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32화 (32/203)

<휘운객잔 32화>

백리화는 눈앞에 있는 검성 남궁태산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숱하게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이다.

당연히 백리화가 신기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네, 태산.”

“그렇지. 네놈이 말도 없이 도망간 이후로 처음이니까.”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남궁태산.

도무지 무림의 별로 추앙받는 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말투였다.

“하하. 그건 미안하네.”

“말로만 사과하려고?”

“그럼 나중에 대련이나 한번 하는 것으로 퉁치세. 어떤가?”

“흐흐. 좋지.”

곽휘운은 남궁태산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백리화가 멀뚱히 서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태산 여기 소개시켜 드릴 분이 있네. 우리 백리세가의 가주님이시네.”

“안녕하세요. 백리화라 합니다.”

“아이쿠.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태산이라 합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백리화와 남궁태산.

남궁태산은 곽휘운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매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백리화는 한 세가를 이끄는 백리세가의 가주다.

당연히 무림에서 명성이 드높은 남궁태산이라고 해도, 예를 갖추어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온 건가?”

남궁태산이 이곳에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남궁태산이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이곳 항주까지 올 만큼 한가하지는 않았다.

“맹주님이 자네에게 이걸 전해 주라고 하셨거든.”

남궁태산이 건넨 것은 작은 쪽지 한 장.

곽휘운은 그 쪽지를 곧바로 백리화에게 건네었다.

“가주님이 먼저 보십시오.”

“아, 네.”

곽휘운은 당연 백리세가의 가주인 백리화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리화는 곽휘운에게 건네받은 쪽지를 조심스레 펼쳐 읽어보았다.

“무림맹에서 저희와 같이 가고 싶다는 내용이네요.”

“생각보다 더 빨리 왔습니다.”

곽휘운의 예상과 같이 무림맹에서 손을 내밀었다.

이미 손을 잡기로 결정했으니,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그럼. 이거 다시 전해 주고 올게.”

“다시 온다고?”

“응. 백리세가가 무림맹의 거점이 되어주는데, 당연히 무인들도 보내야지.”

“자네가 다시 온다는 것은 신성대가 온단 말인가?”

“응.”

곽휘운은 남궁태산의 말에 조금 놀랐다.

신성대가 온다니?

신성대는 무림맹주의 직속부대로, 하나같이 일류를 넘은 젊은 무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무림맹의 자랑이자 얼굴들. 무림맹에서 그들을 이곳으로 보낼 줄은 몰랐다.

“개파대전 때문에 오는 것도 있거든.”

‘개파대전이라…….’

정천맹이 개파를 선언하고, 자신들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한 행사였다.

그들은 대담하게도 무림맹에도 초대장을 보내었다.

무림맹이 참석을 한다면, 힘을 보여 줄 기회였고, 참석을 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들이 참석을 하지 않는다면 무림맹이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무림에 퍼질 테니 말이다.

무림맹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없는 초대였다.

“그럼 일단 다들 월영루에 머무는 건가?”

“아니. 여기 휘운객잔에서 머물 건데?”

“월영루를 두고 말인가?”

남궁세가에서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월영루를 두고 이리로 온다니?

물론 백리세가에 힘을 싣기 위해 한 결정일 수 있지만, 남궁태산이 있는데 월영루를 두고 휘운객잔으로 오는 것은 좀 이상했다.

“원래는 다들 월영루에 있으려고 했는데, 맹주님이랑 하윤 소저가 여기로 하자고 해서 바꿨다.”

“하윤 소저께서?”

남궁태산이 말하는 하윤 소저는 무림맹주의 딸인 위하윤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림오룡 중 일인인 비화룡 위하윤.

그녀는 단연 젊은 여성 무인 중 최고의 실력을 지님과 동시에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위하윤이 이 휘운객잔으로 오자고 하자니?

“너 정말 몰라서 그런 반응 하는 거 아니지?”

“뭘 말인가?”

“하윤 소저가 너를……. 아니다. 이건 둘이 알아서 해야지.”

남궁태산은 말을 하다가 말았고, 곽휘운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백리화는 바로 남궁태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또 늘어난다고?’

백리화가 생각하기에 벌써 황혜린과 현소월이 있었다.

거기에 지금 그 어떤 상대보다 강할 것이라 생각되는 위하윤이 온다니?

백리화는 조금 마음이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왜 초조해 하지?’

백리화는 억지로 자신의 마음을 밀어내었다.

곽휘운같은 사람에게 자신 같은 사람이 마음을 갖는 다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럼 언제쯤 올 것 같은가?”

“내일 낮.”

“벌써 우리가 거절치 않으리라고 생각했군 그래. 알겠네. 준비를 해 놓지.”

“자. 그럼 나는 갈게. 백리 가주님도 내일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휘익.

남궁태산은 나타났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밤중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하하.”

“제가 그 유명한 검성님을 봤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네요.”

“이제 아마 매일 보게 될 겁니다.”

* * *

정천맹 총 본타.

청송객잔의 주변으로 세워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각들.

절반 이상은 완공이 되었지만, 아직도 남은 곳이 많았다.

물론 중요 전각들은 이미 완공이 된 상태였다.

“회주, 아니지. 맹주. 준비는 잘되었는가?”

“예. 문제없습니다.”

정천맹 항주 지부장은 자신의 앞에 있는 중년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 자가 바로 정천맹을 이끄는 맹주였다.

뒤로 질끈 묶은 머리와 코를 가로로 가로지르는 상처가 인상적인 사내.

보통 사람보다 약간 큰 키에 다부진 몸, 그리고 구릿빛의 피부는 사내를 남자답게 보이게 했다.

‘이제는 나도 가늠할 수가 없군.’

지부장은 정천맹주가 한창 젊을 때부터 보아 온 사람이었다.

그때도 강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괴물이 되어 있었다.

확실히 지켜보며 키운 보람이 있었다.

“맹에 가입한 자들도 자네를 처음 보는 자리이니 조금의 문제도 없어야 하네.”

“하하. 예. 당연하지요.”

“그리고 단은 자네가 상으로 내리는 걸로 말을 했으니, 그렇게 알고.”

“예. 어르신.”

정천맹주와 지부장의 대화이건만, 오히려 지부장이 더 윗사람 같은 모양새였다.

“흠. 그건 그렇고. 이곳으로 무림맹의 신성대가 온다고 하네.”

“아마 그들로 우리를 간 볼 속셈이군요.”

“그렇겠지. 젊은 무인들이니 핑계대기도 쉽고 말이야.”

무림맹의 생각쯤은 잘 알고 있었다.

개파 대전에 초대를 받았으니 도망칠 수는 없어 일단 수락은 했지만, 아마 영 불안했을 터였다.

혹여 개파 대전 때 망신이라도 당하면, 무림맹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젊은 무인들을 보낸 것일 터다.

주목을 받기도 쉽고, 행여나 망신을 당해도 젊은 무인이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으니 말이다.

“뭐 처음부터 그자들이 나올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나는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하네. 젊은 새싹들을 완전히 짓밟아 주면 저들의 미래를 밟아 주는 것이니 말일세.”

이번 개파 대전에서는 상대를 죽이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허용할 예정이었다.

상대를 불구로 만드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도록 말이다.

자신들은 얼마든지 그럴 힘과 자신감이 있었다.

“오귀(五鬼)를 모두 데리고 오게.”

“예.”

지부장과 정천맹주의 대화는 조금 더 이어졌고, 이내 금방 서로 자리를 떠났다.

홀로 자리를 옮긴 지부장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어디 론가로 검은색 일색의 전서구를 날려 보내었다.

“자. 이제부터 서로 얼마나 물어뜯나 한번 지켜보자고. 흘흘.”

* * *

휘운객잔의 아침.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객잔과 별채들을 전부 정비하기 시작했다.

신성대 대원들이 오는 날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보통 별채에만 계실 테지만, 그래도 모르니까 깨끗이 해야 해.”

“네.”

천금산이 왔을 때와는 또 다르게 백리화에게 중요한 시험이었다.

처음으로 무림에서 명망 높은 이들을 손님으로 받는 것이었다.

객잔을 이용하는 손님들 중 무림인들도 상당하니, 신성대가 방문했었다는 이야기만 돌아도 객잔의 손님이 확 늘어날 터.

여기에 그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 준다면, 순식간에 무림인들을 고객으로 휘어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시당하고 싶지도 않고, 무시당하게 하고 싶지도 않아.’

신성대는 분명 월영루와 같은 최고급 객잔들만 이용해 왔을 것이다.

백리화는 자신이 운영하는 객잔이 무시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또 곽휘운이 무시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궁태산과의 이야기로 들어볼 때, 곽휘운은 신성대와 필히 인연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곽휘운이 객주로 있는 객잔의 상태가 별로라 곽휘운이 무시를 당하게 된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황 숙수님. 천 숙수님.”

백리화는 비장한 표정으로 주방에 들어서서 황중식과 천종하를 불렀다.

백리화의 표정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황중식이 백리화가 말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네. 그들이 갈 때까지 최상의 솜씨를 뽐내 보지.”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해요. 꼭 부탁드릴게요.”

백리화는 허리까지 숙여 가며 간곡히 부탁했고, 황중식은 걱정 말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 다음 찾아간 이는 황혜린.

백리화는 황혜린에게 별채 침모는 자신이 직접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일러 주었다.

황혜린은 자신이 하겠다고 하려다가, 비장한 백리화의 표정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제 더 신경 쓸 곳은…….’

그렇게 백리화가 객잔을 돌아다닌 후 1층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살랑.

“안녕하십니까. 여기가 휘운객잔이 맞습니까?”

아주 가벼운 바람과 함께, 마치 꿈결과 같이 부드러운 목소리가 백리화의 뒤에서 들려왔다.

백리화는 깜짝 놀랐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몸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피부는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머릿결은 비단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웠다.

눈은 호수에 비친 햇빛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두 입술은 붉은 과육처럼 탐스러웠다.

코는 유려하게 솟아 있었고, 몸에서는 꽃과 같은 향기가 났다.

“와…….”

백리화의 입에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황혜린도 엄청난 미인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과 같았다.

일순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듯한 미인.

지금까지 백리화가 살면서 본 여인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여기가 휘운객잔이 맞나요?”

“예? 아, 예. 맞습니다.”

평소의 백리화답지 않은 당황이 느껴지는 대답.

백리화는 아직까지 이 여인의 미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백리화가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할 때였다.

“오랜만입니다. 하윤 소저.”

“……. 네. 오랜만이네요. 곽 대주님.”

같은 여인인 백리화가 보고 정신을 못 차릴 만큼의 미녀.

그녀의 정체는 바로 비화룡 위하윤이었다.

“혼자 먼저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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