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64화>
곽휘운은 시귀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곽휘운으로서도 보기 드문 것이었다.
하지만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에 알아본 것이다.
활강시(活僵尸).
보통의 강시는 죽은 시신을 가지고 만든다.
하지만 활강시는 살아 있는 사람을 가지고 만드는 강시였는데,
그 과정이 워낙에 끔찍해 무림에서는 금기시시켰다.
시체이기 때문에,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 점을 활용하여 싸움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보통의 강시와 다르게 활강시는 내공을 쓸 수 있는데다가,
몸도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핫!”
위하윤은 내공을 끌어올려 검에 집중시켰다.
슈슈슈슈슉.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시귀를 향해 쏟아지는 위하윤의 찌르기.
카카카캉! 카가가가캉!
하지만 시귀의 강철과 같은 몸에 생기조차 내지 못했다.
시귀는 위하윤의 검이 위력이 약하다고 생각했고,
곧바로 위하윤의 공격을 맞으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죽어.”
“아니요. 제가 이겼습니다.”
캉!
콰드득. 파삭!
호기롭게 달려들던 시귀의 몸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무서워지셨습니다. 하윤 소저.”
“휘운이 정말로 무서워 할 때까지 열심히 해 볼게.”
“하하…….”
* * *
곽휘운이 본 위하윤의 문제점은 쾌에 너무나 큰 중점을 두기 때문에 떨어지는 위력이었다.
바로 불균형이다.
빠름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었다.
빠름만큼이나 힘이 같이 담겨 있어야 했다.
불균형을 이기고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위하윤의 얼굴엔 의기양양함이 가득했다.
“내가 생각한 방법이 있는데, 봐줄래?”
“오. 물론입니다.”
곽휘운은 과연 위하윤이 찾은 방법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바로 시작된 위하윤의 시범.
슈슉.
가벼운 찌르기로 시작된 위하윤의 공격.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점점 공격이 늘어났다.
위하윤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던 곽휘운은 뭔가 특이한 것을 느꼈다.
‘하윤 소저의 내공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곽휘운의 구름에 축적되듯 쌓이는 위하윤의 내공.
그리고 이 이상함을 느꼈을 때.
슉!
강렬한 찌르기가 축적된 내공을 강하게 때렸다.
퍼어엉!
그리고 지금까지 곽휘운의 구름에 축적되어 있던, 위하윤의 기운과 반응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일순 곽휘운의 구름이 모조리 흩어질 만큼의 위력.
“어때?”
“훌륭합니다. 정말로.”
* * *
“오. 다들 무사하네?”
“다행이오.”
각각 떨어졌던 일행은 제갈세가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가주전 앞에서 모두 다시 만났다.
모두 큰 상처 없이 돌아온 모습.
곽휘운과 일행은 내심 안심한 기색이었다.
남궁태산이 먼저 질문했다.
“그런데 오는 동안 흑의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
남궁태산의 말처럼 지금 제갈세가에서 만난 이들은 정천오귀가 전부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을 치고 있던 흑의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의문스러웠지만 그것은 이내 풀렸다.
“아. 이제 오시는 군요.”
“저놈은…….”
그때 가주전에서 나오는 하나의 인영.
소천마 제석종이었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는데,
곽휘운 일행 중 곽휘운을 제외하고는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운에 몸을 버티고 서 있기도 힘들었다.
“으윽.”
“윽!”
“흣!”
그나마 남궁태산이 가장 잘 견뎌내고 있었다.
‘저 자는 누구란 말인가? 이런 놈이 또 있었다니.’
남궁태산은 제석종을 보며, 곽휘운에게서 느꼈던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 아득함을 느꼈다.
“자자. 쓰레기들은 옆으로 비키시기 바랍니다.”
마치 정말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으로 남궁태산 등을 바라보는 제석종.
빠직.
남궁태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눈빛에 남궁태산의 자존심이 크게 구겨졌다.
“쓰레기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지.”
스릉.
제석종의 기운을 견뎌내면서, 검을 뽑아든 남궁태산이었다.
* * *
남궁태산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석종의 표정은 하찮은 것을 보는 표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흠. 조금 나은 쓰레기이긴 하다만, 그래 봐야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
탓.
남궁태산이 제석종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궁태산은 순식간에 전력을 다했다.
순식간에 세 개로 늘어난 남궁태산의 신형.
그리고 극강의 힘을 담은 무적제왕검강이 제석종을 향해 쏟아졌다.
무려 세 개의 무적제왕검강의 초식.
보는 이가 살이 떨릴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냥 저냥이군.”
하지만 제석종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남궁태산의 공격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으윽.
천천히 움직이는 제석종의 검.
캉! 캉! 캉!
촤악!
“크윽!”
순간 남궁태산의 움직임이 멈췄다.
딱 세 번의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남궁태산의 어깨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
“!!”
일행은 지금 모습에 꽤나 크게 놀랐다.
남궁태산의 공격을 그저 검을 세 번 움직이는 것으로 막아 낸 것은 물론이고,
남궁태산의 어깨를 베어 버렸다.
곽휘운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남궁태산의 어깨가 베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제적종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목숨은 건졌군. 쓰레기는 쓰레기답게 이제 비켜라.”
제석종은 남궁태산에게는 조금의 흥미도 느끼지 못했기에,
이제 그만 치워 버리려 했다.
스윽.
캉!
제석종이 남궁태산의 목을 베어 버리려던 그 순간.
곽휘운의 검이 나타나 제석종의 검을 막았다.
“제가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오. 그렇다면 좋지요.”
제석종은 곧바로 남궁태산에게의 관심을 완전히 거두어들였다.
제석종이 이곳 제갈세가까지 온 이유.
그것은 오로지 곽휘운 때문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왔군요.”
그와의 싸움을 위해 천마신교로 돌아가지도 않고, 이곳에서 기다렸다.
“모두들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소.”
“응.”
“그래.”
“…….”
남궁태산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일단은 조용히 멀찍이 물러났다.
남궁태산의 표정엔 아쉬움이 진득하게 묻어났지만,
자신이 아직은 낄 자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자자. 제대로 한번 싸워 봅시다.”
* * *
맹렬한 투기를 발산하는 제석종.
크그그그그.
드드드드득.
주변의 건물이 떨리고, 땅이 흔들렸다.
“저는 천마신교의 소교주인 제석종이라 합니다.”
“!!”
곽휘운 일행 모두가 놀란 토끼 눈을 하였다.
분명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유명한 천마신교의 소교주라니?
곽휘운마저 그의 정체를 듣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런. 이건 너무 거물이군.’
곽휘운은 제석종이 보통 신분이 아닐 것이란 것은 전에 짐작했었지만,
소교주라는 것까지는 예상치 못했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 큰 거물이었다.
“휘운객잔의 곽휘운이라 합니다.”
“하하. 통성명이 끝났으니, 바로 시작해 볼까요?”
화르르륵.
제석종의 검에 검은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곽휘운은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과거 수 차례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맞닥뜨릴지는 몰랐다.
한동안 잊고 살았지만,
불꽃을 보는 순간 곧바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끔찍할 정도의 강렬함이 느껴지는 검은 불꽃.
‘천마신공(天魔神功)’을 익혔을 때 발현되는 ‘멸화강기(滅火剛氣)’였다.
‘천마신공.’
무림에서 가장 강한 무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지체 없이 천마신공을 뽑을 터였다.
천마신교 교주의 핏줄에게만 전해지는 절대 무공.
무림에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무공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지만,
그 어떤 무공도 천마신공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은 무공은 없었다.
그만큼 천마신공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무공이었다.
그런데 그 무공이 지금 곽휘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슈와아아악.
하지만 그 위명 앞에 무너질 곽휘운이 아니다.
곽휘운도 질 수 없다는 듯 구름을 불러내었다.
촤자자자작.
그리고 완전히 얼어붙어 빛나는 얼음 결정이 된 구름.
휘운(輝雲)이 완성된 것이다.
“호오. 신기합니다.”
“저도 이곳에서 천마신공을 보니 신기합니다.”
“하하. 자! 갑니다!”
둘은 예의를 차리며 접근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화아아아악!!
제석종이 가볍게 검을 휘두른 것 같은데, 엄청난 크기의 멸화강기가 곽휘운을 덮쳐 왔다.
콰아아아!
멸화강기와 휘운이 부딪치자 엄청난 소리와 함께 팽팽한 힘 싸움이 시작되었다.
멸화강기는 휘운을 완전히 소멸시키며 곽휘운에게 다가왔고,
휘운은 끊임없이 나타나며 멸화강기에 맞서 나갔다.
쾅!
강렬한 충격음과 함께 멸화강기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곽휘운이 휘운을 움직여 공격해 나갔다.
화르르륵.
제석종은 더욱 더 거대한 멸화강기를 뿜어내며 곽휘운의 공격을 막았다.
쾅!!!
엄청난 굉음.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려 떨어진 곽휘운과 제석종.
제석종의 두 눈은 지금이 너무나 즐겁다는 듯 빛나고 있었다.
천마신교에서도 곽휘운과 같은 자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제석종의 표정에서도 그의 기분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천마신교에 오면, 서열 5위안에 들어올 수 있을 겁니다.”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그렇다. 그곳은 바로.
오로지 실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강자존의 천마신교.
그들은 서열로 강함을 나누고, 그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것이 달랐다.
천마신교의 서열은 천마의 핏줄을 제외하고 나누었는데,
서열 5위안이라면 정말 엄청난 강자라는 소리였다.
“다시 가 봅시다.”
“좋습니다!”
쿠우우우웅.
제석종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더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어마어마하게 감히 예측할 수도 없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제석종의 기운.
곽휘운은 짙게 미소 지으며, 더욱더 짙은 휘운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만 거기까지 하시지요.”
그때 늙수레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나타났다.
둘의 행동이 멈춰 섰다.
곽휘운은 목소리의 주인공도 심상치 않은 인물이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교마께서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교마.
항주에 있어야 할 이가 지금 제갈세가에 나타난 것이다.
“흥을 깬 것은 죄송하지만, 이제 교로 돌아가야 하셔야 합니다.”
“음?”
“교주께서 모두 돌아오라 하셨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소교주도 교주의 명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돌아가시는 겁니까?”
“아아. 죄송합니다.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지라.”
곽휘운은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인 제석종과의 싸움은 지금 아무런 득이 없었다.
이겨서 그를 죽인다면, 그대로 마교에 낙인찍히는 것이고,
그렇다고 진다면 모두 죽임을 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