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57화>
제갈세가의 권역.
주변을 굳건히 지키고 있던 제갈세가가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정천맹이 자리를 새롭게 잡았다.
주변에서 제갈세가의 흔적들이 빠르게 지워지고, 곳곳이 정천맹의 이름으로 채워져 나갔다.
정천오귀가 머무르고 있는 정천맹의 힘은 거칠 것이 없었고, 정천맹에 가입하지 않은 주변의 다른 중소방파들을 빠르게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이들은 혹여 그들의 눈 밖으로 나지 않기 위해, 정천맹을 추켜세우며 어떻게든 정천맹에 가입하기위해 줄을 섰다.
* * *
이제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던 일행은 마을이 보인다는 남궁태산의 말에 일순 얼굴이 밝아졌다.
일행은 일단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객잔으로 향해 몸을 씻었다.
그동안 곽휘운은 마을에 나가 일행이 입을 새 옷을 몇 벌 구해왔다.
“흠……. 마을이 지나치게 조용하더군.”
일행과 식사를 하면서 곽휘운은 마을을 둘러본 이야기를 했다.
오랜 시간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곳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력이 자리를 잡으면 한동안 많은 소요가 일어나기 마련인데, 지금 이 주변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먼저 세가로 가봐야겠소.”
평소 침착한 제갈중천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침착함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련에 집중하며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이제 제갈세가의 권역으로 들어오니, 침착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곽휘운도 그 마음은 십분 이해했다.
세상 어느 누가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했는데, 침착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침착해야 할 때였다.
이곳은 이제 적지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너는 일단 하윤 소저와 이곳에 있어라 중천. 우리 셋이 먼저 다녀와 볼 테니.”
“저도 같이 가겠소.”
“침착해라 중천. 지금 네가 간다면,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 할 수 없을 거다.”
“……알겠소.”
곽휘운은 우선 남궁태산, 장도웅과 함께 제갈세가 근처를 보기 위해 가기로 했다.
제갈중천도 함께 가고 싶은 듯 했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 곽휘운의 만류에 포기했다.
제갈중천도 지금 자신이 가면 필히 감정을 주체 못하고, 폐가 될 것이란 것쯤은 짐작했다.
“그럼. 하윤 소저. 다녀오겠습니다.”
“응. 잘 다녀와.”
객잔 밖으로 나선 곽휘운은 주변에 자신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제거해 버릴까 고민했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지금 저들을 제거해 봐야 더 많은 이들이 나타날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사실상 지금 곽휘운 일행은 너무나 튀었으니, 조용히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 가봅세.”
“그래.”
“좋다.”
곽휘운은 남궁태산, 장도웅과 함께 제갈세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실 객잔에 둘만 남아서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곽휘운은 둘의 실력을 믿었다.
위하윤과 제갈중천 둘은 충분히 강했다.
* * *
제갈세가의 가주실.
이미 전 주인은 죽고 난 후였지만, 새로운 주인들이 그 자리를 꿰어차고 있었다.
“소빙룡과 일행이 이곳으로 왔다고?”
정천오귀는 곽휘운 일행이 이곳에 당도했다는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들은 본래 제갈세가를 정리하고 움직일 생각이었으나, 항주에서 곽휘운 일행이 제갈세가를 향해 움직였다는 보고를 듣고는 이곳에 머물며 그들을 기다렸다.
“하하하! 그놈들에게 지난번의 빚을 갚아 줄 수 있겠어.”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웃음을 터트리는 거력귀.
그들은 지난번 정천맹 개파 대전에서 졌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이 최고조에 다다랐다.
언젠가 복수를 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빠르게 다가오니 더없이 기뻤다.
“어차피 그 놈들이 제 발로 이곳으로 올 테니,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면 되겠군.”
“그래도 이렇게 근처까지 왔는데, 축하의 의미로 선물이나 보내 주지.”
“추면삼사 그놈들을 보내면 되겠군.”
“아. 그놈들이라면 재밌게 해 줄 수 있겠군.”
정천오귀는 흑의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흑의인은 곧바로 명을 이행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과연 추면삼사를 상대로 얼마나 힘을 보여 줄지 기대되는군.”
* * *
곽휘운과 남궁태산, 장도웅은 제갈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갈세가를 지켜보았다.
평소라면 제갈세가 무인들이 지키고 있을 정문이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흑의인들이 서 있었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군.”
“자신 있다는 거겠지.”
제갈세가를 바라보며 말을 주고받는 곽휘운과 남궁태산.
그리 많은 이들이 주변을 지키고 서있지 않았다.
분명 자신들이 왔다는 것을 알 텐데도, 전혀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다.
“일단 오늘은…….”
남궁태산이 이만 돌아가자고 할 때였다.
“누가 나오는군.”
“음?”
제갈세가 안에서 세 개의 인영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정말 추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얼굴을 한 세 흑의인.
그들은 몸에서 살기를 풀풀 풍기며, 곽휘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를 찾아 오나본데?”
“재밌겠군.”
기쁜 듯 말하는 남궁태산과 장도웅.
둘은 이미 무기를 꺼내들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봐. 저놈들인가 보군. 아주 얼굴들이 반반해.”
“낄낄. 그렇군. 아주 잘생겼군 그래.”
“크크큭. 당장 갈아버리고 싶수다.”
곽휘운 일행을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셋.
“추면삼사군.”
곽휘운은 곧바로 그들이 누군지 알아냈다.
하긴, 얼굴만 봐도 그들이 추면삼사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추면삼사는 잘생긴 자들만 보이면,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상대를 유린하는 것을 즐기는 마두들이었다.
곽휘운은 그들을 잡기 위해 임무를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미 멀리 도망치는 바람에 놓쳤던 기억이 있었다.
“이거 또 잘생긴 건 알아가지고.”
곽휘운을 포함해서 남궁태산, 장도웅은 분명 평균을 아득하게 웃도는 미남들.
당연히 추면삼사가 그들을 향해 살심을 품기에는 충분했다.
“요즘 제대로 검을 못 움직여서 뻐근했는데 잘되었어.”
남궁태산은 곧바로 투기를 끌어올렸고, 장도웅도 투기를 끌어올렸다.
이것까지 오면서 했던 수련의 성과를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주 성깔도 급한 놈들이군 그래.”
“낄낄. 빨리 죽여 버립시다. 그러면.”
“크크큭. 어떤 얼굴로 만들어 줄까나.”
추면삼사도 곧바로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살기.
각자 각각 겸(鎌), 부(斧), 유성추(流星錐)를 들고 있었다.
겸을 든 이가 첫째 일사(一蛇), 부를 든 이가 둘째 이사(二蛇), 유성추를 든 이가 셋째 삼사(三蛇)였다.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기형병기들이었다.
그들은 기형병기의 묘를 최대한으로 살려, 상대를 유림하고 처참하게 짓밟는 것을 즐겼다.
아무래도 이런 기형병기를 이용한 무공을 겪은 경험들이 없을 테니, 당황해 제 실력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말이다.
“나 혼자 셋 다 상대해도 되냐?”
홀로 앞으로 나서는 남궁태산.
혼자서 추면삼사 모두를 상대할 심산이었다.
한 명을 상대하는 것으로는 심심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나도 싸운다.”
하지만 장도웅도 앞으로 나섰다.
장도운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실전은 오랜만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기회를 남궁태산에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럼 나는 지켜보겠네.”
곽휘운은 한 발짝 뒤로 빠졌다.
남궁태산과 장도웅이 추면삼사에게 질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곽휘운은 뒤에서 사태를 지켜보며, 혹여나 있을 지모를 상황에 대비하기로 했다.
“그 자만심이 네놈들을 죽음으로 인도할 거다.”
“낄낄. 지옥을 보여 주마!”
일사와 이사가 먼저 달려들었다.
각자 남궁태산과 장도웅에게 달려드는 둘.
생각 이상으로 재빠른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남궁태산과 장도웅의 지척에 다가섰다.
사악.
부웅.
몸놀림만큼이나 쾌속한 공격.
일사의 겸은 화려한 변화를 보이며 남궁태산에게로, 이사의 부는 강맹한 힘을 뽐내며 장도웅에게 향했다.
카캉!
카앙!!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무기들.
남궁태산과 장도웅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서 추면삼사의 공격을 막아냈다.
“실망인데?”
남궁태산의 비웃음 가득한 말에 추면삼사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흥! 이건 인사다 이놈들아.”
“낄낄.”
점점 더 강맹해지는 일사와 이사의 공격.
일사의 겸은 순식간에 엄청난 변화를 보이며 눈을 현혹했고, 이사의 부는 공기를 찢으며 강대한 힘을 머금고 쇄도했다.
하지만 남궁태산과 장도웅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서걱.
쾅!!
무언가 잘리는 소리와 엄청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큭!”
“커헉!”
일사의 왼쪽 팔이 잘려나가 있었고, 이사는 날이 부셔진 부를 들고 입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어느 쪽이 우위인지는 확실했다.
“호? 그래도 용케 피했네?”
남궁태산은 목을 노렸는데, 일사가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서 팔 하나로 끝이 났다.
하지만 이미 승부는 난 상황.
남궁태산은 더 이상 추면삼사에게 흥미가 없었다.
이제 싸움을 끝내려던 그때.
쉬이익.
미세한 파공음을 내며, 유성추가 남궁태산과 장도웅에게 날아들었다.
“나를 잊은 것이냐?”
계속해서 유성추를 움직이며, 남궁태산과 장도웅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삼사.
덕분에 일사와 이사는 뒤로 물러날 틈을 가질 수 있었다.
“귀찮게 하네. 그만 끝내자. 돌아가서 밥이나 먹자고.”
“그래.”
스슷.
탓.
이번에는 남궁태산과 장도웅이 움직였다.
일순 사라진 것처럼 사라진 둘의 신형.
“음?”
추면삼사는 그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고, 곧 그것은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추면삼사의 앞에 나타난 남궁태산과 장도웅.
서걱. 서걱.
서거걱.
남궁태산의 일검에 일사와 이사의 목이 떨어졌고, 장도웅의 도에 삼사의 유성추와 함께 목이 떨어졌다.
너무나 허망할 정도로 쉽게 당해 버린 추면삼사.
꾸르르르륵.
그런데 목이 잘린 추면삼사의 몸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푸는 추면삼사의 몸.
“이런!”
곽휘운은 곧바로 위험함을 느꼈다.
탓.
슈우우욱.
구름과 함께 추면삼사의 시체로 날아가는 곽휘운.
곽휘운의 구름이 채 추면삼사의 시체에 도달하기 직전.
꾸르르르르륵. 퍼펑!
추면삼사의 시체가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방으로 암기처럼 뻗어나가는 추면삼사의 살점과 뼛조각.
쩌저저적.
곽휘운의 구름이 완전히 얼어붙으며, 남궁태산과 장도웅의 바로 앞을 가로 막았다.
콰가가가각.
그리고 엄청난 위력으로 곽휘운의 구름 벽에 추면삼사의 살점과 뼛조각이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