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34화 (34/203)

<휘운객잔 34화>

신성대의 권한 위임.

무림맹주가 현재 독단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권한이었다.

보통의 무인들이야 이미 무림맹 항주지부에도 많이 상주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무인들의 전쟁에서 승패를 판가름 짓는 것은 한 명의 고수다.

지금 백리세가에 온 신성대 네 명은 신성대 중에서도 최고수들.

그들에 대한 권한을 곽휘운에게 준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모든 권한이라…….’

지금 당장 정천맹과 싸울 것도 아니고, 백리세가를 위협하고 있지도 않다.

누구는 그저 허울만 좋은 권한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곽휘운은 이 권한을 아주 잘 써먹을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잘되었군. 체계적으로 다양한 무공을 가르칠 사람들이 필요했는데.”

“무공 선생을 하라 이거냐?”

“맞네.”

“팔자에도 없는 선생을 하게 생겼군.”

지금 백리세가에서 남주학과 제갈중천이 선생을 하고 있지만, 모든 배움이라는 것이 그렇듯 더 넓고 다양하게 배우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곽휘운은 개파 대전이 있기 전까지 신성대를 무공 선생으로 써먹기로 했다.

어차피 이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무공 수련뿐일 터.

저녁 시간에 백리세가 식구들의 무공을 봐준다면 서로 이득이 많이 생길 터였다.

가르치다 보면 얻는 것이 분명 생기니 말이다.

“분명 얻는 게 있을 거네.”

“뭐 네가 하라면 해야지. 그리고 나 부탁 하나만 하자.”

“뭔가?”

“이번에 우리랑 매일은 아니더라도 대련 좀 해 줘라.”

곽휘운과의 대련.

무림맹주가 위하윤의 부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월영루가 아닌 휘운객잔으로 신성대를 보낸 이유였다.

정천맹이 준비한 개파 대전 전에, 최대한 신성대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결정이었다.

“대련?”

“그래. 물론 그냥 해 달라는 건 아니고.”

남궁태산은 품에서 또 무언가를 꺼내었다.

작은 약병 열 개.

곽휘운은 그 약병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공청석유?”

“맞아. 세가에서 공청석유로 만든 특제 영약이다.”

공청석유가 무엇인가?

단 한 방울만으로도 엄청난 내공을 얻게 해주는 희대의 영약이다.

당연히 구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또 구한다 하더라도 그 양이 극히 적었다.

근래 남궁세가가 꽤나 많은 양의 공청석유를 구했는데, 그것을 그대로 섭취하지 않고, 갖가지 다른 영약들과 섞어서 새로운 영약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이 지금 곽휘운의 눈앞에 있는 만영화유(萬靈和乳)였다.

공청석유를 그대로 먹는 것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에 준하는 효험과 더불어 양이 수십 배로 늘어났다.

“분명 귀한 것일 터인데, 겨우 대련하는 것으로 받아도 되겠는가?”

“어차피 여기 온 신성대 정도면 영약으로 큰 효험을 보기도 힘들지 않냐? 너랑 대련하는 게 훨씬 더 큰 이득이지. 그리고 어차피 너도 저기 객잔 사람들 키우려면 이게 있으면 좋잖아?”

남궁태산의 말처럼 절정을 넘어선 무인에게 웬만한 영약보다 한 번의 깨달음이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지금 백리세가에 영약이 있으면 좋다는 말도 맞았다.

남궁태산이 가져온 저 영약을 먹는다면 비약적으로 빠르게 백리세가 식구들이 성장할 수 있을 터였다.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군 그래.”

“자. 받아라.”

남궁태산이 건넨 약병을 받은 곽휘운은 품 안에 잘 넣어 두었다.

“그럼 이따 밤에 보자.”

“알겠네.”

남궁태산은 곧바로 수련을 위해 사라졌고, 곽휘운은 품에 넣었던 약병을 다시금 꺼내어 보았다.

‘흠. 이걸 언제 줘야 할까?’

천삼단을 먹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았다.

아직 그 약효도 완전히 흡수되지 못했을 터.

지금은 적기가 아니었다.

일단은 조금 더 상황을 본 뒤에 주기로 하고, 곽휘운은 오랜만에 슬슬 몸을 예열해 나가기 시작했다.

받은 것이 있는 만큼, 확실하게 할 생각이었다.

‘이제는 무림맹 소속도 아니니 마음껏 해도 되겠지.’

곽휘운은 작게 미소 지었다.

무림맹에 있을 때는 당연히 어느 정도 힘을 조절했다.

그들의 습성을 파악한 이후로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밑에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니 더 이상 조절할 필요는 없었다.

* * *

백리세가의 밤은 낮보다 뜨거웠다.

“하앗!”

“더 빠르게 하시오.”

“하압!”

“허허. 힘이 너무 부족하오. 여기에 더 힘을 실으시오.”

괴불룡 각운은 추삼, 춘삼과 천종하를 지도하고 있었다.

워낙 괴이한 행적을 많이 보여 괴불룡이라 불리는 각운이지만, 모든 무공의 조종이라 불리는 소림사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의 무재이니 만큼,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꺼억. 술맛 좋다.”

물론 한손에는 술병을 든 채로 벌컥벌컥 마시면서 지도를 하는 각운의 모습은 영 못 미더워 보일 수 있었지만, 자세히 지켜보면 조금도 허투루 가르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확실하게 셋의 기초를 완벽하게 잡아 주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맞다.”

그리고 다른 한쪽.

그쪽에서는 황혜린을 지도하는 묵도 장도웅이 있었다.

같은 도객이니 만큼, 장도웅이 그녀를 지도하기로 했다.

연신 재잘거리며 말을 거는 황혜린이었지만, 묵도는 오로지 필요한 말만 할 뿐,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몸소 동작들을 보여주거나, 확실한 요점을 일러 주는 등 나름 열심히 지도에 임했다.

물론 지도를 받고 있는 황혜린은 아주 재미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남주학과 제갈중천은 남궁태산이 맡아서 지도하고 있었다.

아니, 지도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구타였다.

“커헉!”

“크흡.”

“이거 가지고 엄살은. 이래 가지고는 짐짝밖에 안 된다.”

남궁태산은 그들을 자극시켜 계속해서 달려들게끔 만들었다.

둘이 가장 싫어하는 말인 곽휘운에게 짐이 된다는 말을 곁들여서.

남주학도 제갈중천도 분명 뛰어난 이들임이 분명함에도, 남궁태산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자 온 힘을 다해라. 안 그럼 죽을지도 모른다.”

- 무적제왕검강. 제 이초. 제왕군림.

남궁태산의 검이 팔방을 모두 빼곡히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남주학과 제갈중천 모두 그에 맞서 가진 역량을 모두 펼쳐 내었다.

쾅!

꽤나 큰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일순 백리세가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향했다.

휘우우웅.

바람이 불어오고, 피어오른 흙먼지가 걷혔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

남궁태산은 멀쩡히 자리에 서서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고 있었고, 남주학과 제갈중천은 바닥에 완전히 널브러져 있었다.

차원이 다른 실력의 차이.

남궁세가의 역사에서도 첫손에 꼽힐 만큼의 천재이자, 무림에서 검성이라 칭송받는 남궁태산의 힘이었다.

“주학이 너는 너무 가벼운 게 문제고, 중천이 넌 너무 무거운 게 문제다. 둘이 섞어 놓으면 딱 맞을 거다.”

이미 쓰러져서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남궁태산은 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둘 다 똑똑하고 재능이 있으니, 이렇게 말하면 금방 알아들을 터였다.

물론 알아듣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건 이제 개파 대전 전까지 잡아 주면 될 터였다.

‘이제 남은 건…….’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이들은 백리화와 위하윤이었다.

둘도 대련을 하고 있었는데, 백리화가 공격을 펼치고 위하윤이 수비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몸의 안쪽으로 검을 끌어당길 때 자세가 안 좋습니다. 조금 더 어깨를 쓰시면 좋을 듯합니다.”

위하윤의 안목은 가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특히나 가까이서 무림이천의 일인인 위강천을 보고 자랐으니, 당연히 더 무공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질 수밖에 없었다.

위하윤은 아주 작은 움직임과 버릇까지도 모두 바로잡아 주었다.

지금 신성대 중에서 무공을 가르치는 데에 가장 뛰어난 사람은 위하윤일 터였다.

“이렇게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위하윤의 말을 듣고 곧바로 바로잡는 백리화도 대단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위하윤이 말을 해준다 해도 고치는데 오랜 시일이 거릴 터였다.

하지만 백리화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수정해 나갔다.

위하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있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꽤 놀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온 그 어떤 사람보다도 배우는 것이 빨랐으니까.

“그런데 가주님께서는 곽 대주님을 좋아하십니까?”

“예? 꺄악!”

대련 도중 갑작스러운 위하윤의 질문에 백리화의 검이 흐트러졌다.

간신히 검을 다잡은 백리화는 눈을 크게 뜨고 위하윤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가주님도 곽 대주님을 마음에 두고 계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아뇨. 저, 저는 그럴 마음이…….”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마음이 있으시지요?”

“……예.”

백리화는 솔직히 대답했다.

아니라고 부정을 하지만, 곽휘운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럼 조금 더 과감해지셔도 됩니다. 가주님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분이니 말입니다.”

“제게 왜…….”

백리화는 왜 위하윤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 주는지 의아했다.

분명 자신이 곽휘운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곽 대주님을 저 혼자 독차지 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지 않을 자신도 있습니다. 제가 첫 번째가 되는 것을 말입니다.”

백리화는 위하윤은 그런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속으로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는 것도 부끄러울 정도로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어이. 곽휘운! 오늘 첫날이니까 대련 좀 해 줘라!”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남궁태산의 목소리.

곽휘운은 그 목소리를 듣고 연무장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섰다.

“좋네. 누구부터 할 건가?”

“소승부터 하겠소이다.”

곽휘운의 말에 가장 먼저 나온 이는 괴불룡 각운이었다.

그는 곽휘운과의 대련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남궁태산이 입이 마르도록 떠들어댔는지 궁금했으니 말이다.

“아. 좋습니다. 전력으로 하시겠습니까?”

“물론이외다.”

콰아아.

주변을 장악하는 엄청난 기운.

객잔 식구들과 남궁태산, 위하윤, 장도운은 멀찍이 떨어져서 자리를 잡았다.

돈 주고도 보기 힘든 대련이었으니 놓칠 수 없었다.

무려 소빙룡과 괴불룡간의 대결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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