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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54화 (54/203)

<휘운객잔 54화>

곽휘운은 지금 속으로 화를 참는 중이었다.

단전을 파괴시키려는 것도 모자라, 등 돌린 사람의 뒤를 찌르려고 한 태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겁니다.”

“감히 본 파의 제자를 이렇게 만들고 뻔뻔하구나!”

“화산파의 무인이 아니었다면, 목이 잘렸을 겁니다.”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차가운 분노가 담긴 곽휘운의 말.

품 안에 안겨있는 백리화는 이런 곽휘운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노오오옴!!”

거세게 분노를 하며 비무대 위로 나오는 매화일검 차전악.

그는 지금 아주 좋은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곽휘운이 지금 서이린에게 한 짓은 분명 선을 넘은 행태가 분명했다.

자신들이 백리화의 단전을 부수려 했다는 것은 증거가 없었고, 뒤를 찌르려 한 것은 아직 찌르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온몸을 강제로 얼려 버린 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분명 과한 처사일 터.

이것으로 곽휘운을 공적으로 단죄하고 백리세가의 힘을 꺾어 놓을 생각이었다.

“백리 가주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예?”

백리화는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곽휘운의 두 눈.

“무림맹을 버려도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무림맹 없이도 백리세가를 무림 제일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광오하다는 것을 넘어설 정도인 곽휘운의 말.

하지만 백리화는 왜인지 저 말이 허언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객주님의 결정이라면 저는 믿고 따를게요.”

“감사합니다.”

백리화는 곽휘운의 결정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따를 수 있었다.

지금 백리세가를 만들어 준 사람이 곽휘운이었으니 말이다.

“둘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주학. 가주님을 모시고 먼저 돌아가라.”

“네!”

곽휘운은 차전악의 호통은 무시한 채, 남주학을 불러 백리화를 데려가도록 했다.

남주학은 재빨리 백리화를 업고 자리를 벗어났다.

홀로 비무대에 남게 된 곽휘운.

곽휘운은 그제야 몸을 돌려 차전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검을 드시지요.”

“뭐라?”

“저에게 죄를 묻고 싶다면 검을 드십시오.”

차전악은 곽휘운의 말에 일순 망설였다.

그는 곽휘운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혹여 여기서 곽휘운에게 지기라도 한다면, 그런 망신이 없지 않겠는가?

“무림맹을 나왔다고 주제를 넘는구나!”

그때 또다시 누군가 호통을 치며 비무대 위로 나타났다.

무당파의 장문인인 현검객 장연천이었다.

“이번에 주제를 한번 제대로 넘어볼까 합니다.”

곽휘운은 조금 전 구파일방의 행태를 보고는, 백리세가를 위해 무림맹과 손을 잡으려 한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정천맹보다도 훨씬 더 백리세가에게 위험한 자들이었다.

“무림맹과의 협력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 네 말 한마디면 끝나는 것이더냐!”

“은혜도 모르는 놈!”

스릉!

스릉!

차전악과 장영천이 동시에 검을 빼어들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광경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날지 말이다.

“지금이라도 사죄를 하고 고개를 숙인다면, 이 망발은 넘어가 주마.”

“사죄를 해야 할 것은 당신들입니다.”

슈우우우욱.

사방을 휘감는 구름.

곽휘운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러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그건 지켜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일촉즉발의 상황.

팽팽한 긴장감이 비무대를 휩쓸고 있었다.

“이거 다들 화가 너무 난 것 같은데, 화를 조금 죽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 * *

곽휘운과 두 장문인 사이에 끼어든 인물.

남궁세가의 가주 검왕 남궁선웅이었다.

“우리끼리 싸우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정천맹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남궁선웅의 중재에 곽휘운은 구름을 거두어 들였다.

다른 이는 몰라도, 남궁선웅만큼은 곽휘운도 인정하는 정파인이었다.

다른 두 장문인도 못이기는 척 검을 거두어 들였다.

사실 둘은 곽휘운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겨도 본전이고 만약 진다면 체면을 완전히 구기는 일이 되니 말이다.

“일단 다들 이만 돌아들 가시지요.”

“흥!”

두 장문인은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여기서 더 이상 드잡이를 해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났으니 말이다.

“자네도 이만 돌아가게. 오늘 일은 내가 대신 사죄하겠네.”

“알겠습니다.”

곽휘운은 얼려 놓았던 서이린을 다시금 원래대로 돌려놓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남궁선웅은 멀리 사라지는 곽휘운의 뒷모습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림맹이 너무나 큰 것을 잃었다.’

지금이야 일단 어떻게든 막아 놓았지만, 결국 언제든지 다시금 터질 문제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무림맹은 너무나 큰 것을 잃게 될 것이었다.

“봉황전은 이만 끝이니, 다들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 * *

“후우.”

방으로 돌아온 곽휘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적으로 차오른 분노와 실망감에 평정심을 잃었다.

“추삼과 중천 모두 대전의 참가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좋겠군.”

남궁선웅의 중재로 별일 없이 끝났다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갈 구파일방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시금 보복을 해 올 터고, 그 대상에는 백리세가의 모든 식구가 포함될 것이다.

그 상황에서 대전의 출전은 위험했다.

“내가 나가야겠군.”

백리세가의 확실한 힘을 보여 주면서, 구파일방의 보복을 벗어나는 방법.

그것은 곽휘운이 직접 대전에 나서는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곽휘운은 곧바로 식구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추삼과 제갈중천은 조금 아쉬워했지만, 곽휘운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도웅, 남주학, 제갈중천에게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세가 식구들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그럼 신성전을 시작하겠소!”

“우오오오!!”

청룡전은 금방 끝이 났고, 신성전이 열리는 날이 찾아왔다.

엄청나게 늘어난 관중의 수.

사람들이 이 신성전을 얼마나 기대하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올라오시오!”

시작된 신성전은 사람들의 관심만큼이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신성전에 출전한 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절정을 넘어선 고수들이니 당연했다.

“다음!”

드디어 곽휘운의 차례.

상대는 화산파의 기재이자 희망이라 불리는 화산검수(華山劍手) 마종성.

마종성은 최근 들어 특출 난 고수를 배출해 내지 못한 화산파에서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제자였다.

무림오룡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누구도 그가 실력에서 무림오룡에 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곽휘운입니다.”

“화산검수 마종성이다.”

이미 곽휘운과 화산파의 골이 깊어진 상태.

당연히 마종성의 입에서 좋은 인사가 나올 리 없었다.

“시작하시오!”

스릉.

마종성이 검을 빼어들었지만, 곽휘운은 검조차 뽑지 않았다.

이것은 완전히 마종성을 무시하는 태도.

“검을 뽑아라.”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이놈이!”

탓.

곽휘운의 대답에 튕기듯 날아오르는 마종성.

그는 지금 자신을 무시하는 곽휘운에게 단죄를 내릴 생각이었다.

쾅!

곽휘운을 향해 튀어나가던 마종성이 굉음과 함께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검조차 뽑지 않은 곽휘운.

오로지 기운만을 움직여서 단 일격으로 마종성을 쓰러트린 것이다.

“스, 승자. 곽휘운.”

압도적인 강함.

화산검수 마종성을 단 일격에 쓰려졌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멍하니 곽휘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정도란 말인가?’

구파일방측의 장문인들은 모두 속으로 경악을 토해내었다.

자신들의 수준으로도 검을 뽑지 않고 단 일격으로 마종성을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곽휘운이 그것을 해낸 것이다.

“곽휘운을 누가 막는단 말이오?”

“허헛.”

그들은 이번 신성전에서 검성 남궁태산만을 꺾을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보다 더한 장애물인 곽휘운이 나타나 버렸다.

“멸마룡밖에 없지 않겠소이까?”

지금 무림신성대전에 참여한 이들 중 그나마 곽휘운을 꺾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는 멸마룡 강경산밖에 없었다.

물론 예전 실력을 생각한다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본 파에서도 이래저래 준비를 했으니, 불가능하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무당파의 장로인 십절검객 천호창이 대신해서 대답을 하였다.

천호창은 자신이 가진 단약을 강경산이 섭취한다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 * *

전후종은 지금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천호창이 강경산에게 검은 단약을 권했지만, 강경산이 완강하게 거부를 했고,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한 검은 단약은 전후종에게 전해졌다.

며칠 전 노인에게 검은 단약을 받아 섭취한 뒤 놀라운 효능을 직접 경험한 전후종은 또 다시 자신에게 검은 단약이 오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까지 내가 먹는다면, 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꿀꺽.”

화아악.

두 번째라 그런지 전후종은 쉽사리 검은 단약의 힘을 제어하며 흡수할 수 있었다.

“크하하하!”

역시나 만족스러운 결과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전후종.

그의 눈에서 미세하지만 혈기가 흘러갔다.

“내가 제일이다.”

전후종은 몸 안에 넘쳐흐르는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때마침 저 멀리 거대한 바위가 눈에 보였다.

스윽.

가볍게 일검을 내뻗은 전후종.

아주 가벼운 일검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쿠르르르.

거대한 바위가 그대로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크크크.”

예전의 자신이라면 생각도 못할 만큼 깔끔하고 위력적인 검격.

전후종은 지금 자신의 힘에 잔뜩 취했다.

“장문인은 내 것이다.”

이 힘으로 곽휘운과 강경산 둘을 모두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자신이 무당파의 장문인의 자리에 앉을 터였다.

“조금 더 시험해 보자.”

전후종은 조금 더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넘치는 힘을 주변으로 마구 흩뿌리는 전후종.

전후종이 힘을 쓰면 쓸수록 그의 눈에 흐르는 혈기가 진해지고 있었다.

* * *

이미 많은 대전이 치러진 신성전.

이제 남은 이는 넷.

곽휘운, 남궁태산, 강경산, 전후종.

그리고 오늘은 이 네 명 중 결승에 올라갈 두 명을 가리는 날이었다.

첫 번째 대전은 강경산 대 전후종.

전후종은 현재 이 신성전에서 가장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전후종이 쟁쟁한 이들을 모두 떨어트리고 이 자리까지 올 것을 아무도 예상치 못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냥 이긴 것도 아니라,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를 이기고 올라온 전후종이었다.

사람들은 그래도 강경산의 승리를 예측하는 쪽이 더 많았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강경산과 전후종은 비무대로 올라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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