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66화>
자신을 철저히 농락한 것이었다.
정천맹주 독고영은 다시 한번 분노했다.
자신을 가지고 놀았던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후 대책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어찌한단 말인가.”
정천맹은 와해되어 버렸고, 목표는 사라져 버렸다.
독고영은 당장이라도 천마신교로 교마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것은 개죽음을 자초할 뿐이란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그때 독고영의 머릿속에 하나의 인물이 떠올랐다.
‘곽휘운.’
장차 정천맹이 나아갈 때 가장 걸림돌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인물.
왜 갑자기 곽휘운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독고영은 일단 그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뭔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독고영은 행동을 개시했다.
* * *
절강성 성주 서무제와 공주인 서주혜는 푸르른 숲속 길을 마차를 타고 지나고 있었다.
“경치가 좋습니다.”
“하하. 주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
황제의 수많은 자식 중 서주혜는 특히나 궁을 답답해했다.
공주라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수업과 의식 등이 있다.
공주의 눈에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으며 허례허식과 같다고 생각했다.
또한 정적인 것보단, 동적인 활동을 매우 좋아했었는데,
최근에는 이렇다 할 외부 활동이 없었던 것.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서무제를 핑계대고 오랫동안 이렇게 궁밖에 나와 세상을 둘러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공주가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건 주변 인물은 다 알고 있으니,
그들의 도움도 컸다.
“성주님. 앞에 휘운객잔의 객주가 나와 있습니다.”
“오? 그래?”
새하얀 백의로 깔끔하게 차려 입은 곽휘운.
그는 지금 서무제와 서주혜를 맞이하기 위해 세상 깔끔하게 차려 입고 나온 참이었다.
“성주님과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최대한 예를 갖추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곽휘운.
“하하. 인사는 되었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지.”
서무제의 말에 곽휘운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서무제와 서주혜의 얼굴.
‘황궁에 나라를 흔들 만한 꽃이 있다더니, 저분을 말하는 거였나 보군.’
황제의 자식들 중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다고 꼽히는 서주혜였다.
위하윤과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미모.
그야말로 경국지색의 미모였다.
공주의 미모를 나라의 모든 이가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그리고 부마가 되려는 이가 줄을 서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
“최근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들리던데, 그래도 얼굴이 상하지는 않은 것 같네 그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주혜야 인사 하거라. 내가 전에 말했던 휘운객잔의 곽 공자다.”
“안녕하십니까. 서주혜라 합니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서주혜.
악기의 소리가 귀로 얌전하게 들어왔다.
“휘운객잔의 객주인 곽휘운이라고 합니다. 공주마마를 만나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크하하하! 그렇게 딱딱하게 인사할 필요 없네. 주혜도 나랑 비슷해 그런 겉치레를 싫어하거든.”
“알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끝내고 휘운객잔을 향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곽휘운은 마차 옆에서 따라가려 했지만, 서무제의 권유로 마차 안에 타게 되었다.
‘성주님과 공주마마와 같은 마차라니. 이것 참.’
제석종을 상대할 때도 나지 않았던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곽휘운이었다.
“내가 주혜에게 자네 이야기를 조금 했었는데, 꽤나 자네를 만나고 싶어 했네, 주혜가 꽤나 무림이란 곳을 동경하거든.”
“하하…….”
곽휘운은 멋쩍게 웃었다.
곽휘운은 공주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 몰랐다.
공주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휘이이익.
그때 곽휘운의 귀에 무언가 마차로 날아오는 소리가 잡혔다.
슈와아아악.
엄청난 속도로 구름이 뿜어져 나와 마차를 감쌌다.
칵.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곽휘운은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숲 한복판에 멈춘 마차.
곽휘운의 구름이 마차 주변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계속해서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흠. 이곳까지도 찾아온 것인가?”
서무제는 이런 상황이 낯설지는 않았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황궁에서 이런 습격은 비일비재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걱정말 게 내 호위들이 처리를 할 걸세.”
“아닙니다. 저희 객잔을 찾아주시는 손님들인데,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곽휘운은 내공을 힘껏 펼쳤다.
그러자.
슈우우우욱.
구름이 영역이 끝도 없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툭. 툭. 툭. 툭.
갑자기 나무 위에서 시체 네 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곽휘운의 구름에 뒤덮인 곳은 곽휘운의 영역.
그들이 나무 위에 있는 건 아까부터 알고 있었다.
곽휘운은 그중 살기를 뿜어낸 이들만을 찾아내 베어 버렸다.
“놀랍군. 놀라워!”
“어머!”
서무제도 서주혜도 곽휘운의 실력을 보고 놀랐다.
상식의 궤를 달리하는 무공과 실력.
서무제는 예전에 잠시 무공을 본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에 놀랐다.
그리고 서주혜는 책과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던 진짜 무림인의 무공을 처음 보는 것이라 놀랐다.
역시 듣는 것보단 한 번 직접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 서주혜였다.
든든한 느낌까지는 드는 건 덤이다.
“객잔에 도착하실 때까지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하하! 그래. 부탁하네.”
혹시나 습격이 더 있을까 싶어, 곽휘운은 마차 밖에서 구름을 유지한 채로 호위를 하며 객잔까지 걸었다.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다른 습격은 더 없었고,
무탈하게 객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가장 좋은 별채로 서무제와 서주혜를 안내한 곽휘운.
안에는 도착 시간에 맞추어 음식들이 내어져 있었다.
황중식이 최고의 솜씨를 부린 요리들.
이미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홀릴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었다.
일반 평민은 당연하고,
황실 사람에게까지 먹힐 수 있는 음식 수준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자자. 자네도 고생했으니, 같이 먹지.”
“가, 같이 드세요.”
서무제와 서주혜가 곽휘운에게 같이 식사를 할 것을 제안했고,
곽휘운은 거절치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전에 무림맹에 자네 같은 자가 몇 명이나 있냐고 물었지?”
“예. 그러셨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더 묻겠네. 자네보다 강한 자가 몇 명이나 있나?”
서무제의 질문에 곽휘운은 곤란하게 미소 지었다.
이 대답을 하면, 자신이 굉장히 오만한 사람이 될 것 같았으니까.
“……지금이라면, 없습니다.”
“하하! 하하하하!!”
곽휘운의 대답에 시원하게 웃었다.
예전에 곽휘운을 거인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었다.
거인이 아니라, 하늘이었다.
“혹시 막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하실 수 있나요?”
그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어오는 서주혜.
그녀는 책에서 실력이 뛰어난 무림인들은 막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서무제에게 듣기로 곽휘운은 아주 뛰어난 무림인이라 들었다.
아는 사람이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는 질문이라고 하겠지만,
그녀의 위치와 상황을 보면 이해가 갈 듯도 하다.
그래서 정말로 그것이 가능한 것이지 궁금했다.
“허공답보라면 가능합니다.”
“정말요?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공주마마께서 원하신다면 보여 드려야지요.”
곽휘운은 일단 식사를 다 끝낸 후 별채의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탓.
가볍게 발을 구른 곽휘운이 하늘로 높이 뛰어 올랐고, 허공에서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와. 정말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군요.”
서주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곽휘운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책 속에서 읽었던 일이 실제로 눈앞에 일어나니 너무나 신기했다.
오늘이 기억에 오래 오래 남을 것 같았다.
“공주마마께서도 한번 날아보시겠습니까?”
“네? 저도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성주님 괜찮겠습니까?”
“하하. 오히려 내가 부탁하지.”
곽휘운은 서주혜에게 손을 내밀었고, 서주혜는 덥썩 그 손을 잡았다.
곽휘운은 서주혜가 무섭지 않도록 휘운으로 발을 받치고, 천천히 하늘로 올랐다.
“와아!”
하늘 높이 오르자 서주혜는 마치 아이처럼 기뻐하며, 사방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슈우우욱.
곽휘운은 살짝 휘운을 움직여 객잔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스르륵. 탁.
그리고 다시금 본래의 자리에 내려왔다.
“정말. 정말 감사해요.”
“하하. 아닙니다. 공주마마와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쪽.
그때 갑자기 서주혜가 곽휘운의 볼에 뽀뽀를 하였다.
* * *
너무나 갑작스러운 서주혜의 돌발 행동.
곽휘운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주혜와 서무제를 번갈아 보았다.
“자네 주혜에게 완전히 찍혔구만 그래.”
난처해하는 곽휘운을 보며,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말하는 서무제.
“공주님의 입술을 받았으니, 꼼짝없이 황궁으로 와야겠구만 그래.”
“예……?”
“하하. 농담일세. 주혜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뽀뽀를 하고는 했네. 자네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는 표시일세.”
“헤헷.”
천진하게 웃는 서주혜.
곽휘운은 그런 서주혜에게 멋쩍은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공주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겠군 그래.”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아닙니다. 이렇게 저희 객잔을 찾아주신 것만으로 영광입니다.”
서무제와 서주혜는 그렇게 다시금 성으로 마차를 끌고 돌아갔다.
곽휘운은 서주혜에게 뽀뽀를 받은 볼을 한번 만지작거리다가, 객주실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런데.
[에잉. 시시하기는. 본좌였다면 뽀뽀를 받았을 때 그냥 입술을 콱!]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곽휘운의 머릿속을 울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 목소리는?’
처음 듣는 목소리.
곽휘운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둘러보긴 뭘 둘러봐? 네 머릿속에 있는데 보이겠느냐?]
‘무슨?’
[네 놈이 본좌가 쓴 ‘축령신공’을 익히지 않았느냐?]
곽휘운은 급하게 품에서 축령신공을 꺼내어 들었다.
이리 저리 뒤져봐도 딱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