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69화>
비단을 실은 행렬은 무사히 백연상단까지 도착하였고, 백연상단은 이 거래를 통해 큰 이득과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나 이번 비단은 고위 관료들에게 납품될 것이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거래였다.
“고맙네. 덕분에 이번에 큰 고비를 넘겼네.”
“아닙니다.”
장구영이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마침 곽휘운이 나서지 않았다면, 정말로 큰 낭패를 볼 뻔했으니 말이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게.”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난 뒤, 곽휘운과 독고영은 다시 휘운객잔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객잔의 손님이 눈에 띄게 적어 보였다.
물론, 장사가 잘되는 날도, 안 되는 날도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적어도 너무 적었다.
“총관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 객주님 오셨어요. 그게요…….”
총관에게 묻자 그는 잠시 한숨을 내뱉더니, 이윽고 그간 있던 자초지종을 풀기 시작했다.
객잔에 손님이 적어진 것은 바로, 새롭게 생긴 객잔인 흑룡객잔 때문이었다.
청송객잔을 했던 건물을 그대로 다시 써서 문을 연 흑룡객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흑룡상단이 직접 운영하는 객잔이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최고의 품질을 제공합니다.’
흑룡객잔이 내건 문구.
흑룡객잔은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과 좋은 음식을 제공하며 손님들을 끌어모았고, 그러다 보니 단 한 푼이라도 아쉬운 이들은 당연히 모두 흑룡객잔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가격이지 않습니까?”
“네. 아무래도 당분간의 출혈을 감수해서라도 다른 객잔을 망하게 하고, 손님을 끌어모으려는 것 같아요.”
“흠.”
막대한 자금과 자체적으로 상단을 운영하니 가능한 전략이었다.
그렇지 못한 자신들이 그들과 같이 출혈 경쟁을 해서는 승산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다.
“혹시 생각하신 방도가 있습니까?”
곽휘운은 일단 백리화에게 생각해 둔 방도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희는 오히려 가격을 더 높이는 방법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예?”
가격을 더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더 올리자니?
곽휘운은 그것이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백리화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가격을 낮춰서 손님이 줄었는데 역으로 가격을 올리자는 것은, 곽휘운이 생각하기에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 같았으니 말이다.
“부유층 고객들을 노리자는 말씀이에요. 그들은 오히려 비싼 음식일수록 선호하거든요.”
[흠.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야. 본좌도 잘 나갈 때는 비싼 곳만 찾아다녔거든.]
돈이 많은 이들은 값이 저렴한 음식은 먹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비싼 음식일수록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음식이라 생각해 더 선호했다.
백리화는 그것을 노려, 오히려 음식의 값을 높여 받자는 것이었다.
“대신 음식값을 높이는 만큼, 주변 환경들을 조금 더 고급스럽게 가꾸면, 통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한번 진행해 보도록 하지요.”
그 말에 곽휘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괜찮은 돌파구가 될 터.
그렇게 휘운객잔은 백리화의 말대로 음식의 값을 높이고, 고급 객실을 늘리는 것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 * *
백리화가 내놓은 제안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전략을 바꾼 이후, 항주에서 돈 좀 있다는 부호들은 전부 휘운객잔을 찾아왔다.
황중식에게 부탁해 요리에 조금 더 화려한 장식을 가미하고, 식사를 고급스럽게 바꾸니 그들은 꽤나 만족해했다.
게다가 천가장의 장주 천금산이 다시 방문해 식사를 한 뒤로는, 자리가 없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백리 가주님 덕분에, 객잔이 이제 어느 정도 정상화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쪽에서 또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서 걱정이에요.”
흑룡상단의 힘을 업은 흑룡객잔이라면 또 얼마든지 새로운 전략을 꺼내어 들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마음먹고 휘운객잔과 똑같은 전략을 쓴다면, 다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곽휘운은 다르게 생각했다.
“아마 그들이라면, 이제 힘을 쓰려고 할 것입니다.”
백연상단과의 거래는 공고하고, 근간을 흔들기 위해서 출혈 경쟁을 시도했지만, 그것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얼마 전 백연상단의 상행을 돕기 위해 나갔을 때 본 흑룡상단이라면, 이제는 참지 못하고 힘으로 일을 처리하려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니 말이다.
곽휘운이 본 그들은 힘으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으니 말이다.
“객주님! 흑룡상단의 지부장이란 분이 찾아오셨어요.”
그때.
추삼이 흑룡상단 항주지부장 향초아가 곽휘운을 찾아왔음을 알려왔다.
곽휘운은 향초아가 찾아왔다는 이야기에 살짝 미소가 피어올랐다.
역시나 곽휘운의 생각대로였으니 말이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곽휘운을 찾아온 향초아.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굉장히 호감 가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눈까지 그렇지는 못했다.
그 두 눈 깊숙한 곳에는 살기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 주변에 계신 객주님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있는데, 휘운객잔의 객주님도 이번 식사 자리에 초대하려고 왔습니다.”
“저를 말입니까?”
“네. 물론, 객주님만이 아니라 객잔의 식구분들과 같이 오셔도 됩니다.”
뜬금없는 식사 초대.
겉보기에는 좋은 목적으로 하는 초대인 것 같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위험한 느낌이 풀풀 풍겨 왔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가 봐야지요.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테니 말입니다.”
“호호. 감사합니다. 성대하게 준비할 테니, 꼭 와 주시길.”
그가 긍정적인 답을 내놓자, 밝게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 향초아.
곽휘운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범의 아가리인 것을 알면서도 가려는 것이냐?]
‘범을 잡으려면, 범의 아가리인 줄 알면서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향초아의 초대를 거절한다면 분명 또 다른 수로 암수를 뻗어올 것이다.
그것이 예상의 범위 내일지, 혹은 언제 다시 수작을 부릴지까지 대응하기 귀찮은 점이 많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암수를 부릴 때 정면 돌파하는 것이 나았다.
곽휘운은 머릿속으로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흑룡상단의 지부장실.
값비싼 보석들로 가득한 방안에는 향초아가 오연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부복하고 있는 부하 하나.
그렇게 잠시 계속된 침묵.
그녀는 가만히 앉아서 잠시 손가락으로 옥가락지와 보석들을 굴리더니, 공허한 눈빛으로 눈앞의 부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손님을 맞을 준비는 끝났느냐?”
“예. 최고 실력의 살수들을 방 주변에 배치해 두었고, 음식에 뿌린 무색무취의 산공독도 구해 두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으냐? 듣기로 곽휘운이라는 자의 실력이 대단하다더구나.”
“그래서 잔혈삼마 님들도 미리 모셔 두었습니다.”
잔혈삼마(殘血三魔).
천마신교에서 내려온 그들은 성격이 워낙 종잡을 수 없어서 그렇지,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이름을 듣자, 향초아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돌았다.
“실력만큼은 나쁘지 않은 것들이니, 가능하겠구나.”
“산공독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 성공해서 교마의 콧대를 눌러 줘야겠다.”
향초아는 이번에 무림에 나왔던 교마가 항주에서의 일을 제대로 끝마치고 못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이곳, 항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보다 하나 위의 서열에 있는 교마를 넘고 싶어 했는데, 이번이 그 기회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친히 흑룡상단을 이끌고 이곳 항주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그런 그녀에게는 너무나 절호의 기회였다.
친히 흑룡상단을 이끌고 굳이 이곳, 항주에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교마가 가장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던, 곽휘운이란 자를 제거하고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어 초대라는 명목으로 제거 계획을 짠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그 객잔도 없애 버리거라.”
“예. 그래서 객잔은 악혈조 님에게 부탁드렸습니다.”
“악혈조까지?”
악혈조(惡血爪).
악혈조도 천마신교의 무인 중 하나였는데, 마교 서열만 놓고 보면 잔혈삼마보다 높은 자였다.
객잔이란 곳은 곽휘운이라는 자가 아니라면 별 볼 일 없을 곳이기에, 그런 곳을 없애 버리는 것에 악혈조를 보내는 것은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부탁드렸습니다.”
“음. 그래. 알겠다. 그렇게 진행해라.”
“예.”
이 정도라면 실패하려 해도 도저히 실패할 수 없는 철저한 계획이었다.
그녀가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부하는 대답과 함께 빠르게 몸을 돌려 사라졌고, 향초아는 값비싼 보석들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상상하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 * *
흑룡객잔.
초대를 받은 곽휘운 일행은 그 앞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약간 늦은 저녁 시간이지만,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듯 굳게 닫힌 문.
초대를 하였으니, 대접을 위해 손님을 받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곽휘운은 그것은 절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흠.”
이번에 곽휘운은 혼자 초대에 응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다른 이를 대동하고 오는 것은 오히려 위험했으니 말이다.
“어서 오십시오. 흑룡객잔의 객주를 맞고 있는 관주평이라 합니다.”
곽휘운이 흑룡객잔안으로 들어가자,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중년인이 곽휘운을 직접 마중 나왔다.
곽휘운는 잠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자를 관조했다.
‘이자도 꽤나 실력자군.’
평범한 중년의 장사치 같지만, 눈빛과 기도가 범상치 않았다.
다가오는 걸음걸이조차도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맞춰 있었고, 풍성한 옷을 입어 후덕해 보이지만, 그 안에 숨긴 용력이 그에겐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