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63화>
곽휘운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 번 통하기는 힘들 수 있었지만, 처음이라면 상대는 어떻게 당하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명을 달리할 터였다.
더구나 발전의 여지도 보였다.
“이번 일이 끝나면, 더욱 더, 더욱 더 강해질 것이오.”
제갈중천의 표정은 진중했다.
차분히 말을 하는 듯싶지만, 그 안에 거대한 분노가 자리 잡아 있는 제갈중천의 말.
제갈중천은 정천맹을 용서할 수 없었고,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는 제갈중천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
강해져서 이런 상황을 겪지도 않고, 도움을 받지도 않아도 되도록 할 것이었다.
‘제갈세가도 앞으로 많이 바뀌겠군.’
이번 일이 잘 끝난다면,
분명 제갈세가는 많이 바뀔 터였다.
* * *
“흐으음~ 흠흠~”
마치 동네 산책을 하는 듯 여유롭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동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궁태산.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모습이었다.
삭.
그때 보이지 않는 검기가 남궁태산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흐음. 또 너냐?”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남궁태산을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는데,
바로 검귀였다.
남궁태산은 지난번에 이어 다시 만난 검귀를 보자,
흥미가 식어 버렸다.
이미 이겼던 상대에게는 흥미를 갖지 않았다.
남궁태산의 태도에,
검귀는 분노를 느꼈다.
“감히!!”
검귀는 기운을 끌어올렸다.
콰아아아.
곧바로 흑마화를 진행시키는 검귀.
다른 정천오귀들에 비해서 더욱 더 폭발적인 힘이 터져 나왔다.
검게 번들거리는 검귀의 두 눈.
사악. 삭. 사악.
검귀의 검이 완전히 형체를 감추었고,
남궁태산을 향해 수도 없이 많은 검격이 다가갔다.
아무런 기척도 없는 검격.
처음 본 사람이 있다면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하고 당할 만한 검격이었다.
하지만 남궁태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모든 검격들을 흘려버렸다.
“이딴 장난은 이제 안 통해.”
“과연?”
삭. 챠악.
아주 얇게 남궁태산의 볼이 베어지고, 피가 조금 튀어 올랐다.
검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호오?”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던, 남궁태산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분명 기척 없는 검격을 모두 흘려냈다고 생각했는데, 볼에 상처를 입었다.
일순간 고개를 살짝 틀지 않았다면, 그대로 눈을 잃을 뻔했다.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남궁태산은 흥미가 생겼다.
“놀고만 있지는 않았나 봐?”
쿠구구구구.
“나도 그럼 제대로 해 볼까!”
남궁태산의 몸에서 주변을 떨어 울리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진심으로 이 싸움을 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자. 너무 쉽게 죽지는 말라고.”
스슥.
남궁태산의 신형이 둘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두 신형이 무적제왕검강을 펼쳐 내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각.
쾅! 쾅!
검귀도 전과 다르게 남궁태산의 공격을 잘 막아 나가고 있었다.
“합!”
짧게 기합성을 내뱉은 검귀가 크게 검을 휘둘렀다.
“오, 대단한데?”
촤자자자작.
사방을 모두 갈라 버리는 검귀의 엄청난 수의 검격.
피핏. 핏.
남궁태산은 검귀의 검격을 검으로 다시금 흘려내었는데, 또 다시 몸에 얇은 상처를 입었다.
“이상한걸? 다시 해 보자”
검귀의 검격이 다시 한번 남궁태산 쪽으로 접근했다.
남궁태산은 반복적으로 검격을 흘려냈다.
그제야 남궁태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 그렇군. 그런 거였구나.”
남궁태산은 드디어 검귀의 공격의 비밀을 알아내었다.
검으로 흘려내는 동시에, 검격이 검을 타고 휘어지며 자신에게로 쇄도했다.
원래 상식과는 다른 움직임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었다.
아무런 기척이 없기에, 바로 알아내지 못했다.
탓.
하지만 이제는 파훼됐다.
가볍게 발을 구르는 남궁태산.
그와 동시에 남궁태산의 신형이 사라졌다.
콰앙!!
엄청난 굉음.
검귀는 날이 나가 버린 검을 붙잡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오연하게 서 있는 남궁태산.
단 일격으로 검귀를 완전히 제압해 버렸다.
확실하게 드러난 실력의 고하.
하지만 검귀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표정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아직 이다.”
더욱 더 내공을 끌어 올리는 검귀.
쿠구구구구.
드드드드.
주변의 땅이 울릴 정도의 내공.
진원지기까지 모조리 끌어올린 검귀.
정천오귀 중 가장 강한 검귀가 진원지기까지 끌어올리니 그 기세가 사뭇 대단했다.
그 말대로 모든 것을 끌어모았다.
“곽휘운 그놈의 발끝도 못 따라가네.”
촤자자자자작.
검이 움직이는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조금 전 남궁태산이 서 있던 곳이 완전히 검격에 갈려 버렸다.
“뭐야! 어디 있어!”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 남궁태산은 없었다.
“끝이다.”
남궁태산이 다시 나타난 곳은 검귀의 바로 뒤.
검귀는 남궁태산의 이어질 공격을 막기 위해 급히 몸을 돌리려 했다.
서걱.
하지만 무언가 잘리는 소리가 들렸고, 검귀는 몸을 돌리지 못했다.
털썩. 털썩.
반으로 갈라져 버린 검귀의 몸.
철컥.
남궁태산은 검을 검집에 넣으며,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휘휘휘~”
* * *
곽휘운과 서로 마주보고 선 남궁태산.
곽휘운은 이 자리가 필요치 않다고 여겼지만,
남궁태산의 요청에 결국 허락해 주고 말았다.
“내 힘이 어디까지인지 한번 확인할게.”
“하하…….”
곽휘운은 조금 곤란하게 웃었다.
남궁태산이 원하는 것은 전력을 다한 공격을 자신이 막아 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남궁태산의 전력은 곽휘운도 조금 곤란했다.
상대가 바로 남궁태산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축령신공을 배우지 않았다면, 거절했겠지만…….’
곽휘운은 이번에 새롭게 익힌 축령신공의 힘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좋네. 해 보세나.”
“크크. 좋아.”
남궁태산이 기쁜 듯 말했다.
곽휘운의 수락이 떨어지자, 내공을 끌어올리는 남궁태산.
곽휘운도 여기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남궁태산, 그의 전력도 궁금했다.
그래서 승낙한 것도 있었으니까.
주변을 장악하는 거대한 힘.
그리고 남궁태산의 신형이 셋으로 늘어났다.
‘확실히 더 강해졌군.’
전에는 둘이었던 신형이, 이제는 셋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세 개의 신형이 동시에 곽휘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 개의 신형 모두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
곽휘운도 질세라 내공을 끌어올렸다.
슈와아아악.
이전보다 훨씬 더 짙고, 빠르게 퍼지는 곽휘운의 구름.
그 구름들이 곽휘운의 모든 방위를 완전하게 감싸 안았다.
남궁태산의 신형을 막아 내는 것에 이만한 것이 없다.
가히 천적이라 불릴 만했다.
콰가가가각.
그 구름들을 찢어발기며 들어오는 남궁태산의 검.
“하아압!”
기합성까지 내지르며 힘을 짜내는 남궁태산.
무적제왕검강의 패도적인 힘이 그대로 검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계에 다다른 것일까.
점점 더 깊숙이 구름을 뚫고 들어오는 남궁태산의 검.
출렁.
콰칵. 쾅!
이제 거의 곽휘운의 구름을 모두 찢어 냈을 쯤.
곽휘운의 구름이 크게 출렁이더니,
그대로 남궁태산의 검을 밀어냈다.
예상이 들어맞았다.
남궁태산 쯤 되는 인물에도 충분히 통한다.
치이이이.
엄청난 반발력에 뒤로 쭉 밀려난 남궁태산.
“너 더 강해진 것 같다?”
“조금 기연을 얻었네.”
“이미 하늘인 놈한테 또 기연을 줘? 하늘도 무심하시네.”
“내가 하늘이라니. 너무 과하네.”
“지랄.”
남궁태산은 지금 곽휘운이 제 힘을 조금도 내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전보다 곽휘운의 실력이 상향되었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이미 아득히 높은 경지에 서 있는 곽휘운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 신호원에 와서 또 기연을 얻었다니?
있는 놈이 더하다는 말이 생각나는 남궁태산이었다.
하지만 경쟁 상대가 더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
앞으로 쉼 없이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는 남궁태산이었다.
“언젠가 꼭 너랑 비등해지고 만다. 내가.”
“기다리겠네.”
* * *
곽휘운과 위하윤을 막아 선 암귀와 시귀.
곽휘운이 둘을 처리하기 위해 한 발짝 앞으로 내딛었을 때였다.
“휘운. 하나씩 나눠서 맡아.”
곽휘운을 말리며,
먼저 앞으로 나서는 위하윤.
내가 나설 차례라는 듯.
결연함으로 빛나는 위하윤의 눈을 본 곽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내가. 죽인다.”
“그래. 그래도 너무 갈가리 찢지는 말아라. 얼굴은 반반 하니까.”
“응.”
암귀는 곽휘운과 시귀는 위하윤과의 싸움이 되었다.
“자 그럼. 싸움을 시작해 보자고.”
콰아아아.
암귀와 시귀는 곽휘운과 위하윤이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은 잘 알았다.
그래서 곧바로 흑마화를 진행했다.
강대한 기운을 끌어모으고 땅이 진동했다.
이윽고 검게 물든 둘의 모습.
“하윤 소저. 옆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아예 암귀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곽휘운의 모습.
암귀는 그 모습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네놈! 감히…….”
그런데 암귀는 그 뒤의 말을 잇지 못했다.
“시끄럽군.”
서걱. 촤악.
암귀의 목이 잘렸다.
아무도 어떻게 목이 잘렸는지 보지 못했다.
너무나 허망할 정도로 쉽게 당해 버린 암귀.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곽휘운의 손도 그의 검술도.
지금까지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던,
시귀의 눈이 흔들렸다.
“어딜 보시는 겁니까? 상대는 저입니다.”
캉!
순식간에 시귀의 코앞까지 당도한 위하윤.
시귀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위하윤의 검을 손으로 쳐 내었다.
시귀도 보통은 아니었다.
검과 손이 부딪쳤는데, 마치 쇠와 쇠끼리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인다.”
파팍.
이번에는 시귀가 위하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달려드는 시귀.
마치 온몸이 무기인 듯, 팔과 다리 심지어 머리를 이용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캉! 카캉! 캉!
위하윤은 차분히 시귀의 공격을 막으며, 틈을 엿보았다.
캉! 캉!
시귀는 계속해서 위하윤을 몰아붙였다.
그때.
‘틈!’
그리고 아주 짧은 틈이 포착되었고, 위하윤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콱!
그런데 위하윤의 날카로운 찌르기를 시귀는 입으로 물어서 막아 내었다.
위하윤의 표정에 의아함이 물들었다.
시귀는 정말로 온몸이 무기화 된 듯싶었다.
위하윤은 다시금 검을 회수했는데,
그 순간 시귀의 팔이 기이하게 꺾이며 위하윤을 위협했다.
캉!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이것은…….
“강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