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45화>
곽휘운은 객잔에 들어온 미남자를 보고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놀랍군.’
지금까지 곽휘운이 만나 보았던 사람 중 한 손에 꼽을 만한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젊은 사람 중에는 단연 첫 번째 손가락으로 꼽을 만했다.
확실한 것은 남궁태산보다도 위라는 것.
“오. 원하는 만큼 먹는 겁니까?”
“예. 돈을 먼저 지불하시고, 원하는 만큼 드시면 됩니다.”
“하하. 재미있군요.”
그가 어떤 자인지 모르기에, 곽휘운이 직접 그를 안내했다.
혹여 그가 나쁜 마음을 먹고 온 사람이라면, 막을 수 있는 자는 자신뿐이었으니 말이다.
“여기 자리에 앉아서 드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다행히 미남자는 여타 다른 손님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자리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오. 생각보다 맛이 좋군.”
이래저래 음식을 칭찬하며 먹는 미남자.
곽휘운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아마도 신강에서 온 자겠지?’
젊은 나이에 저 정도의 내력.
신강에 있는 천마신교에서 온 자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필히 보통 신분은 아닐 터였다.
“저, 여기 뭐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예.”
“정천맹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정천맹의 위치를 묻는 미남자.
곽휘운은 그 순간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렇군. 정천맹은 천마신교가 만든 것이군.’
물론 당연히 아직은 추측일 뿐이었다.
이 미남자가 정말 신강에서 온 것인지도 확실치 않고, 정천맹의 뒤에 정말 천마신교가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오랜 곽휘운의 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것은 확실하다고 말이다.
“저희 객잔을 나가셔서, 큰 길을 따라 쭉 가시면 아마 정천맹이 보이실 겁니다.”
“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왜 객잔에서 일을 하시는지요?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손에 꼽을 만큼 강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곽휘운은 쓰게 웃었다.
자신이 상대를 알아보았는데, 상대가 자신을 못 알아보았을 리 없었다.
“사정이란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제가 괜히 시간을 뺏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미남자는 정중히 인사를 한 뒤, 곽휘운이 알려 준 대로 길을 떠났다.
“후우.”
곽휘운은 긴장의 끈을 그제야 조금 놓을 수 있었다.
“객주님, 무슨 일 있으세요?”
휘운객잔을 둘러보던 백리화는 처음 보는 곽휘운의 표정을 보고는 다가와 물었다.
지금까지 백리화가 봤던 곽휘운의 표정 중 가장 긴장되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하하. 거대한 화탄이 객잔에 왔다가 갔습니다.”
“화탄이요?”
“예. 아주 거대한 화탄이요.”
백리화는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눈치로 무언가 큰일이 있을 뻔했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필요했다면 곽휘운이 설명을 해 주었을 테니까.
* * *
무림신성대전을 앞둔 시점.
곽휘운은 남주학과 제갈중천을 따로 불렀다.
“오늘 너희를 부른 건 신성대전 전에, 실력을 한번 점검해 볼까 해서 불렀다.”
최근 둘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곽휘운이었다.
낮에는 객잔 일로 바쁘고, 저녁에는 객잔 식구들을 봐주느라 바빴다.
“오랜만에 객주님이랑 손을 섞어보는 것 같아요.”
“흠. 정말 오랜만인 것 같긴 하군.”
둘의 말에 곽휘운이 쓰게 웃었다.
어찌 보면 둘은 자신을 보고 이렇게 따라온 것인데, 너무 무신경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미안하다.”
“에이 뭘 미안해하세요. 객주님이 제일 바빴다는 거 다 알고 있는데요.”
“맞소.”
남주학과 제갈중천은 곽휘운에게 조금의 서운함도 없었다.
지금의 둘을 만들어 준 사람이 곽휘운이었고, 지금 객잔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곽휘운이라는 것도 알았으니 말이다.
“그럼 저부터 시작할까요?”
“그래.”
남주학이 밝은 표정으로 먼저 앞으로 나섰다.
남궁태산에게 수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하며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그때 얻은 깨달음을 곽휘운에게 보여 줄 아주 좋은 기회였다.
당연히 표정이 밝을 수밖에.
“갈게요.”
스으으.
남주학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아니,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까지 변했다.
확실히 남주학의 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향상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확실히 좋아졌구나.”
캉!
곽휘운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서는 찔러 들어오는 남주학의 일검.
하지만 곽휘운은 검으로 가볍게 공격을 쳐 내었다.
예의 구름은 없고, 검으로 직접 상대하는 곽휘운이었다.
스스스스.
갑자기 곽휘운을 중심으로 옅은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휘운검법의 구름과 비슷한 듯 조금 다른 모습.
- 귀혼신공. 제 삼초. 귀무(鬼霧).
안개의 정체는 바로 남주학의 무공이었다.
이 안개는 지금 남주학의 영역.
캉! 캉! 캉!
안개 속에서 갑자기 검격이 곽휘운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보통 무인이라면 어디서 공격이 날아오는지도 모른 채 그대로 검에 찔렸겠지만, 곽휘운은 정확히 남주학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 귀혼신공. 제 사초. 귀혼곡(鬼魂哭).
곽휘운을 뒤덮은 안개가 심상치 않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없이 많은 검격이 곽휘운을 찔러 들어왔다.
- 휘운검법. 제 사초. 막.
카가가가각!
곽휘운의 구름이 사방을 휘돌며 남주학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내었다.
그와 함께 남주학의 안개마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모습을 드러내는 남주학.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져 있었다.
“후욱, 후욱.”
남주학은 꽤나 많은 양의 내공을 한 번에 소모한 상태였다.
귀무를 유지하는 것도 상당한 내공이 소모되는데, 거기에 더해 귀혼곡의 초식까지 쓰면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내공이 소모되었다.
“귀무를 지속하는 시간도 그렇고, 귀혼곡도 훨씬 위력적으로 변했구나.”
“후웁. 아직 멀었는걸요.”
아무리 많은 영약을 먹어 내공을 쌓았어도, 깨달음이 없다면 내공을 쓰는 효율이 다르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남주학은 확실히 전에 비해 내공을 쓰는 효율이 달라졌다.
예전 남주학은 귀혼곡을 썼을 때 서너 개의 검격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족히 수십은 되어 보이는 수의 검격을 만들어 내었으니.
짧은 시간에 많은 발전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다음은 나일세. 비키시게.”
제갈중천이 남주학을 밀어내고 곽휘운의 앞에 섰다.
남주학은 몸에 힘이 다 빠져 뭐라 하지도 못하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나도 지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 전력으로 가겠소.”
“그래.”
제갈중천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주학의 무공이 은밀하고 쾌속하다면, 제갈중천의 무공은 강대하고 무거웠다.
완전 극과 극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둘.
- 거력금강권. 제 이초. 단해(斷海).
쿠우우우.
거력금강권의 권격이 아주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중첩해서 곽휘운에게 쏟아졌다.
일격 일격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권격.
쾅! 쾅! 쾅!
곽휘운은 제갈중천의 권격을 막을 때마다 울려오는 충격파에 미소 지었다.
단순히 위력만 오른 것이 아니었다.
- 거력금강권. 제 삼초. 파천.
곽휘운을 향해 오는 수많은 권격들 사이사이에 또 다른 초식이 숨어 있었다.
일순 엄청난 위력의 충격이 검을 타고 밀려왔다.
완전히 같은 자세로 펼쳐지는 전혀 다른 위력의 초식.
“중천. 너도 길을 찾았구나.”
제갈중천의 거력금강권은 분명 좋은 무공이었다.
하지만 꽤나 단점도 명확한 무공이었다.
초식이 너무나 단순하고, 공격을 펼치기까지 준비 기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었다.
제갈중천은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지금 곽휘운에게 보여 주었던 것처럼 초식과 초식을 섞었다.
거기에 더해 상대에게 더욱 더 혼란을 주기 위해 모든 동작을 같도록 연습했다.
같은 동작에서 전혀 다른 위력의 초식이 뻗어 나온다는 것은 상대하는 입장에서 매우 까다로울 테니 말이다.
“앞으로 내가 제대로 다듬어 주마.”
“네!”
“좋소.”
* * *
정천맹의 가장 심처.
그곳에는 지금 세 명의 사람이 자리해 있었다.
정천맹주와 정천맹 항주 지부장, 그리고 곽휘운과 만났던 미남자.
“교마께서 이런 곳에서 무슨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계신지 궁금해서 나와 봤습니다.”
“흘흘. 소교주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천맹 항주 지부장을 교마라 부르는 미남자.
그리고 항주 지부장은 미남자를 소교주라 불렀다.
항주 지부장은 천마신교의 팔마(八魔) 중 하나인 교마(驕魔)였고, 미남자는 천마신교의 소교주의 자리에 있는 소천마(小天魔) 제석종이었다.
“오랜만에 신교에서 나오니 좋습니다.”
“며칠 여기서 지내다 가시지요.”
“하하. 감사합니다.”
정천맹주는 그런 둘 사이에서 말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한참 동안 교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제석종은 이야기가 다 끝나갈 때쯤 옆에 가만히 있던 정천맹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교마께서는 이런 불량품을 가지고 뭘 하시는 겁니까?”
“흘흘.”
정천맹주를 향해 거침없이 불량품이라 말하는 제석종.
교마는 그런 제석종의 말에 그저 웃기만 하였다.
제석종의 말에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취가 더욱 늘었구나.’
교마가 천마신교에서 이곳으로 오기 전에도 이미 괴물같았던 제석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강해진 듯싶었다.
그가 불량품이라고 하면 그런 것이었다.
물론 교마와 정천맹주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정천맹주는 교마가 나름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었다.
제석종에 비하면 많이 부족할지라도, 불량품이라고 평가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저에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정천맹주의 입이 열렸다.
다분히 도전적인 말투와 눈빛을 제석종에게 보내고 있었다.
“독고영. 그만하게.”
교마는 다급하게 정천맹주의 진짜 이름을 부르며 제지했다.
지금의 독고영은 분명 교마 자신이 가늠하지 못할 만큼 실력이 늘었지만, 아직 제석종에게는 부족할 터였다.
제석종은 일단 검을 뽑으면 자비를 두지 않았다.
여기서 독고영이란 자를 잃기에는 아쉬웠다.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실력을 쌓는 게 먼저 일 듯하군.”
말을 하고는 뒤돌아 나가는 제석종.
그에게 독고영은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불량품일 뿐이었다.
“실력은 보시고 말씀하시죠.”
“귀찮군.”
어느새 쌍검을 뽑아들고 제석종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독고영.
교마는 그 모습에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여기서 독고영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과연 독고영이 어디까지 보여 줄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검을 뽑아 제석종에게 겨눈 이상, 교마가 말린다고 될 상황이 아니었다.
천마신교는 그런 곳이었고, 그런 곳에서 군림하는 소교주라는 지위는 이런 오만을 허용할 위치가 아니었다.
“교마님께서 나름 신경을 쓰는 것 같으니, 이쯤에서 넘어가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