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72화>
제중혁이 휘운객잔을 왔다 간 지도 수일.
곽휘운은 그날의 일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제중혁은 홀연히 나타났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곽휘운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 준 제중혁과의 대련.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생사회를 참여하기 위해 온 무인들로 지금 온 항주가 가득 차 있었다.
당연히 객잔은 만원.
“정말 많기도 하군.”
“그만큼 생사회가 매력적이라는 뜻이겠죠.”
흑룡객잔 때문에 주춤하던 객잔이 다시 잘되는 것은 좋았지만, 문제는 손님의 대부분이 무림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걸핏하면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싸우기 일쑤였다.
“흥! 감히 네놈 따위가 이 비응각 님을 건드려?”
“비응각? 호북성에서 찌질한 미명이나 날리는 놈이 감히 어디 큰 소리를 내는 것이냐!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이냐!”
“이놈이!”
퍽!
말싸움으로 시작된 것이 결국 실력 행사로까지 이어졌다.
“자자. 그만들 하십시오.”
서로 싸우는 둘을 말리는 독고영.
그는 객잔 호위의 임무를 확실하게 수행했다.
“흥! 네놈은 뭐 하는 놈이냐! 썩 꺼져라!”
“어디, 객잔 호위 따위가 감히!”
보통 객잔 호위는 삼류에서 이류 정도, 큰 객잔이나 되어야 이제 일류 무인 정도가 호위를 한다.
하물며 이런 객잔에서는?
그러니 싸움을 하는 두 사람은 당연히 독고영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몸 성히 나가시려면, 그만두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독고영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무형의 기세.
싸움을 하던 둘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독고영의 거대한 기세에 눌려,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눈만 꿈뻑거리면서 얼굴에서 식은땀을 연신 흘려 대었다.
그렇게 있기를 잠시, 독고영의 차가운 눈빛이 둘을 훑었다.
“자. 어떻게들 하시겠습니까?”
“이, 이만하지.”
“그, 그래. 이만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결국 꼬리를 만 두 사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싸움을 시작했지만, 괜히 큰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조심스레 힐끔거리더니 뒷걸음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두 사람.
독고영은 두 사람이 조용히 다시금 자리로 돌아가자, 그제야 기세를 완전히 거두어 들였다.
“이거 원. 눈만 마주치면 싸우려고 하는군.”
[크큭. 무림인들이란 원래 그런 족속들이지.]
하루에도 수십 차례 싸움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독고영, 남주학, 장도웅이 나서서 싸움을 말렸다.
하지만 어떨 때는 나서서 말릴 시간도 없이, 다짜고짜 칼부림이 일어날 때도 있어서 곤란했다.
“객주님. 아무래도 뭔가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아요.”
백리화도 지금 이 문제를 크게 고민했다.
싸움이 일어나면 객잔의 기물파손은 물론이고, 주변 손님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이는 당연히 매출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니, 객잔으로서는 절대로 피해야 할 일이었다.
“차라리 무림맹 보호 업소 표식을 다는 건 어때?”
“예?”
그때 위하윤이 다가와 무림맹 보호 업소 표식을 나는 것은 어떠냐고 물어왔다.
곽휘운은 처음 듣는 내용이기에, 위하윤에게 되물었다.
“무림맹에 속해있는 곳이 상점이나 객잔을 운영하면, 무림맹에서 후속 조치로 신청을 하는 곳에 한해서 무림맹 보호 업소 표식을 달아줘. 그럼 웬만한 무인들은 그곳에서 함부로 칼을 꺼내지 않는다고 들었어.”
“!!”
무림맹을 완전히 나온 뒤, 객잔을 차린 곽휘운이기에 전혀 몰랐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천맹 때문에 지금은 다시 무림맹에 들어간 상황.
얼마든지 무림맹 보호 업소 표식을 받을 수 있었다.
표식 하나로 귀찮은 일들을 막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바로 가야겠군.’
곽휘운은 곧바로 무림맹 항주지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무림맹 항주지부.
아마 최근 무림맹 지부 중 가장 바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첫손에 꼽힐 곳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정천맹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지금은 흑룡상단이라는 곳이 나타나 갑자기 생사회를 연다고 난리였다.
그 탓에 이곳저곳에서 모여드는 무림인으로 시장통을 이루는 상황.
무림맹 항주지부장 홍매검 나춘수는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끼이익.
그때 뭔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항주지부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한 명의 노인.
노인의 머리는 온통 산발에, 옷은 낡았고, 곳곳에 피가 묻어 있는, 아주 괴기스러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때마침 다른 이들이 지부에 없었기에, 나춘수가 직접 노인을 맞이했다.
“여기가, 무림맹이 맞느냐?”
“무림맹 항주지부를 찾으시는 것이라면 맞습니다.”
“그래? 크히히히. 그럼 내가 맞게 왔구나.”
왠지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지는 웃음을 흘리는 노인.
나춘수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얼른 허리춤의 검을 손에 쥐었다.
“혹시나 허튼짓을 하려면, 포기하고 이만 나가주십시오.”
“허튼짓? 나는 허튼짓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크히히히.”
말과 함께 점점 검게 물들어가는 노인의 피부와 눈.
흑마화.
나춘수는 노인이 흘리는 진득한 살기에 곧바로 근처에 있는 종을 울렸다.
땡. 땡. 땡.
적의 침입과 경고를 알리는 타종 소리.
그 소리에 일순 흩어져 있던 항주지부의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크히히히. 오늘 여기 있는 놈들은 다 죽는다.”
“허튼소리!”
선수필승.
나춘수는 재빨리 노인에게 검을 찔러 들어갔다.
공간을 가르고 빠르게 노인의 목을 향해 나아가는 검.
그렇게 노인의 목을 막 꿰뚫으려는 그 순간.
푸욱.
나춘수의 검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고, 사라진 노인의 신형은 오히려 나춘수의 바로 뒤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휑하니 뚫려 있는 나춘수의 가슴팍.
“크히히히. 아주 신선한 심장이구나.”
노인의 손에서 아직까지 뛰고 있는 나춘수의 심장.
으적. 으적. 으적.
노인은 그 심장을 자신의 입속으로 직행해 잘근잘근 씹어 먹기 시작했다.
“맛나다. 맛나. 크히히히.”
완전히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
“고, 공격해!”
갑작스러운 사태에 멍하니 서 있던 항주지부 무인들이 일제히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크히히히. 네놈들의 심장을 모두 씹어 먹어 줄게. 내가 느꼈던 그 고통처럼 말이야.”
일방적으로 항주지부 무인들을 학살하며, 점점 더 강한 살기를 내뿜는 노인.
그렇게 항주지부에 서 있는 무인들이 없어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노인은 항주지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나서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조용히 무림맹 항주지부를 빠져나왔다.
옷과 손, 그리고 얼굴에 잔뜩 피 칠갑을 한 채로 말이다.
* * *
“광노(狂老)는 잘 풀어 놓았느냐?”
“예.”
흑룡상단의 지부장실에 있는 향초아와 그녀의 앞에 엎드려 있는 부하.
“광노가 무림의 눈을 돌릴 동안, 준비를 잘해 놓거라.”
“예. 알겠습니다.”
향초아가 말하는 광노.
수년 전 무림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절강성에 있는 무림맹 소속 문파 몇 곳이 피바다로 변해 버린 사건.
그리고 피바다로 변해 버린 문파들에 있던 시체들은 하나같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심장이 없는 상태로 있었는데, 바로 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광노였다.
광노는 본래 무림맹 소속의 무인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마공서 하나를 손에 넣고부터 완전히 변해 버렸다.
마공서의 마기에 취해, 완전히 미쳐 버린 광노는 자신의 손으로 가족과 주변 동료들을 모두 죽여 버렸고, 그런 그를 잡기 위해 무림맹이 대대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완전히 미쳐 버린 광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을 죽인 이들이 모두 무림맹 탓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무림맹을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마공서의 위력이 대단했음일까?
결국 무림맹은 광노를 잡지 못했고, 그렇게 놓친 광노는 순식간에 무림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런데 그런 광노가 갑자기 향초아에 의해 다시 무림에 나타난 것이다.
* * *
곽휘운이 무림맹 보호 업소 표식을 받기 위해, 무림맹 항주지부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였다.
무림맹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강하게 곽휘운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있었다.
‘혈향?’
항주지부에서부터 비릿한 혈향이 짙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곽휘운은 재빨리 항주지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항주지부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정문을 밀어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보이는 참상.
사방에 널려있는 가슴이 뚫려있는 시체들.
이미 지부는 새빨간 피바다로 변해 있었고.
살아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지독하구나.]
곽휘운은 바로 시체를 살펴보았다.
모두 똑같이 가슴이 뻥 뚫려 있었고, 모두 심장이 없었다.
모두 동일한 상처.
단 한 명이 저지른 것임이 분명했다.
뚝. 뚝.
게다가 아직 피가 굳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곽휘운은 재빨리 다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이라면, 범인을 찾을 수도 있었다.
‘흔적이 있다.’
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진 흔적이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재빠르게 흔적을 따라 움직이자, 금방 범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서 온몸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있는 노인 한 명.
광노였다.
“크히히히. 너는 뭐지? 너도 무림맹이냐?”
“당신입니까? 무림맹 지부의 모두를 죽인 사람이?”
“맞아. 내가 그랬지. 크히히히.”
첨예한 광노와 곽휘운의 대립.
곽휘운은 광노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광노도 본능적으로 곽휘운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광노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흑마화를 발현시켰다.
그러자 노인의 피부와 눈이 점점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공에 사로잡혀 미쳐 있는 자로군.]
천홍이 보기에 지금 광노는 마공의 힘에 완전히 사로잡혀 미쳐 있는 상태였다.
마공은 사용하는 자에게 큰 힘을 주지만, 조금만 잘못하면 완전히 미쳐 버리기 일쑤였다.
팟.
갑자기 무시무시한 속도로 곽휘운을 향해 찔러오는 광노의 손.
어느새 광노의 손에는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검은 강기가 가득 둘려 있었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