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27화>
무영검객의 주변에 부는 엄청난 바람이, 곽휘운의 구름을 조금씩 걷어내기 시작했다.
무영검객은 자신의 무공인 섬전검(閃電劍)을 극한까지 발휘했다.
아주 살짝만 닿아도 그대로 몸이 잘릴 만큼 날카로운.
“이 구름이 자네의 기운인가 보군.”
“맞습니다.”
“허! 그 나이에 벌써 기운을 다루다니,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지만 이건 너무 빠른 것 같군.”
콰가각.
순식간에 무영검객의 검이 곽휘운을 향해 날아갔지만, 도중에 곽휘운이 만든 구름에 막혀 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다.
- 섬전검. 제 삼초. 팔옥뇌(八獄惱).
팔방에서 아주 미묘한 차이를 두고 들어오는 검격.
거기에 더해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쾌격인 것은 덤이었다.
- 휘운검법. 제 사초. 막.
곽휘운의 구름이 완전무결하게 모든 방위를 감싸 막았다.
쿠우우. 카가가각.
무영검객의 검기가 단 하나도 곽휘운의 구름을 뚫지 못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무영검객은 속으로 놀라고 또 놀랐다.
곽휘운이 강한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방금 자신의 공격이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지금 이 공격은 무림에서 하늘이라 불리는 자들이 아니라면, 쉽게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저자는 무어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젊디젊은 무인.
무영검객은 곽휘운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라고 생각했지만, 완전한 착각이었다.
눈앞의 곽휘운은 자신보다 한참 위에 있는 자였다.
‘이거 회가 이번에 상대를 잘못 건드렸어.’
지금 정천회는 곽휘운을 분명 걸림돌이라 생각은 하지만, 큰 위협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무영검객이 보는 곽휘운은 아주 큰 걸림돌이었다.
회의 계획을 틀어버릴 수 있을 만큼의 큰 걸림돌 말이다.
“역시 십객은 다르군요.”
곽휘운은 방금 전 무영검객의 공격을 막고 나서 속으로 놀랐다.
확실히 십객이라는 칭호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조금만 방심했다면, 막기도 전에 목이 잘려 나갔을지도 몰랐다.
“십객이란 이름도 네 앞에서는 허명일 뿐.”
“이제 싸움을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휘이이잉.
곽휘운의 구름이 휘돌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서 구름에 뒤덮인 모든 곳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당연 무영검객은 내공을 끌어오려 대항해 나갔지만, 이 한기를 막을 수 없었다.
한서불침의 경지는 이미 넘어선 무영검객이었건만, 조금씩 몸이 얼어붙고 있었다.
“흡!”
무영검객은 최대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조금이지만, 무영검객의 주변의 얼음이 녹아나가는 듯했다.
“소용없습니다.”
곽휘운의 구름이 더욱더 짙어지더니 무영검객을 거침없이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무영검객을 덮친 구름.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곽휘운은 이제 이 싸움을 끝내기 위해 초식을 펼쳤다.
카가가각. 콱!
그런데 곽휘운의 공격이 무언가에 의해 막혔다.
무영검객은 한기를 막기도 벅찬 상황.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막았단 말인가?
“이쯤하지.”
곽휘운의 공격을 막은 것은 초로의 노인.
정천회의 항주 지부장이었다.
지부장이 서있는 주변으로 곽휘운의 구름이 깔끔히 사라져 있었다.
무영검객도 어찌하지 못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 것이다.
“소빙룡이 오룡 중에서 최하라고 하더니, 무림에 있는 자들의 눈이 삐었나 보군.”
지부장은 얕지만 상처가 난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금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고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낸 자가 손에 꼽는다.
지금 급하게 막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손에 상처가 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곽휘운의 경지가 뛰어나다는 반증이었다.
“누구십니까?”
곽휘운은 지부장을 처음 보는 것이기에 정중히 물었다.
자신의 일격을 아무렇지 않게 막은 사람이니, 필히 보통 인물은 아닐 터였다.
“정천회의 지부장이네.”
지부장은 당당히 정천회 소속임을 밝혔다.
어차피 이제는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었고, 상대는 이미 자신들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이쯤하고 돌아가는 게 어떤가? 더 이상 자네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
지부장은 곽휘운의 범상치 않음을 느꼈기에, 이쯤에서 관계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아직 건드릴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흠. 멋대로 공격해놓고, 멋대로 그만하자라.”
곽휘운이 별로 좋아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힘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멋대로 하려다, 힘이 부치면 태도를 바꾸는 이들.
하지만 곽휘운은 일단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 객잔이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으니, 그전까지는 투닥거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곽휘운은 미련도 없이 몸을 돌렸다.
저들이 정말 약속을 지킬지 어떨지는 상관없었다.
만약 약속을 지킨다면 나서지 않을 것이고, 약속을 어긴다면 본보기를 보여 주면 되었다.
* * *
곽휘운이 떠난 청송객잔 앞.
무영검객은 쓴웃음을 짓고 서 있었고, 지부장은 살짝 미간이 일그러져 있었다.
“너무나 큰 변수가 생겼군그래.”
“예. 저도 이제 늙었나 봅니다. 상대의 역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부장은 일단 상황을 마무리 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곽휘운이 큰 걸림돌이 될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금 당장이라도 처리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피해가 너무나 막심했다.
이제 막 날개를 펴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벌써 그런 큰 피해를 입을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절강성에 있는 문파들에게 전해라. 휘운객잔과 관계된 모든 이를 건드리지 말라고.”
“예.”
지부장의 명령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더니 곧바로 다시 몸을 숨긴 채로 어디 론가로 내달렸다.
“내가 자네를 위해 특별한 단을 회주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겠네.”
“하하. 못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지부장은 청송객잔으로 들어가고, 무영검객은 한참 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겨 있다 몸을 움직였다.
* * *
“지금 뭐라 했나?”
“거풍도 장로와 함께 휘운객잔으로 간이들이 모두 주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무슨! 그럼 객잔은 어떻게 되었지?”
“멀쩡하다는 보고입니다.”
신호문 문주 각철패는 지금의 보고를 믿을 수 없었다.
거풍도가 어떤 자이고, 같이 간 정천회의 무인이 어떤 자인가?
능히 일류를 넘어선 자들이다.
그런데 객잔에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모두 주검으로 돌아왔다니?
“당장 장로들을 불러라.”
“하지만 문주님. 회에서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하! 내가 꼭 그들의 말을 따라야 하나? 당장 모두 모아라.”
“예. 문주님.”
각철패는 복수를 하지 않고, 회의 말처럼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는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지금 이대로 객잔 하나 없애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웃음을 사겠는가?
“나도 함께 간다. 그놈들이 무슨 수를 숨겨 두고 있을지 모르니.”
“예.”
장로들을 모두 부르기 위해 부하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각철패.
각철패는 품 안에서 커다란 단약을 하나 꺼내었다.
검은색 일색의 단약은 슬쩍 보더라도 범상치 않음을 뽐내고 있었다.
“이걸 먹고 나서 움직여야겠군.”
각철패가 정천회에 가입한 이유는 단 하나.
이 단약의 유혹 때문이었다.
아니, 아마 대부분의 문파가 이 단약의 유혹에 정천회에 가담했을 것이다.
공을 세울수록 더욱 더 좋은 단약이 상으로 내려온다.
‘객잔을 깔끔하게 없애버리면, 회에서도 인정하겠지.’
휘운객잔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지만, 그것은 실패했을 때의 이야기.
성공한다면 분명 평가가 달라질 터였다.
‘그럼 이 단약도 더 얻을 수 있을 테고 말이야.’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단약을 바라보는 각철패.
그는 조용히 자신의 개인 연무장으로 들어가 단약을 입에 넣었다.
“후읍!”
순식간에 몸 안에 퍼지는 엄청난 양의 내공.
과연 이 단약은 획기적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무엇으로 만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렴 내공만 늘면 되는 것이지.’
각철패는 몸 안에 충만히 퍼지는 내공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운기를 계속했다.
* * *
휘운객잔은 다행히 금방 다시금 정상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갈중천이 설치한 환영진 덕분에 사람들은 객잔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고, 대화로 일이 잘 끝난 것으로 소문이 퍼졌다.
“백리 총관님. 최고급 별채는 어떻습니까?”
“네. 확실히 많은 사람이 찾고 있어요.”
부호들을 위한 최고급 별채.
지금 꽤나 많은 부호가 소문을 듣고 찾아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방문했던 손님들은 모두 만족을 하고 나갔는데, 아무래도 다른 객잔들과는 다르게 각각 별채 하나를 전부 사용하는 것에 굉장한 만족을 표했다.
“그런데 오늘은 누가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 오늘 천가장의 장주가 온다고 했어요.”
천가장은 항주에서 가장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라 해도 무방한 곳이었다.
그들은 돈을 맡아 주기도 하고, 돈을 빌려 주기도 했는데, 항주에 사는 사람의 팔 할은 천가장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항주에 흐르는 돈을 틀어쥐고 있는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천가장의 장주가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입니까?”
“항주에서 지금까지 그의 입맛을 맞춘 곳은 월영루가 유일해요.”
천가장 장주 천금산.
천금산은 무일푼으로 시작해 지금의 천가장을 일궈 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직접 돌아다니면서 객잔을 평가를 하고, 점수를 매겼는데, 그 점수에 따라 신용도를 차등해서 분류했다.
그리고 차등된 신용도에 따라 천가장에서 자금의 융통가능 한도가 달라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가장의 장주가 매긴 점수가 바로 항주 객잔의 등수라고까지 이야기할 정도였다.
현재 항주에서 그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곳은 월영루였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군요.”
“네. 천가장의 장주에게 합격점을 받으면, 한순간에 월영루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거예요.”
백리화는 객잔을 돌아다니며,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황 소저, 저기 조금 더 깨끗하게요.”
“네!”
“춘삼아. 여기 조금 더 깔끔하게.”
“예.”
“남 호위님! 옷 제대로 입어 주세요!”
“아, 네!”
백리화는 오늘 평소보다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천가장의 장주가 객잔에 찾아오는 것은 객잔의 총관에게는 일종의 시험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기합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안녕하시오. 오늘 오기로 했던 천금산이오.”
그때 휘운객잔의 안으로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아주 평범한 노인이 한 명 들어왔다.
그가 바로 천금장의 장주 천금산이었다.
천금산은 별채로 향하면서 객잔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