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28화 (28/203)

<휘운객잔 28화>

“어서 오십시오. 자리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중요한 손님인 만큼 백리화가 직접 천금산을 별채로 안내했다.

그는 그저 대충 보는 듯했지만, 이미 머릿속으로 점수를 매기는 중이었다.

“이곳이 별채입니다.”

“흠. 괜찮군.”

그는 자리에 앉아서 다시금 별채를 둘러보고 있었다.

‘모두 최고급품이 맞군. 허! 꽤나 공을 들였어.’

보통의 객잔들은 최고급실이라 해도 모든 물품을 최고급으로 구비해 두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기에는 돈이 너무나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금산이 보기에 지금 휘운객잔에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최고급품이 맞았다.

이 바닥에 오래 있던 만큼 최고급인지 아닌지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요리가 나왔습니다.”

백리화는 황중식에게 말해 특별히 더 신경을 써 달라고 했지만, 황중식은 그저 똑같이 대접할 뿐이다라고 거절했다.

그래서 지금 천금산의 앞에 내온 요리는 다른 손님들에게 나가는 것과 같은 요리였다.

“맛이 좋군. 음식 맛만 놓고 보면 월영루보다 좋아.”

“감사합니다.”

천금산의 칭찬에 백리화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만 넘기면 높은 점수를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언제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쾅.

“여기에 천금산이 있다고 들었다!”

거칠게 객잔 문을 여는 소리와 커다란 고함소리가 별채까지 울려 퍼졌다.

“흠. 나를 찾아온 놈들이 있나보군.”

천금산은 이 소란 중에도 태연하게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다.

오히려 백리화가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

“너무 걱정 말게나. 내 호위가 처리를 할 걸세.”

천금산의 바로 뒤에 서있는 무인 한 명.

그가 바로 천금산의 호위인 묵도객 이청이었다.

십객의 일인 묵도객이 고작 호위나 하고 있는 것이 웃길 수 있지만, 천금산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돈을 노리는 자들과 천금산에게 빚을 져 원한을 갖고 있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서 천금산은 엄청난 거금을 들여서 묵도객을 호위로 고용한 것이다.

묵도객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이미 정리가 되었으니, 손님께서는 움직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곽휘운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별채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괜한 소란이 난 점 죄송합니다.”

“흘흘. 아니네.”

곽휘운을 보고는 처음으로 천금산이 웃음을 흘렸다.

천금산은 극히 감정표현이 적은 사람이었다.

그가 웃음을 흘린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다는 것이었다.

‘뭐가 만족스러운 거지?’

백리화는 왜 천금산이 웃음을 흘렸는지 궁금했다.

물론 나름 천금산을 찾아온 불청객을 빨리 처리하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 이렇게까지 만족스러워 할 리가 없었다.

‘곽 객주님 때문인가?’

백리화는 아무래도 곽휘운 때문에 저리 웃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천금산은 과연 곽휘운의 무엇을 보고 만족한 것일까?

“아무래도 이렇게 나이가 들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생긴단 말이지. 그런데 자네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사람보다 훌륭해 보이는군 그래.”

“하하.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내 눈이 꽤나 정확한 편이거든.”

천금산이 지금의 천가장을 있게 한 가장 큰 힘이 바로, 안목이었다.

그는 유난히도 무언가를 평가하는 안목이 뛰어났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곽휘운은 천금산이 지금까지 보아 왔던 그 어떤 이보다도 출중한 인물이었다.

움직임 하나에 낭비가 없었고, 두 눈은 마치 하늘을 보는 듯 끝이 없고 맑았다.

특히나 몸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정도의 인물은 본 적이 없었다.

“어떤가. 이런 객잔 말고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나? 돈은 원하는 만큼 주지.”

천금산은 지금 눈앞의 곽휘운이 너무나 탐이 났다.

천만금을 주고서라도 데리고 가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억만금을 주신다 해도 그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흘흘. 그럴 줄은 알았네만, 그래도 너무 탐이 나는군.”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천금산은 곽휘운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래도 너무나 욕심이 나서 해 본 제안이었다.

“제가 듣기로 장주님께서 객잔의 평가를 해 주신다 들었습니다.”

“그저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우는 것일 뿐이네.”

“지금 저희 객잔은 장주님의 기준에 몇 점입니까?”

곽휘운의 아주 직접적인 질문에 백리화가 놀라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곽휘운은 천금산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흠. 솔직히 말하자면, 월영루나 청송객잔에 비해서는 부족하네.”

천금산의 평가에 백리화의 표정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물론 당연히 두 객잔보다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들으니 조금은 마음이 아팠다.

마치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좋군. 음식은 월영루 이상이고 말이야. 조만간 월영루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겠어. 거기에 더해서 객주가 이런 자이니, 내 평가로는 월영루 이상이네.”

“네?”

풀이 죽어있던 백리화가 자기도 모르게 반문을 했다.

천금산의 평가로 월영루 이상이라니?

물론 곽휘운에 대한 평가 때문에 엄청난 점수를 받은 것 같지만, 그래도 천금산이 이런 평가를 내렸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었다.

“내가 본 총관 중에서 아가씨가 제일 사람답군. 거기에 더해서 옆의 객주만큼이나 훌륭하게 빛나고 있어. 분명 객잔의 총관으로는 끝나지 않을 걸세.”

“가, 감사합니다!”

항주의 수많은 객잔들 중에서 천금산에게 이런 칭찬을 들은 곳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단언컨대 단 한 곳도 없을 터였다.

“오늘은 아주 득이 되는 하루였네. 내 자주 들름세.”

천금산은 밝은 표정으로 휘운객잔을 벗어났고, 그가 나가자마자 백리화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휘유. 다행이다.”

백리화는 혹여 휘운객잔이 나쁜 평가를 들으면 어떻게 할까 싶어서 어제부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런데 다행이 오늘 기대 이상의 평가를 들었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도 아직 멀었어.’

오늘 좋은 평가를 들은 것은 곽휘운의 덕이 컸다.

음식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객잔은 월영루나 청송객잔에 비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저 오늘 평가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백리세가의 가주이기 이전에 휘운객잔의 총관이었으니 말이다.

‘최근에 너무 무공에만 심취해 있었어.’

백리세가가 새롭게 세워지고, 곽휘운에게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운 후부터는 완전히 무공에 몰두해 버리고 말았다.

분명 객잔을 항주 최고로 만들겠다고 했으면서 말이다.

‘정신 차리자, 백리화!’

백리화는 다시금 처음의 마음을 다잡았다.

“백리 총관님. 덕분에 오늘 좋은 평가를 들은 것 같습니다.”

“아니요, 객주님. 아직 더 분발해야 해요.”

백리화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움직이며, 객잔 이곳저곳을 손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곽휘운은 미소와 함께 지켜보다가 객주실로 몸을 옮겼다.

* * *

백리세가의 저녁은 그 어떤 아침보다 치열했다.

곽휘운이 신호문과의 싸움을 보여 주고 난 후 객잔의 식구들은 겁을 먹기보다 오히려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런 치열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도망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추삼, 춘삼은 언제나 무인을 동경해 왔기에, 이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남았고, 천종하는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단련하고 수련해야 황중식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에 남았다.

셋은 열정적으로 수련에 임했고, 그에 부흥하듯 그들은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좋아 좋아! 정말 재능이 있는 걸? 자자,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현재 추삼과 춘삼을 봐주는 이는 남주학이었다.

남주학은 꽤나 고된 수련에도 눈빛을 빛내는 추삼과 춘삼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수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흠. 천 숙수님은 무공에도 재능이 있고, 손재주도 좋으니 진법도 금방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오.”

제갈중천은 천종하에게 진법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곽휘운에게 들어서 천종하가 무공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제갈중천이었는데, 천종하는 진법에도 재능을 보였다.

특히 천종하에게 진법을 이용하면, 재료들을 더욱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고 하자 아주 열성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다들 열심이시네요. 저도 열심히 할게요. 오라버니.”

황혜린은 다들 열성적인 모습을 보고는 무언가 끓어오르는지 자진해서 무공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황혜린이기에 계속 붙어서 가르쳐 줄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필요할 때 몇 마디 언질만으로도 그녀는 훌륭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제 남은 마지막 한 명.

“백리 가주님. 오늘은 저와 대련입니다.”

“네!”

백리화는 곽휘운이 직접 가르쳤다.

백리화가 무공을 배우는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하지만 너무나 빠른 성취가 오히려 주화입마로 작용할 수 있기에, 곽휘운은 종종 대련을 하면서 다시 한번 배운 것들을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자. 어디 한번 성취를 볼까요?”

곽휘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리화의 기도가 바뀌었다.

이제는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뿜을 줄 아는 백리화였다.

“갑니다.”

대련은 언제나 백리화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백리화의 백화환영검의 형은 이미 완성의 단계에 근접했다.

그녀의 검이 수많은 환영을 만들어 내며, 시선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확실히 전보다 좋아지셨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너무나 무방비합니다.”

곽휘운은 백리화의 검을 손쉽게 피해 내면서, 부족한 점들을 그녀에게 지적해 주었다.

처음에는 지적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솔직히 지적할 곳이 거의 없었다.

지금 상태에서 내공만 받쳐 준다면, 백리화는 금방 일류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터였다.

“하악. 하악.”

그리 오랜 시간 검을 휘두른 것이 아니지만, 백리화는 금방 내공의 바닥을 보였다.

전에 소환단을 먹었지만, 그것은 제대로된 수혼심공을 익히기 전이기에, 많은 내공을 얻지는 못했다.

내공은 영약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단기간에 쌓을 수 없는 것이기에, 백리화가 금방 내공 부족을 겪는 것은 당연했다.

‘천삼단을 꺼낼 때가 온 것 같군.’

이제 어느 정도 객잔 식구들의 무공 수준이 올라온데다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지금이 천삼단을 먹기에 딱 좋은 시기였다.

평소라면 모두 내일을 위해 돌아갈 시간.

곽휘운이 모두를 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오늘은 여러분께 영단을 나누어 드릴 겁니다.”

딸칵.

진한 약향이 퍼지고, 약간은 푸른빛이 감도는 영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식구들은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것쯤은 다들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영단에 제 내공도 담아서 나눠 드리겠습니다.”

“예?”

“으음?”

곽휘운의 발언에 남주학과 제갈중천이 동시에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객주님,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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