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59화 (59/203)

<휘운객잔 59화>

“예?!”

하인은 무슨 말이냐며 반문을 했고, 일행은 손자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일순간 풀렸다.

“장난이라면 이만 돌아가십시오. 어르신께 손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인은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어르신 이외에 다른 혈육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장호악에 대한 일은 누구보단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단호한 대답이 나온 것이다.

“가서 전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인은 알 수 없는 기백에 눌려 안으로 쪼르르 걸어 들어갔고, 안에서 네 명의 호위무사가 나타나 일행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인과 마찬가지로 곽휘운 일행의 차림을 보고 그들이 무인이라 짐작했다. 더구나 아무래도 무림인들이다 보니,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리라.

그렇게 잠시간 시간이 지나자, 안에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는 하인이 보였다.

“아, 안으로 들어오시랍니다.”

하인은 숨을 빠르게 가다듬으며, 곽휘운 일행을 신호원 안으로 안내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하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모시는 주인분이 이렇게까지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어서 빨리 데리고 오라는 말을 듣고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 나온 것이었다.

저벅. 저벅.

곽휘운 일행은 하인을 따라 신호원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안쪽도 역시 고풍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조금 더 걷자 손님을 맞이하는 접객실 앞에 도착했다.

“어르신.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오시라 해라.”

“예.”

드르륵.

이미 접객실에 안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는 초로의 노인.

그가 바로 전 승상 장호악이었다.

곽휘운은 장호악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듣던 바에 같이 권력을 내려놓았음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장도웅은 장호악을 보자 곧바로 인사를 했다.

“할아버님을 뵙습니다.”

인사를 하는 장도웅을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잠시간 바라보는 장호악.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둘에게 사연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시간을 떨어져 있었던 시간을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는 틈이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장호악의 입이 열렸다.

“잊어 달라고 집을 뛰쳐나가더니…….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일행은 흥미로움과 조마조마함을 가지고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그렇게나 궁이 싫다고, 내가 싫다고 뛰쳐나가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것이냐?”

“……죄송합니다.”

“무엇이 죄송하더냐?”

“할아버님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흘흘. 네가 나를 이해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꽤나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대화.

둘의 표정은 아직 크게 변화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어 감에도, 나랏일을 보시는 할아버님을 이해 못했습니다.”

“이제는 이해한다는 말이냐?”

“아직 이해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장도웅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리고 장도웅답지 않게 차분하고 길게 이어지는 말.

“할아버님도 아프셨다는 것은 이해하겠습니다.”

“흘흘…….”

담담히 이어지는 장도웅과 장호악의 이야기.

지금 이곳에 다른 일행은 없다는 듯, 둘의 대화가 이어져 나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서로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증폭되는 법. 시간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묵힌 그간의 오해와 이야기가 흘러 나왔고, 별다른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많이 풀어진 것은 느껴졌다.

“좋다. 원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도웅과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장호악의 허락이 떨어졌다.

곽휘운 일행은 일제히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었구나.”

“예.”

“흘흘. 그래 사람 보는 눈은 물려받은 모양이구나. 이만 나가 보거라.”

장호악이 하인을 부르자, 잽싸게 나타난 하인은 곽휘운 일행을 각자가 머무를 처소로 안내해 주었다.

‘장도웅과 장호악의 비사(秘史).’

장도웅은 어릴 때에는 장호악처럼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살았다.

하지만 ‘일단의 사건’ 이후로 황궁과 장호악에게 환멸을 느끼고 황궁을 빠져나왔다.

장도웅의 부모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을 받을 때에, 승상이었던 장호악은 마치 남을 대하듯 냉정하게 사형을 명령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오로지 공정하게 나랏일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말이다.

어린 장도웅은 장호악에게 부모를 살려 달라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장호악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매일 같이 찾아갔지만 형 집행 날짜만 다가올 뿐이었다.

사건은 사형이 집행된 뒤에 벌어졌다. 사건에 의아함을 느낀 관련 인물이 재조사한 결과, 장도웅의 부모의 죄는 무죄임이 밝혀졌다.

억울한 누명은 벗었지만, 이미 이승에 남아 있지 않은 장도웅의 부모.

이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만 볼 수밖에 없던 장도웅은 폐인처럼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공정함이라는 틀에 박혀 부모를 죽게 한 장호악을 원망하면 말이다.

그는 결국 집을 뛰쳐 달아났다.

그렇게 집을 뛰쳐나와 정처 없이 떠돌던 장도웅.

하지만 당연하게도 궁에서만 살아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아이가 집을 뛰쳐나와 살 수 있을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입고 있던 비단 옷도 빼앗기고, 배고픔과 고통에 죽어 갈 때 쯤.

파천왕 이세흔의 손에 구함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장도웅은 무림이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고, 그들을 동경하며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 * *

곽휘운 일행은 대접을 받으며 신호원에서 머물렀다.

“이쪽으로 모이세요. 일단 다들 모여서 이야기해 보지요.”

곽휘운은 식사를 끝낸 후 일행을 한 곳으로 불렀다.

제갈세가의 수복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니 말이다.

“중천. 일단 제갈세가에 대해 들어보자.”

“알겠소. 음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아 이쪽부터가 좋겠군.”

제갈중천은 제갈세가의 구조부터 시작해, 주요 전각의 위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적이 어느 곳에 있을지, 자신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틀이 잡히니 말이다.

제갈중천의 설명은 직관적이라 일행이 이해하기 쉬웠다.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제갈세가의 구조를 파악하기 쉬워, 이후 계획을 세우기도 좋았다.

“설명 잘하네. 그러면 간단하네. 동서남북으로 나눠서 들어가면 되겠어.”

남궁태산은 간단하게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자 쳐들어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어쩌면 작전도 아닌 방법.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지금 있는 인원으로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었다.

다만, 적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데 나누어 들어가다 각개로 격파를 당할까 걱정되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실력이면 가능하지. 그 정도도 못 할 거면 그냥 지금 돌아가.”

자신감 넘치는 남궁태산의 말.

일행은 오히려 그런 자신감 넘치는 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믿음직했으니까. 또한 모두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 있었다.

“좋아. 그럼 그전까지 특별 수련이라도 하지요.”

* * *

“뭐라? 신호원으로 들어갔다?”

“예.”

정천오귀는 부하가 하는 말에 조금 놀랍다는 반응을 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인연이 있기에 신호원에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신호원은 웬만한 고관대작들이 찾아가도 문을 열어 주니 않는 곳인데 말이다.

“흠. 조금 아깝군.”

그들을 철저히 감시하며, 주변 문파들을 이용해 이래저래 귀찮게 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계속 생겨나는 바람에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지금 주변에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신호원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권력에 최정점에 있던 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이건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신호원 주변을 감시하고 있도록.”

“예.”

부하가 명을 이행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와 동시에 검귀가 품에서 목갑을 꺼내었다.

이제는 추가적인 방법이 필요해 보였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다들 마령단(魔靈丹)을 먹도록.”

딸칵.

검귀가 목갑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 작지만 아주 새카만 단약 다섯 개가 보였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기운.

거기에 더해 요사스러운 빛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검은 단약을 먹는 일은 왕왕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지금까지 보았던 검은 단약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용솟음치는 게 느껴졌다.

‘마령단.’

기존의 검은 단약보다 수 배에 달하는 힘을 담은 단약.

조금 전 사람을 통해 특별히 내려온 단약이었다.

정천맹에서 이번에 확실히 곽휘운 일행을 죽이기를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반드시 죽인다.’

정천오귀는 반드시 상대를 죽이겠다는 각오와 함께, 지체 없이 마령단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입에서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리면서,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마령단.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삽시간에 온몸으로 강렬한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흐읍!”

“흡!”

정천오귀는 엄청난 기운에 입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신음을 흘렸다. 정천오귀라도 신음을 참아내지도 못할 정도의 기운이었다.

마치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휘몰아치는 기운.

투둑. 투둑.

찌이이익.

혈관이 튀어나오고, 휘몰아치는 기의 바람에 옷이 찢겨질 정도.

정천오귀는 날아갈 것만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며, 계속해서 운기를 하였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크으으읍.”

이제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무언가가 느껴졌다.

쾅.

단전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제멋대로 날뛰던 기운들이 잠잠해졌다.

번쩍.

마치 짠 듯이 동시에 눈을 뜬 정천오귀.

그들의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쿠르르르.

거력귀의 시원한 웃음에 전각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힘이 몸에 흐르고 있었다. 바로 힘을 쓰지 않고선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은 충동이 느껴졌다. 커다만 만족감이 몸을 감쌌다.

다른 정천오귀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강대해진 힘에 저마다 만족했다.

지금 이 힘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았다.

그렇군. 마령단은 이런 것이었군. 만족스럽다.

“자잘한 술수들은 필요 없겠군. 다 죽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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