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30화>
곽휘운에 의해 신호문의 정예들이 모두 죽어, 신호문이 갑자기 와해되어 버리는 사건이 채 끝나기도 전.
항주가 아닌 전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 사건이 항주에서 일어났다.
썩어 버린 무림맹을 대신한다는 기치 아래 정천맹이 항주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저 말만 이렇게 한 것이라면, 무림맹에서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무림의 수많은 문파가 정천맹을 지지하고 나섰고, 무림맹을 탈퇴하는 곳도 꽤 나왔다.
‘모두의 무림.’
정천맹은 현재 무림맹의 주축인 구파일방과 천하오대세가 지배하는 무림이 아니라, 모두가 인정받는 무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 말에 매력을 느낀 수많은 중소방파가 정천맹을 찾아왔다.
물론 정천맹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몰라 갈팡지팡하는 문파들도 많았다.
이를 정천맹도 아는지, 그들은 무림의 모두를 초대해 ‘개파대전’을 한다고 선언했다.
* * *
“이렇게까지 대담할 줄은 몰랐는데.”
곽휘운은 정천맹의 개파 선언에 조금은 놀랐다.
분명 그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대담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들에 동참하는 문파가 많다는 것에 또 한 번 더 놀랐다.
‘하긴 그간 구파일방에 당한 문파들이 한둘이 아니지.’
물은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그나마 천하오대세가는 가족 중심에 세속에 가까운 곳이라 주변 문파들에 큰 원망을 사지는 않았지만, 구파일방은 달랐다.
그들은 천하오대세가보다 더 오랜 시간 무림에 군림하고 있던 곳들인 데다가, 구파일방 외에 다른 곳과는 일절 교류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점차로 그들은 썩기 시작했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도를 넘은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정천맹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몰랐다.
‘분명 썩은 부분은 도려내야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 온 정천맹의 방식은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썩은 부분만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필히 큰 희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얼마 전 각철패를 통해 확인한 정천맹의 뒷모습.
곽휘운이 보기에 정천맹을 정도를 걷는 곳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객주님. 손님이 꽉 차서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이거 참. 좋아해야 할지…….”
“네?”
“아닙니다. 다들 바쁘실 텐데 저도 한 몫 거들겠습니다.”
곽휘운은 백리화에게 객잔이 만원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기분을 느꼈다.
객잔 주인으로서는 지금 정천맹 덕분에 항주로 몰린 사람들 때문에 객잔이 연일 호황인 것에 기뻐해야 하지만, 정천맹과 썩 사이가 좋지 않은 곽휘운으로서는 정천맹이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것이 기쁘지는 않았다.
그들이 주목을 받고 힘이 강대해지면 결국 곽휘운에게 칼을 들이밀 테니 말이다.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은 지금에 충실해야겠지.’
곽휘운은 백리화를 따라 객잔으로 나서서 일손이 부족한 곳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주었다.
사람이 많은 만큼 이런저런 일들도 많았고, 당연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남주학이 나서서 저지했지만, 동시에 여러 곳에서 일이 터지면 곽휘운에 백리화까지 나서야했다.
‘참. 쉬운 일은 없군.’
지금 이 객잔을 운영하는 것이 곽휘운에게는 마두를 제거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오늘 모두 고생하셨어요.”
전쟁 같던 객잔을 마감하고 세가로 돌아가는 길.
총관인 백리화가 객잔 식구들을 격려했다.
객잔 경험이 일천한 곽휘운, 남주학, 제갈중천, 황혜린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다른 식구들은 멀쩡했다.
그들은 이런 경험도 많았고, 최근 무공을 익힘으로 몸도 튼튼해져 크게 피곤하지 않았다.
“백리 총관님이 중심을 잡아 주지 않으셨다면, 객잔이 수라장이 되었을 겁니다.”
“호호.”
오늘의 백리화는 곽휘운에게 그야말로 초절정의 고수와 같이 보였다.
객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리하면서, 정확한 상황판단과 그에 따른 해결책을 내놓았다.
곽휘운은 도저히 백리화처럼은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다들 운기만 하고 들어가는 것으로 하지요.”
“네.”
너무나 몸을 몰아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마련이다.
내일도 오늘처럼 바쁠 테니, 오늘은 운기만 해서 몸을 조금 쉬어 주는 것이 맞았다.
“아, 그리고 백리 가주님.”
곽휘운은 세가로 돌아왔으니, 백리화를 가주님이라 불렀다.
“네.”
“운기를 하시기 전에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곽휘운은 잠시 백리화에게 시간을 내어달라 했다.
정천맹과의 일과 백리세가의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지금 정천맹과는 사이가 틀어진 상황이니, 아무래도 그들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곽휘운은 정천맹과의 일부터 차근히 설명을 시작했다.
“다행인 것이라면, 항주의 모든 문파들이 정천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백연상단이 저희에게 우호적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항주에 있는 모든 문파가 정천맹에 속하지는 않았다.
물론 거의 대다수의 거대 문파들이 정천맹에 속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현재 정천상단이 엄청난 속도로 백연상단을 밀어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항주에서 백연상단의 힘은 건재했다.
그런 백연상단이 우호적인 세력인 만큼 물품들의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리고 이제 정천맹이 움직이면서 무림이 급변할 텐데, 어쩌면 이것이 백리세가에게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천맹과 무림맹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것.
그렇다면 고요했던 이 무림이 급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백리세가에게 어쩌면 호재로 작용할지도 몰랐다.
제대로 된 힘만 갖추고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무림에 백리세가라는 이름을 크게 알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마 무림맹에서 먼저 저희에게 손을 내밀어 올 것입니다. 그때 무림맹과 손을 잡을지 아니면, 독자로 나아갈지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정천맹이 나타나고, 많은 문파가 그곳에 가입하면서 무림맹도 급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림맹은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곳에도 손을 내밀 것이고, 그 손을 잡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가주인 백리화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백리화는 곽휘운의 말에 고심에 빠졌다.
그녀는 과연 어느 선택이 좋을지를 빠르게 저울질했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저 무림맹이…….”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무림맹의 손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곽휘운이 채 말을 끝내기 전에 백리화가 결정을 내렸다.
곽휘운은 백리화에게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는 눈빛을 보내었다.
“무림맹은 앞으로 정천맹을 견제하기 위한 거점이 필요할 거예요. 현재 항주에 무림맹 지부가 있지만, 그곳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그렇다면 힘을 모을 새로운 거점이 필요한데, 그곳을 저희 백리세가가 담당하면 좋을 것 같아요.”
곽휘운은 백리화에게 미소를 보내며, 계속 말하라는 눈빛을 보내었다.
“물론 무림맹이 처음부터 얼마나 지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보내는 시늉이라도 할 거에요. 저희는 그것을 이용해서 힘을 키우면 될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무림맹은 저희 객잔의 훌륭한 고객이 될 것이고 말이죠.”
백리화가 생각하기에 정천맹의 견제를 위해 무림맹에서는 필히 무인을 이곳으로 파견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이 지낼 공간이 필요했다.
백리세가가 무림맹과 손을 잡아 거점이 된다면, 무림맹의 무인들을 휘운객잔에 지내게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요금은 무림맹에서 낼 테고 말이다.
이래저래 백리세가에는 나쁠 것이 없었다.
“다만, 객주님께서 괜찮으실지 걱정입니다.”
백리화는 곽휘운이 좋지 않은 일로 인해 무림맹을 나왔다는 것을 남주학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곽휘운이 무림맹과 손을 잡는 것이 싫지 않을까 싶었다.
곽휘운이 싫어한다면, 무림맹과 손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하하. 주학이에게 들으신 모양이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무림맹에는 크게 악감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필히 그들과 엮이게 될 거예요. 무당파는 그나마 절강성이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니까요.”
곽휘운이 무림맹을 나오게 된 이유.
무릎을 다쳐서 나오게 된 것으로 주변에는 말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곽휘운이 왜 무림맹을 나왔는지, 왜 무릎을 다쳤는지 알고 있었다.
‘무당파의 장로의 손에 소빙룡의 무릎이 박살 났다.’
곽휘운이 무릎을 다친 것은 마두 때문이 아니라, 무당파 장로 때문이었다.
곽휘운은 무림맹에 있는 젊은 무인들 중 단연 부각을 나타내는 무인 중 하나였다.
멸마대에 있어서 낮게 보는 이도 많았지만, 진짜 곽휘운을 아는 자들은 절대로 곽휘운을 낮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실력으로 치고 올라오는 그를 견제하기 위해 사력을 다할 정도였다.
그런 와중 곽휘운이 무당파의 차기 문주라고 불리는 자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곽휘운이 그를 아주 가볍게 제압해 버렸고, 이를 지켜본 자들이 무림맹에 이리저리 이야기를 퍼트렸다.
‘무당파의 차기 문주가, 소빙룡에게 꼴사납게 패했다.’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제자가 손쉽게 제압당해 버렸다는 소문이 돌자 무당파의 고고한 자존심이 이를 용납지 못했고, 무당파는 이 소문의 주인인 곽휘운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호시탐탐 곽휘운을 무너뜨리려던 무당파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멸마대의 대원 중 한 명이 무당파의 제자의 무릎을 실수로 부숴 버리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무당파는 이를 좌시할 수 없다면서 길길이 날뛰었고, 무림맹에서 입지가 견고한 무당파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무림맹은 그 대원의 내공을 파하고 영구히 무림맹에서 제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때 곽휘운이 실수로 일어난 일에, 너무나 과한 처사이니 다시 한번 더 재고해 달라고 무당파에 청을 넣었다.
‘그럼. 대원을 잘 관리하지 못한 대주의 탓이니, 똑같이 곽대주의 무릎을 내어 준다면 이번 일은 없던 것으로 하지.’
곽휘운의 청을 들은 무당파가 내놓은 대답.
무당파는 평소 곽휘운의 성격 상 당연히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알고, 이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곽휘운에 대한 복수와 함께, 그를 무너뜨리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결국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당파의 예상대로 곽휘운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무당파의 장로의 손에 의해 곽휘운의 무릎은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 길로 곽휘운은 무림맹을 나올 결심을 했고, 이렇게 항주로 내려와 객잔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백리세가가 무림맹과 손을 잡으면, 무당파의 사람들과 필히 엮이게 될 터였다.
백리화는 그것이 너무나 걱정되었다.
“그때는 제가 ‘무림맹 소속’의 무인이었으니 그랬던 것이고, 지금은 ‘무림맹 소속’은 아니니 무당파와 엮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때는 무림맹 멸마대라는 무림맹에 소속된 처지였지만, 지금은 백리세가의 소속이다.
이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동등한 위치에서 무림맹과 손을 잡는 것이고, 그때는 무림맹의 밑에서 일을 하는 을의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무림맹과 손을 잡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백리화에게 선택을 맡겼지만, 곽휘운도 무림맹과 손을 잡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곽휘운이 무림맹을 나왔다고 해도, 아직은 무림맹에 아는 이들이 다수 존재했다.
무림맹과 손을 잡는다면, 그들의 도움을 얼마든지 손쉽게 끌어낼 수 있을 터.
‘어쩌면 이번 계기로 무당파에게 크게 되갚아 줄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군.’
곽휘운은 망가진 무릎을 한번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자신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당연히 갚아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기회가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천맹이란 곳이 등장하리란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렇게 많은 문파가 정천맹에 속해 있을 것이란 것은 예측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