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68화 (68/203)

<휘운객잔 68화>

백리화도 방금 흑룡상단의 무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막 정천맹의 위협에서 벗어났는데, 또 다시 새로운 위협이 생긴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새로운 위협이 생기면 가장 힘든 사람은 곽휘운이었으니 말이다.

“백리 가주님. 제가 이번에 마음먹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네? 마음먹은 것이요?”

“예. ‘마교든 거대 상단이든 객잔에 방해가 되는 건 모두 치워 버리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건 멍청한 짓이다.]

이번 정천맹 사건과 제갈세가의 사건을 겪으며 곽휘운이 마음먹은 것이 하나 있었다.

더 이상 수동적으로 가만히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

마교든 흑룡 상단 같은 거대 상단이든 객잔에 방해가 된다면, 앞장서서 모두 치워 버릴 것이었다.

흑룡 상단이 만약 객잔에 위해를 가하려 한다면,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었다.

* * *

다음날 아침.

휘운객잔으로 백연상단의 부총관 강운이 찾아왔다.

이미 한번 본 적이 있기에, 따로 인사는 생략했고, 곧바로 길을 재촉했다.

“내가 같이 가도 되겠는가?”

“아직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니, 차라리 저와 같이 있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곽휘운은 이번 일정에 독고영을 동행시켰다.

아직까지 독고영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그를 막을 수 있는 이가 현재 백리세가에는 곽휘운밖에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같이 이렇게 동행하는 것이 맞는 판단이었다.

“거기에 독고 호위님의 실력을 볼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하. 기대에 부응해 줘야겠군 그래.”

마차를 타고 빠르게 항주를 벗어나, 이곳으로 오는 상행을 맞이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자 저 멀리 상행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값비싼 서역의 비단을 가득 싣고 있는 마차가 수십 대.

당연히 주변을 호위하는 무인들도 많았는데, 그들도 나름 훈련이 잘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저 정도 전력이면, 산적들은 얼씬도 못할 정도였다.

[요즘은 상단을 호위하는 자들 수준도 꽤나 대단하구나.]

천홍이 살아 있을 때에 상단을 호위하는 무인들은 죄다 삼류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자들은 최소 이류에서 일류 무인들.

천홍은 확실히 세월이 많이 지났음을 느꼈다.

“안녕하십니까. 백연상단의 강운입니다.”

“아. 오셨습니까. 단주목이라 합니다.”

강운은 행렬의 가장 높은 책임자와 인사를 나눈 뒤, 곽휘운과 독고영을 소개하고는 바로 행렬을 재촉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여, 습격을 받을 확률을 줄여보자는 심산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드르륵. 드르륵.

말발굽소리와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만 들려오는 평화로움.

이대로라면 별 문제없이 항주에 다다를 수 있을 듯싶었다.

쉬이익.

퍼석.

하지만 평화로움은 얼마가지 못하고 깨졌다.

가장 뒤에 있는 마차에 화살하나가 박혔다.

보통의 화살과 다른 흑색 일색의 화살.

‘빠르군.’

곽휘운이 미쳐 반응해 구름을 보낼 시간도 없을 만큼 빠른 화살.

이것은 궁술을 익힌 무인이 쏘아 낸 화살이 분명했다.

“독고 호위님. 우측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객주.”

곽휘운은 독고영의 실력을 볼 겸, 좌우로 나누어 습격을 막기로 했다.

슈와아아악.

주변을 완전히 장악하는 곽휘운의 구름.

쿠우우웅.

주변을 완전히 짓누르는 곽휘운의 구름.

엄청난 압력에 또 다시 마차를 노리고 날아오던 검은 화살이 그대로 땅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스스스스.

주변 나무와 풀이 흔들리며, 검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곽휘운은 그들을 무시하듯 지나치면서 검은 화살을 쏜 무인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죽여라!”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것도 있구나. 저 대사는 어떻게 변하지를 않을까.]

서걱. 서걱.

곽휘운을 향해 달려들던 검은 그림자들은 제대로 무기를 뻗어보지도 못한 채 명을 달리했다.

‘재빠르군.’

곽휘운의 구름이 퍼져나가는 것보다 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것인지,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

슈우욱.

그때 또 다시 검은 화살이 날아왔다.

- 휘운검법. 제 오초. 반.

곽휘운은 이번에는 검은 화살을 날아왔던 것보다 빠르게 다시금 되돌려 날렸다.

슈와악!

“큭!”

그때 화살이 되돌아 날아간 곳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찾았다.’

슈우우우욱.

곽휘운은 구름과 함께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갔다.

사방을 완전히 포위한 구름.

화살을 쏜 궁수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젠장!”

챙!

거친 욕설과 함께, 곽휘운에게 발각된 궁수는 곧바로 검을 빼어들고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가까이 붙은 이상, 더 이상 활은 무용했다.

“흑룡상단에서 보내신 겁니까?”

“죽어라!”

[그걸 물어본다고 대답하는 습격자가 있느냐?]

천홍의 말처럼 당연히 고분고분 대답하는 습격자는 없다.

하지만 곽휘운은 아주 작은 눈의 떨림으로, 지금 습격자들이 흑룡상단에서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서걱.

더 이상 들을 이야기는 없었다.

곽휘운은 궁수가 썼던 활과 화살을 챙겨서 행렬로 돌아왔다.

“조금 늦었군 그래.”

이미 정리를 끝내고 행렬에 돌아와 있는 독고영.

확실히 실력은 출중했다.

“그런데 습격자들이 생각보다 형편없더군.”

독고영의 말처럼 확실히 습격자들의 수준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다.

이정도의 습격자라면 굳이 자신들이 없어도, 여기 있는 이들만으로도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곽휘운이 무언가 찝찝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쓸모없는 것들은 뭐라 고용해서 돈만 날리는지 모르겠네.”

“그러게나 말이다. 차라리 그 돈을 우리나 주지.”

마치 만담을 하는 듯 대화하며 태평하게 걸어오는 두 명의 무인.

한 명은 키가 크고 삐쩍 말랐고, 다른 한 명은 키가 작고 매우 뚱뚱했다.

매우 특이한 인상착의.

그들을 보고 상단 행렬에서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희명쌍괴…….”

희명쌍괴(戱命雙怪).

돈을 받고 일을 하는 낭인들 중 가장 유명한 이들 중 하나였다.

희명쌍괴는 특이한 모습만큼이나 아주 특이한 무공을 썼는데, 그 무공으로 상대를 희롱하고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걸로도 유명했다.

키가 크고 삐쩍 마른 이가 절괴(折怪)였고, 키가 작고 매우 뚱뚱한 이가 책괴(磔怪)였다.

그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절괴는 사람을 꺾어 죽이는 것을 좋아했고, 책괴는 사람을 찢어 죽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느니 차라리 스스로 자결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악명이 높은 자들이었다.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게 현명한 처사다.

“빨리 다 죽이고, 기루나 갑시다.”

“그래 그러자.”

곽휘운은 희명쌍괴를 보고 왜 습격자들의 수준이 낮았는지 이해했다.

저들 둘만 있어도 여기 행렬의 무사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을 터였다.

오히려 약간의 도움을 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저런 낭인이라면 돈 좀 썼겠구나.]

저 정도 수준의 낭인을 고용하려면 엄청난 금액을 지불했을 터였다.

거금을 들여서까지 이 상행을 방해하려는 자들이 과연 누가 있을까?

‘흑룡상단밖에는 없겠지.’

저들의 등장은 흑룡상단이 벌인 습격이라는 것에 더욱 더 확신을 심어주었다.

“객주는 그냥 가만히 있게. 내가 처리할 테니.”

독고영이 쌍검을 뽑아들고 먼저 앞으로 나섰다.

곽휘운은 독고영의 말처럼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대련에서 보지 못한 독고영의 실력을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 말이다.

‘그때 그 신기한 무공을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쌍검을 이용한 무공도 위력적이지만, 쌍검의 끝에 매달려 있는 실을 이용한 무공이 진짜인 독고영의 무공.

지금 다시 한 번 더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역시 구경 중에는 싸움 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법이지.]

* * *

“저놈은 뭐야?”

“제일 먼저 죽고 싶은 놈이겠지.”

희명쌍괴는 쌍검을 들고 다가오는 독고영을 보며, 입가에 가득 비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무인을 상대하고 죽여 왔는데, 쌍검을 쓰는 이들은 하나같이 약해빠졌었다.

쌍검을 쓰는 자들은 그저 겉멋에 빠져 있는 멍청이들이었다.

“내가 죽일게.”

“아니, 내가 찢어 죽일래.”

서로 독고영을 죽이겠다고 다투는 희명쌍괴.

독고영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싸우지 마라. 둘 다 내가 한 번에 죽여 줄 테니.”

“미친놈!”

“죽여 주마!”

독고영의 도발에 희명쌍괴는 반반씩 나눠서 독고영을 가지고 놀다 죽이기로 했다.

좌우에서 동시에 달려드는 희명쌍괴.

그리고 그와 함께 독고영의 쌍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독고영의 쌍검.

거도왕 팽도혁도 감탄했던 봉익쌍검술이었다.

콰각. 콰각.

캉! 캉!

희명쌍괴 둘의 합격을 혼자서 여유롭게 막아내는 독고영.

왼팔과 오른팔이 서로 다른 무인처럼 움직이며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나름 재주는 있군.”

“그러게 말이야.”

희명쌍괴는 자신들의 공격을 수월하게 막아 나가는 독고영을 보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끼이이익.

갑자기 몸이 무언가에 묶인 듯 움직이지 않게 된 희명쌍괴.

“이게 무슨!”

“이런!”

희명쌍괴는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는데, 그럴수록 몸에 상처가 늘어갈 뿐이었다.

“끝이다.”

촤아아악!

독고영이 쌍검을 교차해 당기자, 그대로 희명쌍괴의 몸이 조각나버렸다.

너무나 허망한 희명쌍괴의 최후.

독고영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로, 행렬로 돌아왔다.

“자. 다시 출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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