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36화 (36/203)

<휘운객잔 36화>

위하윤의 무공인 비연신검은 그녀를 위해 천무제 위강천이 직접 만들어 준 무공이었다.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제비처럼 가볍고 빠른 무공.

위하윤에게 꼭 맞는 이 무공과 함께 그녀는 당당히 실력으로 오룡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카각.

“훨씬 움직임이 부드러워지셨습니다.”

하지만 곽휘운의 구름을 뚫고 공격을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사각이 없는 완전무결한 무공.

물론 위하윤도 알고 있었다.

“다시 가겠습니다.”

- 비연신검. 제 오초. 연연비천(連延飛天).

쉴 새 없이 이어져 찔러오는 위하연의 검.

일 검, 일 검이 모두 요혈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공격이었다.

퍼버버버벙.

일순 곽휘운을 감싼 구름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위하연의 검이 파고들었다.

- 비연신검. 제 일초. 쾌주(快走).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찔러 들어가는 일 검.

그 견고하던 곽휘운의 벽이 뚫린 것일까?

“너무 빠르기에만 집착하시면 힘이 부족해진다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곽휘운이 두 손가락으로 정확히 위하연의 검을 딱 잡고 있었다.

압도적인 실력 차가 아니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 오늘은 이만들하고 각자들 시간을 갖도록 하지요. 다들 무언가 깨달은 것들이 각자 있으실 테니까요.”

곽휘운의 말처럼 여기의 모든 이는 크든 작든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것들을 이제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냐가 문제였다.

이 결과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을 터였다.

“이거, 객잔이나 하겠다던 사람이 너무 일을 벌이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

이제는 평범한 객잔으로 지내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뭐 평범하게 있을 수 없다는 것쯤은 짐작했지만, 정천맹의 등장으로 일이 더욱 거대해져 버렸다.

어쩌면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곽휘운은 내심 즐겁기도 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위로 계속해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정천맹의 등장은 위로 향하는 길에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또 그만큼 단숨에 위로 올라가게 만들어 줄 원동력이 될 터였다.

‘개파 대전이 재미있어지겠는걸.’

* * *

정천맹 본타.

그곳에 있는 연무장에, 다양한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부장님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뵙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연무장에 있는 상석.

그곳에는 정천맹주가 어느샌가 나타나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개파 대전이 있기 전, 정천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부장들을 만나기 위해 모습을 나타내었다.

“오랜만입니다. 회주, 아니 맹주님.”

“못 본 사이에 더욱 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지부장들은 너도 나도 정천맹주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들은 정천맹주의 강함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에게 받은 단약의 효험을 알기에 이렇듯 깍듯했다.

“다들 가면을 쓰고 계셔서 알아 뵙기가 힘듭니다. 가면을 벗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흠.”

정천맹주의 말에 지부장들 사이에서 일순 동요가 일어났다.

이 가면은 정천맹에서의 지위도 나타내지만, 또 다르게는 신분을 가려 주는 역할도 했다.

이들은 따지고 보면 무림맹을 배신하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얼굴이 드러나면 그대로 무림맹과는 돌릴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들이 주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천맹주가 주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개파 대전에 앞서 얼마나 정천맹에 충성하고 있는지 말이다.

스윽.

그때 누군가 가면을 벗었다.

약간은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중년인.

“당천수가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주변에 있던 지부장들이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당천수가 누구인가?

그 유명한 사천당가의 가주였다.

사천당가가 정천맹에 합류했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그 가주가 지부장을 맡고 있다고는 예상치 못했다.

“아, 당 가주님. 반갑습니다. 여기 이건 환영의 표시입니다.”

정천맹주는 과할 정도로 환영하며, 당천수에게 작은 목갑을 하나 건네었다.

여기에 모인 지부장들은 대번에 저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단약!’

그리고 이 목갑의 효과는 대단했다.

망설이던 지부장들이 너도나도 가면을 벗고 인사를 해 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천맹주는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그들 모두에게 목갑을 나누어 주었다.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지부장들의 두 눈.

정천맹주는 그 모습이 흡족하면서 동시에 혐오스러웠다.

‘결국 저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구나.’

그럼에도 필요한 이들이었기에, 지금은 손을 잡고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자. 제가 또 소개하고픈 이들이 있습니다.”

착착.

정천맹주가 두 번 박수를 치자, 어디선가 다섯 인영이 나타났다.

이곳에 모인 이들 모두 무림에서 한가락 하는 이들이기에, 나타난 이들의 움직임만 보고서도 얼마나 고수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개파 대전에서 무림맹의 신성대와 자웅을 겨룰 정천오귀(正天五鬼)입니다.”

정천오귀.

다섯 귀신이라는 것이 정도의 무인들에게 붙는 것이 조금 이상할 수 있었지만, 그들을 표현하기에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흉한 기세는 그들이 평범한 무인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끔 해 주었다.

“하나 신성대는 무림맹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무인들이 있는 곳. 과연 저들이 그들의 상대가 될지 의문입니다.”

“동의합니다. 특히나 검성은 정말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몇몇 지부장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눈앞의 정천오귀가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알겠지만, 솔직히 신성대와 비교했을 때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저들은 신성대처럼 어린 나이부터 엄청난 지원과 체계적인 계획 아래 만들어진 게 아니라, 누가 보아도 급하게 만들어진 이들 같았으니 말이다.

“걱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이들의 실력을 보여 드릴까 합니다.”

정천맹주가 고개를 움직이자, 오귀들이 앞으로 나섰다.

흑색 일색의 복장을 입은 그들은 정말로 귀신같이 보였다.

“자. 이들의 실력이 궁금하신 분은 직접 시험해 보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또 다시 머뭇거리는 지부장들.

그때 무리를 헤치고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각진 얼굴과 단단한 체격의 중년인.

“제가 시험해 보겠소.”

“천우권문의 문주님 나오시겠습니까?”

천우권문.

소림사에서 파계 당한 이가 만든 곳으로, 나름 하북에서 하북팽가 다음으로 이름이 높은 문파였다.

그곳의 문주이니 당연히 실력으로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사람이었다.

“권귀(拳鬼).”

“알겠습니다.”

정천맹주가 이름을 부르자, 대답과 함께 천우권문 문주와 비슷한 체격의 오귀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살생은 금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소.”

천우권문의 문주는 정천맹주의 말에 대답하고는 기운을 끌어올렸다.

주변을 장악해 나가는 천우권문 무주의 기운에 다른 지부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소림의 무공을 바탕으로 만든 무공답게 그 웅혼함이 달랐다.

“잘 부탁하네.”

“…….”

천우권문 문주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주먹을 쥐고 자세를 취할 뿐인 권귀.

“선수를 양보하지.”

“흐.”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던 권귀가 선수를 양보한다는 말에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사양 않겠다는 듯 바로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천우권문 문주 앞에 당도한 권귀는 그대로 일 권을 내질렀다.

별로 대단할 것 없어 보이는 일권.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퍼억.

분명 천우권문 문주가 손쉽게 막아 내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대로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단 일격에 천우권문 문주의 의식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차별적인 연타.

퍼버버버벅.

“그만.”

정천맹주의 명령이 있고서야 공격을 멈추는 권귀.

천우권문의 문주의 몸은 완전히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목숨은 붙어 있었지만 말이다.

“의각으로 모셔가라.”

온몸의 뼈가 모두 부셔진 상태인 천우권문 문주.

아마 모두 낫는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모습은 보여 줄 수 없을 터였다.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분이 더 계십니까?”

당연히 더 이상 나서는 지부장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라면, 신성대 정도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가능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지금 보여준 모습이라면 신성대와 싸운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검성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검성 남궁태산은 차원이 다른 실력을 가진 자였다.

“검귀. 나와 봐라.”

정천맹주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검귀라 불리는 오귀를 불러내었다.

긴 장발과 완전히 무감정한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사내였다.

“네 실력을 보여 봐라.”

스릉.

착.

검이 뽑히는 소리와 동시에 다시금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있던 지부장들은 모두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사천당가의 가주 당천수만이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피비비비빅.

주변에 서 있던 지부장들의 목이 모두 아주 얇게 베여서 피가 나왔다.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다른 지부장들의 표정도 경악을 담았다.

방금 전 그 찰나의 순간에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의 목을 벤 것이다.

검에 살기가 담겼다면, 모두 죽은 목숨인 것이나 다름없는 것.

“이 정도면 검성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림에도 정확히 검성이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지금 보여준 검귀의 실력을 보건데, 더하면 더하지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개파 대전에서 우리의 힘을 보여 준다면, 더욱 많은 이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정리가 시작될 것입니다.”

개파 대전은 최고로 성대하게 벌일 작정이었다.

모든 무림의 이목이 이쪽으로 집중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이들이 무림맹의 나약함을 지켜볼 것이고, 크나큰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과 함께, 썩어 버린 무림의 정리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파천혈래!”

“파천혈래!”

정천맹주가 선창하자, 지부장들도 따라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항주 지부장이 비릿한 웃음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 * *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신성대가 객잔에서 머문 지도 꽤 시일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휘운객잔은 또 한 번 항주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위하윤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를 보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객잔을 찾아올 정도였다.

선녀가 내려와 지내는 객잔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윤 소저 도움은 감사한데, 힘들지는 않으십니까?”

“제가 힘들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저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일 뿐인데요.”

어찌 보면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시선을 견디고 앉아 있는 것은 감정적으로 힘든 일일 터였다.

그리고 이렇게 보고만 있는 사람만 있다면 그나마 나을 테지만, 간혹……. 아니, 자주 그녀의 미모에 달려드는 불나방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덕분에 맨날 자기가 할 일이 없다고 투덜대던 남주학이 아주 바빠졌다.

“당장 뒤로 물러나세요. 안 그러면 기어서 객잔을 나가게 해 드릴 테니까.”

남주학은 저녁마다 백리세가에서 수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한 울분을 이곳에 풀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곽휘운의 감각에 아주 흉흉한 기운 다섯이 객잔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미리 맞이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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