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50화 (50/203)

<휘운객잔 50화>

스스스스.

남주학의 신형이 사라지고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전후종의 검도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훨씬 더 짙은 색을 내는 전후종의 청혼검기.

휘이익.

청혼검기를 머금은 검이 지나갈 때마다 안개가 걷혀나가는 듯 보였다.

스스스스.

하지만 걷혔던 안개는 금방 다시 복구되었고, 중간 중간 귀신같은 남주학의 검이 전후종에게 날아들었다.

캉! 캉! 캉!

물론 꽤나 실력이 있는 전후종은 남주학의 검을 곧잘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공격도 하지 못하고 있는 전후종이었다.

‘이 놈이!’

여기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줘야만 하는 전후종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되었다.

전후종은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고오오오.

전후종의 검에 서린 청혼검기가 더욱 진해지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전후종의 팔이 여러 개로 늘어나는 듯하더니, 온 사방을 찔러 들어갔다.

퍼버버버벙.

구 할 이상이 날아가 버린 안개.

그러자 안개에 숨어있던 남주학의 신형이 드러났다.

‘놈! 잡았다!’

그리고 이 틈을 놓칠 전후종이 아니었다.

정확히 남주학을 향해 쇄도하는 수많은 전후종의 검.

하나하나가 모두 강력한 청혼검기를 머금은 상태였기에, 하나만 적중해도 그대로 끝이었다.

- 귀혼신공. 제 일초. 귀영(鬼影).

마치 귀신의 그림자처럼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는 남주학.

퍼버펑.

전후종은 자신의 검 끝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을 느끼고, 공격이 실패했음을 느꼈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올 남주학의 공격을 대비했다.

- 귀혼신공. 제 이초. 잠영.

카캉!

서걱.

뒤에서 은밀하게 찔러 들어오는 남주학의 검을 그대로 받아침과 동시에, 검을 휘두르는 전후종.

그에 남주학의 소매가 조금 잘려 나갔다.

전후종이 공격이 닿았음을 느끼고, 재차 검을 뻗으려는 그때.

스스스스.

다시 안개가 주변을 장악했다.

남주학은 다시금 귀무를 펼칠 내공을 모으기 위해, 시간을 끌었던 것이었다.

“이건 이제 통하지 않는다!”

전후종이 다시금 남주학의 귀무를 걷어 버리려는 그때.

이번에는 남주학이 먼저 움직였다.

출렁이기 시작하는 안개.

- 귀혼신공. 제 사초. 귀혼곡.

전후종의 모든 방위에서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수많은 검격이 찔러들어 왔다.

캉! 캉! 카캉! 캉!

전후종의 검이 검막을 펼치며 남주학의 검격을 최대한 막아 내고 있었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서걱. 서걱. 찌이익.

전후종의 옷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전후종은 이대로는 자신이 질 것이란 것을 알았다.

있는 힘껏 내공을 검에 끌어 모은 전후종.

그만큼 검막이 더욱 견고해져 갔다.

캉! 캉! 캉!

이제는 완벽하게 남주학의 검을 막아 내는 전후종.

전후종은 남주학의 이 공격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았고, 이 공격이 끝나는 순간 그대로 검격을 날릴 준비를 했다.

카앙! 카앙! 카앙!

그런데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찔러 들어오는 남주학의 검격.

전후종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조금 전과 검이 부딪치는 느낌이 달랐다.

마치 공격의 목표가 자신이 아닌 검인 것만 같은 느낌.

‘이런!’

전후종은 순간적으로 남주학이 무엇을 하려는지 느끼고, 검을 거두며 거리를 벌리려 하였다.

하지만.

“늦었어요.”

- 귀혼신공. 제 오초. 귀월단(鬼月斷).

본래는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절초였지만, 곽휘운의 휘운검법을 본받아 남주학이 조금 변형했다.

뎅강.

챙! 챙! 챙그랑.

전후종의 검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남주학은 귀혼곡으로 계속해서 전후종의 검을 두드려 검을 약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빠르고 강렬한 일격으로 약해진 검을 그대로 잘라버린 것이다.

“망신이군.”

장영천은 전후종의 검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보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비무대를 떠났다.

더 이상 봐줄 수 없을 무당파의 망신이었다.

“후아. 후아.”

크게 숨을 몰아쉬는 남주학.

곽휘운이 최대한 다듬어 주어 내공의 소모를 효율적으로 하게 되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오랫동안 귀무와 귀혼곡을 유지한데다가, 마지막에 전후종의 검을 자르기 위해 많은 내공을 한 번에 쏟아내어 온몸의 힘이 다 빠졌다.

“잘했다.”

“생각보다 무기를 자르는 게 힘이 많이 드네요.”

당연했다.

무인의 내공을 머금은 무기를 자른다는 것은 웬만큼 실력 차가 나는 것이 아니고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전후종은 남주학과 대등한 수준의 무인.

당연히 힘든 것이 맞았다.

“아니야! 아니야! 여기서 지면 안 돼!”

반밖에 남지 않은 검을 들고 망연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는 전후종.

“죽여 버릴 거야! 놈을 죽이면 내가 장문인이야!”

그러더니 반쯤 부러진 검을 들고 남주학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눈은 이미 붉게 충혈 되었고, 입에서는 입을 꽉 깨물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정상이 아닌 모습.

지친 남주학을 대신해 곽휘운이 반쯤 미쳐 버린 전후종을 제압하려고 할 때였다.

휘익.

“꼴사납다. 전후종.”

탁.

누군가 비무대 위에 나타남과 동시에 전후종의 혈을 짚어 그대로 재워 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무당파 사람들의 눈이 더없이 커졌다.

“대사형!”

비무대 위에 올라 전후종을 제압한 인물.

무당파 일대제자 참마룡(斬魔龍) 강경산.

그는 바로 곽휘운에게 진 뒤로 수련동에서 나오지 않던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랜만이군. 휘운.”

* * *

강경산과 곽휘운은 꽤 사이가 좋은 관계였다.

참마룡이라는 강경산의 별호에서 알 수 있듯, 강경산은 악독한 마두를 잡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정의감 넘치는 인물이었으니, 멸마대의 대주인 곽휘운과 친분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경산은 곽휘운에게 진심을 다해 대련을 해 줄 것을 요청했고, 곽휘운은 그것을 받아들여 단 일 수에 그를 이겨 버렸다.

‘이럴 수가…….’

강경산은 곽휘운의 실력에 크나큰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커다란 깨달음을 얻어 그대로 수련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세간에는 무당파의 차지 장문인인 참마룡 강경산이 멸마대 대주 소빙룡 곽휘운에게 꼴사납게 패배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수련동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고 소문이 나버렸다.

그렇게 무당파와 곽휘운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단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이걸 어찌 한단 말인가.’

최근 수련동을 나온 강경산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머리가 아득해짐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이런 상황이 와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미안하네.”

“뭐가 말인가? 자네가 미안할 것은 없네.”

곽휘운은 무당파는 미워할지 몰라도, 강경산은 미워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지내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짜 정도의 길을 걷는 몇 안 되는 무인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회포라도 풀고 싶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네. 나중에 내가 사죄하러 가겠네.”

“사죄는 되었고, 술이라도 한잔 하세.”

강경산은 일단 전후종을 들쳐 매고 무당파 측으로 향했다.

“전후종은 일단 수혈을 짚었으니, 깰 때까지 방에 눕혀 놓고, 남은 인원들은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가도록 해라.”

“네. 대사형.”

강경산은 빠르게 무당파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천호창을 향해 다가갔다.

“무당의 제자 강경산이 장로님을 뵙습니다.”

“정말 경산 네가 맞느냐?”

“예. 장로님.”

사실 무당파의 반절은 이미 강경산을 포기한 상태였다.

수련동에 들어간 뒤 아무런 소식도 없던 강경산.

무당파 내에서도 강경산이 충격으로 망가졌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강경산이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일단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많으니 이만 돌아가지요.”

“그래.”

그렇게 무당파 인원들이 순식간에 비무대를 빠져나갔고, 사람들은 이번 비무의 결과와 마지막에 나타난 멸마룡 강경산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기 바빠졌다.

“자. 우리도 이만 돌아갑시다.”

곽휘운은 일단 강경산에 대한 일은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의 승리를 누리기로 했다.

모두들 생각 이상으로 잘해 주었다.

오늘의 승리로 백리세가의 이름이 무림에 퍼질 터였다.

‘이제는 무림신성대전에서 더욱 더 확실하게 이름을 날리는 것이 남았군.’

* * *

월영루의 가장 좋은 객실.

그곳에는 지금 무당파의 수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수련동을 벗어나 오늘 모습을 나타낸 강경산에게 집중되어져 있었다.

“어찌 아무런 연락조차 하지 않았느냐?”

장문인인 장영천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큰 충격과 큰 깨달음 두 가지를 모두 정리하려다 보니, 연락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 정리가 된 것이냐?”

“예. 어느 정도는 되었습니다.”

장영천은 강경산의 기도가 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되고 거대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고민이 하나 줄었군.’

장영찬은 강경산이 앞으로의 무당파를 이끌어갈 재능임을 확신했다.

차기 장문인은 고민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 본 파와 곽 대주와 마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건…….”

“전부 너와 본 파를 위한 일이었다. 앞으로 너도 본 파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정의와 협의에 조금 어긋난다고 해도 말이다.”

“…….”

강경산은 장영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무당파의 이익을 위해 정의와 협의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

분명 거대한 문파를 이끄는 자라면 그래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경산은 그런 일을 한다면, 사파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싶었다.

“우리가 건재해야 무림이 안녕한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강경산은 마지못해 대답을 하였다.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 준 무당파였다.

그런 무당파를 저버릴 수 없는 강경산이었다.

“좋다. 너는 네 위치를 잘 알고 움직이기를 바라마. 급히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만 들어가 쉬거라.”

“예.”

강경산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객실에는 무당파의 수뇌들만 남았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잘하면 남궁태산을 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백리세가에 진 것은 방심이 불러온 참사로 단정 짓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강경산이 더욱 더 강해져서 돌아온 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 무림신성대전에서 강경산이 검성 남궁태산을 이겨 준다면, 이런 사소한 일들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장문인 제게 좋은 물건이 들어왔는데, 이것을 경산이에게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때 천호창이 품안에서 작은 목갑을 하나 꺼내었다.

딸칵.

그리고 그 안에는 매우 검은 단약 하나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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