신의 창을 굳게 주고 남주학에게 달려들었다.

남주학도 곧바로 귀혼신공을 발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슉! 슉! 슉!

재빠르게 남주학을 찔러 들어오는 섬서일창의 공격.

하지만 이미 남주학은 신형을 감춘 후였다.

스슥.

남주학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섬서일창의 뒤에 나타났다.

“어딜……!”

캉!

섬서일창도 나름 경험이 많은 자이기에, 순간적으로 창을 돌려 베어 들어오는 남주학의 검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그뿐.

다시금 순식간에 신형을 숨긴 남주학이 섬서일창의 옆에 나타나 은말하게 검격을 날렸다.

“크윽!”

섬서일창의 어깨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서걱-!

그 뒤로 남주학의 검격이 물 흐르듯 펼쳐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섬서일창의 몸 이곳저곳이 점점 상처로 뒤덮여 갔고, 결국 섬서일창의 입에서 항복 선언이 나왔다.

“졌소.”

“좋은 대결이었습니다.”

가볍게 비무대를 내려오는 남주학.

“객주님 말씀대로 살수는 최대한 자제했어요.”

“그래. 잘했다.

곽휘운은 일행에게 되도록 살수는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여기서 살수를 쓴다면, 새로운 원한 관계를 낳는 꼴이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의미 없는 살생은 피하는 것이 맞았다.

“다음!”

또 다음 인원들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 가운데 익숙한 기운, 익숙한 모습의 청년이 나타났다.

온몸에 값비싼 장신구를 두른 청년.

백리화에게 수작을 걸던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 * *

“풍마전이다.”

“강마철이라 합니다.”

곽휘운은 그제야 그 오만했던 청년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풍마전이라…….’

본 적이 없던 만큼 분명히 들어 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

그때, 풍마전 역시 곽휘운을 발견했는지, 곽휘운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 눈을 팔다니!”

풍마전이 잠시 곽휘운에게 한 눈을 판 사이, 강마철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순식간에 풍마전에게 쇄도해 왔다.

풍마전의 목을 노리는 강마철의 검.

꽤나 쾌속무비한 검격이었다.

“조잡한 검술로 귀찮게 하기는!”

퍽!

“크허억-!”

단 일장.

귀찮다는 듯 뻗은 풍마전의 일장이었다.

강마철의 신형이 저 멀리 튕겨져 나갔다.

쓰러진 그의 가슴팍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고, 처치를 할 새도 없이 즉사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런 강마철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비무대를 내려가는 풍마전.

그 모습이 마치 곽휘운에게 ‘너도 곧 이렇게 될 것이다’라며 선고하는 듯싶었다.

곽휘운의 표정이 침잠해 갔다.

‘예전의 이상한 흑마화도 그렇고…… 마기가 느껴졌다.’

분명히 풍마전의 일장에선 마기가 느껴졌다.

그렇다는 것은 아마 풍마전은 마교 측의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다음!”

또다시 다음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곽휘운의 차례였다.

저벅. 저벅. 저벅.

곽휘운이 비무대 위로 올라가자, 수많은 시선들이 곽휘운을 향해 쏟아졌다.

소빙룡 곽휘운.

무림신성대전에서 보여준 곽휘운의 무위가 이미 무림에 널리 퍼진 상황이었다.

그러니 다들 곽휘운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곽휘운입니다.”

“천호웅입니다.”

천호웅.

그는 감숙성에서 무영장이란 별호로 이름을 날리는 고수로,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장법의 고수였다.

“가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천호웅이 바닥을 박차며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그에게서 펼쳐지는 무영장은 큰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투로 역시 상대를 제압하려는 천호웅의 각오가 엿보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살수를 쓸 필요는 없을 터.’

곽호운 역시 제압을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와아아악-!

곽휘운의 구름이 천호웅의 주변을 장악했다.

“하압!!!”

무영장이 신속하게 초식을 펼쳐 내며 곽휘운을 향해 쇄도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쩌저저적.

“아니……!”

무영장의 양팔이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두 팔이 붙은 상태로 얼어 버려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

“크읍. 졌습니다.”

장법을 펼치는 이가 팔을 봉인당했으니, 더 이상의 싸움은 어른과 아이의 대결로 흘러갈 게 뻔했다.

천호웅은 곧바로 패배를 선언했다.

‘이렇게 싸우면 되겠군.’

[본좌보다도 더욱 천신지체의 힘을 잘 쓰는 것 같구나.]

곽휘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비무대를 내려왔다.

그러자 백리화가 곽휘운을 향해 쪼르르 달려왔다.

“역시. 객주님은 대단하세요!”

“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백리화는 곽휘운의 무공을 볼 때마다 놀라웠다.

구름이 몰려들며 상대를 얼리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무공을 펼치는 게 아니라 마치 신선이 펼치는 도술처럼 보였다.

“다음!”

이윽고 또다시 다음 차례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남궁태산의 차례였다.

남궁태산이 성큼성큼 무대로 올라갔다.

상대는 사마적과 같은 사마세가의 사람.

남궁태산은 사마세가의 사람을 보고는 눈을 빛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에게 지금 사마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곽휘운이 쓰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말린다고 듣진 않겠지.’

최대한 살수는 자제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남궁태산이 자신의 말을 들을 위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았다.

게다가 그렇게 사정을 봐 달라 할 배경도 아니었고.

[그런 일을 당하고 참는 것은 사내가 아니지. 암.]

콰아앙!

곽휘운이 잠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벌써 결판이 나 버렸다.

무대 밖에 긴 검상을 입은 채로 나가떨어져 있는 사마세가의 사람.

단 일검.

남궁태산은 단 일검으로 상대를 날려 버린 것이다.

‘흐음…… 확실히 전보다 훨씬 강해졌어.’

짧은 시간.

남궁태산이 폐관 수련에 들어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지금 남궁태산의 실력은 훨씬 강해져 있었다.

과연 검성 남궁태산이라 할 만했다.

“가자.”

“아. 그러지.”

비무대를 내려온 남궁태산의 말에, 곽휘운은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생사회는 일단 끝이 났다.

* * *

‘호오…… 저 정도의 실력이었던가?’

향초아는 모든 대결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 생사회에는 그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키운 자들이 출전을 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녀가 주목한 대결은 곽휘운과 남궁태산의 대결이었다.

두 대결 모두 싱거우리만치 빠르게 끝이 났지만, 향초아는 그 짧은 대결만으로도 둘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빙룡과 검성의 실력이 저렇게 뛰어났나?’

물론 향초아도 그들이 강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보여 준 실력은, 아무리 봐도 얼마 전 보고된 것을 능히 넘어서 있었다.

‘재미있어지겠어.’

향초아는 오히려 남궁태산과 곽휘운의 실력이 강한 것을 보고 미소 지었다.

‘저들이 활약하면 할수록 더욱 생사회는 달아오르겠지.’

강자가 활약을 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피가 흐르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기만 해도 자신의 소망의 절반은 이루어지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 * *

생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해져 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싸움은 치열해지고, 그럴수록 당연히 흘려지는 피도 많아졌다.

죽는 이들은 계속해서 늘어갔고, 다시는 무공을 펼치지 못할 만큼 심각하게 다치는 이들도 늘어 갔다.

‘다들…… 정상이 아니야.’

생사회를 관람하는 사람들조차 점점 이성을 잃어 가는 듯했다.

이대로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이 혈투에 열광했다.

사람이 죽어 나갈 때마다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고, 암중으로 이뤄지는 도박도 기승을 부렸다.

그랬기에, 자연스레 이 통제된 지옥도에 관한 소문은 무림에 빠르게 퍼졌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흑룡상단으로 몰렸다.

그런 와중, 이런 관심으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대회에서 죽은 이의 친우나 가족이 상대에게 복수극을 펼치는 일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렇게 또 피가 흘렀고, 흑룡상단은 그저 관망만 했다.

마치 더욱 더 이러기를 바라는 듯이 말이다.

‘정확히 이들이 원하는 게 뭘까?’

이렇게 다들 서로에게 검을 겨누는 것을 원한 것일까?

서로를 원수지게 만들고, 믿지 못하게 만들려는 속셈일까?

‘그 정도로는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

결국 정확히 무엇이 목적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일단 계속 올라가 보는 수밖에 없겠군.”

지금은 일단 생사회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백화신혼검도 되찾아야 하니 말이다.

[꿍꿍이가 있는 자들이 먼저 이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천홍의 말처럼 그들은 분명 언젠가 자기들의 목표를 위해 이빨을 드러낼 터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포착해야 할 터였다.

* * *

풍마전은 흑룡상단의 모처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거처에 거만하게 누워 있었다.

뒤쪽에는 예의 흑의인이 시립해 있었고, 그의 품에는 한 명의 여인이 안겨 있었다.

“마전 님. 좀 더 안아 주세요.”

“그래…… 그년이 내 것이 될 때까지는 마음껏 안아 주마.”

“마전 님…… 저로는 부족한가요? 흑흑!”

“응? 당연하지. 난 이제 이 흑룡상단의 주축이 될 몸이거든. 네년으로는 턱도 없지.”

풍마전의 품에 안겨 있는 여인이 온갖 교태를 부렸지만, 풍마전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이제는 이 여자도 질렸다.

지금 풍마전의 머릿속에는 오직 백리화의 자태 말곤 다른 것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는 특히나 임자가 있는 여인을 뺏는 것을 즐겼는데, 백리화를 딱 다음 먹잇감으로 찍었다.

‘탐난다.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어.’

임자 있는 여인을 유린하는 것.

풍마전이 가장 즐기는 일 중에 하나였다.

‘그러려면…… 그 옆에 있는 놈부터 찢어 죽여야겠지.’

알아본 바로는 소빙룡 곽휘운이라는 자라 들었다.

최근 꽤나 설치고 다니는 모양인데, 아주 찢어 죽일 맛이 날 것 같았다.

“일단은 아쉬운 대로 지금은 네년과 놀아 주마.”

“감사합니다…….”

그렇게 풍마전과 여인의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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