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42화 (42/203)

<휘운객잔 42화>

백리화가 알고 있는 이들 중, 가장 믿을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어릴 때부터 백리화와 함께 자란 친구들이었는데, 영월루의 현소월과도 친한 사이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녀들이 지금 다른 곳 있다는 것이었다.

“잡혀 있다?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악가장에 강제로 끌려가서 일하고 있어요.”

악가장(惡家庄).

절강성에서 가장 힘 있는 곳을 묻는다면 꼭 거론되는 곳이었다.

그들은 무림세가는 아니었지만, 어마어마한 자금력으로 수많은 무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도박, 향락, 암살 등. 돈이 되는 모든 일을 했으며, 그에 따라 그들을 노리는 이들도 많았기에 돈으로 무인을 사서 모았기 때문에 많은 무인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악가장은 절강성에서 손꼽는 힘을 갖춘 곳이 되었다.

아마도 보유한 고수들의 수로만 따지자면, 절강 제일이라 해도 크게 부족하지는 않을 정도였다.

“무슨 연유로 그런 것입니까?”

“악가장의 둘째 공자의 마수에 걸렸거든요.”

악가장에는 세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들 모두 성품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지만, 특히 둘째 악중지는 그중 제일이라고 소문이 난 자였다.

그는 힘없는 여인들을 유린하는 것을 즐겼는데, 그 방법도 조금 독특했다.

강제로 여인들을 유린하지는 않았고, 그녀들을 돈으로 완전히 옭아맨 뒤에 그녀들이 스스로 굴복하도록 만들었다.

소정, 소윤 자매도 그렇게 그의 마수에 걸려 버렸고, 그에게 굴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처지였다.

“저랑 소월이가 돈을 보탰지만, 워낙에 터무니없는 금액이라…….”

곽휘운은 대충 사정을 이해했다.

‘돈과 힘이 있으면 꼭 있는 놈들이지.’

무림맹에도 비슷한 짓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럼 저희가 가서 구해 오면 되겠군요.”

“하지만, 정천맹에 악가장까지 겹치면 너무 힘드실 거예요.”

백리화는 지금 휘운객잔과 백리세가가 처한 상황을 알았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모두 감내하고 있는 사람이 곽휘운이라는 것도 말이다.

악가장은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곳이다.

그곳까지 적으로 돌린다면, 곽휘운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너무나 많아진다.

“백리 가주님은 지금 백리세가를 너무 낮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곽휘운이 평가하는 지금의 백리세가는 절대 약한 곳이 아니었다.

자신은 논외로 치더라도, 모두들 한가락하는 인물들이었다.

미면귀 남주학, 괴력권 제갈중천, 묵도 장도웅.

이 셋만으로도 이미 웬만한 중소문파 이상이었고, 거기에 객잔 식구들도 있었다.

황혜린은 최근 묵도의 지도로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었고, 춘삼, 추삼, 천종하는 삼류의 실력을 벗어나 있어, 자신의 몸 정도는 충분히 지킬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을 뿐, 백리화도 일류를 넘어선 고수가 되어 있었다.

절대적인 인원수가 부족할 뿐, 고수의 수로는 절대 적은 수는 아니었다.

“설마 저 혼자 짊어지게 하실 생각이었던 겁니까?”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하하. 농담입니다. 당황하는 백리 가주님을 보고 싶어서 한번 해 보았습니다.”

곽휘운은 당황하는 백리화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어준 후,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어, 어디가세요?”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지 않겠습니까? 악가장에 다녀오겠습니다.”

* * *

악중지는 자신의 기루를 둘러보며,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직접 하나 하나 데려온 여인들이었다.

악중지는 그녀들이 보이는 분노, 혐오 등의 눈빛을 즐기며, 기루를 돌아다녔다.

“지난번에 데려온 둘은 아직도 버티고 있느냐?”

“예. 어찌나 독한지 절대로 몸은 안 팔겠답니다.”

“흥. 안 되겠군. 아깝지만 하나를 망가트려 놔야겠어. 그럼 말을 좀 듣겠지.”

“예. 공자님.”

“돈을 갚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줘야지.”

말을 하면서 비열하게 웃는 악중지.

과연 이번에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빌어댈지 너무나 궁금했다.

악중지는 그 표정을 보기위해 이런 짓을 하는 것이었다.

“내 앞으로 데려와.”

악중지의 명령을 받은 부하는 잽싸게 움직였고, 금방 악중지의 앞으로 똑같이 생긴 두 명의 여인이 붙잡혀 왔다.

“이거 놔!”

“이 천벌 받을 놈!”

그녀들이 바로 백리화가 말했던 소정, 소윤 자매였다.

그녀들은 지금 세상 험악한 눈으로 악중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막대한 빚을 지게 한 인물.

당연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지? 돈을 시일 내에 못 갚으면 기루에서 일하라고. 지금 벌써 몇 달을 기다려 줬는지 아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일하고 있잖아!”

“아니지. 지금 너희가 일해서 버는 걸로는 턱없이 모자라. 이제 빚이 세 배 더 불어났으니까.”

악중지는 빚을 빨리 갚게 해 준다면서 이곳에서의 일을 제안했고, 자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락했다.

자매가 하는 일은 기루를 이용한 뒤의 방을 치우는 일.

당연히 못 볼꼴도 많이 보았고, 일도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 이를 악물며 참고 버텼는데, 지금 와서 빚이 더 불었다니?

“이제 더는 못 갚아! 죽이든지 네 맘대로 해!”

“크흐흐.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스릉.

악중지의 말에 주변에 서있던 부하 중 하나가 칼을 뽑아들었다.

서슬퍼런 칼날에 두려움이 엄습하는 자매였지만, 최대한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손가락부터 잘라.”

“예.”

저벅. 저벅.

“꺅!”

자매 중 동생인 소윤의 손을 거칠게 들어 올리는 부하.

그 모습에 소정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들은 분명 소윤의 손가락을 자르고도 남을 자들이었다.

“제, 제가 할게요! 그러니까! 소윤이는!”

“아니 늦었어. 잘라 버려.”

악중지는 일단 손가락 하나쯤은 잘라 놓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효과가 훨씬 탁월했으니까.

그렇게 부하의 칼이 소윤의 손가락에 떨어지기 직전.

“후우.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훈풍과 같이 따듯한 목소리와 함께 새하얀 구름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곽휘운이라 합니다.”

* * *

곽휘운은 순식간에 악중지가 운영하는 기루에 도착했다.

그리고 딱 그 순간.

곽휘운은 뾰족한 비명을 들었고, 곧바로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웬 놈이냐! 돌아가라!”

악중지가 있는 곳을 지키고 서있던 무인들이 갑자기 등장한 곽휘운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조금 전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을 받은 참이었다.

“시간이 없는 것 같아서.”

쩌저적.

곽휘운을 막아선 무인들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곽휘운은 그들을 그대로 지나쳐, 소리가 들려온 곳에 당도했다.

그리고 곽휘운은 지금 고초를 당하고 있는 둘이 백리화가 말했던 소정, 소윤 자매라는 것을 알아챘다.

“너는 뭐냐!”

악중지는 지금 자신의 흥을 깨어 버린 곽휘운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딱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는데, 그것을 방해받은 것이었다.

당연히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돈 주고 고용한 놈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아. 밖에 계신 분들은 제가 잠시 쉬게 해 두었으니, 나타나지 못하실 겁니다.”

악중지는 갑자기 차올랐던 화가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밖에 있는 자들을 모두 제압했다고?’

그래도 나름 실력은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리도 나지 않게 그들을 모두 제압했단 말인가?

“처리해!”

악중지의 외침에 곳곳에 숨어 있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각기 다른 무기를 쥐었지만, 하나같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합을 맞춰 본 듯 자연스럽게 곽휘운을 둘러쌌다.

촤라락.

그리고 유성추가 곽휘운에게 날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그들의 합격이 시작되었다.

아니, 시작되려 했다.

서걱.

단 한 번의 소리.

그리고 곽휘운을 둘러싼 무인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악중지는 물론, 소정, 소윤 자매도 이 광경에 입을 벌렸다.

“백리화 총관님의 말씀을 듣고, 여러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예?”

아직까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잘 안가는 소정, 소윤 자매였다.

방금 전까지 악중지에 의해서 큰일을 당할 뻔했는데, 갑자기 생면부지의 사람이 나타나서 백리화의 말을 듣고 찾아왔다니?

당연히 바로 이해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자, 저와 함께 가시지요.”

“머, 멈춰라!”

악중지는 소정, 소윤 자매를 데리고 가려는 곽휘운에게 소리쳤다.

지금 자신을 지켜줄 무인은 없었지만, 자신에게는 악가장이 있었다.

지금까지 악가장의 이름에 굴복하지 않은 자는 없었다.

“감히 네놈이 악가장의 일을 망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아마 무사할 것 같습니다만.”

분노로 인해 충혈 된 눈으로 곽휘운을 쏘아보는 악중지.

반면 곽휘운은 아주 평온하고 여유로웠다.

“자자. 가시지요. 빚은 제가 다 청산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정, 소윤 자매는 눈앞의 곽휘운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을 구해주었다는 사실과, 백리화를 안다는 점에서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차피 이곳에서 악중지에게 휘둘리느니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빚은 휘운객잔의 곽휘운 앞으로 보내 놓으십시오. 그럼.”

곽휘운은 그 말을 남기고, 소정, 소윤 자매를 데리고 기루를 벗어났다.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기루에서 악에 받친 악중지의 포효가 들려왔지만, 곽휘운은 깔끔히 무시하고 길을 재촉했다.

* * *

“소정, 소윤!”

“화아야!”

“흐아앙!”

휘운객잔으로 돌아온 곽휘운과 소정, 소윤 자매.

그들이 돌아오자마자 백리화가 재빠르게 나타났다.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재빠르게 얼싸안는 셋.

그리고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간의 일들을 풀어 놓았다.

“곽 객주님이 많이 힘을 써 주셨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하하. 아닙니다. 전혀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더 인사를 나누고, 백리화는 그녀들에게 여기서 일할 것을 제안했다.

“당연하지! 정말 열심히 할게!”

“응. 정말로 열심히 할게.”

백리화는 그녀들의 대답을 듣고는 곧바로 현재 휘운객잔과 백리세가의 전반적인 것들을 설명해 주고, 새롭게 문을 열 곳에 대한 설명도 해 주었다.

소정, 소윤 자매도 나름 이 바닥에 오래 있었기에, 금방 백리화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했다.

“그리고 이건 선택 사항인데, 무공을 배워 볼래?”

“꼭 배우고 싶어.”

“맞아.”

소정, 소윤 자매는 오히려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몸 하나는 스스로 건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일사천리로 일들이 처리되고 있을 때였다.

휘익. 툭.

객잔에 바깥에 무언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곽휘운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곧바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데구르르르.

객잔을 향해 굴러 오는 검은 물체.

곽휘운은 그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그 물체를 얼려 버렸다.

쩌저적.

완전히 얼어붙은 물체.

그리고 그걸 손으로 집어든 곽휘운의 입가에는 아주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곽휘운의 손에 들린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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