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29화>
무인이 내공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겠다는 말과 같다.
곽휘운의 지금 말은, 무인이라면 모두 경악할 이야기였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으십니다.”
다들 어느 정도 무공을 익혔기에, 곽휘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뒤늦게 이해했다.
그리고 다들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그들도 그렇게까지 곽휘운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건 여러분을 위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저를 위한 결정이기도 합니다.”
곽휘운이라고 마냥 사람이 좋아서 내공을 나누어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현재 백리세가에서 제대로 된 전력이라고는 곽휘운, 남주학, 제갈중천이 유일했다.
그다음 황혜린이 있지만, 솔직히 조금 부족하기는 했다.
물론 곽휘운 혼자서도 웬만한 일들은 처리가 가능했지만, 문제는 혹시나 모를 상황이었다.
분명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모두 일정 수준까지는 끌어 올려야 내가 편해지겠지.’
곽휘운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이 훨씬 힘이 든다.
이들이 스스로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백리세가가 이제 무림에 다시금 발을 내딛을 때 이들이 모두 강해져 있어야, 조금이라도 앞날이 편해질 터였다.
“그리고 여러분의 걱정과는 다르게, 저는 조금 특이한 체질이라 내공을 나누어 드린다고 해도 금방 다시 복구될 겁니다.”
객잔 식구들은 모두 자신들의 걱정을 덜려는 말이라 생각했다.
내공은 결코 금방 복구 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자. 가주님부터.”
곽휘운은 천삼단에 자신의 내공을 넣었다.
슈우욱.
푸른빛의 내공이 넘실거리며 천삼단으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은 꽤나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완성된 천삼단을 백리화부터 한 명씩 차례로 전해 주었다.
남주학과 제갈중천도 포함해서 말이다.
“자. 그럼 제가 지켜볼 테니, 모두들 단을 섭취하시기 바랍니다.”
꿀꺽.
동시에 천삼단을 삼키는 식구들.
그들은 몸 안에서 휘몰아치는 내공을 느끼며 얼른 운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확연히 그들의 내공이 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곽휘운은 그 모습을 만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직 멀었지만, 나쁘지는 않아.’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제대로 백리세가라는 이름으로 움직여도 괜찮을 듯싶었다.
다들 운기에 완전히 빠져들었을 때.
팅. 팅. 팅.
제갈중천이 설치해 두었던 진법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지금은 야심한 시각, 분명 좋은 의도를 가지진 않았을 터였다.
제갈중천이 운기를 멈추고 눈을 떴지만, 곽휘운은 계속 운기를 하라고 말렸다.
백리세가 안이라면, 곽휘운이 없더라도 안전할 테니, 바로 밖으로 몸을 날렸다.
‘마중을 나가야겠군.’
주변에서 싸움이 나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곽휘운은 빠른 속도로 진법이 알려 온 방향으로 달렸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여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보였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몇을 보니, 아무래도 환영진에 당한 듯했다.
“저들은 두고 간다!”
그들은 환영진에 빠진 이들은 그냥 두고, 앞으로 다시금 움직이려 했다.
“아아. 다들 거기서 멈추십시오.”
그때 그들의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
곽휘운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누구냐!”
“곽휘운이라 합니다.”
“소빙룡!”
“흠. 옷을 보니 신호문분들이시군요.”
가슴팍에 그려진 날개달린 호랑이.
지금 백리세가로 다가오던 무리의 정체는 신호문이었다.
그들은 복장도 갈아입지 않고 진격해 오는 중이었다.
“굳이 멀리 안가도 돼서 좋군.”
신호문을 이끄는 것은 신호문 문주인 각철패였다.
그는 신호문의 정예들을 이끌고 곽휘운을 죽이기 위해 직접 움직였다.
그는 진법에 걸린 이들을 보며, 차라리 이렇게 곽휘운이 마중을 나온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괜히 진법에 걸려 전력을 상실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멍청한 놈. 자만에 빠져 이렇게 튀어나온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각철패는 곽휘운 하나쯤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 아무리 소빙룡이라 해도 여기 있는 인원들이면 충분했다.
천수검문이 소빙룡에 의해 멸문당했다는 이야기는 회를 통해 들었지만, 천수검문같은 곳과 자신들은 수준이 달랐다.
천수검문은 문주였던 천주룡을 빼면 별것도 아닌 곳이었으니까.
“네놈이 우리 문도를 죽였다던데, 맞느냐?”
“가면을 쓰고 우리 객잔에 쳐들어 온 사람들이라면 맞습니다.”
“그래? 그럼 긴말 할 것도 없지.”
스릉.
일제히 무기를 빼어드는 신호문의 무인들.
곽휘운도 검을 빼어들었다.
“아,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지금 오신 것은 정천회에서 시키신 겁니까?”
만약 정천회의 명령으로 온 것이라면, 약속이 깨진 것이었다.
“흥. 회의 명령에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느냐?”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죽을 놈이 별 걱정이구나! 죽여라.”
각철패의 명령에 신호문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휘우우우.
자욱한 구름이 퍼져나가고, 단발마의 신음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윽.”
“큭.”
그리고 더 이상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구름이 잠시간 걷어지고 들어난 모습.
곽휘운에게 달려들던 신호문 무인들이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각철패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전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 쓰러진 신호문의 무인들은 절대로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다.
모두 신호문의 정예들이었다.
그런데 모두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죽다니?
이건 상상을 벗어난 강함이었다.
“자. 도망치실 겁니까?”
곽휘운의 도발에 뒤로 물러나던 각철패의 발이 멈추었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을 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도망쳐서 살아남아 봐야 어차피 정천회에게 죽임을 당할 터였다.
그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아주 싫어했으니 말이다.
“끝을 보자.”
콰아아.
각철패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터져 나왔다.
진원진기까지 모조리 동원한 힘이었다.
거기에 몸에 아직까지 흡수되지 않고 있던 단약의 힘이 순식간에 더해졌다.
“흐읍!”
정천회에서 준 단약을 먹을 때마다 언제나 조금씩 남아 있던 잔재들.
그저 빠르게 단약을 만들기에 들어간 찌꺼기 같은 것들인 줄 알았는데, 그것들 모두가 내공이었다.
“크하하하!”
온몸에 힘이 넘쳐흐르는 각철패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이라면 그 누가 와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죽여 주마!”
콰앙!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덜려드는 각철패.
그 모습은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
하지만 곽휘운은 아직도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휘운검법. 제 사초. 막.
쾅! 쾅! 쾅!
각철패의 엄청난 공격이 곽휘운을 둘러싼 구름을 때렸다.
일격마다 일순 구름이 흩어졌지만, 이내 다시금 뭉쳐지면서 각철패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 내었다.
“흐아아압!”
각철패는 차고 넘치는 내공에 더욱 더 힘을 끌어올렸다.
투둑.
힘줄이 튀어나오고, 피부가 검게 변하기 시작한 각철패.
거기에 더해 눈의 흰자위마저 검게 변해 갔다.
마치 저승에서 온 악귀와 같은 모습.
“죽어! 죽어! 죽어!”
그렇게 모습이 변할수록 각철패의 몸에서 나오는 기세가 점점 강렬해졌다.
곽휘운도 그에 맞서서 더욱더 내공을 끌어올렸고, 그만큼 구름이 점점 더 짙어졌다.
“크으으! 으아아!”
계속된 공격에도 곽휘운이 멀쩡해 보이자, 각철패는 더욱더 힘을 끌어올렸고, 이제는 도저히 사람으로는 보이지도 않게 될 정도까지 되어 버렸다.
“흐음. 이게 정천회의 짓이었군.”
곽휘운은 각철패의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림맹 멸마대에 있을 때에 종종 마두들 중에서 지금 각철패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마공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정천회와 뭔가 관련이 있는 듯싶었다.
“이런. 너무 오래 끌었나.”
입에서 침을 흘리기 시작하는 각철패.
조만간 몸이 폭발한다는 신호였다.
곽휘운은 곧바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 휘운검법. 제 일초. 파.
쩌저저적.
각철패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발버둥치는 각철패였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는 그대로 완전히 얼어붙었고, 곽휘운의 마지막 일검에 그대로 온몸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아무래도 더 조심하고, 준비해야겠어.”
그들과 계약을 했다지만, 무림에서의 계약이란 것은 어느 한쪽의 힘이 강해지면 깨지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정천회가 웅크리고 있지만, 그들이 아마 기지개를 켜는 날 계약은 일방적으로 깨질 터였다.
그때를 위해서 부지런히 준비해야 했다.
* * *
“신호문이 단독으로 나서?”
“예. 각철패가 정예들을 모두 대동하고 휘운객잔으로 향했고, 결국 모두 죽었답니다.”
“쯧. 벌써 두 곳이나 없어졌군.”
정천회 항주 지부장은 들려온 보고에 작게 혀를 찼다.
신호문 하나 없어지는 것은 솔직히 아무 상관도 없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이제 곧 시작되는 첫걸음에 한 곳이라도 더 있어야 좋았으니 말이다.
“그보다 다른 지부장들에게 연락은 했겠지?”
“예. 다들 차질 없이 도착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야지. 첫 걸음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절대로 차질 없이 오라고 다시 한 번 더 말하게.”
“예.”
부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라졌고, 지부장은 고민에 잠겼다.
그저 절강성에서 이름을 날리는 문파들이라 하지만, 벌써 두 곳이 손도 못쓰고 곽휘운에게 멸문 당했다.
물론 무영검객도 천수검문정도는 손쉽게 멸문 시킬 수 있겠지만, 신호문은 아니었다.
신호문의 정예들은 정천회에서 키운 동면객(銅面客) 수준의 실력인데다가, 문주인 각철패는 은면객(銀面客) 이상의 실력자다.
그들이 모두 달려들면 무영검객이라도 곤란한 상황에 빠질 터였다.
그런데 신호문 정예들이 모두 죽은데다가, 각철패는 진원진기까지 쓰고도 죽었다.
‘진원진기까지 썼다면, 분명 폭주상태에 들어갔을 텐데, 그래도 아무런 피해도 못주고 죽었다니.’
회에서 지급하는 단약은 모종의 장치가 되어 있어, 극한의 상태에 몰리면 폭주상태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가진 힘의 수배는 낼 수 있게 되는 대신, 몸이 폭발해 죽는다.
각철패가 폭주상태에 돌입했다면, 능히 무영검객과도 자웅을 겨룰 만할 정도.
그런데 그런 각철패가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죽임을 당해 버렸다.
‘한동안은 계약을 유지하는 게 득이겠어.’
아직 제대로 모든 힘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
지부장은 지금은 곽휘운과의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라 판단했다.
‘일단 휘운객잔은 놔두고, 첫 번째 계획부터 시작해야겠군.’
‘정천맹의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