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46화 (46/203)

<휘운객잔 46화>

제석종은 그대로 독고영을 지나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독고영은 호기롭게 길을 막았던 것과는 다르게,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제석종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촤악. 촤악. 촤악.

갑자기 독고영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이 모습에 교마의 눈이 더 없을 만큼 커졌다.

‘나도 보지 못했다.’

제석종의 실력이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가 지금 엄청난 성장을 했다는 것도 짐작은 했다.

하지만 이것은 교마의 예측 범위를 벗어난 성장이었다.

무공 실력은 다른 팔마들에 비해 떨어진다 해도, 아직 한창인 제석종이 언제 출수를 했는지조차 보지 못했다는 것은 큰 충격을 주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헛짓거리일지도 모르겠군.’

무림맹의 전력을 줄이기 위해 홀로 움직인 것인데, 어쩌면 이런 계책 따위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 천마와 소천마가 있다면, 정도 무림의 무인들 정도는 문제없을 듯싶었다.

“더욱 더 정진하게.”

“……예.”

독고영이 입은 상처들은 모두 요혈에 나 있었지만, 깊지는 않았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깊었다.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움직이지도, 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이렇게나 차이가 난단 말인가.’

독고영은 천마신교의 힘을 간접적으로 느낀 것 같아 몸을 가늘게 떨었다.

‘과연 내 선택이 잘한 것일까?’

무림맹에 복수를 하고 싶어, 교마의 손을 잡았다.

그가 천마신교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건 무림맹의 복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무림 전체를 천마신교에게 가져다가 받치는 형국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판은 크게 벌어졌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지경.

그렇다면 무림맹 전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눈과 귀를 닫고 죽어라 달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단약을 더 주겠네.”

독고영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자신의 연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마는 오늘의 일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 * *

수많은 마차가 항주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무림신성대전의 참여를 위한 인파.

휘운객잔과 월영루의 객실은 이미 꽉 차 버린지 오래였고, 주변의 다른 객잔들의 객실도 속속들이 차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백리세가의 가주인 백리화입니다.”

백리화는 백리세가에 방문한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과 각 문파와 세가의 가주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꽤 바빴다.

끝없이 이어지는 인사행렬.

백리화 혼자였다면 더 힘들었겠지만, 그나마 옆에서 곽휘운이 도움을 주고 있어 잘해 나가고 있었다.

“후. 인사하는 것도 힘드네요.”

“하하. 이제 몇 곳 안 남았습니다.”

“그 몇 곳이 가장 문제죠.”

구파일방과 천하삼대세가가 남았다.

그들은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등장도 늦었다.

늦게 나타나는 것이 그들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더욱 더 그랬다.

“조금도 그들에게 숙일 필요 없습니다. 그들과 백리 가주님은 동등한 위치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무림에서 추앙받는 이들이고, 저는 이제 막 가주 노릇을 하는 사람인걸요.”

“그들은 추앙 받을 만큼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곽휘운의 단호한 말투.

곽휘운은 그들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추한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그랬다.

“백리 가주님이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니, 떨 필요도 없습니다.”

“네…….”

물론 완전히 마음이 평안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백리화였다.

이상하리만치 곽휘운의 말에는 신뢰가 가고, 마음이 안정되어졌다.

“가주님! 오셨어요!”

춘삼이 뭔가 다급한 목소리로 달려왔고, 백리화와 곽휘운은 곧바로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구파일방과 천하삼대세가가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와! 무당파다!”

“남궁세가도 왔어!”

사람들은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큰소리로 외치며, 그들을 보기 위해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이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모두 보기란 꽤 힘든 일이었으니 말이다.

드르륵. 탁.

마차가 멈춰 서고, 마차의 문이 열리며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고고한 학과 같이 마차에서 내려서는 중년인.

현 무당파의 장문인인 현검객(賢劍客) 장영천이었다.

“내가 무당파 장문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이야.”

“그러게 말일세. 그보다 저기 보게.”

무당파의 바로 옆.

남궁세가의 깃발이 걸린 마차에서도 중년인이 내렸다.

남궁세가주 검왕(劍王) 남궁선웅.

현검객이 고고한 학과 같았다면, 검왕은 잘 벼려놓은 한 자루의 검과 같았다.

동시에 내린 두 사람의 사이에서 일순 심상치 않은 기류가 맴돌다 사라졌다.

무당파도 남궁세가도 검법으로 정도 최고를 자랑하는 곳들이다.

둘 사이에는 경쟁의식이 강했는데, 아마 이번 무림신성대전에서도 둘의 경쟁이 꽤 볼 만할 터였다.

“어서 오십시오.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화라 합니다.”

“무당파의 장문인인 장영천일세.”

확실히 백리화를 깔보는 듯이 인사를 받는 현검객.

그에게 백리세가는 정천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해 주는 곳일 뿐, 조금도 신경 쓸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백리화에 옆에 서 있는 곽휘운이라는 존재.

그래서 현검객은 더욱 더 백리화와 백리세가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안녕하십니까. 백리 가주님. 남궁세가의 남궁선웅이라 합니다.”

현검객과는 다른 검왕의 인사.

그는 완전히 백리화를 한 세가의 가주로서 인정하고,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인정했다.

“검왕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화라 합니다.”

현검객 때문에 굳어있던 백리화는 검왕의 인사에 조금은 밝아졌다.

그리고 백리화가 채 숨을 돌리기도 전.

“소림사다!”

“하북팽가도 왔다!”

구파일방과 남은 세가들이 줄줄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 * *

“후아!”

늦은 저녁.

모든 손님맞이를 끝낸 백리화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무공 수련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하루.

몇 날 며칠을 밤새며 일을 한 듯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보다 객주님이 더 고생하셨죠.”

곽휘운은 백리화의 옆에 딱 붙어서 찾아오는 이가 누구인지 알려 주고, 그들에게 백리화 대신 백리세가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그저 인사만 한 백리화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였다.

“그보다 어떠셨습니까? 그들을 본 느낌은?”

곽휘운은 구파일방과 천하삼대세가의 수장들을 본 느낌을 물었다.

“확실히 아직은 범접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공의 고하는 둘째 치고, 거대한 세력을 이끄는 사람이 자연스레 내뿜는 기운이 엄청났다.

아직 백리화는 그들의 발끝조차 따라가지도 못할 수준이었다.

“흠. 확실히 그건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백리 가주님이라면 금방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곽휘운과 백리화는 오늘 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백리세가에서 처음 있는 거대한 행사였으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남 호위님이 아니었으면, 곤란할 뻔했어요.”

“그럴 뻔했습니다.”

많은 인원을 백리세가에 수용하는 만큼, 당연히 수많은 물품이 필요했다.

무림맹에서 웬만한 비용은 지불해 주지만, 전부를 지불하지는 않는다.

그럼 남은 부분은 오롯이 세가가 부담해야 하는 것.

하지만 이제 막 문을 연 백리세가가 이런 거대한 행사를 원활하게 할 돈이 있을리 만무했다.

곽휘운이 모아놓은 돈으로도 조금 부족한 상황.

그때 남주학의 도움으로 넉넉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금룡남가.’

천하에서 가장 돈이 많은 집안 중 하나인 곳의 아들이 바로 남주학이었다.

곽휘운은 남주학을 통해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빌렸는데, 금룡남가의 가주인 남철학은 이런 푼돈은 돌려 줄 필요도 없다며, 받지 않겠다고 했다.

결코 푼돈이라 부를 수 있는 돈이 아니었지만, 금룡남가라면 그렇게 말해도 할 말 없었다.

그들에게는 정말 푼돈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다른 신성대분들은 안 오시는 건가요?”

오늘 당도한 후기지수들도 많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특히 신성대 대원은 아직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아. 제가 듣기로는 다들 수련에 들어가서 아마 내일이나 도착할 것이라 들었습니다.”

위하윤과 각운, 남궁태산이 정천맹의 개파 대전을 끝내고 돌아간 뒤.

신성대가 크게 한 번 요동쳤다.

신성대로 복귀한 셋은 곧바로 임무에 투입되었는데, 그들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 실력을 임무에서 보여 주었다.

이에 다른 신성대들은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그들은 신성대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지만, 사실은 서로가 경쟁자였다.

남궁태산은 논외의 존재로 놓는다고 해도, 각운과 위하윤은 달랐다.

그들의 눈부신 발전에 다른 신성대원들은 이 무림신성대전에 맞추어 곧바로 수련에 들어갔다.

“아마 지금 이곳에 온 이들도 지금쯤 조용히 수련에 매진하고 있을 겁니다.”

신성대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무림신성대전이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목적을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젊은 무인들이 한 곳에 모이면…….”

캉!

곽휘운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

밖에서 강렬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흠.”

곽휘운은 걱정하던 일이 일어난 것임을 직감했다.

혈기왕성한 젊은 무인들이 실력을 가리기 위해 한 곳에 모인 상황.

조용히 수련을 하는 이도 있겠지만,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터.

그들은 몸을 부딪치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세가의 기물이 파손되면 안 되니 나가 봐야겠습니다.”

곽휘운은 그들이 싸움으로 인해 백리세가의 기물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백리화도 곧바로 뒤따르려 했지만, 곽휘운이 막아 섰다.

“이런 일에 가주님이 직접 움직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곽휘운의 말처럼 한 세가를 이끄는 가주가 이런 사소한 일에 모두 관여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세가의 가주가 직접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관여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가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꼴이 되니 말이다.

탓.

그렇게 백리화를 남겨 두고, 곽휘운은 방금 전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조금 움직이자, 멀리서 젊은 무인 둘이 서로 격렬하게 검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캉! 캉!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소리.

이 소리 때문인지 주변에는 이미 많은 이가 모여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이곳에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낮부터 이곳을 내 수련 장소로 택했단 말이다!”

수련 장소로 택한 곳이 겹쳤다는 사소한 이유로 싸우는 둘.

그저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는 승부가 나질 않자, 그들의 검에서 희미하게 검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서로를 향해 있는 힘껏 무공을 펼쳤다.

“하압!”

“하앗!”

곽휘운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 저으며, 정확히 둘의 사이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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