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67화 (67/203)

<휘운객잔 67화>

‘이 책이 말을 거는 것인가?’

[아니. 책에서 이미 네놈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이 말이다.]

‘머릿속으로 들어왔다니?’

[그래. 성불할 때까지 잠깐 동안 신세 좀 지자.]

곽휘운은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흠흠. 일단은 본좌가 먼저 설명을 해 줘야겠군.]

* * *

곽휘운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목소리의 주인은 축령신공을 쓴 장본인이었다.

그는 곽휘운과 같은 천신지체를 타고났고, 그 힘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축령신공을 쓰다가 배신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죽은 후에도 이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쓴 축령신공의 책에 영혼이 봉인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본좌는 천홍이라 부르면 된다.]

‘천홍. 그럼 성불을 하려면, 제가 대신 복수를 해야 합니까?’

[응? 본좌도 모른다. 어떻게 성불을 해야 하는지 말이야.]

이미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천홍이 복수를 해야 할 상대도 이미 한줌 흙이 되어 세상으로 돌아갔을 터.

천홍 자신도 왜 아직까지 이렇게 혼이 남아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일단은 그럼 같이 지내야 하겠군요.’

[하하. 그래 신세 좀 지자. 아마 금방 성불할 거다.]

곽휘운은 천홍과 같이 지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아무리 곽휘운이라도, 머릿속에 있는 영혼을 쫓아내는 방법은 몰랐으니 말이다.

“객주님. 아무래도 조금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한창 머릿속의 천홍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백리화가 곤란한 표정으로 곽휘운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 그게…….”

백리화를 따라 객잔 문 쪽으로 향하자, 너무나 의외의 인물이 눈에 보였다.

“정천맹주……?”

* * *

독고영은 곽휘운을 만나기 위해 휘운객잔을 찾아왔다.

“무슨 일로 이곳에 오신 겁니까?”

차분하게 독고영을 바라보며 묻는 곽휘운.

곽휘운은 딱히 독고영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객잔이 정천맹에게 이래저래 피해를 볼 뻔했지만, 그것이 독고영의 명령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거기에 어차피 무림맹도 벌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말이야.’

무림맹에서는 자신들의 잘못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천맹에 가입했던 문파들과 무인들을 따로 벌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그들도 모두 마교에 농간에 놀아난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많은 무림맹에 가입한 문파들은 아무리 그래도 정천맹을 이끌었던 정천맹주는 벌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지만, 무림맹주는 그도 피해자일 것이라며, 벌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내가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겠는가?”

“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왜 뜬금없이 정천맹주를 했던 자가 객잔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란 말인가?

“뭐랄까 자네와 있으면, 내 존재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일세.”

“죄송합니다만, 아무나 객잔의 식구로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가 악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휘운객잔에 식구로 들어온다는 것은 어쩌면, 백리세가에 들어온다는 것과도 같은 말.

그러니 아무나 들일 수는 없었다.

“눈 하나면 되겠는가?”

푸욱.

말과 동시에 자신의 눈 하나를 파내는 독고영.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임에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남은 한쪽 눈으로 곽휘운을 바라보는 독고영.

[제법 강단이 있는 놈이군. 저런 놈은 쉽게 배신하지 않지.]

천홍의 말에 곽휘운도 동의는 했다.

“하나로는 부족한가? 그럼…….”

“그만. 객잔의 식구로 받아드리겠습니다.”

곽휘운은 남은 눈마저 파내려는 독고영을 제지했다.

“고맙네.”

“일단 눈부터 지혈하시고, 안에서 씻고 계시면, 제가 옷과 안대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곽휘운은 백리화에게 자신이 독고영을 객잔에 받은 것을 이야기했다.

“백리세가로 받을지 말지는 가주님께서 정하시면 됩니다.”

“객주님이 객잔에 받으셨다는 것은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럼 백리세가의 식구로 받아들일게요.”

백리화의 동의를 받은 곽휘운은 곧바로, 근처 포목점으로 가서 웃돈을 주고 빠르게 독고영이 입을 옷과 안대를 만들어 왔다.

“여기 있습니다.”

옷과 안대를 걸치고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독고영의 모습은 꽤나 괜찮았다.

특히나 그의 구릿빛피부와 안대가 묘하게 어우러져 그를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갑작스럽게 자리 하나가 비었었으니 말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객주.”

곽휘운은 독고영에게 해야 할 일과 객잔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 그리고 백리세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백리세가에 일원이 되는 것인가? 하하. 이것 참……. 좋네.”

백리세가에 들어오라는 말에 무언가 회상에 젖은 눈을 하던 독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백리세가의 전력이 한층 올랐군.’

독고영은 대련이지만, 무림맹의 부맹주를 이길 정도의 실력자다.

거기에 특수한 무공의 이점까지 가지고 있으니, 본 실력보다도 조금 더 강하다고 해야 할 터였다.

[본좌가 보니 네 주변에는 재미있는 사람과 재미있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같다.]

‘하하.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 *

정천맹이 사라지고, 정천맹과 청송객잔이 있던 자리가 갑자기 붕 떠버렸다.

한동안 아무도 없이 방치되었던 곳인데, 며칠 전 그곳을 모두 사들인 곳이 나타났다.

‘흑룡상단(黑蓮商團).’

흑룡상단은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상단 중 하나인 곳이었는데, 본래 절강성에서는 장사를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정천맹이 사라지고, 정천상단이 갑자기 붕 뜨게 되자, 그들을 모두 집어 삼키면서 절강성에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조금 힘들어 질 것 같네.”

백연상단의 상단주인 정구영이 곽휘운을 찾아와서 한 이야기였다.

흑룡상단은 그들이 자리 잡은 주변의 상권을 모조리 장악하는, 공격적인 상행을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뒤에서 암수(暗數)를 써서 다른 상단들을 망하게 한다는 소문도 도는 곳.

백연상단이 항주에서 제일 큰 상단이라고는 하지만, 흑룡상단에 비하자면 아직 꽤나 부족했다.

흑룡상단이 항주에 들어온다면, 백연상단으로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벌써부터 많은 상인들과 점주들이 흑연상단으로 가려고 하고 있네.”

백연상단과 거래하는 상인이 줄어들고, 또 점주들이 줄어든다면 자연스레 백연상단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원활하게 물품들을 조달하기 힘들어지고, 결국 상단은 와해되어 버리고 말 터였다.

그렇게 되면 지금 백연상단과 후원 계약을 맺고 거래를 하는 휘운객잔과 백리세가에도 큰 타격이 오는 것이었다.

“저희가 어떤 도움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장구영이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은 필히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왔을 터였다.

그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오기에 그는 너무나 바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아주 큰 거래가 하나 있네. 자네가 그 물건이 이곳까지 안전하게 올 수 있게 해 줄 수 있겠나?”

백연상단은 이번에 서역에서 온 비단을 대량으로 거래하기로 하였는데, 절대로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아주 큰 거래였다.

그런데 흑룡상단이 항주에 들어왔으니, 그들이 혹여 암수를 쓸지 몰랐다.

그래서 후원 계약을 맺은 백리세가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안전하게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곽휘운은 고민할 것도 없이 장구영의 부탁을 수락했다.

백연상단이 멀쩡해야 객잔도 차질 없이 운영이 되는 것이고, 이래저래 백연상단에게 도움도 받았으니 거절할 수 없었다.

“고맙네. 내가 내일 부총관을 보내겠네. 그와 함께 움직이면 될 걸세.”

“예.”

[오! 여행을 떠나는 것이냐? 오랜만에 세상 구경을 하겠구나 그래.]

‘하하. 여행이라기에는 그리 멀리 가지는 않을 겁니다.’

[멀지 않으면 어떠냐. 어디를 가도 책속 보다는 낫겠지.]

수백 년을 책속에서만 보낸 천홍.

사실 그는 지금 이렇게 책 속을 벗어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다.

천홍은 곽휘운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다.

끼이익.

정구영이 나가고 조금 뒤.

객잔의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들이 객잔에 들어왔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 흑룡 자수가 새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들이 흑룡상단의 사람들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상단이 맞기는 한가? 무림 문파가 아니고?’

[눈빛은 정제되어 있고, 걸음걸이도 일정한 것이 상당히 훈련된 자들이다.]

곽휘운은 흑룡상단의 사람들을 보고 무림 문파의 무사들 같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금 들어온 이들은 하나같이 잘 벼려진 고수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흑룡상단 항주 지부를 맡은 향초아라고 합니다.”

흑룡상단 무리들의 가장 앞에서 서있는 여인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곽휘운은 향초아를 보고는 속으로 꽤나 놀랐다.

‘교마와 비슷한 수준의 무인!’

그런 정도의 인물이 이런 곳에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동시에 궁금증이 일었다.

* * *

흑룡상단의 항주 지부장이라 밝힌 향초아의 몸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

그것은 교마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힘이었다.

‘저런 여인이 상단의 지부장이라?’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겠지만, 당연히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아주 구린내가 진동을 한다.]

천홍의 말처럼 수상쩍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곽휘운이었다.

“휘운객잔의 객주 곽휘운입니다.”

곽휘운은 일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인사를 했다.

“오늘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저희와의 거래를 제안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는 이미 거래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백연상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곳은 조만간 물러날 것입니다.”

조만간 물러난다?

곽휘운은 저 말에서 묘한 살기 같은 것을 느꼈다.

“저희 흑룡상단과 거래를 하시는 것이 분명 객잔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하하. 저희는 크게 거래를 해 오던 곳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흐음.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찌릿.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날아오는 살기.

[공격적으로 상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공격을 하는 곳인가 보구나.]

곽휘운과 어느 정도 감각을 공유하는 천홍의 말.

곽휘운은 천홍에 말에 십 할 공감했다.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요. 다만, 분명 오늘 제 제안을 수락하지 않으신 것을 후회할 겁니다.”

“멀리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객잔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흑룡상단 무리.

갑자기 등장한 그들 때문에 객잔의 다른 식구들은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객주님. 괜찮을까요?”

백리화는 곽휘운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