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40화>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에 찬 외침이 나왔다.
허공답보가 어떤 경지인가?
현 무림에 허공답보의 경지에 다다른 이는 아마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을 터였다.
그런데 정천맹측에서 그런 경지에 다다른 고수가 나타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으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로 눈을 어지럽혀 죄송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솜씨를 보여 보려 합니다.”
비무대 위에 올라 아주 여유 있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항주 지부장.
놀라운 것은 큰 목소리가 아님에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지부장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허공답보에 이어서 다시 한번 더 그의 내력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무림맹 측에서도 수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미 수락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부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분이 나오시겠습니까?”
이미 젊은 무인간의 대결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으니, 무림맹 측에서도 신성대가 아닌 다른 이가 나가야 할 터였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그때 곽휘운이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제가 상대여도 상관없으시겠지요?”
곽휘운을 지긋이 바라보는 항주 지부장.
그는 지난번에 무영검객과 곽휘운의 대결을 중단 시키면서 그의 힘을 어느 정도 보았다.
‘흠. 쉽지는 않겠군.
지부장은 이 대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젊은 무인과 어울리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물론 지부장은 생각과는 다르게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대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는 곽휘운도 미소를 지었다.
“자. 선공을 양보하지.”
지부장은 보는 눈들이 많은 만큼 무림의 관례를 따라 선공을 양보했다.
“가겠습니다.”
스릉.
뽑혀 나오는 검과 흩날리는 구름.
쾅!
곽휘운의 구름이 그대로 지부장을 향해 쇄도했고, 지부장은 가볍게 손을 털어 막아 내었다.
“흠.”
지부장은 저릿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가벼운 공방 같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런. 이러다 낭패를 당하겠어.’
촤자자작.
곽휘운의 구름이 얼어붙었고,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휘운(輝雲).
그리고 곽휘운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쾅!
지부장의 주먹과 구름이 부딪쳤고, 그때마다 엄청난 기파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곽휘운의 미소는 점점 더 짙어졌고, 지부장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 갔다.
부딪칠 때마다 점점 더 강해지는 곽휘운의 공격.
지부장은 지금 곽휘운이 자신을 상대로 간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건방지군.’
정말로 건방지다고 할 수 있었다.
‘나도 힘을 써 볼까.’
지부장도 무인이다.
곽휘운이 꽤 보기 드문 실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꼈으니, 상대해 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파지직.
지부장의 주먹에서 뇌전의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무림맹측도 정천맹측도 모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멸뢰신권인가!”
멸뢰신권(滅雷神拳).
오래전 무림을 제패했던 뇌제(雷帝)의 무공으로, 위력이 일 권을 내지를 때마다 천지가 요동칠 정도라고 하는 권법이었다.
뇌제가 죽은 후 완전히 절전 된 무공이라 알려졌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금 무림에 나타난 것이다.
“조심하게.”
- 멸뢰신권. 제 일초. 뇌룡쇄(雷龍碎).
지부장의 초식이 뻗어 나오면서 주변을 감싸던 곽휘운의 구름을 모조리 부수며 나아갔다.
- 휘운검법. 제 사초. 막.
쾅!
두 무공이 부딪치자, 천지가 떨어 울릴 정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계속되는 지부장의 공격.
곽휘운은 오로지 수비만을 할 뿐, 공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분명 계속해서 곽휘운의 구름들이 흩어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곽휘운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런!’
지부장은 뭔가 위화감을 느끼다가, 일순 자신의 주변에 아주 잘게 부서진 결정들이 흩날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결정화 된 구름들이 지부장의 공격마다 더욱더 작게 쪼개졌고, 이제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방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부장이 무언가 조치를 취하기도 전.
- 휘운검법. 제 일초. 파.
휘이이잉.
지부장을 중심으로 구름 결정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쩌적.
그리고 지부장의 옷깃부터 조금씩 얼어 가기 시작했다.
한서불침의 경지는 이미 오래전에 넘은 지부장.
그런데도 지금 강렬한 추위와 함께, 몸이 얼어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
파지지직.
몸이 어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부장이 내공을 끌어올리자 엄청난 뇌전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의 얼음이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이만 끝내지요.”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서걱.
휘몰아치던 구름 결정들이 칼날이 되어 지부장을 베었다.
하나같이 치명적인 혈이 있는 부위를 베고 지나가는 칼날.
그리고 그 부분이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지부장의 내공으로도 떨어지지 않는 얼음.
지부장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친구가 대단하군. 내가졌네.”
아무렇지 않은 듯 인자하게 말하는 지부장이었지만, 속에서는 놀라고 또 놀라고 있었다.
자신도 모든 힘을 다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곽휘운도 마찬가지였다.
지부장은 곽휘운이 사용하는 무공과 비슷한 무공을 몇 차례 본적이 있었다.
내공을 가시화하여 주변을 장악하는 무공.
분명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에 따른 단점도 큰 무공이었다.
바로 엄청난 내공의 소모.
특히나 지금의 곽휘운처럼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이만한 위력을 내기 위해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만큼의 내공이 필요할 터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과 싸우고 난 뒤임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정파에 엄청난 괴물이 하나 더 살고 있군.’
지부장은 확실히 곽휘운을 인정했다.
지난번 무영검객과의 싸움을 보고 그가 강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 자신이 본 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걸 어쩐다.’
이 정천맹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항주부터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항주에 엄청나게 큰 걸림돌이 하나 생겨 버렸다.
휘운객잔과 백리세가.
‘흠. 방법을 조금 달리해야 하나?’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법을 쓰기에는 손해가 막심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부장은 일단 이 생각은 이쯤으로 해두고, 마치 초상집과 같은 정천맹측으로 돌아갔다.
“미안하네. 맹주.”
“아닙니다. 제가 상황을 한번 반전시켜 보겠습니다.”
정천맹주는 솔직히 지부장이 질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도 지부장이 본 실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란 건 알았지만, 그래도 상대는 한참 젊은 무인.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곽휘운이라.’
정천맹주는 비무대를 내려가는 곽휘운을 눈여겨보았다.
정천맹주도 느꼈다.
앞으로의 정천맹의 발걸음에 가장 걸림돌이 될 것이란 걸 말이다.
휘리릭.
정천맹주가 자리에 일어나 가볍게 비무대 위로 몸을 날렸다.
이제 개파 대전의 마지막 대결만 남았다.
여기서 무언가 반전을 보여 주어야만 했다.
“안녕하십니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직접 한번 무림맹의 힘을 느껴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완전히 무림맹의 승리로 끝나가는 개파 대전.
무림맹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림맹 부맹주이신 거도왕 팽도혁님과 대련을 해 보고 싶습니다.”
“오오오!”
무림맹의 일방적인 승리가 예상되어 조금은 식어 가던 개파 대전의 열기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정천맹주의 실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거도왕의 무공을 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흥분하기에 충분했다.
무림에서 그만큼 이천, 팔왕, 십객이 가지는 이름값이 대단했다.
“흠! 좋소이다!”
사실상 무림맹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대련.
하지만 팽도혁은 이런 것을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휘익. 탁.
거대한 덩치와는 다르게 매우 사뿐히 비무대 위에 올라서는 팽도혁.
그저 서는 것만으로도 위엄이 자연스레 주변을 장악해 나아갔다.
거도왕이라는 이름이 그저 도박을 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바로 시작하지요!”
“알겠습니다.”
쿠구구구구.
둘의 기세가 허공에서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땅과 공기가 울리고 있었다.
터억.
팽도혁의 도가 뽑혀져 나와 손에 들렸다.
묵도 장도웅의 거도보다도 더욱 큰 크기.
과연 사람이 저걸 들고 휘두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에 맞서는 정천맹주의 무기는 두 자루의 검.
“쌍검술이라니!”
쌍검술을 사용하는 무인은 생각보다 무림에 보기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어려운 숙달과정에 있었다.
그저 검을 하나 다루는 것과 두 자루를 동시에 다루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팽도혁은 정천맹주의 쌍검술에 심히 흥미가 동했다.
고수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팽도혁도 어디 가서 밀리지 않을 만큼의 무공광이었다.
“갑시다!”
“하하. 가겠습니다.”
탓.
가볍게 몸을 날리는 정천맹주.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쌍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나의 검은 수많은 환영을 만들어 내고, 하나의 검은 그 사이 사이를 찔러 들어갔다.
양손이 각기 다른 무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것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능의 영역이었다.
“대단하군!”
팽도혁은 놀라는 와중에도 단 일격도 허용치 않고, 정천맹주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팽도웅의 도가 먼저 움직였다.
- 혼원벽력도. 제 일초. 개벽(開闢).
캉!
쌍검을 교차해 팽도혁의 도를 막아 낸 정천맹주.
거대한 힘에 조금 뒤로 밀려났다.
“역시 거도왕이십니다.”
“하하! 내 공격을 막아 내고 그렇게 조금 밀려난 사람은 오랜만이오!”
혼원벽력도는 극강의 무공.
웬만한 무인이라면 방금 팽도혁의 공격을 막기는커녕, 그대로 검째로 잘렸을 터였다.
그런데 정천맹주는 뒤로 조금 밀려난 것 정도로 막아 내었다.
이것만 보고도 정천맹주의 실력을 조금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저도 조금 진심을 다해 보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정천맹주의 기세가 날카롭게 변했다.
- 봉익쌍검술(鳳翼雙劍術). 제 일초. 비천(飛天).
쉭.
정천맹주가 마치 팽도혁을 그저 스치듯 지나갔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았고, 그 표정들은 순식간에 경악으로 바뀌었다.
서걱. 서걱. 서거걱.
팽도혁의 옷 이곳저곳이 잘려 나갔다.
그저 지나간 것뿐으로 보였는데 말이다.
“대단한 무공이군!”
팽도혁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피한다고 최대한 몸을 움직였는데도 옷이 잘려 나갔다.
“나도 질 수 없지!”
쿠구구궁.
비무대가 떨어 울릴 정도의 내력이 팽도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그리고 그에 맞서서 정천맹주의 검에서 붉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모두가 느꼈다.
지금 둘이 부딪치면 엄청난 반향이 올 것이라는 걸 말이다.
“가네!”
“갑니다.”
- 혼원벽련도. 제 삼초. 낙일(落日).
- 봉익쌍검술. 제 이초. 주천(走天).
정천맹주가 쓰는 무공이 굉장히 특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