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55화>
비무대 위에 마주선 강경산과 전후종.
강경산은 전후종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풍기는 분위기마저 완전히 달라졌다.
“후종. 많이 바뀌었구나.”
“예전부터 저에 바뀌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전후종의 대답.
강경산은 그저 쓰게 웃었다.
분명 자신이 바뀌라고 말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런 방향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욕심을 줄이고, 올곧게 정진하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래. 그래도 네가 실력이 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
스릉.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검을 뽑아드는 강경산과 전후종.
“크크. 갑니다!”
“그래.”
전후종이 먼저 움직였다.
타앗.
새파랗게 타오르는 청화검기가 전후종의 검에 나타났다.
전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청화검기.
쾅!
검과 검이 부딪쳤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소리와 함께 강렬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강경산은 방금 전후종의 검을 막은 손이 살짝 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흠. 강해졌어.’
생각 이상으로 강해진 전후종의 실력.
강경산은 다시금 검을 쥐어 잡았다.
휘익.
무당파의 태청검법(太淸劍法)이 강경산의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푸른 검기가 강경산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넘실거리며 전후종을 압박해 나갔다.
쾅! 쾅! 쾅!
검이 움직일 때마다 점점 더 강해지는 강경산의 검기.
태청검법은 일 검보다 이 검이, 이 검보다 삼 검이 더 강한 무공이었다.
전후종은 자신을 향해 덮쳐 오는 거대한 기운에 연신 뒤로 밀리기 바빴다.
‘이렇게 강했나?’
대전 시작 전만해도 전후종은 자신감이 철철 넘쳐흘렀었다.
자신이 아는 강경산의 실력이라면, 질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직접 검을 맞대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수련동에 있는 동안 몇 수는 강해진 강경산이었다.
단약을 먹고 몇 수는 강해졌는데도 밀리고 있었다.
‘질 수 없지.’
전후종은 내공을 더욱 더 끌어올렸다.
단전에서부터 순식간에 올라오는 거대한 내공.
콰아아아!
강렬하게 청화검기가 타오르고, 그 힘이 그대로 강경산의 검과 부딪쳤다.
콰앙!!
강렬한 충돌음.
강경산은 조금 놀랍다는 눈으로 전후종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느껴진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놀랍구나.”
“크큭. 계속 해 봅시다.”
조금은 검게 물든 전후종의 두 눈.
강경산은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후웁.”
강경산은 숨을 크게 쉬며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었다.
쿠우우우.
주변을 장악하는 강경산의 거대한 기운.
지금 이 신성대전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강경산이 뿜어내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
전후종도 질 수 없다는 듯 더욱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럴수록 검게 변해 가는 두 눈.
이제는 검은자위가 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팟.
팟.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달려가는 강경산과 전후종.
쾅! 쾅!
둘이 부딪칠 때마다 굉음과 충격파가 사방으로 흩날려 대었다.
호각으로 싸우는 둘.
하지만 점점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큭.”
전후종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강경산의 공격이 계속해서 위력을 더해가며, 전후종을 압박해 갔다.
끝을 알 수 없는 강경산의 내공.
전후종은 손을 타고 전해지는 강렬한 힘에 입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속으로 질 수 없다를 외치며 힘을 내는 전후종.
쾅!!!
“크윽.”
하지만 이런 전후종의 의지와는 다르게, 강경산의 강렬한 힘에 무릎을 꿇었다.
“자 끝이다. 후종.”
척.
전후종의 목옆에 올려져 있는 강경산의 검.
전후종은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대환단 이상 가는 단약을 두 개나 섭취했다.
그런데도 강경산을 이기지 못하다니?
“아직이다.”
전후종은 모든 내공을 끌어올렸다.
꿈틀.
그러자 단전에 자리 잡았던 찌꺼기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스으으윽.
순식간에 전후종의 피부가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서걱.
무언가 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촤아악!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조금 전까지 검을 쥐고 있던 강경산의 팔이 떨어졌다.
강경산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멍하니 전후종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주변 사람들도 작금의 사태에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크큭. 크크크. 크하하하!”
그때 전후종의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검게 물들어 버린 전후종의 피부와 두 눈.
이미 사람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
“그래. 이게 진짜 힘이었군.”
전후종은 지금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에 취했다.
보이는 세상이 달랐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던 강경산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전후종!! 네 이놈!!”
그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무당파의 장문인인 장영천이었다.
그는 지금 가장 아끼는 제자인 강경산의 팔이 잘렸다는 것에 불같이 분노했다.
게다가 팔을 자른 자는 같은 무당파의 제자인 전후종.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장영천은 재빠르게 전후종에게 다가가 검을 내뻗었다.
“크크큭. 아 그래. 내가 다 죽이면, 무당파 장문인은 내가 되겠군.”
서걱. 서걱.
단 두 번의 칼질.
툭. 툭.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두 개의 머리.
강경산과 장영천의 머리가 잘렸다.
“으아아아!!”
이것을 지켜보던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금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져 버렸다.
무림오룡의 일인인 멸마룡 강경산과 무당파 장문인인 현검객 장영천이 죽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이번에는 천호창이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장로님이 제게 단약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으로 저희 무당파의 힘을 보여 주라는 것 아니셨습니까?”
“네 놈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는 있느냐?”
“약해빠진 것들은 무당파에 필요 없으니 정리했습니다. 크큭.”
“미쳐 버렸구나. 미쳐 버렸어!”
탓. 탓. 탓.
순식간에 전후종의 주변을 포위하는 무당파의 제자들.
그들은 전후종이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도주로를 차단했다.
“일단 네 죄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스윽.
전후종의 신형이 사라졌고, 그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무당파 제자 하나의 목숨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주변을 감싸고 있던 무당파 제자들이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그리고 전후종의 검이 마지막으로 남은 천호창을 베려는 그 순간.
“마두가 되었군.”
카앙!!
강렬한 소리와 함께 전후종이 뒤로 쭉 밀려났다.
천호창의 바로 앞을 막아서고 있는 사람.
“곽휘운!”
전후종의 입에서 거대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 * *
곽휘운은 다음날 남궁태산과의 대련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전각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비무대 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고, 곽휘운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비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보인 참혹한 광경.
곽휘운은 완전히 변해 버린 전후종을 보고,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마두? 내가? 강자를 마두라고 부르는 건가? 크큭.”
“…….”
예전 보았던 각철패와 같은 모습의 전후종.
물론 그때와는 다르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느껴지는 기운과 검게 변한 피부와 눈은 똑같았다.
‘흑마화(黑魔化).’
지금 전후종이 보인 변화를 부르는 말이었다.
“네놈도 죽여 주마.”
푸르게 타오르던 청화검기가 검은 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마기(魔氣).
무당파의 제자에게서 이런 마기라니?
‘내공을 마기로 만드는 것인가?’
정천맹이 가진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공을 이렇게 마기로 바꿀 수 있다는 놀라운 일이었다.
평생을 쌓아온 내공의 성질을 바꾸다니?
콰과쾅!
전후종의 검기가 곽휘운을 향해 쏟아졌다.
일견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위력.
슈우우우.
하지만 전후종의 모든 검기는 곽휘운의 구름에 막혀버렸다.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곽휘운.
쿵.
전후종이 강한 진각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곽휘운은 그 모습에 짙게 미소 지었다.
- 휘운검법. 제 일초. 참.
서걱.
촤악!
달려들던 전후종의 검이 그대로 잘리고, 가슴팍까지 갈라지면 피가 솟구쳤다.
“!!”
전후종은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검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잘렸다.
그것도 엄청나게 향상된 내공이 담긴 검기가 둘러져 있었다.
이렇게 잘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무슨…….”
쩌저저적.
말을 끝까지 하지도 못한 상태로 얼어붙은 전후종.
“당장 죽여 마땅하지만…….”
곽휘운은 인연이 있던 강경산의 주검을 침통하게 바라보았다.
무인은 늘 죽음과 가까이 지낸다지만, 그럼에도 인연이 있는 자의 죽음을 보는 것은 언제나 서글펐다.
“이후는 무당파에게 맡기겠습니다.”
곽휘운은 당장 전후종을 죽일까 싶었지만, 이 이후는 무당파에게 맡기기로 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무당파이니 말이다.
전후종을 벌할 권리는 무당파에게 있었다.
“무림신성대전은 이것으로 마치겠소!”
* * *
급하게 막을 내린 무림신성대전.
각 문파와 세가들은 전후종의 사태에 대해 긴급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흑마화가 분명하오!”
“허나 그것은 마교에서만 전해지는 것이오. 무당파의 제자인 전후종이 어찌 그것을 익혔단 말이오?”
그들이 아는 흑마화는 마교에서 내려오는 독특한 방식의 무공이다.
그런데 그것을 어릴 때부터 무당파에서 무공을 배운 전후종이 어찌 익혔단 말인가?
“마교가 일에 끼어든 것 같소.”
“!!”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선웅이 입을 열자, 다들 눈이 커졌다.
마교.
오랜 평화의 시기를 지낸 지금도 정파에게 공포를 안겨다 주는 이름.
지난 정마대전(正魔大戰)에서 입은 상처가 아직도 완전히 아물지 않은 정파였다.
신강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한번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무림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오로지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그들의 힘은 그야말로 전율을 일으키게 할 만했다.
압도적인 강함.
온 무림이 힘을 합쳐서야 간신히 그들을 막고, 신강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 일 정도였다.
그런 마교가 일에 끼어들었다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정천맹이 아무래도 마교와 연관이 있는 것 같소.”
“허어…….”
물론 여기 있는 다른 문파의 수장들도 정천맹이 무언가 꺼림칙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거대한 곳이 하루아침에 나타날 수는 없으니, 뒤에서 지원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그곳이 마교라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정천맹에 들어간 곳들도 그곳이 마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일고 있는 곳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곳도 있을 것이오.”
“알고 있는 곳이 있다? 그런데도 그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오?”
마교가 뒤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정천맹에 남아 있다니?
“그만큼 무림맹이 썩었다는 것이고, 그들이 주는 힘이 달콤하다는 것이겠지요.”
“…….”
남궁선웅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여기에 있는 이들 모두 자신들의 작태를 알고는 있었다.
다만, 힘과 돈에 취해 애써 모른척 하고 있었을 뿐.
“일단…….”
남궁선웅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였다.
드르륵. 쾅.
다급하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무인 한 명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보고 드립니다. 저, 정천맹이 동시다발적으로 습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