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37화>
정천오귀는 개파 대전 전에 신성대의 얼굴을 봐두려고, 그들이 머물고 있다는 휘운객잔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과 싸울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간단한 도발 정도는 하려는 생각이었다.
“자자. 이 이상은 그런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시면 못 지나가십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발걸음을 막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정천오귀는 자신들이 느끼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아무리 방심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가까이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너는 누구지?”
“여러분들이 향해가는 객잔의 주인입니다.”
정천오귀는 상대가 소빙룡이라는 것을 알아채었다.
“객잔 주인이 객잔에 오는 손님을 막아서는 경우도 있습니까?”
정천오귀 중 가장 말끔하게 생긴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정천오귀에서 암귀(暗鬼)라 불리고 있었는데, 정천오귀 중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흉흉한 기세를 풀풀 풍기는 손님을 막을 권리 정도는 있지요.”
“하하하. 무영검객님과 비등하게 싸웠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믿고 이렇게 나서는 것이라면 큰일 날 텐데.”
쉬익.
아주 미세한 파공음과 함께 곽휘운을 향해 쏘아지는 암기 하나.
소리가 들렸을 때는 이미 곽휘운의 면전 앞에 당도해 있을 때였다.
텁.
하지만 암기는 허망할 정도로 쉽게 곽휘운의 손에 잡혀버렸다.
비도를 날린 암귀도 이렇게 쉽게 잡힐 줄은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볍게 날린 것 같지만, 꽤나 많은 양의 내공이 담긴 암기였다.
저리 쉽사리 잡힐 만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재주가 있긴 있나보군.”
쉬쉬쉬쉬쉭.
이번에는 수많은 암기가 날아 왔다.
종류도 가지각색.
곽휘운은 제자리에 서서 그저 미소 지은 채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휘운검법. 제 삼초. 압.
쿠궁.
어느새 주변에 자욱이 깔린 구름.
그리고 엄청난 압력이 사방을 짓눌렀다.
암귀가 쏘아낸 암기들이 모두 바닥에 처박힘은 물론, 정천오귀들 모두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내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만들 돌아가십시오. 장사 망치려 하지 마시고 말입니다.”
곽휘운의 마지막 경고였다.
그리고 점점 더 압력을 더해 나아갔다.
“너도 대전에 나오나?”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검귀가 입을 열었다.
“저는 객잔 주인일 뿐입니다. 당연히 참가하지 않습니다.”
“다행이군.”
점점 더 거세지는 압력 속에서, 남은 정천오귀가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검귀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아는 검귀는 절대로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검귀가 소빙룡이 참가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하다니!’
이건 간접적으로 소빙룡이 검귀 자신보다 위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검귀의 실력을 아는 다른 정천오귀들은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강한 검귀가, 싸워 보지도 않고 패배를 시인하다니.
“하아아…….”
몸으로 침투하는 차디찬 한기.
어느 정도는 한서불침의 경지에 다다른 정천오귀였건만, 이 한기는 막을 수 없었다.
“돌아가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화악.
순식간에 모든 압력과 한기가 사라졌다.
정천오귀는 지금 자신들이 당한 상황이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만 물러나야 한다는 것쯤은 잘 알았다.
검귀를 필두로 다시금 돌아가는 정천오귀.
곽휘운은 그들의 뒷모습을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천맹이 보낸 자들이 분명한데, 생각보다 위험한 기운을 풍기는 군.’
곽휘운은 방금 다섯이 이번 개파 대전에서 신성대와 겨룰 이들이라는 것을 알아채었다.
나름 무림에 있는 무인들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곽휘운이지만, 방금 다섯은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위험하고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보통 저런 기운은 수없이 죽음을 넘나들었던 자들이나, 마공을 익힌 자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어느 쪽이던 위험했다.
‘둘 다 일지도 모르지.’
곽휘운이 느끼기에 방금 다섯은 신성대와 비등하거나 조금 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정천맹이 어떤 힘을 갖추었는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로 저런 실력을 갖춘 무인을 다섯이나 만들어 내지 못한다.
단 마공이라면, 가능 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갖은 영약을 먹이면, 단 시간에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주의를 줘야겠어.”
백리세가가 무림맹에 합류한 상황에서, 신성대가 개파 대전에서 지는 것은 좋지 않았다.
무림맹의 힘이 약해질수록 정천맹과 붙어있는 백리세가가 점점 더 힘들어 질 테니 말이다.
* * *
곽휘운이 다시금 객잔으로 돌아 왔을 때.
객잔의 공기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객잔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멈춰져 있었다.
‘음? 무슨 일이지?’
분명 흉흉한 기운을 뿜은 자들은 자신이 모두 돌려보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분위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드디어 오는군!”
객잔이 떨릴 정도로 거대한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만큼이나 거대한 덩치.
곽휘운은 사람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가 되었다.
“무림맹 부맹주님을 뵙습니다.”
“하하하! 우리 사이에 뭐 그리 딱딱하게 부르나! 그냥 형님이라고 하라니까!”
사내의 정체는 무림맹 부맹주 거도왕(巨刀王) 팽도혁이었다.
현재 하북팽가가 배출한 최고의 고수이자, 도법으로는 정도 최고라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그의 명성과 거대한 덩치 덕분에 어디를 가든 이렇듯 이목의 집중을 받았다.
“개파 대전에 참여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까?”
“그렇지! 맹주님은 바쁘신 분이니, 내가 대신 왔네!”
아마 무림맹주가 바쁘지 않았더라도, 직접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파 대전에 어떤 함정이 있을 지도모르고, 이건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을 이끄는 무림맹주가 직접 온다는 것은 그만큼 정천맹을 의식하는 것이고, 동격으로 본다는 뜻과 같았으니 말이다.
“부맹주님도 여기서 머무시는 겁니까?”
“하하! 그러네! 거기에 현옥 누님도 여기 계신다더군!”
팽도혁은 팽현옥의 배다른 동생이었다.
물론 팽가는 자식들간의 사이가 꽤나 좋았기에, 어머니가 다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백리 총관님. 가장 좋은 곳으로 방을 준비해 주십시오.”
“네. 알겠어요.”
옆에서 팽도혁을 바라보고 있던 백리화는 곽휘운의 부탁에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무림맹의 부맹주가 지낼 것이니, 최고로 준비하는 것이 맞았다.
“주방에 걸려있던 냄비가 흔들려서 나왔더니, 도혁 동생이 왔군 그래.”
“중식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연히 팽도혁과 황중식은 서로 아는 사이.
둘은 아주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황중식은 음식을 해 주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이렇게 객잔을 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잘하고 있는 것 같더군!”
“주변에 도움을 주는 분들이 많아서 잘되는 것 같습니다.”
곽휘운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객잔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 오르지 못했을 터였다.
“그것도 자네의 능력이지!”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객주님 준비 끝났어요.”
“아, 부맹주님. 자리를 옮기시지요.”
“그러세!”
백리화가 준비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했고, 곽휘운은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지금 팽도혁 때문에 객잔이 마비된 것처럼 멈춰 있었으니까.
“호오! 여기 괜찮군!”
수많은 객잔을 다녀 본 팽도혁에게서 괜찮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부맹주 아저씨~ 저희 왔습니다.”
남궁태산의 목소리와 함께, 신성대가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
팽도혁이 왔으니,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 다들 좋아 보이는 구나!”
물론 이들과의 인사도 길지는 않았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순식간에 각자 흩어졌다.
팽도혁은 그렇게 재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수련을 위해, 깨달음을 위해 바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네에게 보낸 것이 답이 맞았군!”
“저는 딱히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럴 리가!”
당연히 곽휘운이 한 것이 없지는 않았다.
그들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그들과 대련해 주었으니 말이다.
“자네같이 훌륭한 무인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걸세!”
“부맹주님. 뭔가 부탁하실 것이 있는 것이지요?”
곽휘운은 대번에 팽도혁이 뭔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그는 항상 무언가를 부탁하기 전에 저렇게 칭찬을 하고는 했으니 말이다.
“음? 험험! 그것이 말일세…….”
그답지 않게 말에 뜸을 들이는 팽도혁.
곽휘운은 필히 꽤나 곤란한 부탁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네가 개파 대전에 나서 줬으면 하네!”
“예?”
* * *
본래 개파 대전에 참여하기로 한 신성대의 대원 중 한 명이,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내상을 입어 출전이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무림맹은 그를 대체하기 위한 무인을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무림맹주가 곽휘운을 추천했다.
그는 이제 무림맹의 무인이 아니라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백리세가가 무림맹에 들어왔으니 무림맹 소속과 다름없다는 이야기에 다들 동의를 했다.
사실 지금 당장 젊은 무인 중에 곽휘운만 한 자를 찾기는 힘든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나 내보내기에는 이 개파 대전이 갖는 파급이 너무 컸다.
“물론 당연히 그냥 부탁은 안 하지! 자 받게!”
팽도혁이 내민 것은 작은 옥패(玉牌)였다.
“무림옥룡패이네!”
무림옥룡패(武林玉龍牌).
현재 무림맹에서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증표였다.
무림옥룡패를 소지하고 있으면, 어디서든 무림맹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무슨 상황이 있을 때 무림맹에서 그곳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 준다.
‘이걸 받으면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겠군.’
곽휘운은 이 무림옥룡패를 받으면, 무림맹은 이제 완전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무림맹이 괜히 이것을 주는 것이 아닐 터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남은 한자리를 채우겠습니다.”
곽휘운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무림옥룡패를 받아들었다.
후에 곽휘운이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길 것만 감수하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분명 이리저리 요긴하게 써먹을 곳이 많을 터였다.
“고맙네! 고마워!”
이렇게 갑작스럽게 곽휘운의 개파 대전 참여가 결정되어져 버렸다.
이 소식은 객잔 식구들과 신성대에게 전해졌고, 그들 모두 곽휘운의 참여를 반색했다.
“야. 이제부터 너 마음대로 실력발휘 해 봐라.”
“안 그래도 그럴 셈이네.”
남궁태산은 어쩌면 이 정천맹의 개파 대전이 진짜 곽휘운의 무림출두가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정천맹의 개파 대전만큼이나, 무림에 크나큰 충격을 줄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