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33화>
곽휘운이 이 무림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위하윤.
곽휘운에게는 정천맹보다 위하윤이 훨씬 까다롭고, 두려운 존재였다.
“예. 말없이 사라지신 곽 대주님을 뵙고 싶어서 말이지요.”
“하하……. 그건 아무래도 사정이…….”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물어오는 위하윤이었지만, 곽휘운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본 경험에 의하면, 지금 위하윤은 몹시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화남의 이유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저는 곽 대주님의 이야기를 다른 분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동안 맺어 온 저희의 관계가 그 정도뿐인 것 같아서 조금 섭섭했습니다.”
“하윤 소저께 말씀드렸다면, 필히 저를 막아 서셨을 것 아닙니까?”
“…….”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위하윤.
곽휘운의 말처럼 무림맹을 떠난다고 말했다면, 어떻게든 막아 섰을 위하윤이었다.
“자. 제가 머물 곳을 안내해 드릴 테니, 밀린 이야기는 그곳에서 하시지요.”
“예.”
곽휘운은 이제 슬슬 손님들이 밀려올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하연이 이대로 객잔 한가운데에 있다면, 필히 객잔이 아주 시끄러워질 것이란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위하윤을 신성대를 위해 특별히 비워 둔 별채들 쪽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백리 총관님. 잠시만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아! 네. 네.”
백리화는 열심히 상황 파악을 하다가 곽휘운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을 했다.
곽휘운과 위하윤이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궁금했지만, 일단은 묻어 두기로 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집중하자. 집중.”
물론 자꾸 신경이 별채로 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 * *
위하윤과 마주보고 앉은 곽휘운.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오고 갔다.
‘하핫. 이것 참. 하윤 소저만 만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녀가 곽휘운에게 나쁜 짓을 하거나, 해코지를 한 적은 결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곽휘운에게 무림맹에서 가장 잘해 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세 손가락에 들어갈 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마음이 너무나도 확연히 느껴져서 곽휘운은 그녀가 어색했다.
곽휘운은 그런 쪽으로는 조금도 내성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간 별일은 없으셨습니까?”
침묵을 깬 것은 곽휘운이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바꿔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별일 없었을 뻔했는데, 곽 대주님이 사라지신걸 알고는 별일이 생겼습니다.”
“하윤 소저는 여전하십니다. 하하.”
곽휘운은 애써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곽휘운의 바람이었을 뿐.
위하윤은 어물쩡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어째서 곽 대주님께서는 제 마음을 받아 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제가 하윤 소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해서 안 됩니다.”
“제가 괜찮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
“예? 맹주님이요?”
곽휘운은 위하윤의 아버지인 무림맹주 위강천이 허락했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위강천이 위하윤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아는 곽휘운이었다.
위하윤의 외모를 보고 얼마나 많은 사내가 달려들었겠는가?
하지만 단 한 명도 위하윤에게 닿은 사람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에는 위강천이 있었다.
‘하윤이에게 찝쩍거리는 놈들은 내가 친히 죽여 주마.’
웬만한 무인들이 그대로 기절할 만큼의 살기와 함께 실제로 내뱉은 말이었다.
당연히 무림이천의 일인이자, 무림맹주인 위강천의 말을 무시할 만한 간 큰 정파 무인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위강천이 허락했다니?
‘물론 가끔씩 너라면 괜찮을 수도 있겠다라고는 하셨지만…….’
곽휘운은 그것을 농담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위하윤이 말하는 것을 보니, 진담이었던 듯했다.
‘내가 뭐라고, 다들 이렇게 좋게 봐주시는지.’
위하윤도 황혜린도 모두 자신을 너무 좋게 봐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은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처럼 위태위태한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될 좋은 사람들이었다.
“하윤 소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소저의 마음을 받을 만큼의 자격이 있는 놈이 아닙니다.”
“자격을 누가 정한 것입니까? 제가 괜찮은데…….”
“객주님 신성대 분들이 오셨어요.”
그때 백리화가 다른 신성대가 온 것을 알려 왔고, 곽휘운과 백리화의 대화는 거기서 멈추었다.
“야 곽휘운. 하윤 소저랑 좋은 시간 보내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얼굴도 안 비추는 건 너무하지 않냐?”
“그렇소이다. 소승은 정말 슬프오이다.”
“…….”
별채로 들어오는 세 명.
검성 남궁태산, 괴불룡(怪佛龍) 각운, 묵도(默刀) 장도웅.
신성대 중에서도 가장 강한 이들이다.
곽휘운은 위강천이 꽤나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정천맹을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지금 정도 무림은 반으로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무림맹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개파대전에서 변변치 않은 모습을 보여 주면, 지금의 절반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을 게 뻔하니.
그래서 신성대 중에서도 가장 강한 넷을 보낸 것일 터였다.
“제가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해해 주시고, 각자 머무실 곳은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곽휘운은 새로 나타난 신성대 셋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가 머물 별채를 안내해 주었다.
그들의 위치가 있는 만큼 당연히 각자 머물 수 있도록 별채를 내어 주었다.
물론 그만큼 많은 돈이 무림맹에서 나온 이유도 있지만 말이다.
“자, 이곳이 하윤 소저께서 머물 곳입니다.”
“곽 대주님은 어디에서 머무시죠?”
“저는 백리세가에 제 거처가 있습니다.”
“그럼 저도 백리세가로 가겠어요.”
“하하. 그건 제가 정할 수 없습니다. 백리세가의 가주님은 백리 총관님이니까요.”
백리세가는 백리화가 주인이었다.
곽휘운이라도 사람을 들이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제가 백리세가의 가주님에게 허락을 받아 오겠어요. 그럼 되지요?”
“그렇다면, 제가 막을 이유는 없지요.”
위하윤은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백리화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곽휘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위하윤의 뒤를 따랐다.
황혜린과 함께 객실을 정리하던 백리화는 갑작스러운 위하윤의 등장에 어리둥절했다.
“뭔가 불편하신 게 있으십니까?”
“아니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요?”
백리화는 위하윤이 말하는 부탁이 뭐일지 궁금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딱히 할 만한 부탁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제가 백리세가에 식객으로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네에?”
위하윤의 뜬금없는 말에 백리화가 되물었다.
그냥 머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식객으로 머물겠다는 위하윤.
식객이란 세가에 머무는 것 외에도 가주가 부탁한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된다.
그리고 백리세가의 식객이 된다면, 다른 곳의 식객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여러 곳에 발을 걸치는 것을 막기 위한 무림의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곳의 식객으로 들어가는 것은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문제였다.
“지금의 백리세가로서는 거절할 이유는 없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하셔도?”
“곽 대주님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지옥이라도 괜찮습니다.”
“!!”
위하윤의 말에 백리화와 황혜린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비화룡 위하윤이 곽휘운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 좋아요. 하윤 소저를 식객으로 받아들일게요.”
“감사합니다.”
백리화는 위하윤을 식객으로 받아들이기로 정했다.
지금의 백리세가에 한 명의 고수가 추가되는 것은 두 팔을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어쩐지 마음으로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세가를 위해서는 당연히 수락하는 것이 맞았다.
위하윤은 무림이 검증한 고수이니 말이다.
“그럼 오늘 저녁에 머물 곳을 정해 드리겠습니다.”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곽휘운이 앞으로 나섰다.
곽휘운은 이렇게 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백리세가가 갑자기 무림맹의 거점이 되어 버린 만큼, 위하윤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곽휘운의 생각대로 아직 완전히 백리세가의 내실을 다지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그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정천맹이란 거대한 곳이 나타나 버렸으니, 조금이라도 더 단단히 대비해야만 했다.
위하윤이 그저 백리세가의 식객으로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분명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오라버니. 오늘은 저랑 산책이라도 가지 않으실래요?”
황혜린은 위하윤이 백리세가의 식객으로 지낸다는 결정이 떨어지자, 재빨리 곽휘운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지금 그녀의 경종이 열심히 울려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위하윤은 아주 강력한 연적이 될 것이라고.
“오라버니……?”
위하윤은 오라버니라고 친근하게 곽휘운을 부르는 황혜린의 모습에 눈에서 불을 뿜었다.
아직까지 자신은 대주님이라 부르는데, 오라버니라니!
“저는 그럼 옛날처럼 그냥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
“예?”
“휘, 휘운. 이렇게 말이야.”
곽휘운은 오랜만에 듣는 위하윤의 친근한 부름에 고개를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명 백리세가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었지만, 어째 자신의 처지는 조금 꼬이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 혜린 소저는 남은 객실을 마저 정리해 주시고, 하윤 소저는 제가 지낼 곳을 직접 알려 드리겠습니다.”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백리화가 재빠르게 상황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위하윤과 묘한 신경전을 펼치던 황혜린은 백리화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다, 백리화의 눈을 보고는 조용히 남은 객실을 정리하러 자리를 떴다.
지금 백리화의 두 눈에서는 묘하게 살벌한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객주님. 잠시 제가 자리를 비워도 되겠지요?”
“예. 괜찮습니다.”
박력이 느껴지는 백리화의 말에 곽휘운도 꼼짝 못하고 괜찮다고 대답했다.
곽휘운의 확답을 들은 백리화는 곧바로 위하윤을 이끌고 백리세가로 향했다.
“휘유~ 곽휘운 너 완전 꽃밭을 차렸구나?”
“하하. 내가 그럴 자격이나 되겠는가?”
어느샌가 곽휘운의 뒤쪽에 나타난 남궁태산.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곽휘운이 당황하는 표정을 할 때는 이때밖에 없으니 당연히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가?”
“내가 일 있어야지만 널 찾냐?”
“밥 먹고 자는 시간 빼면 무공 수련만 하는 자네가, 굳이 시간을 내서 나를 찾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눈치는. 자 이거 맹주님이 너한테 전해 주라던 거다.”
남궁태산은 곽휘운에게 무림맹주 위강천이 쓴 편지를 건네어 주었다.
곽휘운은 자신에게 온 것이라니, 그 자리에서 바로 읽어보았다.
“개파대전이 끝날 때까지, 신성대의 모든 권한을 모두 곽휘운에게 위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