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44화>
곽휘운이 구상했던 새로운 휘운객잔은 사람들의 큰 관심 속에 매일 매일이 만석이었다.
식재료가 부족해서 장사를 못할 정도.
천종하는 혼자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혼자 처리했는데, 조금도 힘들어하거나 지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금 최고로 기분이 좋아보였다.
‘음식은 천 숙수님께서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곽휘운의 이 말에 천종하는 유감없이 자신의 솜씨를 모두 발휘했다.
재료는 그날그날 가격에 따라 다르게 왔는데, 그 덕분에 오히려 더욱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손님들도 매일 달라지는 음식에 오히려 더욱 좋아했다.
거기에 더해 매일 하는 무공 수련이 힘을 더해 주었다.
일반인이라면 진즉 지쳐 버렸을 테지만, 그간 착실히 해 온 무공 수련이 그의 몸에 활력을 더해주었다.
“소윤아! 저쪽!”
“알았어!”
그리고 이번부터 일하게 된 소정, 소윤 자매.
그녀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무공 고수를 보는 듯했다.
조금의 낭비 없이 움직이며,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다들 밝고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군요.”
“네. 확실히 다들 표정들이 밝아 보여요.”
곽휘운과 백리화는 객잔과 백리세가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점검하고 있는 중이었다.
둘이 이렇게 점검을 하는 이유는 최근 무림맹에서 온 인편 때문이었다.
‘무림신성대전을 백리세가에서 개최하길 희망함.’
무림신성대전.
이번 정천맹의 개파 대전에 맞서기 위해, 무림맹에서 개최하는 후기지수들 간의 비무 대회였다.
아무래도 정천맹을 의식한 대회이다 보니, 정천맹의 바로 앞에 있는 백리세가가 개최지로 낙점되었다.
다만 아직 백리세가가 많은 수의 사람을 받을 처지는 아니다 보니, 휘운객잔은 물론 월영루까지 동원해 사람들을 수용하기로 했다.
“백리세가가 처음으로 무림인들에게 나서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오늘부터 조금 더 박차를 가해서 수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곽휘운은 백리세가의 식구들이 무림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조금 더 준비를 하기로 했다.
지금도 충분히 무림을 놀라게 끔은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조금 부족했다.
무림에 백리세가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말이다.
“다들 모이셨습니까?”
저녁 백리세가에 모든 식구들이 모였다.
소정, 소윤 자매에 장도웅까지 더해지자, 꽤 인원이 많아 보였다.
곽휘운은 이들에게 오늘 남궁태산이 주었던, 만영화유를 나누어 줄 생각이었다.
남궁태산이 준 것은 열 병이었지만, 곽휘운은 그것을 지금 무공 실력 별로 다시 한 번 나누었다.
“나도?”
장도웅은 자신에게까지 전해지는 만영화유에 의문을 섞어 되물었다.
자신은 백리세가에 소속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지금 단계에 영약은 큰 소용도 없었다.
“식구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드리는 겁니다.”
식구.
장도웅은 식구라는 말이 싫지는 않았다.
평생을 어딘가에 소속감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이곳 휘운객잔의 사람들은 다들 재밌었다.
“어머? 설마 감동해서 우는 거 아니죠?”
특히나 장도웅에게 살갑게 대하는 이가 있었는데, 바로 황혜린이었다.
황혜린은 말도 없고 무뚝뚝한 장도웅을 놀리는 것을 즐거워했다.
“아니다.”
장도웅은 여전히 짧고 무뚝뚝한 대답을 했지만, 황혜린은 그런 묵도를 보면서 웃었다.
그녀의 눈에는 장도웅의 감정의 변화가 보였으니 말이다.
“자자. 다들 한입에 쭉 들이키시고, 바로 운기를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뒤에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곽휘운의 말에 다들 비장하기까지 한 표정을 하고는 만영화유를 입에 털어 넣었다.
화아악.
지난번 천삼단을 먹었을 때보다 훨씬 많은 내공이 각자의 몸 안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곽휘운은 일단 소정, 소윤자매부터 운기를 도와주었다.
아직 무공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주 미량의 만영화유를 주었지만, 그것도 사실 엄청난 양이었다.
곽휘운은 그녀들에게 착 붙어서 손수 내공의 길을 짚어 주며 끌어 주었다.
그렇게 몇 차례 반복하자, 자매는 스스로도 무리 없이 운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 다들 나쁘지 않아.’
다들 순조롭게 운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
휘우우웅.
그런데 그때 운기를 하고 있는 백리화의 주변에 바람이 돌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살짝 떠오르는 백리화의 몸.
곽휘운은 그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벌써?’
지금 백리화의 모습을 보건데, 절정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절정 무인이 된다는 것은 꽤 큰 의미다.
자유자재로 검기를 다룰 수 있다는 것.
이제 정말 어엿한 고수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평생을 수련한 무인도 밟을까 말까 한 절정의 경지를, 아직 한참 젊은 나이의 백리화가 밟은 것이다.
제대로 무공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곽휘운이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휘우우우웅.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백리화의 주위를 돌던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상황.
‘주화입마인가!’
곽휘운은 빠르게 백리화에게 다가갔다.
점점 더 빠르고 거칠어지는 기의 바람.
주화입마의 초기 단계인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갑자기 너무나 빠르게 내공이 늘어나서 일어난 듯싶었다.
“흐읏.”
그리고 그것을 반증해 주듯이 백리화의 입에서 터지는 작은 신음.
지금 그녀는 몸을 거세게 휘몰아치는 내공과 싸우는 중이었다.
그녀의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 내공.
이대로라면 온몸을 제멋대로 휘젓는 내공 탓에 기혈이 뒤틀릴 터였다.
사아악.
그때 백리화의 등에서부터 시원한 느낌을 주는 내공이 흘러 들어왔다.
시원한 내공은 제멋대로 날뛰던 백리화의 내공들을 바로잡으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했다.
순식간에 내공이 진정되고, 제대로 운기를 할 수 있게 된 백리화.
백리화는 이 내공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곽 객주님께 또 도움을 받았어.’
백리화는 감사의 인사는 일단 안전하게 운기를 끝마친 뒤 하기로 했다.
“후우.”
그렇게 겨우 운기를 끝낸 백리화는 천천히 눈을 떴다.
땀으로 푹 절어 있는 몸.
백리화는 일단 얼른 곽휘운을 찾았다.
“곽 객…….”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느낌은 어떠십니까?”
백리화가 곽휘운을 찾기 위해 부르려던 순간.
어느새 곽휘운이 백리화의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 인사 말고, 저는 절정 무인이 되신 소감을 여쭤보았습니다만?”
“아! 그, 그게.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백리화는 솔직히 자신이 절정의 경지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것도 몰랐다.
그저 내공이 흐르는 길이 조금 넓어지고, 몸이 가벼워졌다는 것 정도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직 다른 분들은 운기를 하시는 중이니, 잠깐 자리를 옮겨서 시험해 볼까요?”
“네.”
다른 객잔 식구들은 다들 아직까지 운기에 심취해 있었다.
다들 안정적으로 운기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곽휘운과 백리화는 조금 떨어진 공터에 마주보고 섰다.
“자. 백리 가주님. 모든 힘을 다해서 무공을 펼쳐보십시오.”
“네!”
스릉.
백리화의 검이 뽑혀져 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예리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물론 본인은 아직 자각하지 못하는 듯싶었지만 말이다.
“갈게요!”
“예.”
탓.
백리화가 가볍게 발을 구르며,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펼쳐지는 백화환영검.
수없이 눈을 어지럽히는 검의 환영이 곽휘운을 둘러쌌다.
이전에 비하자면 안에 담긴 힘도, 환영의 수와 정교함도 월등해졌다.
“아주 좋아지셨습니다.”
“감사해요! 하압!”
백리화는 지금 곽휘운에게 무공을 펼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것이 환영이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
곽휘운의 입가에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이대로라면, 이번 무림신성대전의 주인공은 백리 가주님이 되겠어.’
곽휘운은 이번 무림신성대전이 아주 기다려졌다.
필히 대전에 참여한 모든 무인들이 깜짝 놀랄 것 분명했다.
* * *
“흐음. 여기가 항주란 곳인가. 아주 좋군.”
주위의 모든 시선이 집중 될 만큼의 미남자.
하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듯한 그의 미모에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시선을 옮기지 못했다.
물론 미남자는 그런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흐음. 정천맹이었던가? 교마가 계신다던 곳이.”
미남자는 이곳이 처음인지 길을 헤매는 듯싶었고, 이내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때 미남자의 앞을 가로막는 다섯 인영.
“크흐흐. 아주 곱상한 놈이군.”
“형님. 비싸게 팔릴 것 같습니다.”
그들의 정체는 항주오마.
그들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자들로, 이 항주 일대에서 악명 높은 자들이었다.
하는 짓에 비해 고강한 무공실력 덕에 지금까지도 잡히지 않고 활동하는 자들이었다.
“자. 얌전히 잡히면 덜 아프게 해 주마.”
항주오마는 미남자를 포위하듯 완전히 둘러쌌는데, 미남자는 그런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언가 고민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흠. 배고프군. 근처에 객잔이 있으면 밥이나 먹고 가야겠어.”
완전히 항주오마는 무시하는 듯한 말.
“이놈!”
최대한 상처를 내지 않으려 했던 항주오마지만, 조금은 벌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주먹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스슥.
미남자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지나쳐 걸었는데, 항주오마는 마치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린 듯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미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
툭.
그들 다섯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너무나 허무하게 항주에서 악행을 일삼으며 날뛰던 항주오마가 최후를 맞이했다.
도대체 언제 그들을 벤 것일까?
답은 미남자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흠. 저기 객잔이 있군.”
방금 전 아무도 모르게 항주오마를 처리한 미남자는 눈앞에 보이는 객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