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38화 (38/203)

<휘운객잔 38화>

정천맹의 개파 대전이 있는 날.

언제나 사람들로 바다를 이루는 항주였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많았다.

정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사람들이 거리마다 가득 들어찼다.

하긴 한동안 평화로웠던 무림에 전례 없을 만큼 큰 사건이니 당연했다.

“안녕하십니까! 정천맹의 맹주를 맡고 있는 한중악이라 합니다!”

“와아아!”

정천맹 개파 대전의 처음은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정천맹주 한중악의 인사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완전히 처음 보는 인물인 한중악이 정천맹이라는 곳의 맹주라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정천맹의 맹주가 되었을까 궁금해 했다.

“말을 길게 해봐야 좋아하시는 분은 없겠지요. 바로 개파 대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쿵.

한중악이 가볍게 손을 뻗자 비무대 정중앙에 위치해 있던 거대한 바위가 가루가 되어 부셔져 내렸다.

“우오오오오!”

엄청난 내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

단 일수로 한중악은 자신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개파 대전이 시작되었다.

무림맹 소속 다섯 명과 정천맹 소속 다섯 명의 대전.

이는 정천맹이 제안한 방식으로, 무림맹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두렵다는 모습을 보여 주면 안 되니 말이다.

“첫 번째 나오십시오!”

개파 대전을 진행하는 이가 첫 번째로 대결할 이들을 불렀다.

정천맹 측에서는 권귀가 비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무림맹 측에서도 곧바로 한 명이 비무대로 올라갔다.

“괴불룡이다!”

누군가의 외침처럼 무림맹측에서 나타난 이는 괴불룡 각운이었다.

사람들은 신성대의 등장에 환호했다.

그만큼 그들은 무림에서도 특별한 존재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시작하시오!”

각운과 권귀가 자리에 서자 곧바로 대전이 시작되었다.

“소승은 각운이라……. 흠!”

“시시하게 인사나 할 시간이 있나?”

각운이 대전이 시작되기 전 인사를 하려던 순간.

권귀가 그대로 몸을 날려 주먹을 뻗어 왔다.

보통이라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

무림맹측은 이 모습을 보고, 저들이 이 대전을 임하는 생각을 읽었다.

그들은 이 대전을 무예를 겨루는 비무가 아닌, 목숨이 오가는 생사결로 생각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하. 보는 눈이 많아서, 오랜만에 예의 좀 차리려했더니, 역시 안하던 짓을 하면 안 되나 보외다.”

각운도 무림오룡에 들어갈 만큼의 실력자.

갑작스러운 권귀의 공격이었지만, 여유롭게 피해 내는 듯했다.

하지만

“헛!”

촤악.

갑자기 각운이 몸을 틀었고, 그와 동시에 각운의 소매 부분이 무언가에 의해 찢겼다.

분명 권귀의 공격은 피했는데 이것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격산타우(隔山打牛)라고?”

남궁태산은 권귀의 무공을 보고는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일정 공간을 넘어 상대방을 타격하는 격산타우의 수법.

소림의 백보신권이 이 수법의 절정을 이룬 무공이었다.

그리고 그 백보신권의 전수자가 바로 각운이었고 말이다.

“대단하시오.”

각운은 시간의 차이를 두고 날아오는 권격을 보고, 권귀의 성취가 높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쩌면 소림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으니 말이다.

- 백보신권. 제 이초. 연타(連打).

허공을 뛰어 넘어 권귀를 향해 날아가는 수없이 많은 각운의 권격.

하나하나가 모두 강렬한 힘을 머금고 있었다.

“흐흣.”

비릿한 웃음과 함께 오히려 각운의 권격을 향해 달려가는 권귀.

그는 소림의 백보신권의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정직하게 날아오는 권격들.

그들은 오랜 시간 싸움을 하지 않았고, 결국 겉으로 보여 주기 위한 무공으로 변해 갔다.

죽음을 넘나들며 수련한 자신들에게 이런 정직한 공격들은 위협이 되지 못했다.

권귀는 각운의 권격 사이사이를 움직이며 공격을 모두 흘려 내었다.

그리고 권귀가 틈을 잡아 일 권을 뻗으려 할 때였다.

- 백보신권. 제 삼초. 접타(接打).

각운은 일부러 더욱 정직하게 공격을 날렸다.

권귀가 충분히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권귀가 근접해 일권을 뻗으려는 순간이 바로 각운이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퍽!

권귀가 최대한 몸을 틀었지만, 완전히 피해 내지 못했다.

어깨에 일격을 허용한 권귀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치명적인 일격은 아니었기에, 다시금 달려들 준비를 하는 권귀.

하지만 각운은 그런 권귀를 바라보지도 않고, 비무대를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권귀는 무슨 짓이냐고 말하려했지만, 끝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사람들은 이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겨우 한 대 맞았을 뿐이다.

그런데 쓰러지다니?

“소림의 무공은 가볍지 않소이다.”

* * *

개파 대전이 있기 전.

곽휘운은 각운과의 대련을 하기 위해 연무장에 섰다.

“곽 대주가 보시기에 백보신권은 어떤 무공이오?”

“단 일 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공이라 생각합니다.”

곽휘운이 아는 백보신권은 단 일 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공이었다.

백보신권에 담긴 웅혼하고 강렬한 내공은 그걸 해내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내 백보신권의 문제는 무엇이오?”

“너무 자유로워지시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

곽휘운의 한마디에 각운은 머리를 강하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나치게 정직한 소림의 무공을 자유롭게 바꾸면 더욱 강해질 것 같아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스스로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런저런 기행을 일삼으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집착에 사로잡혀 자유로운 척을 한 것일 뿐이었다.

“소림의 무공은 소림의 무공입니다.”

소림의 무공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소림의 무공은 소림다운 것으로 충분했다.

“내 무공을 한번 봐주실 수 있소이까?”

“물론입니다.”

후우우웅.

각운의 주위에 요동치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깨달음.

각운 정도 되는 무인이라면, 깨달음 한 번에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

천천히 뻗어 나오는 각운의 주먹.

콰앙!!

곽휘운의 구름과 부딪치고 엄청난 굉음을 내었다.

“역시 소림입니다.”

“정말 감사하오. 정말로.”

각운은 진심을 담아 곽휘운에게 감사를 표했다.

자신을 옥죄고 있던 벽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는 진일보 했다.

“지금의 각운님이라면, 어렵지 않게 승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곽휘운이 본 정천오귀들은 급하게 만들어진 자들.

그런 자들에게 무너질 정도로 소림의 무공은 약하지 않다.

* * *

각운과 권귀의 대전을 멀리서 지켜보던 정천맹 항주지부장.

그는 생각보다도 싱겁게 끝나버린 대전을 보고는 작게 인상을 썼다.

“흠. 나름 괜찮게 만든 줄 알았더니, 급하게 만들어서 그런지 신통치 않군.”

단약과 수많은 실전을 통해 오늘을 위해 만들어 낸 정천오귀.

하지만 역시나 급하게 만들어 내서 그런지 확실히 부족했다.

“그런데 우리가 무림맹을 너무 얕봤나? 신성대가 저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거늘.”

아무리 정천오귀가 부족하다지만, 이렇게 손쉽게 져 버릴 줄은 예상치 못했다.

조금도 밀어붙이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아무래도 무림맹과 신성대에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 할 듯했다.

“하긴. 저놈들이 약했다면, 지금까지 버티고 있지도 못했겠지.”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무림 땅을 차지해 온 무림맹이었다.

그들에게 저런 저력이 없었다면, 진즉 다른 세력에게 무너지고 무림을 넘겨주었을 터였다.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 권귀야 가장 실패작에 가까운 놈이었으니까.”

지부장은 그래도 아직은 지켜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남은 넷은 그래도 조금 더 쓸 만한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검귀 그 놈은 꽤 괜찮고 말이야.”

지부장은 칭찬에 꽤나 인색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검귀가 뛰어나다는 반증이었다.

지부장은 다시금 시작되는 대전을 보기 위해 비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 * *

각운이 깔끔하게 승리한 뒤 비무대를 내려왔다.

주변에서 역시 무림맹이고, 역시 신성대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흐름이 좋아.’

곽휘운은 지금 흐름이 좋다고 생각했다.

압도적으로 이기면 이길수록 무림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터였다.

각운이 첫 시작을 매우 잘 시작해주었다.

“곽 대주 덕택에 쉽게 이겼소이다.”

“저는 그저 한마디 말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에서 무언가를 찾으신 건 각운님의 능력입니다.”

“그 한마디가 가장 저에게 필요한 한마디였소이다.”

곽휘운이 각운에게 필요한 말을 해 준 것도, 각운이 그 말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도 모두 그들의 능력이었다.

둘 다 뛰어난 자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 올라오시오!”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는 대전.

본래라면 한 번의 대전이 끝나면, 일정 시간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지금 정천맹의 개파 대전은 오늘 모든 일정을 끝내려는 듯 빠르게 진행되었다.

“내가 간다.”

묵도 장도웅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방금 전 각운의 대전을 보고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쿵.

그때 때마침 비무대에 나타난 정천맹 측의 무인.

묵도도 거대했지만, 그보다도 머리하나는 더 큰 거인이었다.

그가 비무대에 올라서자 묵직한 진동음이 사방에 울릴 정도.

그는 덩치 걸맞은 거대한 언월도를 들고 있었는데, 그는 이 모습처럼 거력귀(巨力鬼)라 불리고 있었다.

휘익. 탁.

장도웅이 덩치와는 다르게 아주 가벼운 몸짓으로 비무대에 발을 내딛었다.

그의 손에는 예의 거도가 들려 있었다.

장도웅과 거력귀가 비무대 위에 서 있자, 비무대가 좁아 보일 정도였다.

“시작하시오!”

대전의 시작을 알렸지만, 장도웅도 거력귀도 움직이지 않고 상대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가만히 있는 듯 보였지만, 실상 엄청난 기세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팽팽하게 이루어지는 균형.

주위의 구경꾼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쨍그랑.

어디선가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장도웅과 거력귀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웅.

휘우우우웅.

장도웅의 거도와 거력귀의 언월도가 부딪치자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사방으로 먼지바람이 흩날렸다.

힘과 힘의 대결.

이건 또 색다른 느낌을 전해 주었다.

쾅!

둘의 무기가 맞부딪칠 때마다 굉음과 충격파가 발생했다.

지극히 단순 무식해 보이는 싸움이지만, 어쩌면 더욱 살 떨리는 싸움일지 몰랐다.

조금이라도 힘에서 밀리는 순간 멀쩡하게 서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릴 테니 말이다.

“힘이 이게 다인가?”

처음으로 거력귀의 입이 열렸다.

장도웅을 살짝 비웃는 듯한 말투.

“이게 전부라면 끝이다.”

투둑. 투두둑.

거력귀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면서, 힘줄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장도웅이 힘에 밀리면서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쾅!

취이이익.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장도웅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려났다.

분명 힘에서 밀리는 상황인데, 장도웅의 표정은 그리 큰 변화가 없었다.

“후우.”

장도웅은 숨을 내쉬더니, 도를 다시 고쳐 잡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기세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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