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75화 (75/203)

<휘운객잔 75화>

“와아아아!!”

“와아아아!!”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향초아의 인사에 열광적으로 호응을 했다.

“길게 이런저런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이곳에 오시게 된 목적부터 보여 드리죠.”

스윽. 탁.

향초아가 한 보따리를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일순 모든 시선이 그곳을 집중되었고, 그 모습을 본 향초아는 작게 미소 지으며 보따리를 풀었다.

하나의 서책과.

하나의 목갑.

그리고 하나의 검.

사람들은 그것이 이번에 흑룡상단이 부상으로 내건 파천신공, 자하신단, 백화신혼검임을 알아보았다.

“우오오오!!!”

“우오오오!!!”

천지를 울리는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눈이 세 물건에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같이 순수한 탐욕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 물건들을 얻고 싶으시다면 저희가 제시하는 단 하나의 조건을 만족하시면 됩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분! 그분만이 이 파천신공과 자하신단, 백화신혼검을 모두 취할 수 있습니다.”

향초아의 입에서 세 물건의 이름이 담길 때마다,

사람들의 눈은 탐욕과 욕망으로 더욱 더 채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탐욕과 욕망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향초아가 선언하듯 외쳤다.

“그럼, 생사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 * *

짧고도 충격적이었던 개회식이 끝나고, 흑룡상단은 곧바로 생사회 참가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개회식이 끝나자마자, 그곳에 있던 모든 무인들이 앞다투어 접수처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줄은 시간이 꽤나 흘러도 도저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다만 곽휘운 일행은 애초에 비무대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르게 접수처에 도착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곽휘운, 남주학 모두 참가를 신청했다.

백리화는 지켜보기로만 곽휘운과 약속했기에, 참가 신청은 하지 않았다.

“후우~ 저도 신청했어요, 객주님.”

마지막으로 남궁태산도 신청을 완료하고 일행에게 다가왔다.

“생사회가 개최되는 동안 이곳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하니, 일단 근처 막사에 자리부터 잡자.”

“그러세.”

생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생사회에 참여하는 자들은 부정의 방지를 위해 모두 이곳 흑룡상단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렇다고 수많은 참가자들을 노상에서 재울 순 없었기에,

흑룡상단은 주변에 수많은 막사를 준비해 두었다.

막사를 잡은 곽휘운 일행은 가볍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해 보기로 결정했다.

생사회의 본격적인 시작은 내일부터라지만,

혹시 이들이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게 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남궁태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내가 주학이 놈이랑 가고, 휘운 네가 백리 가주님이랑 가면 되겠다.”

2인 1조로 구성해서 주변을 둘러보자는 의견이었다.

“좋은 생각이군.”

“이따 다시 보자고.”

“알겠네.”

곽휘운은 그렇게 백리화와 단둘이 흑룡상단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파로 정신없었지만,

최대한 무언가 단서를 잡기위해 열심히 둘러보고 또 둘러보았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조금은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당도했다.

“객주님. 아무래도 깊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다시 돌아갈…….”

곽휘운은 끝까지 말을 맺지 못했다.

바로 옆쪽의 담장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의 방향은 정확히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보통이 아니군.’

느껴지는 힘이 꽤나 강대했다.

이 정도면 전의 남궁태산과 비슷할 정도였다.

“무슨 용무가 있으십니까?”

곽휘운은 기운이 느껴지는 쪽을 바라보고 말을 했다.

“하하하! 이거 너무 노골적이었나 보군.”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담장 위에서 하나의 인형이 나타났다.

매우 화려한 장신구를 온몸에 두르고 있는 청년.

곽휘운이 알고 있는 인물 중에는 이런 자는 없었다.

“생각보다 실력이 괜찮은 놈인가 보군그래.”

곽휘운을 향해 다짜고짜 반말을 내뱉는 청년.

물론 곽휘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여간 사치 좋아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싹수가 없구나.]

“누구십니까?”

“그건 네놈이 알거 없는 일이고. 그나저나…….”

청년은 곽휘운에게 완전히 시선을 뗀 채, 오로지 그의 옆에 있는 백리화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거기, 여자. 심심해 보이는 옆에 놈 말고, 나와 같이 노는 것이 어떠냐?”

이번에는 다짜고짜 백리화에게 수작을 부리는 청년.

말투와 행동에서 오만방자함과 거만함이 묻어나왔다.

“거절하겠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백리화.

꼭 백리화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거절할 만큼 당연한 상황이었다.

“내 것이 된다면, 평생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데도?”

“거절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음음. 그래 그렇게 튕기는 맛이 있어야 더욱 좋은 법이지. 두고 봐라. 어차피 넌 내 것이 될 것이다.”

청년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곽휘운은 살짝 몸을 움직여 그런 청년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이제 그만 서로 갈 길을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곽휘운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기에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품은 기가 범상치 않으나, 표현이 서투른 것뿐이라 생각했다.

또한 생사회의 첫날부터 큰 소란을 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무시하고 길을 돌아가려 했다.

한데, 청년은 진심이었는지 벌컥 화를 냈다.

“건방지게 끼어드는 것이냐?”

* * *

곽휘운에게 명백한 살기를 방출하는 청년.

하지만 이 정도 살기는 곽휘운에겐 우스울 정도였다.

곽휘운은 태연하게 살기를 흘려 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 이상 하신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겠습니다.”

“하하…… 이거 살기 좀 흘렸다고 나를 완전히 물로 보는군. 마음이 바뀌었다. 지금 당장 네놈을 죽이고, 저년을 데리고 가야겠다.”

청년은 점점 더 흉폭한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고, 눈이 점점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곽휘운의 눈매가 좁혀졌다.

흑마화.

다만 기존에 봐 온 흑마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눈부터 검게 변한다는 것이었다.

슈우우우우.

곽휘운의 구름이 어느새 주변을 가득 채웠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렇게 청년이 막 곽휘운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그만. 거기까지 하십시오.”

또 다른 인형이 하나 나타났다.

얼굴과 온몸을 완전히 가린 흑의인.

흑의인은 달려들려는 청년을 제지하고 나섰다.

“……쳇. 운 좋은 줄 알아라. 당장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은 것을 참고 돌아가 줄 테니 말이다.”

흑의인이 제지하자, 꽤나 빠르게 진정을 하는 청년.

생각보다는 말을 잘 들었다.

겉보기에는 절대로 남의 말은 듣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도망치는 겁니까?”

곽휘운은 슬쩍 청년을 도발했다.

지금까지 자신과 백리화를 그렇게 도발해 놓고 이렇게 가려 한단 말인가?

세상에 어느 법도가 자기네들 마음대로란 말인가?

“크큭. 조급해하지 마라. 생사회에서 만나면 그대로 찢어 죽여 줄 테니까.”

탓.

경고와 함께 몸을 돌려 사라지는 청년과 흑의인.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짓는 백리화에게 곽휘운이 그녀의 신색을 살폈다.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네. 저는 괜찮아요. ……세상 참 넓군요.”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깊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네.”

* * *

“오, 왔냐?”

막사에는 이미 남궁태산과 남주학이 도착해 있었다.

곽휘운은 곧바로 상단 주변의 특이점이나, 수상했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나마 가장 특이했던 사건이 있다면 곽휘운과 백리화가 만났던 청년에 관한 일이었다.

“온몸에 장신구를 둘렀다고? 나도 모르겠는데?”

곽휘운이 청년의 인상착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을 많이 봐 온 남궁태산도 모르는 자라고 하였다.

그때.

“남궁 대주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잠깐 밖에 나갔던 남주학이 막사로 들어오면서, 남궁태산에게 누군가 찾아왔다고 알려주었다.

물론 아까부터 종종 남궁태산에게 인사를 해오는 이들이 있기는 하였기에, 누군가 남궁태산을 찾아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를?”

남궁태산은 귀찮다는 표정을 하고는 막사 밖으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나갔다.

곽휘운도 누구인지 궁금해 따라 나왔는데, 밖에는 미인 한 명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듣는 이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해 주는 목소리.

허리까지 내려오는 윤기 있는 흑발에 품격이 느껴지는 정갈한 몸가짐.

고귀함이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한데, 남궁태산은 그녀를 보고 뜨악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처, 천 소저!”

여기 있는 이들이 모두 처음 보는 남궁태산의 당황한 모습.

이 무림에서 남궁태산을 당황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천소소였다.

고결화(高潔花) 천소소.

오대세가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세력을 가진 명문 세가인 ‘강서천가’의 금지옥엽이며, 평생을 무공만 바라보고 살 것 같은 남궁태산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천소소는 최근 남궁태산을 만나기가 너무 힘들어, 이렇게 남궁태산을 보기 위해 직접 생사회에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남궁 공자님.”

“하하…….”

“그동안 연락 한 통 없으셨습니다.”

약간은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의 천소소.

곽휘운은 오늘 천소소를 처음 봤는데, 조금은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의 인상과는 다르게, 아주 당찬 여인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차차.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휘천가의 천소소라 합니다.”

남궁태산을 질책하던 천소소는 주변에 곽휘운 일행이 있는 것을 보고는 얼른 인사를 하였다.

“백리세가의 곽휘운입니다.”

“백리세가의 백리화입니다.”

“백리세가의 남주학이에요.”

곽휘운, 백리화, 남주학 모두 백리세가의 이름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천소소가 조금은 놀랐다는 눈으로 셋을 바라보았다.

“소빙룡님이랑 미면귀께서도 백리세가에 가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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