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61화>
정천오귀의 앞에 서있는 수많은 무인들.
그 수가 의외로 많았다.
그들은 모두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모두 이 주변에 있던 문파들의 무인들이었다.
정천오귀가 그들을 모두 한 곳으로 소집했다.
오늘이 그들을 모을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당신들한테 기회를 주려 합니다.”
“예?”
모두가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암귀가 비열한 미소와 함께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잠깐 뒤로 멈칫할 정도의 기운.
모인 무인들은 그 미소에 섬뜩함을 느꼈지만, 기회라는 말에 의문을 내비췄다.
기회라니?
“우리에게 상처를 하나라도 낸다면, 당신들의 문파에게 빼앗은 모든 것을 돌려준다고 약조하겠습니다.”
“!!”
“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이것은 큰 기회다.
그들의 오만함이 기회를 주게 만든 것이다.
순간적으로 모인 무인들의 몸에서 투기가 피어올랐다.
지금 정천맹에 빼앗긴 것들은 그들 문파가 평생을 쌓아올린 것들이었다.
하나 그것은 지금 그들에 손에 있다.
언제든 뺏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 기회를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하나 그것을 겨우 상처 하나 입히는 것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니,
당연히 몸 안에서 투기가 끓어오를 만했다.
“크큭. 다들 준비는 되신 것 같군요.”
정천오귀는 그들의 모습에 비릿하게 웃었다.
사실 마령단 때문이었다.
마령단을 섭취한 이후 힘이 주체가 되지 않는 정천오귀였다.
힘을 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 그.
이왕이면 힘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 힘을 발산시키기 위해 이렇게,
주변에 있는 문파들의 무인들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그냥 싸운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저들에게 동기부여를 위해 상처를 내면 모든 것을 되돌려주겠다는 조건도 걸었다.
최대한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놓기 위해서.
그러면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 시작해 봅시다.”
“흐아아압!”
“이야압!”
“하아아아압!”
한곳에 모인 무인들이 일제히 정천오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생각 없이 달려들진 않았다.
그들도 그들 무리 사이에선 나름 알아주는 인물.
또한 그들은 정천오귀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에, 눈빛을 주고받으며 나름의 합격진을 짜서 움직였다.
무작정 달려들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마령단에 대한 건 몰랐지만.
“크하하하!”
부웅.
쑤와악!
콰가가가각!
“하하하! 재밌구나!”
정천오귀 중 거력귀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커다란 웃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서며 거대한 언월도를 휘둘렀다.
스각.
그 일격에 앞서 달려들던 무인들이 무기를 든 상태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명을 달리했다.
압도적인 힘.
예상을 뛰어넘는 힘이었다.
이 모습에 호기롭게 달려들던 무인들의 기세가 잠깐 주춤했다.
“자자. 상처만 내면 됩니다.”
암귀의 말에 남은 무인들은 다시금 무기를 강하게 쥔 채로 달려들었다.
단 한 번, 단 한 번만 공격을 성공시키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일말의 희망을 안고서,
다시금 되찾아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하지만 결국은 일방적인 학살극이 시작되었다.
“끄억!”
“쿨럭!”
“컥!”
상처를 내기는커녕 정천오귀의 근처에 닿은 이도 없을 정도.
정천오귀는 자신들의 힘에 점점 취해 갔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무공을 펼치고 펼쳐도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내공.
“더! 더 날뛰어 봐라!”
아직 무인들은 많이 남았다.
하지만 도망가거나 고개를 숙일 순 없었다.
그들은 이제 이 싸움이 승산이 없는 것이란 것을 알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저들이 살려 두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검이라도 한번 휘둘러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흐아아아!!!”
“크하하하!!”
제갈세가 안에서는 처절한 고함과 비명, 그리고 광기어린 웃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 * *
보름이라는 시간은 날아가는 화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동안 일행의 수련은 나날이 성취를 더해 갔다.
곽휘운의 지도 아래 차곡차곡 실력을 쌓았다.
곽휘운도 새로운 기운을 느끼고,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날을 기대했다.
결국 찾아온 약속의 날 정오.
저마다의 긴장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일행.
곽휘운 일행은 제갈세가로 발걸음을 향했다.
쿠우웅.
곽휘운 일행이 다가오자 사방의 문이 모두 열렸다.
“여기서 다들 헤어져야겠습니다.”
“다들 중앙에서 보자고.”
“그래.”
일행의 눈에 투지의 불꽃이 타올랐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특히나 제갈중천의 눈에서는 활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휘운. 가자.”
“예. 하윤 소저.”
제갈중천은 북문으로, 장도웅은 서문으로, 남궁태산은 동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곽휘운과 위하윤은 남문으로 향했다.
타탓.
곽휘운과 위하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두 개의 인영.
위하윤은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범상치 않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오연한 자세로 서 있었다.
“하하. 어서 오십시오. 저는 암귀라 합니다.”
“시귀(屍鬼)다.”
곽휘운과 위하윤을 기다린 두 개의 인영은 정천오귀 중 암귀와 시귀였다.
* * *
장도웅은 자신의 앞에 선 이를 바라보았다.
“크하하하! 또 만나는군.”
장도웅을 맞이한 자는 정천오귀 중 거력귀였다.
예전에 알고 있던 거력귀가 아닌 느낌이었다.
몸이 더 커진 듯 보이는 거력귀.
그리고 그 이상으로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기분 나쁜 기운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지난번 개파 대전에서는 신세를 졌다.”
개파 대전 당시 장도웅에게 패배를 당했던 거력귀.
거력귀는 오늘 그때의 패배를 완전히 갚아 줄 때라고 생각했다.
온 몸을 휘도는 이 충만한 힘이라면 충분할 터였다.
“말이 많군.”
장도웅은 별다른 반응 없이 도를 꺼내어 들었다.
후웅.
그에 맞서 거력귀도 언월도를 손으로 들었다.
그저 등에 메어져 있던 언월도를 꺼내어 든 것뿐인데, 강렬한 바람이 불어왔다.
분명 이전과는 다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무엇인가.
숨겨 둔 게 있는 걸일까.
하나, 그런 건 붙어 보면 알 일이다.
“자, 시작해 보자고.”
“그러지.”
팡!
쿵!
서로를 향해 엄청난 기세로 달려드는 둘.
콰아앙!!
거력귀의 언월도와 장도웅의 도가 마주 부딪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일순 주변을 휩쓰는 충격파가 퍼졌다.
마치 돌풍이 부는 것 같은 충격파였다.
힘과 힘의 팽팽한 대결.
지금까지는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하압!”
“흐읍!”
짧은 호흡과 함께, 지근거리에서 엄청난 일격을 계속해서 주고받는 둘.
챙챙챙!
쾅쾅쾅!
스치기라도 하면 그대로 몸이 갈라져 버릴 것만 같은 공격들.
그 누구도 둘의 싸움엔 접근하기 힘을 터였다.
“크하하! 역시 싸울 맛이 나는군. 몸도 풀었으니, 이제 제대로 해 보자고.”
콰아아아.
거력귀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그의 몸이 검게 물들어갔다.
흑마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뿜어져 나오던 기운이 강렬한 마기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슈욱.
콰가가가각.
전에 볼 수 없던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져 오는 거력귀의 언월도.
‘빠르다!’
장도웅은 갑작스럽게 빨라진 거력귀의 공격을 보법으로 간신히 피해 내었다.
“자자. 너도 더 힘을 꺼내라.”
“그러지.”
키이이이잉.
장도웅의 거도가 예사롭지 않게 울기 시작했다.
이 소리에 거력귀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지난번 자신을 패배하게 만들었던 그 무공.
이제 드디어 갚아 줄 시간이 되었다.
이길 수 있단 생각해 힘이 더 솟았다.
“좋아. 이번에는 내가 이기겠어.”
거력귀는 더욱 더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끝을 모를 것 같은 내공이 계속 타올랐다.
이제는 눈까지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언월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룡언월도법(斬龍偃月刀).’
용의 목을 자를 정도의 위력을 지닌, 언월도로 펼치는 무공.
오래전 무림을 휘저었던 절대 고수 중 하나인 참혼도제(斬魂刀帝)의 무공.
무게만 수백 근에 달하는 언월도를 이용해 펼치는 무공이기에 제대로 익힌 이가 없었는데, 지금 거력귀의 손에 의해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각오하라!”
* * *
슈왁!
엄청난 속도로 장도웅을 향해 쏟아지는 거력귀의 언월도.
질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장도웅.
이번에는 장도웅도 ‘파천거령도’로 맞서 나갔다.
크가가가가각.
키기기기기긱.
거력귀의 언월도와 장도웅의 거도가 부딪칠 때마다 무언가 요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도웅의 거도에서 울리는 엄청난 진동.
전에는 이 진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거력귀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조금의 무리도 없이 공격을 넘겨 내고 있었다.
거력귀의 얼굴엔 웃음이 떠올랐다.
“크하하하!”
거력귀는 자신의 승리를 십 할 장담했다.
이제 마무리가 들어갈 차례다.
이걸로 끝내자.
그리고 그때의 복수를 위해 한계까지 내공을 끌어 올렸다.
투두둑. 툭툭.
검게 물들었던 피부에 힘줄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점점 흉폭하기 그지없었다.
이승에서 보기 힘들 것 같은 흉신악살과 같은 모습.
“죽어라.”
거력귀의 언월도가 수많은 환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마치 언월도 수십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장도웅을 완전히 둘러싼 수많은 환영.
하나, 하나가 천지를 뒤집을 듯한 위력을 지녔다는 것이 느껴졌다.
콰가가가각.
쿠과가가각.
기가가가각.
장도웅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환영.
장도웅의 주변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렸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그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크하하하!!”
거력귀는 이 일격으로 장도웅이 완전히 뭉겨져 죽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야 복수를 이루었다.
역시 마령단이다. 하지만 마령단보단 그것을 잘 활용한 거력귀가 대단한 것이다.
“더 상대할 자 없는가!”
거력귀가 아직도 남아도는 힘에 취해 있을 때였다.
“이게 단가?”
“응?”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장도웅.
거력귀의 눈이 커졌다.
거력귀는 지금 자신이 무언가 잘못 본 것인가 싶었다.
“이게 끝이면, 실망이군.”
“놈!!”
카가각.
서걱.
장도웅의 도가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무언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거력귀의 목이 떨어졌다.
쿵.
쿠궁.
거력귀의 거대한 몸이 쓰러지고, 도신이 모조리 날아가 버린 언월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