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52화>
무림신성대전의 막이 올랐다.
여인들 간의 대전인 봉황전(鳳凰戰), 남자들 간의 대전인 청룡전(靑龍戰), 그리고 남녀를 불문하고 치러지는 신성전(新星戰).
총 세 개로 나뉘어서 치러지는 무림신성대전.
봉황전과 청룡전에 참가를 하는 이는 신성전에 참가를 하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신성전에 참가하는 이는 청룡전과 봉황전에 참가할 수 없었다.
따라서 봉황전과 청룡전은 조금 실력이 부족한 이들이 참여를 했고, 신성전은 실력에 자신 있는 이들이 참여를 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봉황전의 우승자는 누가 될지 맞춰 보십시오!”
그리고 이런 대전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도박꾼들.
그들은 열심히 목청을 높이며, 누가 우승할 것인가에 돈을 걸라고 사람들을 꼬드기고 있었다.
곽휘운은 그런 도박꾼에게 슬쩍 다가갔다.
“백리세가 백리화에게 걸겠습니다.”
“음. 여기 있습니다.”
곽휘운은 묵직한 돈주머니를 도박꾼에게 건네면서 백리화의 우승에 걸었다.
도박꾼은 금방 목패에 뭐라고 새기더니 곽휘운에게 건네었다.
곽휘운은 목패를 받아들고는 슬쩍 바라보고는 품안에 챙겼다.
‘흠. 역시 백리 가주님의 우승을 점친 이가 없군.’
신성전보다 조금 실력적으로 떨어지는 봉황전이라고 해도, 꽤 무림에서 인정받는 이들이 출전을 한다.
그런데 백리화는 지금까지 아무런 활약도 보여 준 적이 없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그녀에게 걸 이유가 없었다.
다만 곽휘운은 이번 봉황전의 우승은 큰 이변이 없는 한 백리화가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윤 소저는 신성전에 나가니, 백리 가주님을 이길 만한 여인은 없겠지.’
지금 백리화의 실력이라면 위하윤이 아니라면, 여인들 중에는 적수가 없을 터였다.
물론 곽휘운이 모든 이들을 본 것은 아니기에, 무조건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자! 첫 번째 올라오시오!”
그렇게 곽휘운이 백리화에게 적지 않은 돈을 걸고 났을 때, 봉황전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백리세가의 분위기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더없이 치열한 봉황전.
여기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명성은 물론이고, 따라오는 부상도 커졌으니 당연히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올라오시오!”
그리고 이제 백리화의 차례가 찾아왔다.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비무대 위에 올라가는 백리화.
곽휘운은 조용히 백리화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가주님은 분명 잘하실 수 있습니다.]
곽휘운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자, 백리화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곽휘운을 찾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곽휘운을 찾을 수 있었다.
곽휘운은 백리화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백리화도 조금 굳은 표정을 풀고 작게 미소를 지어 화답해 주었다.
‘휴우.’
백리화는 속으로 살짝 숨을 내쉬고, 허리춤의 검에 슬쩍 손을 올려놓았다.
바로 어제 곽휘운이 전해 준 새로운 검.
하얀 꽃이 양각되어 있는 멋들어진 검집에, 한철로 만들어진 검.
백리세가의 가주인 백리화를 위해 조금 더 특별한 검을 만들어 온 곽휘운이었다.
스릉.
맑은 소리와 함께 뽑혀져 나오는 백리화의 검.
그런데 보통의 검의 반절 밖에 되지 않을 만큼 얇은 검신을 지니고 있었고, 길이는 조금 더 길었다.
그저 검의 모습만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 검이면 조금 더 백화환영검을 펼치는 것이 용이하실 겁니다.’
곽휘운이 백리화에게 검을 전해 주며 건넨 말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이 검은 백화환영검에 꼭 맞았다.
“안녕하십니까. 백리세가의 백리화입니다.”
“아미파의 혜정입니다.”
백리화의 첫 상대는 구파일방 중 하나인 아미파의 제자였다.
그녀는 그래도 나름 아미파에서도 촉망받는 기재로 이번 봉황전에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간간히 꼽히기도 할 정도였다.
“그럼 시작하시오!”
인사가 끝나자 곧바로 대전이 시작되었다.
탓.
탓.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둘.
백리화의 검이 수없이 많은 검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아미파의 혜정은 수많은 검영에 눈을 빼앗겨 버렸다.
“어엇!”
어느 것이 실초이고, 어느 것이 허초인지 구분을 하지 못한 혜정은 이리저리 검을 휘두르고 피하다가 힘을 다 써버렸고, 결국 패배를 선언했다.
“제가 졌어요.”
“승자 백리화!”
백리화가 너무나 쉽게 혜정을 이겨 버리자, 사람들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
“와아아아!”
그리고 이 결과에 사람들의 입에서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새로운 무인의 등장은 언제나 사람들을 흥분 시켰다.
특히나 백리세가라는 다 망해 버렸던 곳의 어린 가주가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으니, 더욱 더 환호가 커질 만했다.
“멋있었습니다. 백리 가주님.”
“감사해요. 솔직히 어떻게 이겼는지도 모르겠어요.”
승리를 하고 내려오는 백리화에게 축하를 건네는 곽휘운.
그런 곽휘운을 바라보며 백리화는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사실 지금 백리화는 자기가 어떻게 이겼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곽휘운과 대련을 할 때처럼 임했는데, 제 실력을 다 보이기도 전에 대전이 끝나 있었다.
“자자. 일단 조금 쉬시면서 다음을 준비하죠.”
“네.”
아직 몇 차례 대전이 더 남아 있었다.
정천맹이 있어 다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만큼, 이번 무림신성대전은 꽤나 빡빡하게 일정이 진행되었다.
“다음 올라오시오!”
* * *
구파일방 측 수뇌부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백리화의 강함에 조금 인상을 썼다.
그들은 이 무림신성대전이 자신들의 축제가 되길 원했는데, 예상치도 않은 자가 튀어나와 주목을 빼앗아 갔으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 주목을 받는 이가 하필 오대세가에 가까운 백리세가의 가주라는 것도 단단히 한몫했다.
“처음부터 우승자를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형산파의 장문인이 불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하였다.
봉황전이 꽤나 진행 된 지금, 형산파 장문인이 보기에 백리화를 이길 만한 자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봉황전에서 확실히 우승자를 배출하기 위해, 본 파의 제자인 서이린을 참가 시켰습니다.”
“허어? 홍매화 서이린을 말입니까?”
“예.”
홍매화(紅梅花) 서이린.
그녀는 화산파의 제자로, 젊은 여인 중 비화룡 위하윤 다음가는 무인을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여인 중 하나였다.
사실상 그녀 정도의 실력이라면, 봉황전이 아니라 신성전에 나가야 함이 마땅했지만, 봉황전 우승자를 반드시 구파일방으로 가져오기 위해 일부러 봉황전에 넣었다.
“그럼 크게 문제는 없겠습니다. 하하.”
“지금 약한 이들을 만나 백리세가의 가주가 힘을 내는 듯싶지만, 금방 밑천을 다 드러내게 될 겁니다.”
구파일방 측에서도 당연히 백리세가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해 온 상태였다.
그들은 백리화가 무공을 제대로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금방 밑천을 다 보이고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다들 느긋하게 지켜보시지요. 이번 무림신성대전은 분명 저희 구파일방의 잔치가 될 것이니 말입니다.”
* * *
홍매화 서이린은 지금 자신의 상황이 꽤나 못마땅했다.
‘내 목표는 위하윤이건만, 여기서 이런 뜨내기들이나 상대해야 한다니.’
서이린은 언제나 위하윤을 넘고 싶어 했다.
위하윤만 아니라면 자신이 무림오룡에 이름도 올리고, 세상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어차피 그 반반한 얼굴로 남자들을 꼬셔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일 테지. 아니면 제 아비의 힘으로 올라간 것이거나.’
서이린은 위하윤이 부정한 방법으로 무림에 이름을 날리고, 무림오룡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뛰어난 자신이 위하윤보다 저평가 받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서이린은 이번 무림신성대전에서 보란 듯이 위하윤을 꺾고 자신이 훨씬 더 뛰어남을 세상에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화산파 장문인의 명령으로 인해 그 계획은 시작도 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이렇게 수준 낮은 이들이나 상대하는 신세가 되었다.
‘여기서 분풀이라도 해야지.’
서이린은 신성전에 참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풀이를 지금 봉황전에서 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의 자비도 두지 않고, 상대를 이기며 우승을 향해 위로 올라갔다.
적어도 봉황전에서 만큼이라도 모든 주목을 자신이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서이린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백리화라는 복병 때문에 그 생각도 틀어져 버렸다.
‘하! 이제는 별 시답지 않은 것이 날 방해하는군.’
서이린은 확실하게 분풀이를 할 대상으로 백리화를 택했다.
위하윤을 대신해서 모든 분노를 표출하기에 딱 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확실히 때려눕힌 다면, 다들 날 다르게 보겠지.’
서이린과 백리화는 지금 이대로라면 마지막 결승에서야 만날 수 있었다.
이 상황에 서이린은 오히려 백리화가 결승에 올라오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자신이 더욱 더 크게 주목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결승은 내일 백리세가의 백리화와 화산파의 서이린의 대결로 성사되었소!”
그리고 서이린의 바람대로 마지막 우승자의 자리를 놓고, 백리화와 서이린의 마지막 대전이 성사되었다.
* * *
야심한 시각.
청검수 전후종은 조금 멀리 떨어진 산 속의 동굴에서 노인이 건네준 단약을 섭취했다.
다른 무당파 제자들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이런 귀물은 아무도 모르게 혼자 섭취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꿀꺽.
부드럽게 목안을 타고 내려가는 검은 단약.
그러더니 순식간에 엄청난 내공이 몸 안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허엇!’
전후종은 급히 운기를 하여 내공을 진정시키기 시작했고, 꽤나 힘겨운 사투 끝에 겨우 휘몰아치는 내공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보통의 내공과는 조금 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은 그냥 영약이 아직 제대로 흡수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진정시킨 내공을 계속 운기하여 단전에 쌓기 시작하는 전후종.
“후우!”
번쩍.
꽤나 긴 시간이 지나고, 한숨과 함께 눈을 뜨자 전후종에게서 일순 안광이 번쩍 터져 나왔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충만한 내공이 단전에 가득했다.
무언가 찌꺼기 같은 불순물이 단전에 있었지만, 그것은 차차 해결하기로 했다.
‘노인의 말이 거짓이 아니구나.’
전후종은 대환단 이상일 것이라는 노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이 단약 하나로 지금 자신이 순식간에 몇 단계나 강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것은 소림사의 대환단이라도 못할 터였다.
“크하하하하!!”
산이 떨어 울릴 만큼의 내공이 실린 웃음을 터트리는 전후종.
지금이라면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곽휘운도, 강경산도 두렵지 않았다.
“내가 이번 대전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