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65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득이 없는 싸움이었다.
“가시지요.”
“다음에 싸움을 기약하겠습니다.”
방금 전 싸움이 마치 꿈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지는 제석종과 교마.
저들을 상대하려면 현재보다 더 높은 경지가 필요한 것일까.
지금도 한 계단 상승한 경지를 이루었는데,
부족함만 절실히 깨달았던 싸움이었다.
더구나 교마라는 자도 범상한 자는 아니었으니.
“후우.”
제갈세가에 덩그러니 남은 곽휘운 일행.
그저 깊게 패인 땅만이 이곳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었다.
“이제부터…….”
쾅!!!
쾅!!!
쾅!!!
곽휘운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제갈세가의 밖에서부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화탄!”
* * *
교마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제석종과 함께 신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저 작은 선물을 하나 그들에게 주고 왔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습니다. 흘흘.”
참으로 대단한 선물이다.
교마는 제갈세가에서 곽휘운 일행을 완전히 매장시킬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싸움에 집중하는 사이에,
몰래 주변에 화탄을 심어두고, 진법까지 설치해 두었다.
빠져 나갈 구멍이 없도록.
‘멸화화룡진(滅火火龍陣).’
제갈세가에 남아 있던 진법들을 조금 손봐서 만들어 낸 진법.
화탄에서 터져 나온 화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진법.
곽휘운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은 알았지만,
화탄과 불꽃 안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도 내공의 한계는 있을 테니 말이다.
혹시나 어떻게 빠져나갈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그런데 교마께서는 여흥은 다 끝내신 겁니까?”
“예. 뭐 이제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교마가 원한 소기의 목적은 정파들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대로 정천맹이 와해되어 버린다고 해도, 그들은 서로를 믿지 못할 터였다.
이미 한번 깨진 항아리를 아무리 열심히 붙인다 해도 소용없는 것처럼 말이다.
깨진 항아리를 다시 붙이려면 그보다 몇 배, 몇십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 * *
화르르륵.
거센 불길과 함께 연속해서 터지는 화탄.
이대로라면 불길에 일행이 휩쓸리는 것도 문제였지만,
제갈세가의 전각들이 모조리 타 버리는 것도 문제였다.
수많은 사람이 기억이 있고,
수많은 역사가 담겨 있고,
수많은 책들이 남아 있는 제갈세가의 보물들.
이대로 화마에 소실되기에 너무나 아까운 것들이었다.
“모두 제 주위로 모이십시오.”
슈와아아악.
곽휘운의 휘운이 엄청난 기세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쩌저저저적.
휘운에 삼켜진 곳은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
불길과 휘운이 만나자 수증기가 되어 오르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하늘 위로 날아가야 할 수증기들이 마치 하늘에 막이라도 쳐져 있는 듯 일정 높이 이상 올라가지 못했다.
‘진법이군.’
곽휘운은 진법에 의해서 불이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는데다가,
화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이걸로는 모자라다는 판단을 내린 곽휘운.
슈와아아아!
곽휘운은 더욱 더 휘운을 강렬하게 사방으로 뿌렸다.
지금의 모습도 이미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듯했는데,
더욱 더 많은 양의 내공을 계속해서 뿜어내는 곽휘운.
촤아아아아.
하늘로 올라간 수증기들이 계속해서 쌓이고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쌓이고 쌓은 수증기들은 자기들끼리 합쳐져,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솨아아아.
마치 소낙비처럼 시원하게 사방에 내리는 빗줄기.
불길에 빗줄기가 다시 수증기가 되고, 다시 그것이 빗줄기가 되어 내리길 반복.
결국 불길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주변 담장만 태우고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화기는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 자연히 약해졌다.
“후우. 후우.”
처음으로 곽휘운이 약간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이 드넓은 제갈세가에 모두 휘운을 펼치는 것은 솔직히 모험이었다.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는 도전이었다.
‘축령신공으로 쌓은 내공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면, 더 힘들었을 거야.’
곽휘운이 몸 안에 가진 내공의 힘이 강할수록, 주변에 있는 내공을 활용하는 힘도 강해진다.
축령신공으로 온몸 안에 내공을 쌓았기에, 제갈세가 전체를 아우르는 휘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분명 곽휘운의 내공은 진일보했다.
곽휘운뿐만 아니라 그의 일행들도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휘운?”
“객주! 괜찮소?”
곽휘운에게 가장 먼저 달려온 위하윤과 제갈중천.
두 명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아. 괜찮습니다. 중천. 다행히 세가는 지켰다.”
“정말. 정말 고맙소.”
제갈중천은 이런 표현에 서툴렀지만,
정말 모든 진심을 다해 곽휘운에게 감사를 표했다.
곽휘운이 아니었다면, 제갈세가를 다시 되찾을 수 없었을 것이고,
곽휘운이 아니었다면, 제갈세가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다.
감사의 인사는 몇 백, 몇 천 번을 해도 부족했다.
곽휘운에게 정말 너무 감사했다.
“앞으로 제갈세가는 이 은혜를 잊지 않고, 평생토록 갚도록 할 것이오.”
“하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너도 내가 필요할 때 한달음에 달려와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 그리고 식구가 어려울 때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째앵.
제갈세가에 태양이 비추고, 아직까지 차올라 있는 수증기 덕분에 무지개가 걸렸다.
완전히 멀쩡하다고 볼 수 없는 제갈세가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
‘제갈세가는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잃었지만, 모든 사람을 잃지는 않았다.
제갈세가는 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 분명 금방 제 모습을 찾을 것이었다.
곽휘운은 굳게 빛나는 제갈중천의 눈을 보고는 확신했다.
그가 있다면.
* * *
“다녀왔습니다.”
객잔을 정리하던 백리화는 객잔 입구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몸이 획 돌아갔다.
“객주님!”
“백리 가주님. 별 일 없으셨습니까?”
“네. 아무런 일 없었어요.”
문 앞에는 곽휘운과 위하윤,
그리고 장도웅이 서 있었다.
그들은 제갈세가의 일을 끝마치자마자 급하게 다시 객잔으로 돌아온 길이었다.
* * *
“객주님 오셨어요! 어? 근데 중천 그놈은요?”
남주학은 같이 떠났던 제갈중천이 안보이자 급하게 물었다.
앙숙이기는 했어도,
제갈중천이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으니 말이다.
“제갈세가에 남겨 두고 왔다.”
“아!”
멸문지화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제갈세가.
다시금 제갈세가를 복구하려면, 한 명의 인원이라도 더 필요했다.
특히 제갈중천은 제갈세가의 직계 핏줄.
제갈세가에 남아 중심을 잡아 줄 필요가 있었다.
역시 곽휘운의 선택은 탁월했다.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점을 먼저 알아내는 능력.
그리고 그를 예측하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행동력까지.
아직 그에게 배울 것이 많은 백리화였다.
“남궁 공자님은 어디로 가셨어요?”
백리화는 남궁태산의 안부를 물었다.
같이 떠났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궁금할 만했다.
“태산은 수련에 매진하겠다면서, 남궁세가로 돌아갔습니다.”
남궁태산은 제석종과의 싸움에서 힘도 쓰지 못하고 진 것에 충격을 한번 받고,
곽휘운이 엄청난 능력으로 제갈세가를 지켜내는 모습에서 두 번 충격을 받았다.
그간 나름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자신은 완전히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느낀 남궁태산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폐관수련을 하기로 스스로 다짐하며, 남궁세가로 돌아갔다.
한동안은 만나기 어려울 테지만,
한 계단 위를 성취한 그를 만나게 될 것임엔 틀림이 없다.
두 명이나 목표가 생겼으니 그의 의지는 두 배 이상 타오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
“사부! 오라버니!”
그때 황혜린이 객실을 청소하다가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달려 나왔다.
황혜린은 곽휘운에게 한번 안기고는 바로 장도웅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사부! 되게 멀쩡해 보이네요?”
“사부라 부르지 마시길.”
“어때요 저 보고 싶으셨죠?”
“…….”
보고 싶었냐는 황혜린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장도웅.
객잔에 있던 모든 식구들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참! 그보다 객주님 딱 맞춰 오셨어요.”
“예?”
“안 그래도 내일 성주님께서 공주님과 함께 객잔에 오신다고 했거든요.”
절강성 성주 서무제는 이번에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 온 공주를 위해 절강성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 주었는데,
지난번에 좋은 인상을 받은 휘운객잔에 공주와 함께 방문을 하겠다는 연락을 취했다.
평소에 하던 행동들이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공주라면 장차 큰 손님이 될 수 있는 인물.
그래서 백리화와 객주 사람들을 공주을 맞을 준비를 철저하게 했었다.
휘운객잔이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
“어차피 저희가 준비는 다 해 놨으니까, 객주님은 쉬셔도 되요.”
“네. 성주님과 공주님 마중도 제가 나가기로 했어요.”
무려 성주와 공주의 방문이다.
미리 연락을 취해 온 만큼 그들이 오는 길을 마중 나가는 것이 예에 맞았다.
“아니다. 내가 나가마. 오는 동안 충분히 잘 쉬었으니 말이다.”
“예? 피곤하지 않으시겠어요?”
“하하. 걱정마라.”
곽휘운은 직접 성주와 공주를 마중 나가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객주가 직접 마중을 나가는 것이 맞을 테니 말이다.
“일단은 씻고 다시 오겠습니다.”
“네. 객주님.”
갑자기 바빠진 휘운객잔이었다.
* * *
정천맹의 몰락.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무림신성대전을 치룰 당시 각 문파와 세가를 습격했던 정천맹.
하지만 그것은 정천맹에 가입했던 여러 문파들과 협의되지 않은 공격이었고,
정천맹이 마교의 손에 놀아나 만들어진 것이라는 정보가 퍼지면서,
수많은 문파들이 정천맹의 탈퇴를 선언했다.
“이게 뭐란 말인가!”
정천맹주 독고영은 작금의 이 어이없는 상황에 분노했다.
단약을 받아먹고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은 순식간에 모두 등을 돌렸고,
복수를 하게 해 주겠다던 교마는 갑자기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수련을 하기 위해 독고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난 일들.
“교마!!!”
쾅!
그리고 독고영은 오늘 한 가지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자신의 가문을 멸문시킨 이들이 무림맹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교마의 부하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