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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60화 (60/203)

<휘운객잔 60화>

“흠. 마령단을 줬나 보군.”

제석종은 갑자기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정천오귀가 마령단을 섭취했다는 것을 알았다.

강대한 기운이 포착되어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마령단뿐이다.

보통의 단약으로는 꿈도 못 꿀 만큼의 폭발적인 내공의 증폭.

천마신교의 독마가 만들어 낸 마령단은 꽤나 재미있는 물건이었다.

독마가 비기 중 하나라고 칭하기도 했었던 물건.

하나.

“하지만 아직 미완성이라 아는데?”

분명 폭발적인 힘을 주는 마령단이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컸다.

강제적으로 혈도를 열고, 강렬한 마기를 주입하기에 몸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아마 오래지 않아 자연히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 되거나, 죽음에 이를 터였다.

그렇지 않은 자도 존재하겠지만 극히 일부다.

“뭐. 불량품들에게 잠깐이라도 달콤한 꿈을 꾸게 해 주니, 나쁜 건 아니겠지.”

제석종은 정천오귀라는 불량품들이 잠시라도 힘에 취해 달콤한 꿈을 꾸게 해 주니,

주화입마나 죽음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쓰고 버릴 불량품들이니 말이다.

그나마 쓸 만한 불량품이 된 정도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재미는 있겠군.”

* * *

신호원에서의 하루는 매일이 수련이었다.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수련뿐이었으니 말이다.

시간을 낭비할 여유 따윈 없다.

무인들 간의 싸움에서 전략과 인원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실력이었다.

오늘도 늘어가는 실력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곽휘운이었다.

홀로 수련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으니, 지금은 놔두는 게 좋겠다.

“흐음.”

곽휘운은 일행의 수련을 지켜보다가, 잠시 혼자 신호원을 거닐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장원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여러 사건에 치여 느껴보지 못했던,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이었다.

“자네는 특별한 빛을 내고 있군 그래.”

그때 장호악이 나타났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장호악 또한 정원을 거니는 중이었다.

“하하. 제가 무슨 빛을 내겠습니까?”

“아니야. 자네는 분명 특별해.”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장호악의 두 눈.

그가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황궁에서 승상의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힘은 바로 사람을 가리는 눈이었다.

또한 아군과 적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든 것이기도 했다.

적아의 구분이 모호한 정치판.

그의 능력은 여기서부터 나오는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 그 눈이 눈앞의 곽휘운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어쩌면 이것은 자네를 위한 것일지 모르겠군.”

장호악은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내었다.

꽤나 낡고, 제목조차 없는 책.

“무공서라고 나에게 온 것인데, 나 같은 자가 이해하기에는 알 수 없는 내용만 쓰여 있더군.”

장호악의 또 하나 능력은 바로. 책 읽기.

장호악은 평소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즐겼다.

정무에 치여 있는 와중에서 시간만 나면 틈틈이 책을 읽었다.

모든 종류의 서책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다.

당연히 무인들이 본다는 무공서도 여러 권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들어온 무공서는 도저히 그도 이해할 수 없는 허황된 내용들이 쓰여 있었다.

그 내용이 궁금하여 여러 곳에 수소문해 알아보았지만.

만족스런 답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누군가 장난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무공서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운과 힘이 느껴지는 글자에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으리라 판단해 보관하고 있었다.

“자네가 이걸 받게.”

장호악은 이 무공서의 주인이 왜인지 눈앞의 곽휘운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평소라면 준다 해도 거절했을 곽휘운이지만,

지금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장호악이 건넨 무공서를 받아들었다.

“좋은 결과 얻기를 바라겠네.”

“감사합니다.”

“흘흘. 내 손자 놈 잘 부탁하네.”

장호악은 발걸음을 옮겨 사라졌고, 정원에는 곽휘운 혼자 남았다.

멍하니 낡은 무공서를 바라보는 곽휘운.

무공서에선 묘한 기운과 힘이 느껴졌다.

평범한 무공서는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다.

곽휘운은 그 자리에 서서 곧바로 무공서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세상에 흩어진 내공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자가 아니라면 책을 덮어라.’

무공을 조금이라도 배운 무인이 읽는다면 곧바로 헛소리라며 책을 덮었을 만한 내용.

하지만 곽휘운은 완전히 집중해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본 좌와 같이 세상에 흩어진 내공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천신지체(天神之體)‘를 타고난 자라면 이 책을 읽을 자격이 되었다.’

천신지체.

곽휘운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수많은 체질들이 있었는데,

천신지체라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본 좌는 이 책을 통해 ’축령신공(畜靈神功)‘을 알려 주려 한다.’

책에 쓰여 있는 축령신공.

곽휘운에게 흥미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방법도 있었군.’

* * *

곽휘운이 자신의 능력을 알아챈 것은 무림맹에 들어가고 난 후였다.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다르게 몸 안에 쌓은 내공뿐 아니라,

주변에 퍼져 있는 내공들까지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다른 이도 본인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니었다.

자신이 특별하단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능력을 더욱 키우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힘으로 순식간에 강해질 수 있었고, 자신만의 무공인 ‘휘운검법’까지 창안해 낼 수 있었다.

물론 그것 말고도 다른 이들보다 더 무공을 잘 이해하고,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그때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근원을 알 수 없었다.

그냥 원래 그렇다고만 파악하고 있을 뿐.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차 그 의문은 사라지고 있었다.

하나, 바로 지금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그것이 다 이 책에서 말하는 ’천신지체‘ 덕분이었나?’

어느 정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문이 풀린 곽휘운이었다.

‘그건 그렇고, 축령신공이라…….’

이 책에 쓰여 있는 축령신공.

길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내용.

애매모호하게 쓰여 있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곽휘운의 흥미를 끌었다.

특히 이 구절.

‘나는 그저 그때에 주변에 있는 내공을 쓰는 것뿐인데, 온 몸을 단전으로 해서 내공을 저장한다니.’

곽휘운도 단전에 내공을 쌓아 두기는 하였다.

하지만 단전에 쌓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 축령신공은 온 몸을 단전처럼 만들어 내공을 쌓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단전에 내공을 쌓는 것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의 내공을 쌓을 수 있게 되고,

또한 몸 안에 내공을 쌓음으로 인해 더욱 더 정순한 내공을 사용할 수가 있게 된다.

지금까지 습득한 것을 좀 더 명확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바로 활용해 볼 수 있을 만큼.

‘좋아. 바로 해 보자.’

곽휘운은 살짝 자리를 옮겼다.

바로 적용해 볼 수 있는 곳으로.

신호원 내에 있는 넓은 연무장.

신호원에 머무는 호위 무사들을 위한 곳이었다.

휘우웅.

곽휘운을 중심으로 불어오는 기의 바람.

책의 구절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단전을 열고, 몸에 있는 모든 길을 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콰아아아아.

거침없이 곽휘운의 몸으로 빨려 들어오는 기운.

마치 소용돌이가 치듯 계속 빨려 들어갔다.

곽휘운은 그 기운들을 몸 안에서 정제하고 또 정제해서 축기하기 시작했다.

기운을 흡수하는 것에 마치 한계가 없는 듯,

끊임없이 엄청난 양의 기운을 흡수하며, 내공을 쌓아 가는 곽휘운.

스으으.

그때.

곽휘운의 몸에서 빛이 나면서, 살짝 떠오르기까지 했다.

마치 하늘로 우화등선을 하려는 듯한 모습과도 같아보였다.

누가 보면 딱 오해하기 쉬운 모습.

하지만 곽휘운은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 *

위하윤은 곽휘운을 찾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

위하윤은 곽휘운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어, 연무장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향하는 길이었다.

가는 도중 무언가가 느껴졌다.

연무장 쪽이다.

휘이이잉.

곽휘운이 있는 연무장에 도착한 위하윤.

그곳에서 마치 신선처럼 떠있는 곽휘운을 보았다.

위하윤도 처음 보는 광경.

위하윤의 표정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신비롭다.’

곽휘운의 모습을 보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이었다.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닌 듯한 신비로움.

어디서 볼 수도 없을 듯한 신비로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푸르른 빛이 곽휘운의 몸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부드러운 바람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땅에서 살짝 떠 있는 곽휘운의 모습은 신선 그 자체였다.

위하윤은 곽휘운을 방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살짝 눈을 감은 채로 계속해서 공중에 떠 있는 곽휘운.

그 신비로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때.

슈와아아악.

그리고 곽휘운의 눈이 천천히 떠지면서, 주위를 휘감던 바람이 머졌다.

“하윤 소저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음. 아까부터.”

“하하. 지루하지 않으셨습니까?”

“전혀. 괜찮았어.”

곽휘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위하윤은 알 수 있었다.

위하윤은 지금 곽휘운이 또 다시 한 발짝 진일보했다는 것을 느꼈다.

‘대단한 사람.’

“남궁 공자님께서 충격 받으시겠어.”

“하하. 오히려 더 불타오를 것입니다.”

곽휘운이 아는 남궁태산은 자신이 더 강해지면, 더욱 더 불타오를 인물이었다.

또 재밌는 일이 생길 듯싶었다.

그나저나.

“그보다 휘운.”

“예. 하윤 소저.”

“널 놓치지 않을게.”

“하하…….”

* * *

곽휘운 일행은 지금 신호원에 있는 넓은 전각에 모여 앉았다.

그 이유는 오늘 아침 신호원으로 날아온 편지 때문이었다.

‘제갈세가의 동서남북에 있는 문을 모두 열어 두겠다. 각자 한 곳씩 정해서 와라. 그렇다면 제갈세가의 모든 것을 돌려주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모두 불태워 버리겠다. 일자는 보름 후에 와라.’

길지 않은 짧은 내용의 편지.

이것은 일종의 초대장이었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속내가 있을지도 모르는 초대.

“응하는 수밖에 없네. 그리고 어차피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도 같고 말이야.”

남궁태산의 말처럼 응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제갈세가를 수복하기 위해 가는 것인데, 그곳이 모두 불타버린다면 이곳에 온 이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리고 곽휘운 일행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 내용이기에 수락하기로 했다.

“보름 후라…….”

그들이 정한 날짜는 오늘부터 보름 후.

분명 짧은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시간이 없군요. 다들 각자 실력을 점검해 보도록 하지요.”

곽휘운은 시간이 부족한 만큼,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결국 최후에 자신을 지키는 것은 본인의 실력.

촌각이라도 아껴서 최대한 일행들의 실력을 올려놓아야 했다.

“그럼 나부터 시작하자.”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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