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43화 (43/203)

<휘운객잔 43화>

그것은 바로 화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런 짓을 할 곳은 단 한 곳밖에 없었다.

‘빠르기도 하군.’

필히 악중지의 짓일 터였다.

그리고 이 생각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이 화탄을 던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추적했다.

곽휘운이 화탄을 얼려 버리자, 깜짝 놀라며 허둥지둥 도망치듯 사라지는 인영 하나.

곽휘운은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인영은 악중지의 기루가 아니라, 곧바로 악가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부딪칠 거 지금 끝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악중지를 건드려 놓은 이상, 악가장과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것.

곽휘운은 차라리 지금 빠르게 일을 끝내 놓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 다시 화탄이 객잔으로 날아들지 모르니 말이다.

싸아아아.

곽휘운은 악가장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며 들어갔다.

최대한 살생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웬만한 자들은 이 기세를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기절할 테니 말이다.

“어억!”

“컥!”

곽휘운은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갔고, 문지기들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다.

멀찍이서 이 기운을 느낀 이들은 도망치기 바빴고, 곽휘운은 악가장의 중심부까지 별다른 방해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멈춰라!”

그리고 악가장의 장주가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쯤.

드디어 곽휘운을 막아서는 이들이 나타났다.

“무슨 일로 악가장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그건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그들의 한참 뒤, 악중지가 인상을 쓰며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중늙은이가 한 명 서 있었다. 그가 바로 악가장의 장주인 악종후.

그는 자식사랑으로 아주 유명했는데, 악중지가 곽휘운에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휘운객잔으로 화탄을 날리게끔 했다.

그런데 멀쩡한 모습으로 악가장으로 쳐들어온 곽휘운을 보고는 화탄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것을 알고, 다른 방법으로 그를 벌하기 위해 악가장의 최고수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제 아무리 소빙룡이 대단하다 한들, 저들 모두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악종후는 정천맹의 개파 대전에서 곽휘운이 엄청난 무위를 보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련에서의 강함일 뿐.

죽음이 오고가는 실전에서는 다를 터였다.

지금 악가장에 있는 고수는 모두 죽음을 넘나드는 싸움을 경험한 실전의 고수들.

이들은 이기기 위해, 상대를 죽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이들이었다.

“자. 뭣들 하십니까? 저를 죽이려는 것 아닙니까? 시작하시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말하는 곽휘운.

악가장의 무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곽휘운을 비웃었다.

저런 자만이 바로 젊은 고수들의 약점이었다.

촤악.

슈욱.

곽휘운을 향해 암기와 검기 등 수많은 공격이 날아왔다.

모두 그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수였다.

거기에 더해 그저 무차별적인 공격 같지만, 치밀하게 짜여 있는 합격이었다.

휘우우우웅.

곽휘운을 중심으로 구름이 퍼져 움직이기 시작했다.

- 휘운검법. 제 삼초. 압.

쿠웅.

곽휘운을 향해 날아오던 암기와 검기가 구름에 닿자마자 땅바닥으로 쳐 박혔다.

그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이 허망할 만큼 쉽게 막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멍청하게 서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사삭.

재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지며, 다시금 곽휘운을 사방에서 압박해 나갔다.

방금 전 곽휘운의 무공을 보았기에, 이번에는 최대한 근접해 직접 무기를 찔러 들어왔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은밀하게 암기와 독이 뿌려졌다.

“가까이 붙으신 것은 큰 실책을 범하신 겁니다.”

쿠궁.

“으억!”

“크억!”

달려들던 이들이 당황스러운 신음과 함께, 갑자기 모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몇몇은 아예 네발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양새.

멀쩡히 서 있는 자는 곽휘운 말고는 없었다.

“크어억!”

“크흡!”

그들은 온몸의 힘줄이 튀어나오고, 눈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힘을 끌어 모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점점 더 강해지는 압력.

그들은 모든 내공을 다 끌어 올렸지만 저항할 수 없었고, 결국 모든 내공을 다 써서 탈진해 버리고 말았다.

“우웩!”

“쿨럭!”

입에서 피를 크게 내뱉는 그들.

모두 큰 내상을 입어, 한동안은 제대로 무공을 펼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저벅. 저벅.

곽휘운은 그들을 뒤로하고, 악종후, 악중지 부자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다가가는 곽휘운.

악중지는 그 모습에 사색이 되었지만, 악종후는 아직까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스르륵.

갑자기 곽휘운의 앞에 그림자 하나가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찔러 들어오는 일격.

캉!

곽휘운은 검으로 그 일격을 쳐내었다.

이렇게 검으로 직접 쳐 내는 것도 오랜만인 듯싶었다.

“확실히 알려진 것하고는 다르군.”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

대충 뒤로 묶은 긴 머리에 얼굴에 가득한 흉터 자국.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져있는 기다란 창 한 자루.

곽휘운은 직감적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낙룡창객님을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낙룡창객(落龍槍客) 마춘성.

그의 별호에 들어간 낙룡에서 알 수 있듯,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그 당시 무림오룡 중 한 명을 꺾고 무림에 이름을 날렸다.

특히 그는 끊임없이 상대를 찾아다니며 싸우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하여 악가장에 머물고 있을 줄은 아마 아무도 생각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악종후의 표정 변화가 없던 이유도 바로 이 낙룡창객을 믿고 있어서였다.

“돈도 받는데다가, 실컷 싸우기에 딱 이거든.”

악가장에는 수많은 불청객이 찾아왔고, 그들은 나름 무공도 고강한 이가 많았다.

낙룡창객은 그중 가장 강한 자만 골라서 싸워 주고, 그 대가로 많은 돈을 받았다.

그에게 이곳 악가장은 최적의 일자리였다.

“여길 지나려면 나를 쓰러트리면 된다네.”

자세를 잡는 낙룡창객.

강렬한 투기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곽휘운이 엄청난 강자라는 것은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요.”

촤자자작.

얼어붙으며 반짝 반짝 빛을 내는 얼음 구름.

상황을 따지지 않고 본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낙룡창객은 저것이 얼마나 무서운 위력을 낼지, 벌써부터 몸이 가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슉.

낙룡창객은 이 떨림을 떨치기 위해, 곧바로 공격해 들어갔다.

전방을 가득 채우는 창영.

곽휘운의 구름을 꿰뚫으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 휘운검법. 제 삼초. 압.

쿠궁.

곽휘운에게 전진하던 창영이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낙룡창객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

휘이이익.

낙룡창객의 창이 마치 뱀처럼 휘어 움직이며, 다시금 곽휘운을 향해 쇄도했다.

구름의 압력을 마치 요리조리 피하면서 움직이는 듯한 모습.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서걱.

낙룡창객의 창이 그대로 깔끔하게 잘렸다.

하지만 창이 잘렸음에도 당황치 않는 낙룡창객.

입가에는 작은 미소까지 지어져 있었다.

“끝이다.”

그에게 방금 전의 공격은 미끼에 불과했다.

진짜는 은밀하게 움직이며 상대의 뒤를 노리는 공격이었다.

지금까지 이 일격으로 이긴 상대만 해도 수십에 달했다.

그만큼 자신 있고,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콱.

“흠. 꽤나 약은 수를 쓰시는 군요.”

하지만 낙룡창객의 이 공격은 너무나 손쉽게 곽휘운에게 막혔다.

그냥 막힌 것도 아니고, 곽휘운의 손에 잡혀 버렸다.

“흡!”

지금까지 여유롭던 낙룡창객이 놀람의 신음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는 재빨리 몸을 뒤로 날렸다.

일단 이 구름의 영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서걱.

하지만 낙룡창객이 채 구름을 벗어나기도 전.

곽휘운의 참격이 날아들었다.

낙룡창객은 재빨리 대만 남은 창으로 막아 보았지만, 그대로 창대와 함께 베어져 버렸다.

“더 남은 것이 있습니까?”

낙룡창객마저 쓰러진 상황.

곽휘운은 여유로운 미소로 악종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악종후.

그는 엄청난 거금을 주고 섭외한 낙룡창객이 이처럼 쉽사리 진 것에 화가 난 상황이었다.

“쯧. 돈이 아까워 죽겠군. 더 남은 것이 있냐고 물어봤나? 없네.”

당당하게 말하는 악종후.

그는 곽휘운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만약 자신을 죽일 것이라면, 이미 죽였을 테니까.

“원하는 게 뭔가?”

“역시. 빨라서 좋군요.”

곽휘운은 차가운 눈으로 악중지를 한번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악중지.

“악중지의 신변 일체와 기루의 폐쇄. 그리고 정천맹 손절.”

악가장이 정천맹과 물밑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곽휘운이었다.

“흠. 좋네. 받아들이지.”

“아버지!”

“닥치거라! 네놈 때문에 악가장이 무너질 뻔했다. 너는 이제 내 아들이 아니니 그렇게 알거라.”

평소 자식에게 더없이 관대한 악종후였지만, 끊어 내야할 때는 가차 없었다.

그는 곽휘운의 말에 빠르게 득실을 계산했고,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 득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순간 그대로 실행했다.

아직 악종후에게는 자식이 둘 더 남아 있었다.

하나의 잘못으로 모두를 망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툭.

곽휘운은 악중지의 혈을 제압한 뒤, 그대로 악가장을 빠져나왔다.

초토화된 악가장을 바라보는 악종후.

이것이 지금 단 한 명에 의해서 일어난 사단이었다.

그것도 그 당사자는 땀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다.

“정천맹을 손절하는 건 말하지 않았어도 했겠군.”

정천맹과의 손절을 함으로 보는 손해보다도, 곽휘운을 적으로 두는 것이 훨씬 손해라는 것을 바로 간파했다.

물론 무림에 악가장 정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고수는 꽤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여유롭게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자는 필히 열 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다시 정비하고, 정청맹과의 거래를 끊어라.”

“예.”

어느새 악종후의 옆에 나타난 부하가 고개를 숙이며 재빠르게 명령의 이행을 위해 움직였다.

* * *

곽휘운은 악중지를 데리고, 그가 운영하던 기루로 향했다.

완전히 혈을 제압당해 꼼짝도 못하는 악중지.

곽휘운은 그런 악중지를 기루의 기둥에 꽁꽁 묶어 두었다.

“자. 이 자의 처벌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곽휘운의 말에 기루의 기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녀들은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그치만 악가장의 보복은 어쩌구요?”

“하하. 그건 이미 처리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떠드는 동안 기루에 사람 하나가 찾아 들어왔다.

기녀들도 익히 아는 악가장의 사람이었다.

“오늘부터 기루는 폐쇄하고, 악중지는 더 이상 악가장의 사람이 아님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곳에 억지로 끌려온 기녀들에게는 보상금을 전장으로 넣어 두었으니, 찾아가길 바란다. 이상.”

악가장의 사람은 악종후의 직인이 찍힌 서류를 기루의 벽에 걸어 두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곽휘운은 악중지의 혈을 풀어 주었고, 그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악중지다! 내가! 으아악!”

“이 나쁜 놈!”

기녀들의 분풀이가 악중지에게 향했는데, 그녀들은 정확히 악중지의 낭심만을 걷어찼다.

아마도 모든 처벌이 끝난 후, 악중지는 남자로서의 삶은 끝날 듯싶었다.

“어쩌면 그에게 죽음보다도 이게 나을지 모르겠어.”

곽휘운은 악중지와 기녀들을 놓아두고는 객잔으로 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