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31화 (31/203)

<휘운객잔 31화>

무림맹은 지금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정천맹에 속한 곳들 중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들도 있었다.

천하오대세가 중 사천당가와 모용세가가 정천맹으로 몸을 옮겼고, 구파일방에 들지는 못했지만 구파와 거의 비등한 세력을 지닌 해남파와 공동파가 몸을 옮겼다.

무림에 전례 없는 상황이 터진 것이었다.

“이게 다 맹주가 무능한 탓이오!”

무림맹의 대회의실.

그곳에서는 지금 큰 목소리가 연신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무림맹에 남은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천하오대세가의 가주들이었다.

그들은 작금의 사태를 모두 무림맹주에게 덮어씌우려고 하고 있었다.

“맹주는 도대체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무얼 하고 있는 것이오?”

“이래서 근본이 되지 않은 자를 맹주에 세우지 말자고 한 것이오.”

특히나 구파일방 측 사람들은 유난히도 무림맹주를 폄하하며 못마땅해 하고 있었고, 오대세가 측은 그저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드르륵.

그때 대회의전의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중년인이 등장했다.

그가 등장하자 제멋대로 떠들던 이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뇌들을 일순 압도하는 엄청난 존재감.

그의 정체는 바로 현 무림맹주이자, 무림이천의 일인인 천무제(天武帝) 위강천이었다.

“모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강천의 인사와 함께 회의가 시작되었다.

당연 안건은 정천맹에 관한 것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문파가 그들을 지지하고 나섰소이다. 맹주.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명분도 없소.”

“이대로라면 무림의 반은 그들에게 넘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벌써 본 파로 들어오는 수익이 줄어들었소.”

위강천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열을 내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들은 무림의 안녕은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정도 무림을 수호하고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무림맹의 이념 따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너무나 평화가 길었나?’

물론 완전한 평화의 시기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외부세력의 침략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날카로웠던 칼끝은 무뎌졌고, 서로를 위한 단합은 약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인만큼 완전히 썩어 버렸다.

위강천이 보기에 정천맹이 나타난 것도, 그들이 지지를 받는 것도 이해가 갔다.

“지금은 어떻게 정천맹을 억제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조용히 듣기만 하던, 남궁세가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위강천은 입을 연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물었다.

“정천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들의 본거지인 항주에 저희의 거점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왕이면 정천맹과 같이 새로운 곳이면 좋겠지요.”

지금 무림맹에게는 새로운 얼굴이 필요했다.

기존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또 다시 주축이 되어 움직인다면, 오히려 정천맹에게 힘을 실어 주는 꼴이 되고 말 터.

무림맹도 새롭게 쇄신한다는 것을 보여 줘야 했다.

“제가 전해 듣기로, 지금 항주에 백리세가가 다시금 기지개를 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정천맹과 썩 좋은 관계가 아니라 들었으니, 그들과 손을 잡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지만 그곳에는 소빙룡이 있지 않소. 무림맹을 나간 그와 다시 손을 잡자는 말이오?”

무당파의 장문인이 바로 반대의 입장을 내었다.

아무래도 소빙룡과 사이가 좋지 않으니 당연히 반대였다.

“이건 무당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무림맹 전체를 위한 일입니다. 사사로운 감정은 일단 접어 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뭐라고 하셨소? 사사로운 감정?”

“사실 우리는 무당파가 아니라, 소빙룡이 거절할 때를 걱정해야 하지 않겠소.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말이오.”

“지금 우리 무당파를 모욕한 것으로 생각해도 되오? 남궁 가주?”

무당파의 장문인과 남궁세가의 가주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사실 무림맹 내에서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간의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

그들은 한배를 탔지만 그와 동시에 서로를 견제하는 세력이었다.

“그만. 거기까지만 하십시오들.”

결국 위강천이 중재를 나섰다.

그러자 못마땅하지만 서로 화를 참았다.

“일단 저도 남궁 가주님의 말씀에 동의를 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나서서 백리세가와 손을 잡아 볼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동의합니다.”

사실 여기 모인 이들은 결론이 어떻게 나든 큰 상관은 없었다.

그들에게 손해가 가는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금 그들은 그저 머릿속으로 이번 결정에 자신들이 볼 손해와 이득을 정리하기 바빴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자세한 계획은 책사에게 짜라고 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회의는 마무리 되었고, 각자들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대회의전에 남은 것은 위강천과 남궁세가의 가주뿐.

“강천. 저들은 아직도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 모르는 것 같네.”

“너무 오랜 평화가 저들을 저리 만든 것이겠지.”

무림맹주인 위강천과 남궁세가의 가주는 오랜 친우 사이.

둘은 지금 정천맹 사태가 생각보다 매우 위험함을 알고 있었다.

정의를 표방하고 나선 그들이지만, 그 깊은 곳에는 그들도 모르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천맹도 그들에게 놀아나는 것일 뿐일지 모르겠어.”

“분명 그럴 걸세.”

“참. 이걸 저들에게 말해 봐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테니, 문제로구만.”

“저들은 아마 자네가 일부러 분위기를 조장해서 무림맹을 장악하려 한다고 생각할걸세.”

위강천과 남궁세가의 가주는 필히 정천맹이 ‘그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확실한 물증이 없으니 어떻게 할 방도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 나서봐야 그들은 꼬리를 자르고 더욱 치밀하게 움직일 터였다.

차라리 지금 정천맹이란 형태로 대놓고 나타난 것이 나았다.

“그보다 정말 자네가 직접 찾아갈 건가?”

“그러고 싶네만, 시간을 내기가 영 힘들어서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자네 아들에게 부탁 좀 하려하네.”

“태산이에게?”

“그러네.”

* * *

한창 수련 중인 백리세가.

모두들 곽휘운이 건네준 천삼단을 먹고 장족의 발전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당연 눈부신 발전을 보여 주는 이는 백리화였다.

지금 다시 황혜린과 대련을 한다면, 열 번이면 열 번 백리화가 이길 터였다.

그만큼 백리화의 재능은 엄청났다.

“객주님. 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백리화는 수련이 끝나고 곽휘운에게 궁금했던 것을 하나 물어보기로 했다.

“말씀하십시오.”

“무림맹에는 곽 객주님 같이 강한 분이 많이 계시나요?”

백리화는 무림맹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작 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무림맹에 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어떤 무인들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음. 분명 무림맹에 강한 분이 많기는 합니다. 저보다 강한 분을 꼽자면 두 분정도 계시겠군요.”

“네?”

백리화가 듣기로 무림맹에 소속된 무인들의 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런 무인들 중 곽휘운보다 강한 사람이 두 명뿐이라니?

곽휘운에 대해 전혀 몰랐다면, 그저 허풍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이라면 절대 허풍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수준인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나이가 같은 친구가 말이죠.”

백리화는 곽휘운의 말에 또 놀랐다.

곽휘운과 같은 젊은 나이에 이런 엄청난 실력을 갖춘 이가 또 있다니?

그리고 그때 백리화의 머리를 스치는 이름이 하나있었다.

“검성 남궁태산!”

“예. 맞습니다. 그 친구입니다.”

검성(劍星) 남궁태산.

무림에서 뛰어난 후기지수에게 오룡이라는 별호를 달아 주었지만, 남궁태산을 오룡과 같은 격으로 두기에는 실력이 너무나 차이가 났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검성이라는 별호를 새롭게 달아 주었다.

남궁태산은 남궁세가의 보물이자, 전 무림의 보물이라고까지 불리는 자였다.

그는 이미 약관을 넘기기 전에 십객을 넘어섰고, 지금은 팔왕까지도 넘어섰을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인 그야말로 천재 중의 천재,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곽휘운은 자신이 그 남궁태산과 비슷한 수준이라 말한 것이다.

“정말. 이제는 놀라기도 힘들 정도네요.”

지금까지 곽휘운 덕에 평생을 놀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놀라고 있었다.

곽휘운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당연히 알았지만, 검성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저는 지금 엄청난 분에게 지도를 받고 있는 거네요.”

“하하. 제가 그렇게 엄청난 사람은 아닙니다.”

곽휘운이 엄청난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림의 누가 엄청난 사람이란 말인가?

백리화는 다시 한번 곽휘운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지금 주어진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놓치지 않겠어.’

그렇게 백리화가 속으로 다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휘리릭. 타탓.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백리세가 주변은 제갈중천이 설치한 진법이 발동되어 있는 곳.

저렇듯 아무렇지 않게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영은 너무나 수월하게 진법들을 헤치며, 이곳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객주님. 아무래도 모두를…….”

“아.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니까요.”

“친구요?”

“예. 방금 전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와 비슷한 수준의 친구 말입니다.”

“검성!”

백리화의 고개가 인영이 다가오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던 그 인영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백리화의 뒤쪽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캬. 이거 중천이 그놈이 깐 거지? 진짜 귀찮게도 깔아 놨네. 그놈이 한 거 아니었으면 벌써 도착해서 차 한 잔 마셨을 텐데.”

격식 없는 어투와 더없이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사내.

그가 바로 후기지수 중 제일이라 불리는 검성 남궁태산이었다.

아마 현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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