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58화>
정천오귀가 그 누구보다 곽휘운 일행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추면삼사를 곽휘운 일행에게 보낸 이유.
그것은 추면삼사가 익힌 특이한 무공인 ‘사신폭(邪神爆)’ 때문이었다.
사신폭은 목숨이 다했을 때 저절로 발동되는 무공이었다.
그 위력은 마치 지근거리에 화탄이 터진 것과 맞먹을 정도.
‘재미있었으면 좋겠군.’
지근거리에 터진다면, 자신들도 멀쩡할 수가 없는 사신폭.
현재 정천맹에서 몇몇 이들에게 전수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이런 저런 제약도 많았다.
일단 사신폭이 발동되려면 죽어야만 했다.
임의로 발동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했다.
그리고 내공이 너무 적은 이들은 익히는 것이 불가능했다.
죽음과 동시에 몸 안에 있는 내공을 급하게 폭발시켜 몸을 터트리는 무공이기에, 내공이 일정수준 이상이 아니라면, 발동조차 불가능했다.
‘거기에 이 사신폭을 익히게 하는 방법도 문제지.’
그저 무공서만 있다고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사신폭을 몸 안에 심어놓을 수 있는 특수한 무공을 익힌 사람이 필요했다.
“그분께서 오셨습니다.”
그때 부하의 보고와 동시에 하나의 인영이 정천오귀가 있는 곳에 나타났다.
* * *
후두두둑.
곽휘운이 구름을 거두어들이자 살점과 뼛조각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몸을 화탄처럼 터트린다라…….”
곽휘운은 이런 무공은 처음 보았다.
꽤나 많은 마두들을 상대해 보았지만, 죽었을 때 몸을 터트려 살점과 뼛조각을 암기처럼 쓰는 무공은 처음이었다.
“고맙다.”
남궁태산이 곽휘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 왔다.
물론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는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곽휘운이 아니었다면, 방금 그 폭발에 낭패를 당할 뻔했다.
‘아직도 부족하군.’
남궁태산은 아직 자신이 곽휘운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직시했다.
그렇게 속으로 남궁태산이 다시금 수련의 의지를 불태울 때였다.
“다시 제갈세가로 가 보는…….”
곽휘운은 다시 한번 더 제갈세가를 지켜보자고 말을 하려다 말을 끊었다.
제갈세가 안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
온몸의 피부가 따가울 정도의 엄청난 기운이었다.
지금까지 곽휘운이 몇 번 느껴본 적 없을 정도의 강함.
‘이런. 지난번에 그 사람인가 보군.’
얼마 전 휘운객잔에 들렀던 미남자.
마교에서 온 것으로 생각되는 그 사람이 분명했다.
그때는 몸 안에 힘을 숨기고 있었지만, 지금은 숨기지 않고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었다.
‘쉽지 않겠어.’
몸을 화탄처럼 터트리는 생각지도 못한 무공이 나타난 데다가, 엄청난 강자까지 나타났다.
곽휘운은 생각보다 제갈세가 수복이 쉽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오늘은 이만 가야겠네.”
“그래.”
“음.”
곽휘운도, 남궁태산도, 장도웅도 생각이 많아진 채로 일단은 위하윤과 제갈중천이 있는 객잔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정천오귀가 있던 제갈세가의 내부.
정천오귀는 앞에 있는 천마신교의 소교주 소천마 제석종을 보고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만 일어나라.”
“예.”
제석종의 말에 정천오귀가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지금 왜 제석종이 이곳에 왔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했다.
분명 그들이 떠나기 전까지 제석종은 정천맹 안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흠. 이런 불량품들로도 제갈세가가 무너지다니. 무림맹도 약해졌군.”
“…….”
정천오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제석종의 불량품이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미 들은 바가 있기에 침묵을 유지했다.
“곽휘운이라는 자가 이곳에 왔다고 들었다. 맞느냐?”
“예. 맞습니다.”
정천오귀는 왜 제석종이 곽휘운을 찾는지 의아해했다.
분명 그자가 강자임은 맞지만, 제석종이 찾을 정도인지는 의문이었다.
“그렇군. 교로 돌아가기 전에 재미를 볼 수는 있겠어.”
제석종은 기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강자와의 싸움을 가장 좋아했는데, 곽휘운이라는 자는 그에게 분명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줄 강자가 분명했다.
“그자가 오기 전까지 몸이나 풀어 둬야겠군.”
빨리 곽휘운과 싸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런 즐거움을 바로 소모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곳을 다시 수복하기 위해 저들은 이곳으로 쳐들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때까지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준비를 하며 기다리면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의 설레임과 같은 느낌을 간직한 채 말이다.
“곽휘운이 오기 전까지 나를 찾지 마라.”
“예.”
정천오귀의 대답과 동시에, 제석종은 어디론가로 몸을 옮겼다.
* * *
제갈세가의 염탐을 끝내고, 다시금 객잔으로 돌아온 곽휘운 일행.
곽휘운을 비롯해 남궁태산과 장도웅의 표정이 썩 밝지 않은 것을 보고, 위하윤과 제갈중천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하였다.
“무슨 일이 있었소?”
“흠. 그것이 말이다.”
“빨리 얘기해 보시오.”
“알겠소.”
제갈중천의 물음에 곽휘운은 제갈세가에 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추면삼사와의 격렬했던 싸움, 몸이 화탄처럼 터져 주변에 심대한 타격을 미치는 무공, 제갈세가 안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까지.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보지 못했소?”
“안 그래도 혹시나 싶어 시장에서 물어보았는데, 아이들과 여인들은 모두 도주한 듯싶고, 무인들은 모두…….”
곽휘운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지만, 제갈중천은 곧바로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후우.”
눈물은 흘리지 않는 제갈중천.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제 제갈세가에 남은 인원은 자신과 무림신성대전에 참여하기 위해 세가를 떠나왔던 이들 뿐.
제갈중천은 그들이 다시금 돌아올 수 있도록 세가를 다시금 수복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복에 대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 과거 세가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책임감도 막중하다.
그것이 직계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보다 이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곽휘운은 자신들을 감시하는 눈길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저쪽에 하나, 반대편에 둘, 그리고 저 너머에 또 하나.
그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자리를 옮겨야 했다.
“중천. 어디 좋은 곳 없을까?”
“흠…….”
제갈중천이 조금 더 안전한 곳을 고민할 때였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이 있다.”
“예?”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장도웅이 입을 열었다.
장도웅이 아는 곳?
신기하군. 그가 이렇게 먼저 의견을 제시하다니.
무림에 알려진 장도웅은 파천왕(破天王) 이세흔의 제자로, 특이하다면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딱히 정해져 있는 연고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거기에 장도웅은 어디에 속하지 않고 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무인들과 교류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를 찾아간 고수나 유명인사의 권유를 여러 번 물리쳤다는 소문까지 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장도웅이 아는 곳이 있다니?
“궁금하군요. 그런 곳이 있다니. 묵도께서 아는 곳이 있다면 가 보지요.”
“음. 나도 오랜만에 가는 것이라. 못 지낼 수 있다.”
“일단 가 보기라도 하지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지금 장도웅이 아는 곳이 아니라면, 당장에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또한 홀로 생활하는 걸 좋아하는 장도웅이 추천하는 곳이라면 안전하리라는 계산도 머리에 깔려 있었다. 혼자서 방어하기에 쉬운 곳일 테니까.
곽휘운 일행은 빠르게 객잔에서 짐을 정리하고, 객잔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기척들.
“키야. 많기도 하네.”
“그러게 말일세.”
지나가는 행인도, 물건을 파는 장사치도 모두 곽휘운 일행을 감시하는 이들이었다.
어쩌면 이 주변 전체가 곽휘운 일행을 감시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듯하다. 괜히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장도운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곳입니까?”
“별로 멀지 않다.”
* * *
장도웅을 따라 도착한 곳.
제갈세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커다란 장원이었다.
매일매일 정리하고 청소하는 듯, 깔끔하게 정리된 담장에.
더없이 고풍스러움을 자랑하는 문.
그리고 용사비등한 필체로 쓰여 있는 ‘신호원(神護院)’이라는 현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곽휘운 일행은 이 장원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알기에 놀라고 또 놀랐다.
이곳에 살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아마 알고 있을 만한 곳.
그만큼 의외이기도 했다. 장도운이 얘기한 곳이 여기라니. 두 사람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묵도님 이곳은…… 설마.”
“전 승상이신 장호악께서 머무시는 곳 아닙니까?”
위하윤의 놀람과 곽휘운의 물음에 장도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침착함을 유지하던 곽휘운도 조금은 놀란 표정을 하였다.
조금은 예상 밖에 일이었으니까.
장호악이 누구인가?
일인지하 만인지상.
황제 다음가는 권력자인 승상의 자리에 있던 인물로, 전 황제와 현 황제까지 두 명의 황제를 모셨던 인물이었다.
장호악은 두 명의 황제 모두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은 인물로, 그가 승상으로 있을 때 그의 힘은 그야말로 날아가는 새도 바닥으로 떨어트릴 정도였다. 하늘에서 내려 준 황제를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이다.
하지만 장호악은 한 번도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잘 펼쳤기에 백성들 사이에서도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런 장호악이 모종의 이유로 돌연 승상의 자리를 내려놓고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그가 승상의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황제에게 청하였을 때, 황제가 버선발로 쫓아와 장호악의 사직을 만류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다.
그런 장호악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었는데, 신호원이라는 이 장원은 황제가 그를 위해 친히 황명을 내려 지어 준 곳이었다.
지금 곽휘운 일행은 그런 대단한 인물이 머무는 곳 앞에 당도한 것이다.
만약 이곳에서 일이 잘못된다면, 황명에 의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뵙겠군.”
무언가를 깊이 회상하는 듯한 장도웅.
동시에 일행은 장도웅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장도웅의 복잡 미묘한 눈빛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장도웅과 장호악과의 관계.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관계.
황제의 옆에서 일국을 이끌던 승상과 칼밥을 먹고 살아가는 무인이 인연이 있다는 것을 대체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똑똑.
“누구십니까?”
장도웅이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께서 계시나?”
끼이익.
문을 열리고 안에서 하인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재빠르게 곽휘운 일행을 쭉 훑어보았다.
허리에 무기를 차고 있는 것을 보니, 무림인들이 분명했다. 저절로 경계심이 올라갔다.
무슨 연유로 무림인들이 이곳을 찾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자신은 본분을 다하기로 했다.
“예. 계십니다.”
“그럼. 손자가 왔다고 해 줘.”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