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71화>
마교인들이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신강을 벗어나 드넓은 무림에서 자신들의 힘을 마음껏 발휘하고 싶은 욕망은 마교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교마는 그 누구보다 교주의 결정에 기꺼워했다.
“시일은 언제로 하시려고 합니까?”
“일단 향초아가 하는 일은 한번 지켜봐 주고 시작하세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번 무림 진출은 전과는 달리, 조금 색다르게 해 보려 하네.”
“예?”
“서열 1위부터 100위까지만 무림에 나가는 걸로 할 걸세. 무림 진출에 참여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100위까지 들어오라고 하게.”
* * *
얼마 전의 싸움이 마치 꿈이라는 듯 다시 아무런 일없이 흑룡객잔은 영업을 계속했다.
곽휘운은 다른 움직임이 더 있을까 흑룡객잔을 지켜보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그렇게 실패를 했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분명 그들의 계획을 완전히 망쳐 놓았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낌새도 없다는 것은 이상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곽휘운이 생각하기에,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자신에게 더 이상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둘 중 어느 것이든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당장 다짜고짜 들어가서, 그들을 쓸어버릴 수는 없으니 조금 기다려 볼까.’
흑룡상단이 자신을 공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아 있는 증거가 없었다.
만약 여기서 자신이 흑룡상단에 들어가 그들을 모두 쓸어버린다면, 오히려 자신이 마두라고 무림에 낙인찍힐지도 몰랐다.
거기에 흑룡상단의 어디까지가 마교이고, 어디까지가 일반 상인인지 구분할 수 없었으니 더욱 말이다.
“객주님. 그거 들으셨어요?”
그때 시장에 나갔던 남주학이 뭔가 다급한 표정으로 곽휘운을 찾으며 들어왔다.
“무슨 일 있느냐?”
“흑룡상단에서 이번에 ‘생사회(生死會)’를 연대요.”
“생사회?”
생경한 단어에 곽휘운이 고개를 갸웃하자, 남주학이 설명을 이어서 해 주었다.
흑룡상단 주최의 생사회.
흑룡상단이 부상을 내걸고, 서로 죽고 죽이는 생사회를 연다고 하였다.
참여 조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부상을 받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했다.
“지금 사람들이 모두 이 생사회의 부상 때문에 난리도 아니에요.”
그리고 사람들이 이 생사회에 미친 듯이 열광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흑룡상단이 내건 부상 때문이었다.
‘파천신공(破天神功)과 자하신단(紫夏神丹) 그리고 백화신혼검(白花神魂劍).’
무려 세 개의 부상이 우승자에게 모두 주어졌다.
하나, 하나가 모두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물건들이었다.
파천신공은 수백 년 전 무림에 군림했던 절대자 파천대제(破天大帝)의 무공으로, 사람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는 부상이었다.
* * *
그리고 자하신단은 화산파에서 만드는 단약으로 그 효험이 소림의 대환단에 버금간다는 신단이었다.
마지막 부상인 백화신혼검은 무림에 이름난 보검으로, 원래는 백리세가의 가주들에게 물려서 내려오는 가보와 같은 것이었다.
“배, 백화신혼검이 부상으로 있다고요?”
한쪽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리화가 백화신혼검이 부상으로 나온다는 이야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남주학에게 물어왔다.
백리화는 백화신혼검에 대해 어릴 때에 몇 번이나 들었었다.
한때 백리세가를 상징하는 보검이자, 백리세가의 가주임을 증명하는 물건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추, 출전해야겠어요.”
백리화는 지금 오로지 백화신혼검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생각밖에 머릿속에 없었다.
그렇게 허둥대며 나갈 준비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곽휘운이 입을 열었다.
“가주님. 잠시 진정하십시오.”
“하, 하지만.”
백리화는 차분한 곽휘운의 두 눈을 보자, 혼란스럽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제가 가서 찾아오겠습니다.”
“예? 아니에요. 가주인 제가 직접…….”
“가주님. 저도 백리세가의 식구입니다.”
백리화는 곽휘운의 말에 크게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곽휘운도 엄연히 백리세가의 식구였다.
“반드시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곽휘운은 이번 생사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지금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들 깊숙이 들어가서 그들의 계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어서 오세요!”
그때 객잔의 문이 열리며, 손님이 한 명 안으로 들어섰다.
동네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모습의 노인.
추삼은 밝은 얼굴로 노인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자리를 안내해 드릴게요.”
“흘흘. 그래, 고맙구나.”
그저 보기에는 너무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노인.
하지만 곽휘운은 노인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어찌 그놈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냐!]
그리고 한동안 조용히 있던 천홍도 노인을 보고는 크게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 * *
곽휘운은 직접 노인을 접대하기로 하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다가오는 곽휘운을 가만히 바라보는 노인.
“허어. 대단한 아이로구나. 그 나이에 하늘을 담았구나.”
곽휘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곽휘운의 수준을 알아채는 노인.
잠시였으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허공에서 곽휘운과 노인의 시선이 얽혔다.
노인의 눈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
곽휘운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고수였다.
“어디서 오신 분인지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조금은 긴장감이 느껴지는 곽휘운의 말.
그 말에 노인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신강.”
신강에서 왔다면 단 한 곳밖에 없었다.
천마신교.
“천마십니까?”
“흘흘. 그건 예전에 물려주었지.”
천마라는 질문에 물려주었다고 대답하는 노인.
그렇다는 것은 전대 천마라는 이야기.
“제중혁이라 하네.”
전대 천마 제중혁.
그가 지금 곽휘운이 있는 휘운객잔에 온 것이었다.
[그런가. 그놈이 천마가 되었던 것이군 그래.]
천홍의 회한이 섞인 목소리가 곽휘운의 머릿속을 울렸지만, 지금 곽휘운의 모든 신경은 눈앞의 노인에게 집중되어져 있어,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항주가 볼 것이 많다고 들어서 놀러 왔더니, 정말 대단한 것을 하나 보았구나.”
제중혁은 계속해서 곽휘운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아이였다.
자신도 최근에야 하늘을 몸에 담을 수 있었는데, 저 아이는 벌써 하늘을 몸에 담고 있었다.
도저히 저 나이로 가능한 무위가 아니었다.
“무슨 일로 오신 것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음? 흘흘. 그렇게 걱정할 것 없다. 나는 이미 무림에서는 손을 놓았으니 말이다.”
제중혁은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는 곽휘운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이미 무림을 떠나기로 한 몸.
정파든 마교든, 그들이 싸우든 말든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가볍게 그 말을 전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이나 하고 있는 중이다.”
“예. 알겠습니다.”
물론 곽휘운은 제중혁의 말에도 완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지금 눈앞의 제중혁이 혹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아마 휘운객잔과 백리세가는 그대로 항주에서 사라질 테니 말이다.
“허나, 그냥 가려 했는데, 궁금해서 못 참겠구나. 혹 나에게 네 무공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
“……알겠습니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제중혁과 곽휘운은 인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깊은 야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주변에 있는 이들이 휩쓸려 버릴 테니 말이다.
“자.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해보자꾸나.”
“예.”
슈와아아아아악.
촤자자자자자작.
곧바로 휘운을 불러내는 곽휘운.
그런 곽휘운을 제중혁은 뒷짐을 지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와 보거라.”
제중혁의 말에 곽휘운은 곧바로 휘운을 움직였다.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캉!
그러자 어느새 제중혁의 손에 들려있는 낡은 검 한 자루.
그는 별다른 무공도 사용하지 않고, 곽휘운의 휘운검법을 막아 내었다.
쩌저저저저저적.
주변을 완전히 얼어붙게 할 정도의 한기가 몰아쳤지만, 제중혁의 주변은 마치 따스한 봄날처럼 한기가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에 제중혁은 입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좋구나. 계속해 보거라.”
정말로 즐거운 듯한 표정의 제중혁.
그는 지금 최고로 기분이 좋았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자신에게 검을 뽑을 정도의 무공을 보여준 이는 몇 없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객잔에서 만난 아이가 자신의 검을 뽑게끔 만들었다.
‘이래서 무림은 재밌는 거야.’
예상치 못한 강자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또 나온다.
그래서 지금까지 천마신교가 무림을 정복하지 못한 것이고 말이다.
카아앙!!!
카아앙!!!
카가가각!!!
카아앙!!!
곽휘운의 휘운이 사방에서 제중혁을 공격했지만, 제중혁은 어렵지 않게 모든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르르륵.
마치 불꽃처럼 낡은 검을 감싸며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기운.
그리고 이내 제중혁의 검에서 마화강기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천마신공? 본좌가 있었을 때랑은 조금 달라졌군.]
천홍은 제중혁의 마화강기를 보고 천마신공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도 예전에 천마신공을 보았다는 소리.
곽휘운은 천홍의 전생이 궁금했지만, 그것도 일단은 묻어 두기로 했다.
본인이 말하지 않는다면, 굳이 캐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보다는 지금 제중혁과의 싸움이 더 중요했다.
“클클. 제대로 해보자꾸나.”
“후우.”
곽휘운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몸 안에 잠들어 있던 모든 내공을 꺼내기 시작했다.
슈와아아아악!
순식간에 주위를 감싸듯, 퍼져 나가는 기세.
그와 동시에 곽휘운의 휘운이 성난 파도처럼 출렁이기 시작했고, 제중혁의 두 눈은 놀람, 흥분, 즐거움으로 물들어 갔다.
그런 그의 입에서 작은 감상이 새어 나왔다.
“클클. 아마 이번 무림 진출도 실패로 끝나겠구나.”
서로 싸우는 둘을 말리는 독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